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7 구름에 드리운 그림자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ER07-14 내전

>

마른 체구의 그림자가 커튼월 뒤에 멈춰 섰고, 두꺼운 방탄 섬유가 그를 창밖 천둥 같은 총성으로부터 차단해 주었다.

그의 발밑 수백 미터 아래에서는 기계체 경비대의 대열이 저항군 병사들을 체포해 거리로 압송하고 있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도시 구역에서는 교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베로니카가 맡긴 기계체 제어 어레이가 그의 앞에 있었다.

"저항군 진압"이라... 얼마나 모호한 명령인가? 의심할 여지 없이, 이 명령은 그에게 자율적으로 판단할 여지를 너무나 많이 주었다.

나는... 사신이다.

나는... 너희들의 정복자다.

Veni, vidi, vici...

모든 인간이 이 전쟁에서 소멸할 것이다.

그의 제국은 세상을 물들인 진홍빛 속에서 솟아오를 것이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도움으로 난민들은 또 다른 빈 우주선 정박고에 임시로 안착했다.

괜찮아요. 난민들 모두 드미트리를 신뢰하고 있고, 인계될 때는 좀 화를 내긴 했지만, 실제로 피해를 본 건 없으니까요.

지휘관이 리브와 함께 난민들을 계속 안심시키며 이것은 "전략적 계획"이라고 설명했기에, 난민들은 율리아에 대해 그다지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율리아도 이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알았기에, 반박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잠시 안정을 찾고 인원 점검을 돕고 있을 때, 난민들 사이에서 갑자기 소동이 일어났다.

격납고 반대편을 바라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휠체어에 앉은 소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율리아는 구멍이 뚫린 쪽지를 꽉 쥐고 있었다. 그녀의 평온한 표정은 주변의 소란과 대조적이었다.

뭐... 뭐라고요? 드미트리는... 어디로 간 거죠?

방금 율리아 님께서 말씀하시기로는 드미트리가... 천국의 다리로 갔다고...

뾰족 머리에게 잡히면 죽을 거예요!

드미트리가 에너지 시스템 유지보수를 담당하고 있어서 원자로 구조를 잘 알고 있긴 하지만...

뾰족 머리가 조종하는 기계체들은 동포인지 아닌지 상관하지 않고 공격할 텐데...

노인의 말은 눈 위로 뜨거운 물을 뿌린 것처럼, 겨우 쌓아 올린 낙관적인 분위기를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율리아는 새로 온 방관자를 알아채고, 시선을 리브에게로 돌렸다.

드미트리가 혼란을 틈타 이 쪽지를 남기고 떠났어요.

율리아는 겉으로는 침착한 척하면서, 그 쪽지를 리브에게 건넸다.

촘촘히 늘어선 구멍들이 글자를 이루고 있었다. 이는 분명 기계체들만의 독특한 메시지 방식이었다.

유라 님께:

SDC-39는 항공 시스템 엔지니어였고, 저는 설계 초기부터

천국의 다리의 에너지 시스템을 유지 보수하는 것이 제 임무였습니다.

그래서 원자로의 구조를 잘 알고 있고, 제어 코어의 방사선량도 견딜 수 있습니다.

제가 가서 멈추는 것만이 발사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제 마음대로 행동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 기억은 어떻게든 백업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선현님의 가르침 아래 다시 깨어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때가 되면, 반드시 유라 님의 선의를 다시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동료로서 당신 곁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 도시가 그날까지 존속할 수 있도록, 제가 이기적이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함영과 공중 정원의 손님들이 당신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입니다.

짧은 쪽지가 가져온 침묵이 이 텅 빈 격납고 안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도시의 모든 거리가 전장이 되어버렸다. 기계체들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천국의 다리 기단에 접근하여 원자로의 제어 코어까지 잠입한 뒤, 수동으로 정지한다는 건...

허황된 소리였다.

하지만 함영이 이미 천국의 다리 관제실로 향하고 있어요.

디마가 함영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입술을 깨문 리브는 이 상황을 이해했다.

하지만 어쨌든, 전 디마가 죽으러 가는 걸 그냥 둘 수 없어요.

율리아는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 어떤 결심이 숨어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율리아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보물을 조심스럽게 간직하듯 쪽지를 상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휠체어의 손잡이를 꽉 잡고, 소란스러운 난민들 사이로 들어갔다.

여러분, 제 말씀을... 들어주세요.

작은 목소리였지만, 율리아가 말하자 모든 난민들이 습관적으로 조용해졌다.

지금 상황은 여러분 모두가 보신 그대로입니다.

전에 여러분이 기계체들에게 잡혀간 건 제 잘못이었어요. 죄송합니다.

율리아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난민들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에이, 우린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건 "전략적 계획"이었잖아요. 좀 무섭긴 했지만, 모두 무사히 돌아왔으니 상관없어요.

맞아요. 드미트리가 아니었다면 몇 명이나 여기에 살아남았을지 상상할 수도 없어요. 그러니 드미트리가 뾰족 머리한테 잡혀서 기억이 지워져 바보가 되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어요.

감사합니다.

율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난민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밖의 상황은 방금 함영이 말한 대로입니다.

베로니카는 저항군들의 알렉세이 공격을 이유로 우리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의 인간들을 체포하기 시작했어요.

기계체들은... 이제 더 이상 인간과의 표면적인 평화를 유지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곳은 우리의 도시이고,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곳이에요.

도시 밖에는 퍼니싱이 득실거리는데, 이곳을 떠나면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난민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제가 디마를 돕고 싶어 한다는 걸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디마를 돕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돕는 거라 생각합니다.

이대로 숨어 살면, 두 가지 결말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평화의 가면을 벗은 기계체들에게 끌려가 처형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베로니카가 천국의 다리를 가동하다가 공중 정원의 궤도포에 맞아 잿더미가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은... 이렇게 죽길 원하시나요?

맑은 총성이 한 번 울렸다. 이어서 두 번, 세 번, 네 번...

장전하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난민들이 패배한 기계체 경비병들로부터 빼앗겼던 무기들을 어느새 되찾아 재무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동은 저항군처럼 질서 정연하진 않았지만, 증오와 원칙에 사로잡힌 살인 기계들보다 더 역동적이었다.

하, 그렇게 죽다니 너무 한심하잖아요. 원자로까지는 못 가더라도, 미친 고철 덩어리들하고 한판 붙어볼 순 있겠네요.

뾰족 머리가 성공하면 우린 정말 살 수가 없을 거예요.

매립장에서만 숨어 살다 보니 우리가 기생충 같았어요.

우리도 더러운 짓을 많이 했어요. 매번 생존을 위해서라고 자기합리화하면서요.

하지만 이런 때에 숨기만 한다면, 지옥에 가서도 지금의 제가 너무 한심해서 제 따귀를 때릴 것 같아요.

난민들이 장비를 정리하는 동안, 리브는 지휘관 곁에 서서 입술을 깨물었다.

네. 그런 것 같아요.

방관자도 그들의 투지가 느껴졌다.

인간은 비열할 수도, 위선적일 수도 있지만, 공동의 "적" 앞에서는 하나로 뭉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럼, 이제... 출발하시죠.

모두가 준비를 마쳤고, 율리아의 손에도 권총이 들려 있었다.

율리아는 어느 난민에게서 구했는지 모를 무거운 제논 랜턴도 안고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끝나고 나면,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율리아는 특히 마지막 한마디를 힘주어 말했다.

이제 매립장의 철근 더미 너머로는, 낮에 보였던 하얀 눈 덮인 건물들과 밤이면 자동으로 켜지던 투광등을 볼 수 없었다.

실탄과 광선이 짙은 연기에 물든 하늘을 가로질렀고, 크고 작은 폭발 구름이 연못의 빗방울처럼 터져 나왔다. 멀리 지평선에선 파괴의 둔탁한 울림이 이어졌다.

이때 저항군을 감시하던 기계체들이 완전히 통제를 벗어났다는 사실을 이 소부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들은 총구와 학살의 칼을 인간들에게 돌렸고,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은 포로들 사이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끊임없이 잘려 나간 사지들은 살육의 용광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칠흑 같은 어둠에서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빛을 지닌 소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떠난 동료들을 위해, 자신만의 전쟁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