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 인증 통과."라는 전자음이 울린 후, 관제실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러자 문 앞에 익숙한 적색 실루엣이 서 있었다.
휴... 다행이네요. 문을 연 게 함영이 아니라 베로니카라서요.
이미 말했잖아. 함영은 위협이 되지 못해.
베로니카는 잠시 멈칫하더니, 뭔가를 눈치챈 듯했다.
너... 또 자신을 개조했어?
눈앞의 청년은 팔과 종아리가 기계 부품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그렇게 보니 점점 더 기계체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아... 인간 저항군들의 습격으로 중상을 입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늘 기계체를 동경해 왔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몸을 기계체화하는 건 그 본래 의도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알렉세이는 제어 콘솔 주위를 서성이며, 베로니카를 바라봤다.
그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하지만... 제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닙니다. 전 인간들이 우리의 "꿈"을 망칠까 봐 걱정됩니다.
그들은 저를 공격했을 뿐만 아니라, 공중 정원의 지원군까지 끌어들였습니다. 심지어 베로니카의 동포를 선동해 저와 등지게 했습니다.
알렉세이의 말이 심해지자, 앞에 있던 여성 기계체의 얼굴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함영, SDC-39, 모든 "거꾸로 매달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인간 편에 맹목적으로 서는 거지?
분명... 인간에게는 기계체들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해할 수 없어.
인간을 위해 쓸데없이 희생하고, 결국엔 자신이 도와준 인간의 손에 죽는데 말이야.
SDC-39... 너무 순진했어! 그 다리가 정말 천국과 연결됐다고 믿었고, 심지어 인간과 함께 가려고 했어!
베로니카는 날카로운 붉은 빛이 감도는 창을 옆에 다 던져놓았다.
아이구... 조심해 주십시오. 여기 기기들은 한번 망가지면 수리하기 어렵습니다.
알렉세이는 베로니카의 창을 피해 다른 쪽에서 제어 콘솔로 접근했다.
SDC-39, 우리의 친구...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함영... 함영을 포함한 모든 기계체 동포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인간을 심연으로 끌어내릴 수만 있다면, 이런 비극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이번이 천국의 다리의 마지막 에너지 축적입니다. 베로니카. 공중 정원이 바로 코앞에 있습니다.
알렉세이는 옆으로 비켜서서 스크린의 에너지 축적 버튼을 보여줬다.
이걸 누르시기만 하면 됩니다. 에너지 축적이 한 번 더 완료되면, 우리의 새로운 세상이 한 걸음 더 가까워지게 됩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바로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알렉세이, 요즘 이상해.
넌 원래 인간들에게 우호적이었잖아? 인간의 대우를 개선하려 했고, 그들을 위해 변호하고...
베로니카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알렉세이를 바라봤다.
내가 말했잖아. 네가 아무리 기계체화하려 해도 기계체가 될 수는 없다고 말이야. 넌 기계체의 코어를 가지고 있지 않아.
넌 인간이면서 왜 나보다 더 인간들을 파멸시키고 싶어 하는 거지?
...
인... 인간에게 다시 상처받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알렉세이는 자신의 기계체 팔에 남은 수많은 탄흔을 보여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 인간들을 믿었습니다. 당신 말씀대로 그들의 대우를 개선하려 했고, 좀 더 좋은 걸 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떤 보답을 받게 됐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전 지쳤습니다. 베로니카. 게다가... 기계체들만의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 우리의 공통된 바람이지 않습니까?
알렉세이의 보라색 눈동자에 순간 광기가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만들려는 새로운 세상에선 배신하는 인간도, 퍼니싱도 없습니다. 오직 강철이 만들어낸 완벽한 세상뿐입니다!
기계체는 더 단단한 몸체, 더 강력한 연산 능력, 더 견고한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퍼니싱의 위협 속에 겨우 연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기계체가 인간들을 대체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새로운 세상엔 어떤 거짓말도 없다는 겁니다.
광기가 사라지자, 알렉세이의 눈에는 다시 형언할 수 없는 빛이 맴돌았다.
베로니카, 전 엔지니어로서 우주 도시 기계체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오늘 당신은 기계체들을 당신들만의 미래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 마지막 장면을 지켜보고 싶을 뿐입니다.
고개를 든 알렉세이의 표정은 무척 슬퍼 보였다. 하지만 얼굴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역시 난 너희들을 이해할 수 없어.
베로니카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바로 풀었다.
에너지 축적의 마지막 단계가 시작되더라도 천국의 다리는 바로 가동되지 못해. 그러니 난 관제실에 남아 아무도 천국의 다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할 거야.
그리고 도시의 상황이 아직 긴박해. 저항군들이 집에 갔을 리는 없잖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기계체들을 데리고 저항군을 제압하겠습니다.
...
알렉세이는 가겠다고 말만 하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에너지 축적 버튼을 누르는 걸 보고 싶은 거야?
아, 갑... 갑자기 다른 일이 생각나서 그랬습니다.
베로니카가 다시 의심할까 봐 걱정된 알렉세이는 핑계를 댄 후 관제실을 급히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