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카의 휴대 단말기에서 끊임없이 알림이 떴다.
하지만 세리카는 각각의 알림 내용을 자세히 살필 여유가 없었다.
회의실 밖 복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세리카는 그 사이를 지나 자동문 앞에 멈춰 섰다.
문이 양옆으로 열리자, 세리카는 깊게 숨을 들이쉰 뒤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통신 어레이는 어떻게 됐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연락은 됐나?
세리카는 간단히 경례한 뒤, 단말기의 알림 중 하나를 열어 요약 문서의 데이터와 대조한 뒤, 답변을 내놓았다.
고에너지 신호 출처를 포착했고, 관측 위성을 통해 우주 도시의 구체적인 좌표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원자로가 에너지를 축적하는 중이어서 그런지, 도시와 주변 지역의 전자기 교란 현상이 아직 매우 심각합니다.
[player name]의 신호를 더 정확하게 특정하기가 어려워서 통신 연결은 할 수 없지만, 임무 개요가 담긴 보고서를 하나 받았습니다. 암호화해서 각자의 단말기로 전송해 드렸습니다.
우주 도시... 기계체... 저항군...
간단한 임무 보고가 핏빛 글자들로 압축되어, 저 멀리 기지 안의 눈 내리는 도시를 묘사하고 있었다.
근처에 있는 집행 소대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되지?
신소피아시의 정보에 따르면, 우주 도시 근교에는 지뢰밭이 있고, 도시 내의 방어 시설도 최소 3분의 1 정도는 아직 작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
회의실이 적막에 잠겼다.
1시간 전.
우주 도시에서 발생한 알 수 없는 신호 정찰 작전. 임무 시간 <b>45:10:58</b>.
60진법의 순환은 스크린 맨 왼쪽에서 계속 증가하는 수치로 쌓여갔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마지막 임무 보고를 보낸 지 정확히 40시간이 지났다.
지상 행동 제어 센터가 숲을 지키는 자와 확인했는데, 그들이 따로 행동하기 시작한 지점은 우주 도시 외곽 숲이래.
로제타의 기억으로는, 대충... 이 구역이야.
아시모프는 검지손가락으로 구룡 사람이 공유한 낡은 지도 위에 컵 받침 크기의 원을 그린 뒤, 원 중심을 살짝 찍었다.
보고에 따르면, 지뢰밭과 이합 생물 외에는 큰 위협은 없는 것 같아.
그럼... 집행 소대를 보내 수색할 수 있다는 건가?
위험이 너무 커. 근처에 우주 도시의 방호시설이 있고, 게다가... 주변 세력을 자극할 수도 있어.
방금 공중 정원을 향해 비친 비정상적인 고출력 전파에 대해 분석된 게 있어?
아직은 없어. 뭔가 암호화된 메시지 같은데...
롱이 다른 보고서를 열려던 찰나, 갑자기 임무 카운트다운을 보여주던 스크린이 진홍색으로 뒤덮였다.
전자 맵에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위치를 나타내던 하얀 점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등고선 사이에서 어두운 붉은색이 불길한 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경고! 지상에서 고에너지 반응이 감지됐습니다. 경고! 지상에서 고에너지 반응이 감지됐습니다.
?!
이 정도 강도면... 원자로 사고인가?!
우주 도시는 핵에너지를 기반으로 세워진 도시였다. 그리고 임무 구역 내에 이 정도 규모의 이상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건 오직 도시 안에 있는 그 원자로뿐이었다.
아시모프의 손가락이 재빨리 스크린을 스치듯 지나가며 지도상에서 반응원을 특정했다.
우주 도시가 이런 식으로 좌표를 드러낼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냐. 원격 탐지 위성에서 폭발 흔적이 관측되지 않았어. 게다가 구역 내 방사능 수치도 상승하지 않았어.
구룡 사람은 재빨리 데이터 지표에 주목하며, 가장 직관적인 판단을 부정했다.
이합 생물의 폭발? 하지만 퍼니싱이 이렇게 큰 에너지를 만들어낼 리가 없을 텐데.
전리 반응이 가속화되고... 교란도 있어.
그 숲은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 같은 깊은 구렁텅이 같았다.
설마...
롱은 무척이나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아시모프를 향해 천천히 물었다.
아시모프, 혹시 황금시대에 구룡이 우주 도시에서 진행했던 극비 연구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프로젝트의 코드네임이...
"천국으로 가는 다리"야.
의회 회의장
1시간 30분 후.
둥근 천장에서 쏟아지는 푸른빛 아래, 인간의 운명을 수없이 결정했던 이 회의실은 투기장 같은 분위기였다.
임무 보고서는 내가 사전에 보낸 회의 자료에 있는데, 다들 봤나?
치올콥스키 우주 도시는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에게 낯설지 않을 것이다.
현재 확인된 정보는 우주 도시가 기계체에게 점령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97분 전, 우리는 콜라반도의 신무르만스크 항구 남쪽에서 궤도에 에너지를 축적하기 위한 원자로의 고에너지 반응을 관측해 냈다.
이 고에너지 반응은 퍼니싱 발생 이후 폐기돼야 했을 극비 우주 공학 프로젝트에서 나온 것이다. 즉 "천국의 다리" 자력 가속 궤도이다.
회의실에서 잠시 소란스러운 의논 소리가 들렸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다시 말해, "천국의 다리"가 지금 에너지를 축적하면서 가동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국의 다리"라고요?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그것의 원리는 전자기 가속 운동에너지 포와 비슷한 거 아닌가요?
의원들은 에덴 사회의 비군사 분야 출신일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공중 정원이 겪어온 전투로 인해 잠재적 위협에 대해 매우 민감해져 있었다.
보시다시피, 이것은 미확인된 지상 세력이 지구 궤도에 진입하려는 시도입니다.
천국의 다리를...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가속 궤도를 이용해 공중 정원을 직접 공격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근처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데 맞습니까?
아직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안정적인 통신을 구축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현재까지 확보된 정보는 이 임무 보고서뿐입니다.
만약 공중 정원에서 직접 우주 도시를 공격한다면...
가속 궤도를 제거하면 현재의 위기는 해소될 것입니다. 하지만 의원님들께서는 정말 재앙이 발생하기 전 가장 선진적이었던 실험용 냉핵융합 원자로를 불바다 속에 묻어버리고 싶으신 겁니까?
……
현재 우리의 능력으로 이런 원자로를 복제할 수는 있겠지만, 건설에 필요한 인력과 물자를 어디서 동원하시겠습니까?
도시 내부와 소통을 시도해 볼 수는 없습니까?
잠깐만.
아시모프가 통신기에서 특별한 알림음이 울리자, 발언을 중단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고는 단말기를 열어 모니터링 모듈에서 전송된 정보를 확인했다.
전자기파가 일시적으로 중단된 것이 감지됐다. 천국의 다리의 에너지 축적이 휴지기에 들어가서 원자로가 열 배출을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잠시 동안은 통신이 가능할 것 같아.
아시모프가 단말기를 홀로그램 투영장비에 연결한 뒤 통신 채널을 열었다.
이내 의원들의 토론은 잦아들었고, 모두의 주의가 다시 홀 중앙의 영상으로 향했다.
휴식 시간 동안 다시 한번 공중 정원과의 연락을 시도했다.
단말기는 대화를 포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 도시 내 저항군 잔당들 사이의 소통이나 기계체들의 2진법 방송뿐이었다.
궤도 위 식민함선은 전자기 교란의 결계에 완전히 가로막혀 하늘 너머에 있는 것만 같았다.
지휘관님! 끊어졌던 신호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아요!
여기는... 과학... 의사회...
공중 정원에서 호출한다. 들리나?
수화기에서 들리는 마지막 몇 마디가 갑자기 선명해졌다. 그건 너무나도 익숙한 젊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드디어 연락이 닿았군. 의회에서 긴급회의가 열리는 중이니, 우주 도시의 상황을 보고해.
여기는 공중 정원 의회. 현재 긴급회의가 진행 중이니, 우주 도시의 상황을 보고해.
천국의 다리가 에너지 축적을 시작하면서, 공중 정원도 분명 심각한 상황을 감지했을 것이다. 보안 채널이 안정적으로 연결된 것을 확인한 후, 착륙 이후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아시모프는 즉각 대답하지 않았다. 의석에서 들려오는 토론 소리가 채널을 가득 메웠지만, 자세한 내용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정보를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곳은 긴급한 지원이 필요했다.
잠시의 소란 후, 아시모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에서 집행 소대를 파견하려 하고 있다. 현재는 주변 세력들과 최종 조율 중이야.
기타 확인 사항이 있나?
함영?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만세명 고도 전투에서 마주쳤던 구룡 기계체 말인가?
매우 익숙한 이름이군. 만세명 전투가 끝난 후 제출한 보고서에서 그녀의 이름을 본 적이 있어.
경계를 늦추지 말고, 안전에 유의해.
통신이 다시 전자기 교란으로 끊겼다.
기계체의 안내 없이는 집행 소대가 우리가 왔던 길로 온다 해도 지뢰밭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더 늦기 전에, 혼란 속에서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야 했다.
드미트리의 말처럼, 이 피폐해진 작은 도시는 또 다른 전면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 이사회
천국의 다리라... 전에 들어본 적이 있어.
황금시대 인간의 지혜는 정말 무시할 수 없겠군.
그렇게 낭만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은 그 시대에만 청사진에서 웅장한 건축물로 실현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천국의 다리가 인간의 마지막 희망이었나 봐.
……
아시모프는 창밖 지구를 바라보며 말없이 있었다.
각성 기계체들이 잇달아 우주 도시로 들어가는 것... 어쩌면 천국의 다리의 무분별한 가동보다 더 경계해야 할 신호일지도 모른다.
지상에서는 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걸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통제 불가능한 심연을 향해 가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