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 있는 격납고 문으로 들어온 북풍이 정박고의 금속 벽 사이를 울리며 한기를 퍼뜨렸다.
조금 전 격렬한 전투로 인해 이곳의 공기마저 타들어 가는 듯했다.
그의 공격은 날카로웠지만, 동작 간의 연결은 꽤 어색했어요.
구조체라기보다는... 미리 정해진 행동 트리에 따라 싸우는 기계체 같았어요.
그 부자연스러움은 알렉세이가 보여준 극단적인 차이만큼이나 이상했다.
도시에 들어온 이후로 눈에 띄던 수상한 점들이 이번 교전 후 마침내 하나로 맞춰졌다. 그리고 급격히 고조되는 혼란 상황 뒤에서 보이지 않던 개입이 드디어 가면을 쓰고 전면에 나섰다.
지휘관님, 방금 그... 그 기계체 모델이 좀 이상했어요.
"그"는 리의 외모와 대략적인 공격 방식만 모방한 것 같았다. 하지만 리를 잘 아는 이라면 "그"의 모방이 표면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네. "그"는 리의 외모와 대략적인 공격 방식만 모방했을 뿐, 기체의 다른 데이터는 완전히 달랐어요.
어... 어디선가 초각 기체를 본 것 같았다. 실시간 데이터 포착을 통해서가 아니라, 급하게 가져다가 이 모습으로 모방한 것만 같았다.
이런 조작 방식은 왠지 익숙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서 초각 기체를 본 걸까?
잠시지만 이 난민들을 안정시키고, 함영에게 밖의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먼저 다가왔다.
지휘관은 이곳으로 잡혀 왔을 때, 기계체가 정무청의 입구에서 긴 비밀 코드를 천천히 입력한 후에야 이 큰 문이 열린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함영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함영이 베로니카에게 회유당해 그들과 손을 잡았다면, 이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제가 말씀드리려고 했던 것도 이거예요. 사실 이 비밀 코드는 알렉세이가 제게 준 겁니다.
협상 때 알렉세이의 이상한 행동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휘관은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서 숨겨둔 권총을 만졌다.
지휘관님의 걱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요. 사실 저도 매우 놀랐으니까요.
지휘관의 걱정을 알고 있다는 듯, 함영은 단말기에서 영상을 재생했다.
상황이 급박합니다. 꼭 저를 믿어주길 바라요. 제가 정신이 맑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주선 정박 구역 3C 격납고입니다.
베로니카가 더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해주세요.
당신을 전적으로 믿을 순 없어요.
죄송합니다, 더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얼마나 더 맑은 정신으로 대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무청 입구 비밀 코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정무청의 주위에는 매복한 이가 없다는 걸, 이미 그쪽을 살펴보셨을 거기에 알고 계실 겁니다.
비밀 코드는...
영상 속 알렉세이는 지휘관이 이전 협상에서 봤던 그와는 완전히 달랐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예전의 "알렉세이"는 누군가가 그의 몸을 이용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네. 예전의 알렉세이에게서 받은 느낌은 이 "기계체 모형"과 매우 비슷했어요. 그리고...
알렉세이를 부추겨 분란을 일으키거나 리의 모습을 이용해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모두, 다른 이들이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노력을 방해하기 위한 것 같았다.
불가능한 것들을 모두 제외하고 나면, 남은 것이 아무리 터무니없더라도 그것이 정답일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이런 공격 방식이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몇 가지 있었어. 예를 들면 그... 자칭 "황제"라는 놈 말이야.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아니. 연산과 시뮬레이션이 그에게는 매우 익숙한 듯했어.
그게 혹시... 만세명에 나타났던, "황제"라고 불리던 "실험체"일까?
슐츠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요. 구룡에 있을 때 제 곁에 있던 기계체였어요. 그의 코드네임이 "황제"였어요.
아, 죄송해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것에 대해선 자세히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함영이 미안한 듯 웃었다.
하지만 제가 틀리지 않았다면, 만세명에서 발견된 특수 코드는 바로 슐츠였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은 대인께서 그를 데려가셨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는 프로그램 컴파일에 능통했기 때문에 백업 데이터를 남겼을 가능성이 있어요.
들은 바로는... 보통 각성 기계체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특별한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가 알렉세이를 조종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모든 이를 증오하기 때문이에요.
배후의 진범이 황제든 아니든, "누군가가 이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추론해 보면 이상했던 모든 점이 설명되었다.
협상 때 알렉세이가 일부러 시간을 끌던 행동, 저항군이 자신을 오해하도록 유도한 언행, 그들이 공격할 때 유도하던 움직임...
그 "알렉세이"는 일부러 베로니카의 분노를 자극했어요.
베로니카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인간으로서, 잔혹하게 폭행당할 뻔한 그가 상처투성이 몸을 베로니카에게 보여준다면,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베로니카는 속았어요. 안 되겠어요. 그녀와 이야기해야겠어요.
어떻게든 시도는 해봐야죠. 기계체는 어떤 동포도 포기하지 않아요.
함영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예요. 보관실에서 영원히 잠들 뻔했지만, 제 동포들이 포기하지 않고 저를 깨우려고 노력했기에, 오늘 이렇게 지휘관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예요.
베로니카도... 마찬가지에요. 제 말을 듣지 않을지라도,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증오의 연료가 되어선 안 돼요. 이 모든 재앙을 일으킨 건 다른 누군가의 소행이니까요.
함영의 눈빛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황제"는 교회를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구룡성을 거의 파멸시킬 뻔했어요.
지금도 그는 계속해서 기계체들의 인간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있어요. 거기에 동포들의 생명도 아끼지 않고 말이죠.
그는 동료들을 속였고, 모든 이를 속였어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해요.
여성 기계체의 눈빛이 안개를 꿰뚫고 어둠 속 숨은 그림자를 향했다.
온화함 속에서 피어난 그 의지는 그 어떤 칼날보다도 날카로웠다.
이제 다음 행동을 계획하시죠.
함영이 고개를 돌리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