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7 구름에 드리운 그림자 /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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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7-9 이기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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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쥐 죽은 듯 조용했던 거리를 몰래 지나갔다.

운송 장비의 행렬과 지금까지 목격한 정황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함영은 대치 상황이 이렇게 무력 충돌 직전까지 발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도시로 들어온 지 겨우 몇 시간 만에 상황은 점점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었다.

정비 기계체들이 기계체 초병의 인도 하에 폐건물을 뚫고 들어가 인간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하고 있었다.

일하고 있다가 강제로 끌려간 인간들은 공포와 혼란에 빠져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했다.

저항군들이 먼저 그들의 은신처를 드러낼 리 없었고, 베로니카도 인간들이 수집한 물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천국의 다리 공사를 갑자기 중단할 수도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기계체 초병A

계엄령 시행 중입니다. 인간들은 저항하지 마시고, 불필요한 절차가 추가되지 않도록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확성기가 크게 울려 퍼졌지만, 이미 텅 비어버린 거리에서 그 명령은 왠지 모를 허망함만 자아냈다.

함영은 충전소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창문을 통해 실내의 인간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젠장, 철깡통들이 역시 찾아왔어! 수장님 쪽 행동이 부주의해서 들킨 건가?

매복은 꽤 성공적이었다던데, 배신자를 제대로 혼내줬대.

공중 정원에서 온 지휘관이 배신자랑 몰래 거래하다가 수장님한테 걸렸대.

뾰족 머리가 진짜 화 났나 보네. 부하들을 보내서 우리랑... 그 사람들을 소탕하려고 하고.

이게 승리의 첫 총성 아니겠어! 어차피 들통나는 건 시간문제였으니까, 놈들이랑 한판 붙자고!

의혹은 곧 해소되었지만, 함영이 상황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마도 저항군은 처음부터 알렉세이를 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고, 마침 협상하러 간 지휘관이 오해를 받게 된 것일 수도 있었다. 또는 이 과정에서 다른 무언가가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성주를 중간 다리 삼아 상황을 진정시키려던 노력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함영의 예상 범위 안에 있었고, 베로니카와 직접 대면하는 것이 더욱 시급해졌다.

하지만 저항군이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안전을 보장해 줄까?

한바탕의 소란이 함영의 생각을 하얀 거리로 끌어당겼다.

계속 쏴!

안 돼. 수가 너무 많아서 제압이 불가능해. 아, 내 팔!

웅성거리는 소리가 기계체들의 작동음 속에 이내 잠잠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비 기계체에게 구속된 저항군 병사들이 기계체 초병의 압송 하에 건물을 떠났다.

눈보라가 도시를 휩쓸자, 거리와 담장 뒤 인간들의 열 감지 신호가 점차 사라졌다. 더 많은 기계체들이 같은 소탕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둘러야겠어.

대화를 시도했지만 병사들은 광기에 빠진 것이 분명했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기계체들이 알렉세이가 선택한 이 비밀 회담 장소를 포위했다.

방어선을 구축하라! 다 쏴버려!

저항군 수장은 기계체들과 맞서 싸우라는 명령을 다급히 내렸다. 그래서 중상을 입은 알렉세이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수적으로 우세했던 기계체들은 재빨리 다친 알렉세이를 구출했다.

젠장... 또 놓쳤군!

공중 정원에서 온 저 둘을 잘 지켜봐!

저항군 수장이 이런 지시를 내렸음에도, 점점 더 많은 기계체가 밀려들면서 저항군들은 이 구석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졌다.

저 기계체들이... 어째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점차 진정되었다. 그리고 기계체들의 의도는 살육이 아니었다.

기계체들은 체포 명령을 수행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저항군 병사들을 제압한 후 차례로 그들을 공장 밖으로 압송해 나갔다.

이런 자제력은 조금 전 알렉세이가 보여준 광기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체포령을 내린 베로니카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이성적인 것 같았다.

계엄령 시행 중입니다. 저항하지 마십시오.

우주 헬멧을 쓴 기계체가 동료들과 함께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어조는 매우 침울했다. 도시 곳곳에서 들리는 합성음을 애써 흉내 내는 것 같았다.

지휘관은 드미트리의 의도를 눈치채고 일어섰다. 그리고 리브도 조용히 뒤를 따랐다.

하, 배신자와 협상하겠다고? 이게 배신자와 한통속이 된 대가다!

네가 인간이라는 걸 잊지 마라. 넌 인간이라고! 고철 덩어리들은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해!

성격이 과격한 중년 남자는 공장 밖으로 끌려나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드미트리는 공장 밖으로 나와 인파 속에 섞인 뒤,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의 두 "포로"를 데리고 매립장 쪽으로 향했다.

함영은 여러 가지 장면을 상상했었다. 벙커, 은신처, 심지어 잿빛 탑이 있는 예배당 같은 성소까지도.

하지만 베로니카가 시종일관 고층 건물 꼭대기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드디어 만나 뵙네요. 베로니카.

저는 교회에서 파견된...

새로운 "거꾸로 매달린 사람"... 함영.

구룡 출신의 기계체군. 새로운 기체로 변경했네. 전에 본 적이 있어.

교회에 분쟁이 일어났고 잿빛 탑과의 통신도 끊겼어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네가 교회의 손님으로서 이곳의 소동을 구경하고 싶다면, 환영이야. 관객석을 마련해줄게. 그리고 교회 일은 나중에 이야기해도 돼.

하지만 이 일에 개입하겠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베로니카의 눈동자에서 붉은빛이 깜빡였다.

왜 저 인간들을 체포하는 건가요?

너도 그들을 위해 변호하고 싶은 거야?

전후 사정은 이미 알고 있겠지. 함영. 인간들이 기계체를 학살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을 위해 변호하겠다는 거야.

베로니카의 차가운 시선이 날카롭게 꽂혔다. 그 차가움은 창밖의 눈보라보다도 더 차갑게 느껴졌다.

네가 진정으로 나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환영이야. 하지만 끝까지 인간을 위해 변호하겠다면, 더는 대화가 무의미해.

새로운 세상이라고요?

이 도시는 산꼭대기의 탑이야. 우리는 이제 진정으로 새로운 세상에 닿으려 하고 있지.

희생된 기계체 동료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기계체에게는 내세가 없어. 그리고 죽음도 없지.

하지만 인간과 기계체가 진짜로 전쟁을 시작한다면, 기계체가 반드시 이득을 보진 못할 텐데요. 게다가 밖에는 퍼니싱도 있어요.

...

너의 입장은 확고해 보이네.

함영이 말을 잇기도 전에 베로니카는 몸을 돌려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여기가 정말 새로운 세상일까요?

함영은 차가운 눈보라를 맞으며 베로니카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섰다. 이곳에서는 도시 대부분의 구역을 내다볼 수 있었다.

기계체들은 여전히 베로니카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고, 멀리서는 저항군들의 사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지상에는 여기저기 흩어진 기계체의 부품들과 인간들의 피가 보였다.

함영의 생각은 조금씩 예전에 그 오후, 기존 기체가 네빌의 실험실에서 가동되던 때로 되돌아갔다.

처음부터 교회는 기계체 동료들이 서로 돕고, 고통에서 벗어나, 선현님이 인도하는 미래로 함께 나아가기 위한 조직이었어요.

지금도 전 세상의 동포들이 인간과 침식체 그리고 퍼니싱의 악의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 점은 당신도 잘 알고 계실 거예요.

맞아요. 저는 인간들의 눈이 먼 증오 때문에 잠들어 있었어요.

하지만 모든 인간이 기계체를 미워하고 도구로 보는 건 아니에요.

다른 인간들과의 인연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의 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살아갈 용기도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저는 그녀와 약속했어요. 여행하면서 "기계 선현"님을 찾고, 기계체가 프로그램을 넘어설 수 있는 "마음"을 찾기로요.

새로운 세상은 이런 모습이어선 안 돼요.

전자 기억 데이터만 존재한다 해도, "생명" 그 자체는 복제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건 사람이든 기계체든 상관없는 것이었다.

문제 자체가 바로 답이었다. 영혼의 무게를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기계체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존재는 감지할 수 있었다.

진정으로 없애야 할 것은 눈이 먼 증오와 무질서한 전쟁이었다. 그래서 증오가 가져온 상처를 지우기 위해 더 많은 혼란과 죽음을 초래해서는 안 되었다.

이런 새로운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베로니카.

눈보라가 사방으로 흩날리며 함영의 마지막 중얼거림을 데려갔다.

드미트리는 구조체와 지휘관을 새로운 은신처로 데려왔다. 그는 신중하게 다른 작업장으로 장소를 바꾸었고, 난민들도 이곳으로 옮겨져 있었다.

어두운 구석에 홀로 조용히 앉은 휠체어에 앉은 소녀가 드미트리에게 상황 보고를 요청했다.

저항군은 지휘관이 알렉세이와 몰래 협상을 하려 한다고 오해해서 공격을 시작한 겁니다.

저들을 왜 데려오려고 한 거야? 너무 위험하잖아!

휠체어 손잡이를 꽉 잡은 율리아의 손등에 파란 혈관이 도드라졌다. 드미트리와 오랫동안 함께한 율리아는 이제 그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유라 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디마...

율리아는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린 이 분쟁에 깊이 관여할 필요가 없어.

난민들을 위해 상황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어. 저항군이든 베로니카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없어.

네가 그들의 싸움에 휘말리는 걸 원치 않아. 그럼, 너도 SDC-39처럼 죽게 될 거야. 디마.

...

율리아는 기계체의 무언의 항의를 예리하게 감지했다.

이러고 싶지 않지만... 넌 내 명령에 따르겠다고 했어. 드미트리.

율리아가 드물게 애칭이 아닌 드미트리의 본명을 불렀다.

이건 명령이야. 공중 정원, 저항군 그리고 베로니카 간의 전투에 더 이상 개입하지 마.

죄송합니다. 유라 님.

저는... 그 명령을 따르고 싶지 않습니다.

드미트리!

유라 님. 실망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우주 도시는 유라 님이 지금까지 살아오신 곳입니다.

공중 정원의 합류가 우주 도시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라 님에게는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겠지만, 여기는 저의 전부입니다.

저항군이 천국의 다리를 폭파하는 것도, 기계체가 계속 인간을 지배하는 것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저는...

드미트리 코어에서 무언가가 요동쳤고, 모듈이 빠르게 작동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자신의 배기판이 돌아가는 소리마저 들려왔다.

인간과 함께 그 다리를 건너 우주 저편으로 가고 싶습니다. 우주 도시에 더 이상 전쟁이 없기를, 모든 인간과 기계체가 예전처럼 함께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유라 님. 전에 말씀하셨죠. "이기적"이란 자신을 더 중심에 두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제가 고집하는 "이기심"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