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군이 떠난 후, 율리아는 지친 듯 잠시 눈을 감았다.
참 시끄럽네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율리아의 얼굴에는 "시끄러움"이란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구룡 기계체, 무리 지어 다니는 저항군들 그리고 공중 정원의 두 장관까지...
구룡쪽은 사람을 찾으러 왔고, 저항군은 동맹을 맺으러 왔고...
두 장관께 정식으로 방문 목적을 여쭤보지 않았지만, 짐작은 대충 가네요.
강력한 전투 병력을 동반하지 않으신 걸 보면, 적어도 저항군과 함께 싸우려고 온 건 아닌 것 같군요. 이 도시 구역의 정찰 임무를 수행하시는 건가요?
이렇게 불분명한 상황에 갑자기 휘말리셨는데 곤란하지 않으세요?
영광이네요. 환자인 제가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율리아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하지만 결국 전 휠체어에 앉아 있는 거동이 불편한 사람일 뿐이에요.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허름한 곳이 아니라 저항군 군영에서 만나고 있었겠죠.
율리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상대방의 조건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율리아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정도라면, 협조할게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항군 수장이 하는 말에는 많은 과장이 있지만, 한 가지는 맞아요.
인간인 여러분은 베로니카와 직접 대화할 기회를 가질 수 없을 거예요.
베로니카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인간에 대한 편견이 심해요. 그래서 실권을 쥐고 있으면서도 인간을 꼭두각시로 내세운 거죠. 쉽게 말해, 의사소통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예요.
물론, 이게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 "배신자" 알렉세이와는... 가능성이 있겠네요.
네. 그가 배신자라고 불리긴 하지만, 기계체가 우주 도시를 통치한 후에도 인간 관련 정책에서 완충 역할을 많이 해 줬어요.
베로니카가 만든 처음으로 만든 규칙에는 인간에 대한 규정도 기계체 기준으로 돼 있어서, 하루 20시간 근무에 4시간 충전 시간만 주어졌죠.
알렉세이는 베로니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계속 시험하면서, 점진적으로 12시간으로 수정하도록 노력했어요.
맞아요. 하지만 그건 "시작"일 때뿐이었어요.
최근 들어서 정책이 가혹해지면서 근무 시간이 24시간으로 늘어났고, 24시간 근무를 마쳐야 겨우 짧은 휴식을 얻을 수 있게 변한 거죠.
그리고 인간 수송팀에게 계속 퍼니싱 구역으로 가서 물자를 수집하라고 강요했어요. 그래서 저항군의 태도가 최근 들어 더욱 극단적으로 변하게 된 거예요.
제가 추측하기에는 알렉세이는 "중간 다리" 역할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베로니카의 발언권에 영향을 미치진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중재 역할은 할 수 있을 거니까요.
"대화"를 하고 싶다면, 이게 거의 유일한 선택지일 거예요.
해가 저물면서 율리아의 얼굴이 어둠 속에 잠겨 흐릿해졌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건 여러분이 하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드리고 싶기 때문이에요. 지금 도시의 충돌은 조금씩 심해지고 있어요. 포화 속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죠.
더 이상은 도와드리지 않을 거예요. 제 몸 하나 보살피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요.
더 듣고 싶으시다면 제가 매일 언제 발작이 오는지, 얼마나 오래 아팠는지, 왜 휠체어를 타게 됐는지도 말씀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소용없어요. 고통에만 신경 쓰다간 이 도시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목숨을 이어가기 위한 밑천일 뿐이에요.
"목숨"을 말할 때, 율리아의 시선이 드미트리라는 기계체를 향했다. "목숨을 이어가는 건" 그녀 혼자만은 아닌 듯했다.
다른 일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아요.
율리아가 돌아서자, 옆에 있던 우주항공 기계체가 가볍게 인사한 뒤 그녀를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휘관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치올콥스키 우주 도시에는 공중 정원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었다. 새벽-III호 비행선의 발사 자료, 이곳에 남아있는 융합로 그리고 "천국의 다리"든 말이다.
현재 우주 도시의 태도가 어떻든 간에,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선 표면상의 책임자와 접촉을 시도해야만 했다. 위험해 보일 수는 있지만,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한 시도해 볼만했다.
하지만 알렉세이가 평화 제안에 동의한다 해도, 실제 권력자인 베로니카가 의견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제가 베로니카와 말해볼게요.
지휘관이 구룡 기계체를 바라보자, 마침 그녀도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함영?
지휘관님, 리브... 저도 이 도시가 인간과 기계체 사이의 전쟁에 휘말리는 걸 원치 않아요.
제가 베로니카와 말해볼게요. 어차피 저도 그녀에게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요.
괜찮아요. 그건 지휘관님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저는 베로니카의 분노를 이해해요. 그 기계체들도 제 동료니까요.
함영의 눈에 잠시 망설임이 스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저는 이번 사건의 방관자일 뿐이에요. 기계체들의 슬픔도 느낄 수 있지만, 인간들이 겪는 고통도 똑같이 보았어요.
가방 속 다크 초콜릿이 그녀의 짧았던 우정을 증명하고 있었다.
위선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전 이곳의 전쟁을 멈추게 하고 싶어요.
이런 곳일지라도 인간과 기계체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함영은 멀리 있는 공장 건물을 바라보았다.
난민들의 이주 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드미트리는 율리아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 후 사람들 사이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도 어떤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도시 전체의 기계체와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요.
저는 동료의 입장에서 베로니카와 대화할 거예요. 우리는 같은 곳에서 왔으니, 적어도 제 말은 들어줄 거라 생각해요.
네. 걱정 마세요.
지금까지가 저희의 계획이에요. 세르반테스 님.
천국의 다리 영향으로 통신은 여전히 연결됐다 끊기기를 반복했고, 때로는 흐릿해졌다.
제가[지지직]... 지금 당신의 위치로 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어떤가요?
상황이 조금 복잡합니다.[지지직]... 만나서 말씀드리죠. 다들 별일 없습니다.
그리고... "열쇠" 건에 대해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에게 말해야 할까요?
[지지직]... 네. 말씀드려도 됩니다. 선현님께서 말씀하시길 [지지직]...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님은 신뢰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함영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통신이 다시 끊겨버렸다.
다행히 메시지는 전달됐네.
이제...
함영은 멀리 있는 "정무청"을 올려다보았다. 율리아의 정보에 따르면 베로니카가 그곳에서 자주 업무를 처리한다고 했다.
윽...
시각 모듈 중심부에 검은 물결이 일렁이더니, 센서를 통해 희미한 통증이 퍼져갔다.
강... 강제로 기체를 가동한 후유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