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라는 우주 기계체가 모두를 등진 채 몸을 돌려 앉아 있는 허약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유라 님.
...
가벼운 한숨과 함께 율리아가 다시 한번 손을 흔들었다.
이 침묵이 승낙이라는 것을 이해한 드미트리는 함영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니아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실례지만 몇 가지 의문점에 답변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기단 광장에서 당신이 알렉세이 성주와 함께 도시로 들어오시는 걸 봤습니다.
그분을 아십니까?
우주 도시 외곽의 숲에서 알렉세이를 발견했어요. 당시 그분은 인간들의 습격을 받은 것 같았고, 기계체들의 보호를 받고 계셨어요. 그래서 저는 그분과 함께 도시로 들어왔습니다.
스크린이 한번 깜빡였다. 눈앞의 기계체는 함영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함영은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솔직히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미트리의 스크린에 짧게 초록빛이 비쳤다. 그는 함영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건 우리에게 나쁜 소식은 아닙니다.
그럼, 여러분이 피하고 계신 분이... 알렉세이 성주인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알렉세이는 인간인데, 왜 여러분이...
왜 우리가 여기에 숨어 있어야 하는지, 왜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으신 건가요?
휠체어가 천천히 돌아왔다. 그리고 율리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담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좁은 공장 건물에 수십 명이 몰려 있었고, "피난처"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너무나 열악해서 몇 명이 한 장의 담요를 나눠 써야 할 정도였다.
알렉세이는 인간이지만 "기계체"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죠. 그래서 인간들의 습격을 받으면서도 기계체들의 보호를 받는 겁니다.
알렉세이는 꼭두각시일 뿐이에요. 우주 도시가 아직도 인간의 통치 아래 있다는 거짓을 보여주고, 기계체와 인간 사이에서 전달자 역할을 하는 것뿐이죠.
이곳에서 진정으로 피해야 할 사람은 알렉세이의 뒤에 있는, 우주 도시의 실질적인 통치자 베로니카에요.
베로니카라고요?
그녀를 알고 있군요.
날카로운 시선이 함영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율리아의 손은 옆구리에 있는 사냥총을 짚고 있었다.
함영이 찾고 계신 친구가 베로니카입니까?
죄송합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전 그녀를 직접 만난 적은 없고 이름만 들어봤어요.
베로니카는 아주 오래전에 다른 동료를 찾으러 이곳에 왔다가, 그 동료의 사망 소식을 전한 후 연락이 끊겼다고 들었어요.
제가 있던 곳에서... 분쟁이 일어나 이곳까지 떠돌게 됐고, 마침 베로니카의 소식을 듣게 되어서 찾아온 거예요.
함영은 우주 도시의 소요 사태가 베로니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함영의 표정을 자세히 살피던 율리아가 조금씩 긴장을 풀었다.
기계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관련 화제를 피하거나, 서툴게 둘러댈 수는 있지만... 기계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당신... 당신들의 그 동료는 혼자서 우주 도시의 질서를 완전히 뒤엎었고, 기계체를 위한 통치 체제를 세웠어요.
그때 이후로 인간과 기계체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어요. 하지만 베로니카가 우주 도시의 권력을 장악한 상황에서 알렉세이가 오늘 공격을 받았다는 건 명백한 도발이에요.
충돌이 격화되고 있어요. 앞으로는 더 힘들어질 거예요. 디마. 그러니 다음 은신처를 준비해야겠어.
알겠습니다. 유라 님.
그리고 방금 말씀하신 베로니카가 찾던 동료가 "SDC-39"입니까?
네.
함영은 잿빛 탑 데이터베이스에서 "SDC-39"를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전임 "거꾸로 매달린 사람"의 데이터 번호였다. 그는 자신만의 진정한 "이름"도 얻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데려올 수 없었던 동료들, 산더미처럼 쌓인 매립장 그리고 기계체들이 장악한 우주 도시... 함영은 파편처럼 흩어진 사실들로부터 사건의 전모를 거의 다 파악할 수 있었다. 다만 확실한 증거가 하나 부족할 뿐이었다.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천국의 다리 때문입니다.
드미트리가 창문을 조금 열자, 하늘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이 좁은 공장 건물에서도 보였다.
우주선 자력 가속 궤도, 구룡 코드네임 "천국의 다리"...
누군가에게서 설명을 들으셨군요.
저건 자력 가속 궤도입니다. 황금시대의 유산으로 우주선을 더 쉽게 가속해 우주로 갈 수 있게 해줍니다.
당시 인간들은 우주를 천국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 자력 가속 궤도를 "천국의 다리"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치올콥스키 우주 도시... 즉 치올콥스키 발사 센터는 치올콥스키 박사가 주도해 건설했다.
건설 초기부터 수많은 기계체가 이곳에 상주하며 대부분의 잡무를 담당했다. 기계체는 최고의 비밀 유지자였다. 그들은 연구 중인 프로젝트와 관련된 어떤 내용도 누설하지 않고, 그저 성실하게 맡은 일만 수행했다.
그러다 치올콥스키 박사의 요청으로, 당시 구룡에서 재직 중이던 란다우 박사가 도시 내 대부분의 기계체에게 지능 시스템을 제공해 주었다.
마지막 테스트...
삐...
전원이 켜지지 않은 상태의 우주인처럼 생긴 작은 기계체 스크린에 시동 준비를 알리는 곡선이 깜빡였다.
음... 다음 대화를 따라 해.
"지구는 매우 작고 푸르렀으며, 외로워 보입니다!"
지구는... 작고.... 연한 푸른색이며... 너무나도...외로워 보입니다. 출처 알렉세이 레오노프.
하하, 자네는 여전히 재미있군.
아... 선생님.
눈앞의 꼬마 기계체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도 전에, 란다우는 서둘러 일어났다.
이 소형 기계체들도 전부 조정이 끝났잖아. 한잔하러 갈까?
네. 조정은 끝났습니다. 이게 마지막 기계체입니다. 하지만... 선생님, 아직 근무 시간입니다.
하하, 여기서 받는 추가 급여는 내가 자네에게 주는 거 아닌가? 가지. 기계체가 만든 음료가 내 입맛에 딱 맞아. 음... 치올... 흠, 내 이름을 따서 지은 도시라 부르려니 아직 어색하군.
둘은 웃으며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지구는 매우 작고 푸르렀으며, 외로워 보입니다!
SDC-39이... 또... 그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퍼니싱이 발발했을 때, 선현의 벽화에서 영감을 받은 SDC-39는 이내 비정상적인 "지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관리자가 천식 발작으로 지시를 내리지 못했을 때, 부관리자에게 약과 물 한 잔을 가져다준 정도였다.
그 후에는 "휴면" 상태여야 할 시간에 "몰래" 천국의 다리로 가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드미트리는 강제로 다시 가동되었을 때, 자신이 또다시 SDC-39에 의해 이곳으로 끌려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제 에너지가 부족해서 작동하기 어려울 겁니다.
제가 에너지를 충전해 드렸습니다.
더 일찍 "각성"한 SDC-39는 확실히 언어 사용이 더 능숙했다.
왜죠?
우린 동료입니다. 드미트리.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왜... 하필 여기인가요?
드미트리는 이런 궁금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지만, SDC-39는 그가 궁금해하는 걸 알아차렸다.
여기 참...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SDC-39는 드미트리와 같은 모델의 스크린을 들어 올려, 드미트리의 시각 모듈을 위쪽으로 향하게 했다.
별이네요.
네. 별입니다.
지구도...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저렇게 보일까요? 작고 파란 별처럼 말이죠.
천국의 다리만 잘 만들면, 우리도 저기 가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 리요?
네. 우리요. 인간과 기계체, 우리 모두가 말입니다.
퍼니싱이 발생한 후, 우주 도시는 여과탑을 건설하고 외부와 완전히 차단됐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기계체의 도움으로 천국의 다리 공사는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SDC-39는 항상 열심히 했습니다. 업무 중 휴식 시간마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곤 했죠. 하지만 당시 인간들은 두려움에 가득 차서 기계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그냥 말 잘 듣는 노예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자신만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고, "자신만의 행동"도 잘못된 것이었죠.
그들은 SDC-39를 데려갔습니다.
드미트리는 드물게도 침묵했다. 그 시절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율리아는 몸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제 아버지를 필두로 한 우주 도시 소속 연구팀이 분석한 SDC-39의 보고서에서 퍼니싱의 존재를 발견했어요.
그럴 리가 없어요. 각성 기계체는 절대...
하지만 그들은 SDC-39를 폐기해 버렸죠.
율리아는 광기에 휩싸인 여성 기계체가 중앙 실험실에서 뛰쳐나오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기계체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벌 같았고, 이곳의 모든 부조리를 심판하러 온 존재처럼 보였다.
아빠... 저 여자는 누구예요?
말하지 말렴.
율리아는 아버지의 손에 입이 막힌 채 집 안 창고에 밀어 넣어졌다.
곧이어, 베로니카라고 자칭하는 여성 기계체가 중앙 제어 시스템을 장악했고, 순식간에 인간의 지배를 전복시켜 기계 사회를 건설해 버렸다.
죄송해요.
베로니카가 한 일에 대해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율리아의 평온한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의 흔들림도 없었다.
인간과의 대화를 위해 인간 연구원이었던 알렉세이가 꼭두각시 성주가 됐죠.
물론 인간들은 기계체의 지배에 순순히 굴복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저항군을 조직했고, 아버지에게 지도자가 되라고 강요했죠.
율리아는 자신이 "인간"이 아닌 것처럼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SDC-39를 처형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셨어요.
죄송해요.
말씀드렸잖아요. 사과하실 필요 없다고요.
모든 잘못에는 책임이 따르고, 모든 행동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에요.
하지만... 비극은 더 이상 반복되면 안 돼요.
율리아는 그 말의 대상을 직접적으로 지목하지 않은 채, 드미트리가 있는 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알고 있습니다. 유라 님. 다만 최근 전쟁이 지속되면서 많은 난민이 떠돌고 있습니다. 이 구역에는 우주 도시 외에 인간이 정착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이게 바로 인간이라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겠죠. 같은 동료면서도, 평화롭게 살던 다른 이들을 화약 연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걸 마다하지 않으니까요.
율리아 님! 매립장 초소에서 저항군의 움직임이 발견됐습니다!
흥...
율리아의 공허한 눈동자가 권태로움으로 가득 찼다.
이번으로 그들이 몇 번째 찾아오는 거죠?
드미트리가 입을 열기도 전에, 우렁찬 목소리가 먼저 대답했다.
하하하하, 이런 질문을 하다니, 우리가 나타나서 율리아를 아주 곤란하게 만든 것 같군.
공장 문밖에 선 수장은 웃으면서 뒤에 있는 병사들에게 총구를 내리라고 지시했다.
예전에는 정말 귀찮게 했었어. 하지만 이번엔 달라. 율리아. 성급하게 짜증 내지 않았으면 해.
"하지만 이번엔 달라. 율리아. 성급하게 짜증 내지 않았으면 해."
율리아는 기계적으로 수장의 말을 되풀이했다.
이번이 다섯 번째로 온 거고, 난 그 말을 네 번이나 들었어.
당연하지. 난 끈기 있는 사람이니까.
쉰 목소리로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린 저항군 수장은 자신의 행동에 꽤 만족한 듯했다.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자. 우린 알렉세이를 성공적으로 습격했어. 이건 우리의 봉기가 희망이 없는 게 아니라는 증거야.
넌 희망이라는 단어를 잘 못 이해한 것 같은데.
율리아는 함영으로부터 이 나쁜 소식을 들은 상태였다.
네가 조급해하는 걸 알아. 알렉세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하고, 베로니카가 무너지지 않는 한 봉기는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거잖아.
하지만 바둑은 한 수 한 수 두어야 하고, 계획도 한 걸음 한 걸음 진행해야 해. 우린 지금 좋은 첫걸음을 뗐어. 그 배신자를 제대로 혼내줬으니까 말이야.
그럼, 축하해.
미래의 동맹이 하는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율리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희 힘도 필요하다는 거야. 우리가 함께 싸운다면, 다시 한번 큰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어.
체스판의 외톨이 말로는 승리하기 어려워. 하지만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난 이길 자신이 있어. 절대로 네 아버지와 같은 비극은 되풀이되지 않을 거야!
아버지?
율리아의 웃음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그래. 레오니드 말이야. 내가 무척 존경하는 분이셨지! 우주 도시와 인간 운명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신 분이야! 그분의 딸인 너도 아버지에 뒤지지 않을 거라 믿어.
하, 아버지는 소위 "대의"라는 것에 떠밀려 기단 광장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셨어.
지금 그때와 똑같은 말로 날 설득하는 거야?
그건 정말 유감이야, 율리아. 네가 예전에 우리를 거절한 것은 우리가 충분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우리와의 합류를 거부한다 해도, 베로니카가 널 그냥 둘 거라고 생각해?
우리가 그 배신자를 습격했으니, 베로니카는 더 이상 인간들이 우주 도시에서 편하게 살도록 놔두지 않을 거야. 현실을 직시해!
날 협박하는 거야?
난 너와 동맹을 맺으려는 거야. 우주 도시의 재시작을 목격하도록 말이야.
이 정도 인원으로?
너희도 있잖아. 율리아.
한 걸음 앞으로 나선 저항군 수장의 눈빛에는 위협의 기색이 가득했다.
...
여러 번 재고한 끝에 지휘관은 저지하기로 결심했다. 율리아는 지금 불리한 상황이었고, 이곳이 저항군에게 포위된다면 자신과 리브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넌 또 뭐야?
중년 남자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관련 증명서를 제시한 후에야 맞은편의 남자가 반신반의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공중 정원? 하, 높은 곳에 계신 양반들이 이곳 난민들과 어울리게 되는 날이 오다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베로니카의 개인 전투 능력을 논하지 않더라도, 이 난민들이 가진 조잡한 무기로는 도시 구역 중앙에 도달하기도 전에 저 기계체들의 총탄 세례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맞아요. 당신들이 철갑탄을 장비했다고 해도, 기계체의 수가 너무 많아요.
오? 너도 여기 있었나? 그럼, 넌 알고 있겠지. 그 기계체들이 우리에게 뭘 하라고 강요했었는지 말이야!
24시간 연속 근무에... 이합 생물과 맞닥뜨리게 하고, 소위 말하는 "재료"를 조금만 덜 내도 저녁 밥을 못 먹게 했어.
하, 하지만 이런 건, 너희... 구룡이든 공중 정원의 양반들이든 신경 쓸 일이 아니었겠지.
저항군 수장이 냉소를 지었다.
내가 그 뾰족 머리가 노리는 인간이 우주 도시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래도 너희는 이렇게 방관할 수 있겠어?
그 "천국의 다리"는 자력 가속 궤도야. 그게 우주선만 가속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니겠지?
흥, 역시 공중 정원의 장관답군. 이건 자력 가속 궤도지만, 우주선만 가속하라는 법은 없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내가 정보를 입수했는데, 베로니카가 천국의 다리를 작동시켜 선봉함을 발사한 후 공중 정원을 공격하려 한다는 계획이야.
역시....
지휘관님. 도시에 들어온 후 강한 자기장 교란 때문에 우리 통신 장비가 계속 연결됐다 끊기는 상황이에요.
네. 지휘관님. 도시에 들어온 후 강한 자기장 교란 때문에 우리 통신 장비가 계속 연결됐다 끊기는 상황이에요.
역시 자력 가속 장치가 에너지를 축적하기 시작해서 그런 거였군요.
이제 협력할 마음이 생겼나? 율리아?
하지만 율리아는 침묵했고, 여전히 망설이는 듯했다. 이를 본 수장은 개의치 않고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흥, 그럼, 너희는 어떻지? 공중 정원 양반들?
공중 정원 장관을 위해 우리 계획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지.
천국의 다리에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냉핵 원자로가 있어. 그 원자로만 빼앗으면 천국의 다리는 더 이상 에너지를 축적할 수 없게 돼.
도시의 여과탑은 문제없이 작동될 거야. 그러니 이런 빌어먹을 곳에선 퍼니싱도 살아남기 힘들 거야.
그리고 뾰족 머리를 쫓아낸 다음, 어떻게든 그 빌어먹을 다리를 폭파하면 돼. 그럼, 너희는 너희 갈 길 가고, 우리는 우리 살길 찾으면 돼.
정확해. 이게 천국의 다리를 멈추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니까. 천국의 다리에는 다른 에너지 공급 방식이 없고, 다리 본체도 그 고철 덩어리들이 특수 보강을 해놔서 원자로를 빼앗는 방법밖에 없어.
교전이 제어 불가가 될 경우, 원자로가...
위험이 없는 일은 없어. 두 가지 해악 중 차선을 택하는 거야. 아니면... 천국의 다리가 공중 정원을 공격하는 걸 보고만 있을 건가?
대화? 넌 인간이잖아. 네가 우주 도시 소속이 아니라고 특별대우 해줄 리 없어.
알렉세이 그 배신자처럼 베로니카와 대화할 기회가 모든 인간에게 있는 건 아니야. 인간 꼭두각시 한 명도 많다고 여기는 그녀가... 더 많은 인간을 받아들일 리가 없어.
구룡 복장을 한 기계체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직 정식으로 협력 관계를 맺은 건 아니지만, 서로 간에 암묵적인 약속이 있는 듯했다.
흥, 난 그런 "대화"같은 속임수는 믿지 않아. 난 실탄을 가진 지원만 믿지. 그리고 도시에 인간 배신자 하나 더 늘어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무장으로 원자로를 차단하는 건 실패 확률이 73.23%나 됩니다.
이 며칠 동안,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많은 인간과 기계체가... 당신들의 "봉기" 때문에 희생됐습니다.
이 도시는 사실 진정한 전쟁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아주 작아서, 무슨 평화니, 대의니 하는 걸 수용할 여유가 없어.
난 죽도록 일해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 게 어떤 건지만 알아.
하루에 재료를 500g만 덜 수거해도 기계체 초병한테 보급품을 못 받는 게 어떤 건지만 알아.
부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병이 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게 어떤 건지만 알아!
난 그저 베로니카를 쫓아내고, 우리 도시를 되찾고 싶을 뿐이야! 이게 내 답이고, 진심이야.
이제 너의 진심을 보여줘. 천국의 다리는 단계별로 에너지 축적을 하는데, 이번 단계가 끝나면 자력의 교란이 사라져서 공중 정원에 지원군을 요청할 수 있어.
공중 정원을 공격하려고 할 때 후회하지 말라고.
저항군 수장이 무기를 꺼내들고는 말없이 추종자들을 이끌고 돌아섰다.
그리고 마치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결연한 뒷모습을 남겼다.
저항군 수장은 자신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총알로 어둠을 부수고, 구원을 가져다줄 주인공이라고 말이다.
수장님, 왜 이렇게까지 공중 정원 양반들을 도와주려고 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원자로를 차단해도 그 기계체들의 지배적 위치는 바뀌지 않을 텐데,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더 가혹하게 다룰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는 자신의 소속을 공중 정원이라고 했다. 무슨 소대든, 공중 정원 사람이라면 천국의 다리가 가동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다.
그 사람의 신분을 확신할 순 없지만...
공중 정원의 지원만 받을 수 있다면, 시도해 볼만해. 공중 정원 사람들이 이 일에 휘말리게 된다면, 우주 도시가 기계체들에게 점령당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 같아?
그때가 되면... 우리는 이 기계체 놈들을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어. 무슨 드미트리니, 베로니카니 하는 것들까지도 말이야.
이곳은 반드시 인간이 지배해야 해.
젠장, 누가 저 빌어먹을 다리에 보낼 물자를 수집하고 싶겠어!
천국의 다리에 필요한 물자는 어떻게 돼가고 있지?
연료 부족분을 채우려면 아직 43.89%가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부 조합 재료도 부족한 상태입니다. 사전에 확보한 물자로 일부는 채웠지만, 아직 20% 정도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수송팀을 보내서 찾아.
알겠습니다. 천국의 다리를 가동해야만 우주 도시가 이 세상에 진정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가 되면, 이곳에 있는 모든 기계체를 수용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예전에 말씀하신 "기계 교회"처럼요.
충분한 무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할 수 있을 겁니다.
...
여성 기계체의 모습이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