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올라와.
응?
그는 순간 멍해졌다.
쿨럭쿨럭...
차가운 바람이 매서웠다. 알렉세이는 몸을 굽혀 기침했고, 방금 야외에서 공격받아 생긴 상처가 은은하게 아파지기 시작했다.
방금도 의식을 잃었었나?
지금 올라와.
통신 시스템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베로니카.
……
맞은편에선 더 이상 새로운 지시가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긴 부츠가 눈을 밟으며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그는 순례자처럼 층층이 이어진 계단을 올라갔다.
이곳은 고층 건물의 옥상이었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하얀 눈으로 뒤덮인 도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가운데, 그는 처마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곳에 멈춰 섰다.
……
무엇을 보고해야 하는지 알고 있겠지?
몸을 돌리지 않고 말한 이와 알렉세이 사이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인간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간간이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알렉세이의 어조에는 알아채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고, 도시에 들어올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혼란 때문에 네가 직접 도시 밖으로 나갈 일은 없었을 텐데.
옥상에 서 있던 여성이 몸을 돌렸다. 그녀의 차가운 표정은 혹한의 공기만큼이나 매서웠다.
다쳤구나. 그 인간들 짓인가?
알렉세이가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의 기계체 팔에 총알 자국과 긁힌 흔적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바닥 속 기계체 저장 장치를 꽉 쥐었다. 그것은 그가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물건이었다.
의족 부분만 손상된 작은 상처일 뿐입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교전 지역을 돌아다니다니, 자살이라도 하고 싶었던 건가?
그 근처에서 예전에 손상돼 멈춰버린 기계체들을 회수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이 도시 최고의 엔지니어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너를 보호하느라 내 동료들이 또 희생됐잖아.
죄송합니다. 그 저항군들이 나타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저장 장치는 보존했으니, 다시 연결만 하면...
"평소와 다름없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이거였어?
베로니카...
알렉세이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대로 말해.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도시 밖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이런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습니다. 기계체 부분과의 거부 반응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진작에 경계했어야지. 이런 상황이 처음도 아니잖아.
죄송합니다. 다음번엔...
알렉세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베로니카의 표정이 눈에 띄게 불쾌해졌다.
다음은 없을 겁니다. 베로니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그 구룡 사람과 함께 도시 안에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긴장된 상황에 제가 그러면 안 됐는데...
잠깐.
알렉세이에게 잠시 입을 다물라는 신호를 보낸 베로니카는 귀를 기울이더니 다시 한번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또 시작이군.
희미한 포성이 눈보라 소리에 파묻혔다.
정무청으로 돌아가서 날 기다려.
베로니카는 몸을 돌려 포성이 들려온 방향으로 걸어가려 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베로니카.
인간이든 기계체든, 모두가 이 끝없는 분쟁의 굴레에서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최근 마찰이 자주 일어나는 것도 그만큼 절박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겁니다.
쾅!!!
포성이 거의 코앞에서 들려왔다.
알렉세이. 보여?
이게 바로 네가 두둔하는 동료인 인간들이야.
거리에서 소란이 터져 나왔다. 질서 정연하던 기계체들이 일제히 경계등을 밝히고, 전류가 어지럽게 흐르는 가운데, 조잡하게 조립된 총포를 든 인간들이 벽 모퉁이에서 뛰쳐나왔다.
……
정무청으로 돌아가서 상처나 치료해. 여기는 내가 먼저 처리하지.
네가 말한 그 구룡 사람은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베로니카는 몸을 돌려 처마에서 뛰어내렸다.
알렉세이와 헤어진 후, 함영은 혼자 눈이 내리는 거리를 걸었다.
이 도시 대부분의 기계체들은 정해진 프로그램만 따르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금 마주친 그 우주항공 기계체는 좀 이상했다. 충전소도 없는데 혼자 멈춰 서서 그 "처형장"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런 행동은 각성 기계체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만약 그 기계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우주 도시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함영은 이 도시에 대해 그리고 선현님이 남긴 "열쇠"에 대해 알아내야만 했다.
우주항공 기계체가 서 있던 자리를 다시 바라보았지만, 이제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버렸나? 하지만...
얼룩덜룩한 발자국들이 먹물 방울처럼 하얀 눈 위에 줄임표를 그리며 이어져 있었다.
눈 위의 자국을 따라 걸으며 골목 몇 개를 지나쳤다. 건물들의 그림자가 조금씩 낮아지고, 발자국은 울퉁불퉁한 지면 위를 이리저리 흩어지다가 한 언덕 끝에서 사라졌다.
공기 중에서 차가운 녹슨 냄새가 풍겨왔다. 그러다 함영은 문득 깨달았다. 이 울퉁불퉁한 지면은 언덕 때문이 아니라...
이곳은 기계체들의 무덤이었다.
녹슨 철근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고, 눈이 그것을 덮어 평범한 언덕처럼 위장해 주고 있었다. 잔해들이 눈 속에서 미련 가득하게 솟아나 있었고, 떠돌이 기계체들은 이곳에서 자신에게 맞는 부품을 주워서 장착하고 버리는... 끊임없는 윤회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밖에... 자신을 수리할 수 없는 걸까?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함영이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그곳에 있는 기계체가 잔해를 자신의 수리에 사용하지 않고, 폐허 위에 다른 기계체의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약속... 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조립해도 코어가 없는 외형은 결국 움직일 수 없었다.
기계체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듯, 고집스럽게 부품들을 집어넣고 있었다. 소리 없는 희망처럼, 그들의 신호등이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이제는... 응답을 받을 수 없어요.
약속... 했으니까...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작은 기계체가 열심히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함영은 갑자기 거대한 슬픔에 휩싸였다.
자신이 그 빈 껍데기가 되어, 동료들이 끊임없이 조립하고 자신이 돌아오기를 반복해서 기다리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처럼...
계속되는 기다림은 분명 고통스럽겠죠.
여성 기계체의 눈가에서 눈물이라는 인공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녀는 조용히 눈보라 속에 앉아 품에 있던 악기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이 곡이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랍니다.
함영이 현을 튕기자, 그 소리가 잔잔히 멀리 퍼져나갔다. 그러자 기계체들이 그 매혹적인 선율에 이끌려 잠들기 전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처럼 그녀의 주변으로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큰 눈이 흩날리면서 기계체들의 표면에 하얀 서리를 덮었다. 함영은 희미한 눈발 사이로 그들의 신호등이 더 이상 무기력하게 깜빡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
무덤가를 배회하던 작은 기계체들이 어느새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좀 나아졌나요?
함영은 무의식적으로 기계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대는 이런 복잡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고, 그저 함영을 향해 눈을 깜빡거릴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인간이군요.
저를... 따라... 와... 주세요.
기계체는 앞서 동료를 조립했던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가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며 함영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당신은... 착한... 인간이군요.
하지만... 이곳은... 인간에게...안전하지 않습니다.
저를... 따라... 와... 주세요.
함영은 기계체가 자신을 어딘가로 안내하려 한다는 걸 눈치챘고, 그를 따라 이동했다.
이건...
걸어가던 길바닥이 조금씩 평평해졌고, 눈밭 사이로 다시 얼룩진 발자국이 나타났다.
기계체의 예민한 시각 모듈 덕분에 그녀는 지면에 새로 나타난 발자국이 방금 기단 광장에 있던 그 기계체가 남긴 흔적이라는 것을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방금 어디 갔다 왔어?
기단 광장에 다녀왔습니다.
또 그날이 다가오는구나. 항상 이렇게 부탁해서 미안해. 수고했어.
그녀는 자신의 휠체어를 흘깃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유라 님. 저도 제 동료들을 추모하러 가야 했었습니다.
멀리서 포성이 들려오자 율리아의 웃음이 무거워졌다.
인간과 기계체들의 교전이 점점 잦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도시 구역이 많이 불안합니다.
소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드미트리의 어깨가 축 처졌고, 그의 실루엣에는 무력함이 배어났다.
당분간은 되도록 외출을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뭐라고 하는 게 아니야.
약속을 받아낸 소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어조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넌 전투 능력이 없으니 충돌 속에서는 위험해. 게다가...
율리아는 공장 구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분홍빛 실루엣이 시끄러운 인파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거점은 더 이상 손님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또 저체온 증상이네요. 다행히 휴대용 발열제를 많이 가져왔어요.
"카티나 님, 상처가 계속 악화하고 있어요. 앞으로 진행할 치료가 조금 아플 수 있어요.
고마워요. 당신의 의술이 이렇게 뛰어날 줄은 몰랐네요.
쿨럭, 이 아이도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계속 울고 있는데, 어디가 아픈 건지 모르겠어요?
물론이죠. 열이 있는 것 같네요. 혹시 여분의 방한복이 있나요?
리브의 달래는 말에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리브는 아이를 구석에 있는 다른 침대에 눕혔다.
하지만 유라 님, 이 두 난민들이 우리를 돕고 있잖아요.
이 둘은... 난민이 아니야. 디마. 저 하얀 머리 여자는 구조체야.
둘이 어느 정도 위장을 했지만, 율리아는 그 여자의 머리에서 헤어핀으로 위장된 "역원 장치"라는 물건을 알아봤다.
이것도... 네가 나한테 가르쳐준 거잖아.
현재 우주 도시에 몇 안 되는 각성 기계체 중 하나로, 베로니카가 우주 도시를 장악한 후 드미트리는 당연하게도 권한을 얻게 되었다.
이 작은 권한 덕분에 드미트리는 외부로부터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었고, 당시 어렸던 율리아에게 이 정보들을 가르쳐주었다.
지금 도시 밖에도 많은 구조체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분들은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그건 부정하지 않아.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동행자는 우리에게 분명 위협이 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어.
조금 더 이기적이어야 해. 디마. 매번 외부인의 선의에 기댈 수는 없어.
유라 님. 의심스러운 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알렉세이 성주가 이상한 손님을 한 분 데려오셨는데, 성주가 떠나신 후 그 사람이 저에게 말을 걸려고 했어요. 하지만 전 묘지에서 그 사람을 따돌렸습니다.
율리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을 때, 그 구조체는 이미 동행자의 곁으로 돌아가 있었다.
모든 것이 정리됐어요. 지휘관님.
우주 도시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다니 상상도 못했어요.
"기계체들이 점령한 도시"가 컨스텔레이션처럼 사람은 드물지만, 질서 정연한 상태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드미트리의 피난처로 들어온 후 이곳 인간들의 생존 상태에 충격을 받았다.
의약품은 부족하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이곳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기계체들이 "무죄"라고 인정한 일부 인간들만이 도시 안에서 배를 채울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군부의 최신 지시는 계속 정찰하라는 것이었어요. 어차피 공중 정원과의 직접적인 충돌은 없으니, 당분간은 도시에 인력이 투입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우주 도시 정찰은 임무 중 하나일 뿐이었고, 출발 전 아시모프가 보낸 통신이 떠올랐다.
치올콥스키 우주 도시... 이 위치를 알고 있을 텐데.
새벽-Ⅲ호 비행선의 발사 임무를 수행했고, 에덴 Ⅰ형의 연구 개발과 기술 검증도 거기서 이루어졌지. 이 도시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가치가 있어.
가능한 한 내부 상황을 자세히 파악해 줘. 내가 가진 자료가 맞다면, 우주 도시가 마지막으로 건설하던 것은 코드네임 "천국의 다리"라는 건축물일 거야.
가능한 한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면 고맙겠어.
탁, 탁...
바깥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생각이 끊겼다.
네.
실내가 소란스러웠지만, 공장으로 이어지는 텅 빈 복도에서 울리는 발소리만큼은 선명하게 들렸다.
누구십니까?
디마, 어서 숨어!
율리아가 급하게 드미트리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곳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 내가 남아서 적인지 아군인지 확인할 테니, 너는 먼저 숨어!
안 됩니다. 유라 님부터 먼저 피하세요. 그리고...
드미트리는 음성 출력을 최대로 높여 군중을 향해 외쳤다.
정체불명의 대상이 접근 중입니다. 모두 대피해 주세요.
군중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면서 비상 통로로 밀려들었다.
어서. 디마! 너도 도망쳐!
율리아의 목소리에는 드물게 조급함이 섞였다. 옆의 기계체를 재촉한 그녀는 휠체어에 숨겨둔 사냥총을 뽑아 들었다.
낡은 철문이 쇳소리를 내며 끼익 열리자, 모두의 신경이 곤두섰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소란스럽던 사람들은 얼어붙은 듯 소리 한 번 내지 못했다.
작은 키의 기계체가 벽 모퉁이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니아, 너였구나.
사람들은 익숙한 이 작은 기계체를 보자 다시 소란스러워지려 했다. 그때, 철문이 더 크게 열렸다.
실례합니다.
구룡 복장을 한 여인이 모두의 앞에 나타났다.
몇 분 전...
작은 기계체의 이동 경로와 발자국이 묘하게 일치했다. 함영은 기계체를 따라가다 어느 폐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희미하게 사람들의 소란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꽤 먼 거리였다.
인간?
생명 신호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이 낡은 공장에는 인간 수십 명이 숨어 있었다.
똑딱, 똑딱. 작은 기계체의 발걸음 소리가 텅 빈 공장 안에 울려 퍼졌다. 함영은 갑자기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사람들이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듯 조금 전까지 시끄러웠던 사람들의 소리가 사라졌다.
침입자로 식별된 걸까?
그 작은 기계체가 함영을 이곳으로 이끌고 왔지만, 이곳의 주인들의 태도는 불분명했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함영이 천천히 녹슨 철문을 밀어 열자, 문 뒤에서 원거리 무기 여러 대가 침입자를 조준하고 있었다.
함영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지막에 간단한 전투복을 입은 인간에게 시선이 멈췄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
지휘관은 낯선 여인에게서 묘한 친숙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기억 속 자신은 그녀를 만난 적이 없었다.
지휘관님... 저 함영이에요. 구룡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후에 제가 기체를 바꿔서 잘 알아보지 못하실 수도 있어요.
이 기체를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 상대방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저를 기억하시다니, 다행이에요.
그때의 혼란스러웠던 광경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슐츠라는 기계체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동료"였던 함영을 공격했다.
순환액이 튀어나온 그 순간에야 그 여자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 한 번 만났을 뿐이었지만, 함영이 지휘관을 바라보던 눈빛은 왠지 모르게 친근하면서도 따뜻했다.
이런 친숙함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휘관은 그것에 대한 뚜렷한 기억이 없었다.
함영?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나요?
초대도 없이 갑작스럽게 와서 정말 죄송해요.
저는 여기서... 예전에 헤어진 친구를 찾고 있어요. 방금 그 광장에서 각성 기계체 동료를 보고 따라왔는데, 혹시 그 친구 소식을 알고 계신지 물어보고 싶어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제 발자국은 매립장에서 사라졌을 겁니다..
기계체 동료에게서 악의가 없음을 감지하자, 휠체어 뒤에 있던 기계체가 고개를 내밀어 함영을 바라보았다.
매립장에서 길을 잃은 건 맞지만, 그때 다른 동료가...
감사함은...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습니까?
작은 기계체가 함영의 발치에서 고개를 내민 뒤,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니아가 그녀를 데려왔군요. 그렇다면... 유라 님, 함영이라는 분은 적의가 없어 보입니다. 니아가 모든 경위를 말해줬습니다.
율리아는 사냥총을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경계하는 눈빛으로 함영을 바라보았다.
인간들은 서로를 "동료"라고 부르지 않아요. 그 말은 인간의 복잡한 마음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 거처는 원래 은밀한 곳이에요. 당신을 환영하고 싶은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네요. 어차피 당신은 이곳에 와버렸으니까요.
눈을 감은 율리아는 지친 듯 휠체어를 반 바퀴 돌려 옆으로 돌아앉았다. 그렇게 함영의 방문을 수락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