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7 구름에 드리운 그림자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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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7-5 잃어버린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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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인처럼 생긴 인간형 기계체는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기계체는 붉은빛 신호를 위험 표시가 아닌 안전한 통로를 나타내는 이정표처럼 여기며, 홀로그램 표식 사이를 민첩하게 지나갔다.

미행자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언제든 몸을 숨길 수 있는 엄폐물을 따라 이동했다.

앞으로 이동할수록 초목도 조금씩 듬성듬성해졌다.

네.

부유 캐논 모드를 조정한 리브는 부유 캐논을 먼저 내보내 정찰을 시켰다.

숲을 벗어난 순간, 도시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협곡 끝의 개활지 중앙에는 강철로 된 성곽이 산기슭 사이에 우뚝 서 있었다.

두꺼운 벽면에는 나선형으로 감시 포대가 배열되어 있었고, 기계체 구조물을 멀리서 보면 새 둥지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홈이 우주선 한 대를 수용할 만큼 컸다.

수백 미터 높이의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기단 아래 빽빽한 건물들이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양쪽 구조물은 배의 용골처럼 생겨서 대지에 단단히 뿌리박혀 있었다. 위로 솟은 지지대는 크고 균형 잡혀 있어서, 하늘로 뻗은 궤도를 받치고 있었다.

여기가 우주 도시군요.

극북 지방의 광활한 밀림 사이에서 천국의 분수에 대한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낸 인간은 그 어떤 높은 거목보다도 오로라와 은하수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이 황금시대의 잃어버린 도시는 수천 년 동안 인간이 꿈꿔온 그 어떤 기적보다도 더 웅장하고 더 찬란했다.

드디어 목표물을 찾았네요.

세월이 흐른 우주 도시의 방어 시스템이 아직 작동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무작정 돌진하는 것은 절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저 녀석은 뭘 하고 있는 걸까요?

리브가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시선을 돌리자, 숲 가장자리에 멈춰 있던 기계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저건 안내판인가요?

그 기계체는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배후의 수납 가방에서 사람 키 절반 정도 되는 납작한 사각형 금속판들을 꺼내더니, 접이식 지지대를 펼쳐서 뾰족한 부분을 땅에 박았다.

그리고 이 동작을 반복하더니 네다섯 개의 철판을 숲으로 향하는 낮은 울타리처럼 연결했다.

<color=#ff4e4eff><b>경고: 전방 감시 포대 사격 범위에 진입. 접근 금지.</b></color>

각각의 철판에는 붉은 페인트로 같은 문구를 손으로 써 놓았는데, 지휘관이 기억하는 금지 구역에 대한 경고 표지판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난민들을 위한 경고인 것 같은데, 일종의... 선의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도시 방어가 외부인의 진입을 막기 위한 거라면, 이런 경고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함정일까요?

여기 근처는 모두 우주 도시의 방어 범위였고, 그 안내판들만 제거한다면, 무방비 상태의 난민들은 자연스럽게 감시 포대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었다.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당장은 판단하기 어렵네요.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기계체는 난민들에 대해 악의를 품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상대가 정말 악의가 없다고 확신하세요?

리브는 이런 모험적인 행동에 여전히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우주 도시는 난민들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리브가 있으니 무사히 빠져나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지휘관은 무기를 제대로 숨긴 뒤,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바위 뒤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예전 임무에서 만났던 지상의 생존자들을 최대한 떠올린 지휘관은 기억을 더듬어 자신의 몸짓을 수정했다. 그러다 잠시 예술 협회의 연기 수업을 받아보지 않은 걸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여... 여기가 우주 도시인가요?

기계체는 하던 일을 멈췄고, 우주 헬멧 아래의 센서 카메라로 지휘관을 마주 보았다.

여러분은 누구십니까?

매우 침착한 남성의 저음이 들렸다. 그 차분한 목소리는 기계체가 가져야 할 냉정함과 정확성을 완벽하게 담아내는 듯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는 분명 정해진 프로그램을 엄격하게 따르는 다른 동족들과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지휘관은 조심스럽게 말하며, 맞은편에 있는 기계체의 반응을 살폈다.

왜 저한테 질문하시는 겁니까?

방금 저쪽에서 당신이 이 경계 표지판들을 설치하고 있는 걸 봤어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얻었다는 듯, 그 기계체의 헬멧 위 스크린이 한 번 깜빡였다.

저는 드미트리라고 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끝낸 후, 드미트리가 천천히 다가왔다.

따라오십시오. 이곳은 오래 머물기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감시 포대의 사격 통제 시스템은 제 신호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꼭 바짝 붙어서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밀입국자"를 여러 번 만난 것으로 보이는 드미트리는 매우 능숙한 모습으로 위험한 국경선에서 길 안내를 해 주었다.

리브는 재빨리 공중 정원에 현재 위치와 상황을 전송한 뒤, 지휘관과 함께 그 기계체의 뒤를 따랐다.

숲 반대편.

구불구불 이어진 이합 초목들이 조금씩 듬성듬성해지더니, 고위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작나무와 전나무로 완전히 바뀌었다.

수송팀에게 버려진 후, 함영은 숲속에서 도로 방향을 따라 이동했다.

도중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었지만, 기계체의 첨단 센서 장비를 이용해 쉽게 피했다.

우주 도시... 베로니카...

그들이 말한 "뾰족 머리" 기계체가 베로니카일까? 그리고 그 수송팀은...

병사들의 소총은 모두 철갑탄으로 장전되어 있었다. 하지만 자원이 부족한 폐쇄된 도시에서 이런 고급 탄약은 낭비와 다름없었다.

수상한 분위기로 봐서는 단순 수송 임무 수행이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함영은 이런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료의 죽음에 무심한 데다 시신조차 제대로 묻어주지 않는 모습은 함영이 보아왔던 인간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우주 도시 자체가 이상한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탁——

숲 저편에서 맑고 뚜렷한 소리가 들려왔다. 대나무 장대가 부러지는 소리와 흡사했다.

그러나 이곳은 대나무 숲이 자라기에 적합한 아열대 지역이 아니었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뢰밭은 무예를 연마하기엔 적절하지 않았다.

그러다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전해졌고, 소음을 덮으려는 듯한 외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는데, 목소리가 갈라졌고 힘이 빠진 상태였다. 누군가 총기를 쓰고 있는 게 틀림없다.

(방금 전 그 수송팀이야!)

우주 도시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유일한 단서였지만, 도중에 겪은 일들로 모든 것이 몽롱하게 느껴졌다.

함영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숲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고, 거대한 나무들은 검은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나뭇잎들은 살짝살짝 흔들리고 있었는데, 마치 떨고 있는 것 같았다.

공기는 타버린 썩은 나무 냄새로 가득했고, 불안한 기운이 사방에서 압박해 왔다.

어째서 전부 다 기계체일까?

습격 현장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현장에는 파괴된 운송 장비나 인간의 시신은 없었다.

그을린 금속 외피가 숲 사이에 흩어져 있었고, 이끼마저 먹물처럼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파손된 전기회로가 기계체의 표면에서 터져 나와 있었고, 둥글게 녹아 있는 구멍들은 분명 철갑탄의 작품이었다.

사방에 흩어진 기계체들은 정상 작동을 회복하려는 듯 불규칙한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위독한 환자의 무의식적인 신음 같았다.

구룡 범용형 자율 기계체, 치올콥스키 우주 도시...

함영은 기계체 잔해 표면의 명문으로 피습자의 출처를 확신했다.

눈앞의 참상은 분명 병사들의 분노가 폭발한 결과였다.

이러한 광경으로 미루어 보아, 그 도시는 이미 붕괴 직전인 것 같았다.

함영은 계속 현장을 둘러보며 단서를 찾았다.

이건...

물리적 손상을 입었음에도 눈앞에 있는 길쭉한 기계체 구조물의 표시등은 희미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그것은 한때 CPU 회로 사이에서 맥박처럼 움직이는 사고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함영은 잔해 아래 묻혀 있는 금속 팔을 가까이서 살펴보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하게 됐다.

그건 의족과 맞닿은 부위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맥박처럼 깜박이는 인간의 피부였다.

인간?

함영이 조심스럽게 두 대의 기계체 잔해를 들어내자, 기절해 있는 젊은 남자가 보였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였지만, 미세한 진동에 상대는 의식을 차리게 됐다.

으윽, 어지러워...

외상은 심각하지 않습니다만, 제 응급 처치 능력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예요. 당분간 무리한 움직임은 피하시는 게 좋겠어요.

당신의 동료들은...

함영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며 기억을 더듬었다. 방금 수송팀 병사들 중, 이런 복장을 한 병사는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운송 장비에 탑승했던 사람일까?

눈을 뜨고 주변의 참상을 둘러본 남성은 이마를 누르고 있던 손을 내리고는 함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또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혼란스럽다는 눈빛을 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제 동료들은 이제 없을 거예요... 당신은 누구시죠?

제 이름은 함영입니다. 이 구역을 순찰 중인 수색구조 대원이에요.

함영은 이 청년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혀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 죄송해요. 이런 모습을 보여드려서...

이렇게 말한 청년은 관자놀이를 감싸 쥐었다. 아무래도 상처가 또 아픈 모양이다.

움직일 수 있으세요? 이런 상처는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악화될 수 있어요.

괜찮습니다. 일단 도시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시죠. 저는 버틸 수 있습니다.

방금 전 전투는...

함영은 눈앞에 있는 남성 외에 현장에서 다른 인간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저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러니까 제 말은... 이 기계체들은 모두 제 호위병들이었습니다.

청년은 또 기침을 터뜨렸고, 보아하니 심하게 다친 것 같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 소개를 미처 하지 못했네요. 제 이름은 알렉세이이고... 이 도시의 현임 성주입니다.

그 병사들은 우주 도시의 반역자들로, 저를 스파이로 여기고 공격했고, 우주 도시를 다시 장악하려고 합니다.

그... 그들은... 이제 모두 움직일 수 없는 건가요?

알렉세이는 아픈 상처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슬픈 표정으로 바닥에 흩어진 기계체들을 바라보았다.

일부는 수리가 가능하겠지만, 나머지는...

기계체라 해도 코어가 파괴된다면, 인간의 죽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모두 제 탓입니다... 저를 도시로 데려다주실 수 있나요? 이 기계체들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볼게요.

청년은 함영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초면에 이렇게 폐를 끼치게 됐네요.

괜찮습니다.

복잡한 정보들 속에서 함영은 자신의 신분을 쉽게 드러낼 수 없었다. 그래서 말을 아끼며, 알렉세이가 안내한 길을 따라 거대한 나무들 사이를 조용히 지나갔다.

함영은 어떤 상황에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울창한 숲 가장자리에 다다르자, 그 너머로 얼어붙은 땅이 끝없이 펼쳐졌다.

지평선을 향해 뻗어 있던 도로는 높이 솟은 성벽 둥근 아치 아래에서 마무리되었다.

웅장한 은빛 건축물이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서 있으면서 구름 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치올콥스키 우주 도시. 그곳은 한때 지구가 별을 바라보던 눈이었다.

여기서 앞으로 가면 방어 시스템 범위입니다. 제 체내에는 인식 칩이 있어서 방어 시스템에 걸리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은...

도로변에 우주 도시라고 표시된 운송 장비가 가드레일 옆에 멈춰 서 있었다.

타세요.

도시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함영은 그 규모를 실감할 수 있었다.

감시 포대가 즐비한 성벽이 도로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자, 곧 하늘을 완전히 가려 모든 빛을 차단할 것만 같았다.

시야가 닿는 끝까지 끝없이 높은 벽뿐이었다. 그리고 멀리서 봤던 건물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운송 장비가 곧 검문소에 도착했다. 알렉세이의 조치로 기계체 초병들은 차 안 불청객을 별다른 검사 없이 통과시켜 주었다. 그리고 둥근 아치를 지나자, 도시의 내부가 마침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바로... 우주 도시입니다.

알렉세이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슬픔이 뒤섞인 이상한 표정이 떠올랐다.

기계체들이 삼삼오오 도시로 들어와 광장을 지나다녔다. 그 움직임은 질서정연했지만,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발사 궤도를 닮은 지상 갑판이 콘크리트 지지대와 거대한 기계체들 꼭대기에 높이 매달려 있었다. 그래서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발사대가 초라해 보였다.

알렉세이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운송 장비가 도시 입구 앞에 잠시 멈춰서자, 알렉세이는 문 앞 초병 기계체에게 간단히 뭔가를 말했다. 그러자 기계체가 곧장 자리를 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형 운송 장비 두 대가 도시 밖으로 향했다.

알렉세이

제가 그들에게 도시 외곽의 기계체 호위병 수리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저항군들의 행동도 다시 주시해야 할 것 같네요. 더 많은 사람들이 다치는 걸 막아야 하니까요.

함영

네. 그러시죠.

함영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세이

음... 다음은... 구룡에서 오신 손님께 이 도시를 안내해 드리고 싶군요.

함영

상처는 괜찮으세요?

알렉세이

괜찮습니다. 저항군 문제를 처리하는 게 더 시급합니다. 게다가...

이곳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청년의 보라색 눈동자에 알 수 없는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거리마다 주거용 건물처럼 보이는 시설들이 늘어서 있었다. 벽과 현관 위에는 낡은 문자 간판들이 걸려 있었는데, 이 건물들은 아마 과학 연구원들이 살았던 곳인 듯했다.

원래라면 사람들로 북적여야 할 현관은 지금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복도에서도 발소리나 잡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는 인간의 모습도 없었다.

도로 양쪽으로 가끔 뻣뻣한 동작의 기계체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프로그램에 따라 바쁜 임무를 수행하느라 이 죽은 도시의 거리에 잠시도 머물 틈이 없어 보였다.

분주한 행인들 같지 않나요?

당신의 비유는 이해하겠습니다만... 이 도시의 인간 주민들은 어디 있나요?

도시 밖에서 "저항군"이라 불리는 인간 병사들의 말로는 이 도시가 "텅 비어있지" 않다고 했다.

앞서 말씀하신 "인간 저항군"에 대해서도 그렇고...

아,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곧 그들을 만나보실 수 있을 테니까요.

수송팀 병사들이 말한 이야기는 자신을 성주라 칭하는 인간의 말과 맞지 않았다.

하지만 청년은 의문을 해소하려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운 작품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들이 길모퉁이에 도착하자 길가에 정류장처럼 생긴 시설이 있었는데, 거기 정차한 기계체가 충전기에서 전선을 뽑아 자신의 외벽 한쪽 단자에 꽂고 스위치를 조작했다.

함영은 갑자기 깨달았다. 정류장의 지붕 천막이 사실은 태양광 패널이었다.

이건 우주 도시에 원래부터 있던 시설인가요?

네. 이런 설비들을 볼 때마다 이 도시의 자동화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감탄하게 됩니다.

별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은 중력입니다.

그래서 잡무는 당연히 기계에 맡겨졌죠. 하지만 저는 재난 이후에 태어나서 선배들처럼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생활을 즐길 기회가 없었습니다.

구룡 쪽은 어떤가요? 함영 님과 같은 구조체를 파견해 상황을 조사하다니... 우주 도시를 회수하려는 건가요?

갑자기 무심한 듯한 질문을 던진 알렉세이가 한가로운 표정을 지었다.

구룡은 그럴 의도가 없어요. 단지 외부에서 우주 도시에 대한 소식을 듣고 상황을 확인하러 온 것뿐이에요.

상대방의 판단이 완벽하게 정확하진 않았다. 하지만 함영은 속으로 청년의 예리함에 놀랐다.

보시다시피, 당신의 비밀은 이곳에서 어떤 공포도 일으키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청년이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요 몇 년간 우주 도시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서두르지 마세요.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죠.

길모퉁이를 돌던 알렉세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옛날에 한 교수가 있었는데, 어느 평일 아침 학과의 모든 학생을 광장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이건... 우주 도시의 과거 이야기인가요?

어떤 면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해 주세요.

학생들은 잔디밭에 주황색 스티커가 가득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운동장 전체가 빽빽한 정사각형으로 나뉘어 있었고, 학생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교수가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었죠.

모든 사람이 각자 정해진 사각형 자리에 위치하자, 교수는 맨 앞줄 중앙에 있는 학생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알려주는 숫자가 1로 시작하면 오른쪽 사람에게 전달하고, 0으로 시작하면 왼쪽 사람에게 전달하라고요. 11과 00으로 시작하는 건 뒷사람에게 전달하면 된다고 했죠. 다른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수학 게임이네요.

"숫자를 부르는 소리가 운동장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자, 모두가 지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많은 학생이 바닥에 앉거나 심지어 누워버렸고, 숫자가 자신에게 전달될 때만 잠깐 정신을 차렸습니다.

결국... 너무나 지친 학생 하나가 1로 시작하는 숫자를 실수로 왼쪽 사람에게 전달하고는 짜증을 내며 운동장을 떠났습니다.

게임이 실패한 것 같네요.

하지만 학생들이 이해한 방식과는 다릅니다.

알렉세이가 경멸하듯 웃음을 지었다.

다음 날, 영리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어제 2진법 컴파일을 연습한 것이냐고요. 그리고 학생들은 그 숫자들이 완전히 무의미한 코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교수는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웃으면서 외국어로 한 문장을 말했습니다. "위대한 공학은 수많은 노예에 의해 이루어진다."고요. 하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자 교수는 학생들을 위해 이 문장을 번역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는 학생들에게 어제 그들이 최종적으로 출력한 2진법 코드가 바로 그 외국어 문장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노예"라는 말이 좀 이상하네요. 여기서는 동사여야 했을 것 같은데요.

하하, 하지만 그들의 첫 반응은 충격이었습니다. "우리 중 아무도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번역을 완성했어"라고 말이죠.

교수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너희들은 어제 자신이 독립적인 사고를 가진 게임 참가자였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이어서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한 학생이 작은 실수를 했더군. 그 문장이 실제로 말하고자 했던 건 [노력]이었다." 그리고는 교실을 떠났죠.

……

알렉세이는 이 주제에 대해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함영도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알렉세이가 하는 말을 이해한 것 같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활기 없는 거리를 지나 성주는 광장처럼 보이는 넓은 공간으로 손님을 안내했다.

어느새 그들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아래에 도착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아도 꼭대기의 발사 궤도의 끝부분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알렉세이가 운송 장비를 멈춰 세웠다.

이게 우주 도시에 새겨진 이국의 주문입니다.

알렉세이는 그 웅장한 건축물을 도취된 듯이 바라보며, 자신이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도 완전히 잊은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시에 들어선 순간부터 알렉세이는 상처가 도시에 의해 치유된 것처럼 움직였고, 온 마음을 다해 함영에게 이 아름다운 요새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이륙 활주로 같은 것이 대형 우주선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아요.

문득 함영은 잿빛 탑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읽었던 "방주 계획" 자료가 떠올랐다.

융합 동력의 새벽-Ⅲ호 비행선은 이 우주 도시의 A31 플랫폼에서 발사되어,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잠시 정지해 조립을 마친 뒤, 조금씩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올려 태양계 밖 심우주로 향했었다.

하지만 교회가 제작한 선봉함은 크기와 질량이 훨씬 더 컸다. 게다가 우주 정거장도 이미 붕괴하여 궤도 위에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중간 기착지가 없었다.

지상에서 발사되는 선봉함이 자연법칙의 속박을 벗어나려면, 그에 걸맞은 발사 수단이 필요했다. 당시 그들이 사용하려 했던 것이 바로...

우주선 자력 가속 궤도, 구룡 코드네임 "천국의 다리"입니다.

이곳에 정착한 과학 연구원들은 과학 이사회의 뜻을 수행해 왔습니다. 바깥세상이 혼란에 빠지고, 대기권 밖으로의 진출이라는 꿈이 허상이 되어버릴 때까지 말입니다.

그들은 아직 자신들도 의미를 알지 못하는 수치 연산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보세요. 그들은... 무의식중에 컴퓨터 부품 역할을 했던 학생들과 다름없었습니다.

게임을 끝낸 것은 일종의 자비였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이 실험에 참여해 온 기계체들에게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천국의 다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운송 장비 몇 대가 기단 아래 차고 옆에 정차했다. 그리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운전사가 운전석에서 뛰어내려 차 안 동료들에게 하역을 시작하라고 소리쳤다.

이것이 함영이 도시에 들어온 이후 처음 보는 인간이었다.

화물 상자에는 어떤 표시도 없었지만, 도시에서 생산된 물품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규격화된 모듈로 이루어진 도시의 물건들과 달리, 이것들의 형태는 너무나 불규칙하고 무질서했다. 하지만, 이 운송 장비들은 전에 그녀의 배양기를 운반했던 것들과 똑같았다.

즉, "열쇠"가 그 화물 용기들 속에 섞여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기계체들은 도시 밖 퍼니싱때문에 도시를 나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회로를 감염시키는 퍼니싱이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보세요. 아주 적절한 업무 분담이죠.

하지만 그들은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네요.

불만이 있는 건 이해합니다. 굶주린 사람이 오늘 빵을 먹으면 내일은 스테이크를 달라고 할 테니까요.

기계체들이 원하는 건 단지 충전기 뿐입니다. 그 후에는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죠.

성주는 동료들의 반응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일하는 사람들은 침묵을 지켰다. 가끔 누군가 무심코 함영에게 의아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곧 자신의 호기심을 이겨냈다.

당신이 말하는 "천국의 다리의 새로운 의미"란 이런 것인가요. 인간의 의지를 소모시키기 위해 끝없이 반복되는 노동을 강요하는 것입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우주선 자력 가속 궤도, 구룡의 코드네임 "천국의 다리", 그것의 용도는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알렉세이가 앞서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

나머지는... 죄송합니다. 더 자세한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

지금까지 본 것은 모두 기이한 현상뿐이었다.

도시에서 각성 기계체는 보이지 않았고, 여유로워 보이는 알렉세이조차 연기를 잘하는 대역처럼 보였다.

기계체들이 이미 통치권을 확립했다면, 그들이 계속해서 천국의 다리에 물자를 투입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녀가 한 일일까?)

운송 장비가 다시 모퉁이를 돌자, 함영은 광장을 마주 보는 기단 지지대 벽체 안에 거대한 해체 장비가 고정된 것을 발견했다.

회갈색 핏자국이 회백색 벽돌과 철벽 위에 엉겨 붙어 있는 것이 매우 눈에 거슬렸다. 그러자, 함영은 시간이 기존 기체에 남긴 유일한 흔적을 떠올렸다. 그건 고독한 배가 승객을 가두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백만 볼트의 고압 전류도, 눈앞의 고문 도구가 가진 잔혹함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모든 운영 체제는 지속을 위해 합리적인 규칙이 필요합니다.

함영이 이상한 표정을 짓자, 알렉세이가 담담하게 설명했다.

광장을 지나던 기계체 한 대가 갑자기 멈춰 섰다. 하지만 주변에는 충전소가 없었다.

그것의 기계체 구조는 우주복 같은 보호 장비로 감싸여 있었고, 센서도 헬멧으로 단단히 덮여 있었다. 그리고 헬멧 위의 명문은 "드미트리"라고 새겨져 있었다. 아마 그것의 이름인 듯했다.

기계체가 몸을 돌려 해체 장비로 향하더니,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저건...

그녀는 우주 도시라는 이 정체된 공간의 특이점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청년은 문제를 회피하려는 듯했고, 그의 미간에 초조함이 스쳐 지나갔다.

프로그램 오류입니다. 흔한 일이죠.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탑 꼭대기에서, 또 다른 한 쌍의 눈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기계체에 대해 경멸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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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보잘것없네.

기단 광장

눈길을 끄는 기계체가 마른 나뭇가지 하나를 천천히 꺼내더니, 분해 시설의 조작 콘솔 위에 올려놓았다.

함영은 그 식물이 극지의 장생 흑암고란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구룡의 더 따뜻한 동쪽 지방에서는 이 꽃의 먼 친척을 진달래라고 불렀다. 많은 경우 그리움을 담아낼 수 있는 꽃이었지만, 어떤 경우에서든 애도에 쓰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다만 이곳에서는 정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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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위협이 되지 않으니, 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 나중에 내가 직접 처리하지.

지금 올라와.

성주는 귀 옆을 살짝 만지더니, 함영을 향해 꽤나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이 바빠서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도시 안의 정비소와 장비는 마음대로 사용하세요.

말을 마친 알렉세이는 몸을 돌려 광장을 떠났다.

함영도 중요한 단서를 찾았기 때문에 더 이상 성주가 필요하지 않았다.

(전임 거꾸로 매달린 사람은 확실히 "사망"한 것 같지만, 도시의 각성 기계체들은 예상보다 많은 것 같은데.)

시간이 부족했다.

함영은 텅 빈 도시의 거리를 지나면서 건물들을 적외선 스캔했다. 무덤처럼 조용한 건물들은 이미지상으로는 차가운 짙은 파란색으로 나타났지만, 벽 뒤에는 수많은 인간형 윤곽의 열반응 신호가 있었다.

만약 총알과 화기도 탐지되어 붉은색 아이콘으로 표시됐다면, 짙은 파란색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통치자가 이걸 완전히 못 본 척하다니...

이 죽은 듯 보이는 도시가 곧 업화에 잠식될 참이었다.

함영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세르반테스가 말한 "열쇠"를 찾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