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7 구름에 드리운 그림자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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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7-3 사라진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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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주인은 주변의 여러 단말기 화면에 흐르는 데이터를 무시한 채, 정면의 곡선형 감시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감시기 중앙에는 경위도가 표시된 정밀한 지형도가 있었다. 짙은 파란색 폐곡선 사이에서 노란 점이 희미한 파문을 그리며, 등고선 서너 개 정도의 범위를 넘어가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게 반복되고 있었다.

이미지를 확인한 젊은 남자는 재빨리 키보드를 두드리며 검증과 확인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작업은 교착 상태에 빠진 것 같았고, 그는 짜증스럽게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때 노크 소리가 방 안의 답답함을 날려버렸다.

들어와.

연락은 받았어. 우주 도시에 관한 거지?

음.

어제 정례 스캔을 실시할 때, 콜라반도 남쪽에서 주목할 만한 신호를 발견했어.

비정상적으로 강한 전파가 감지되었는데, 누군가가 원시적인 장비로 공중 정원을 향해 신호를 보낸 것 같아.

지도 데이터와 대조해 본 결과, 신호 출처의 대략적인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어.

그 지역에서 고출력 장비를 보유한 유일한 장소는... 치올콥스키 우주 도시뿐이야.

황금시대의 우주 성지라... 난 그곳이 침식체에게 이미 점령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이합 생물이 보여준 높은 지능을 무시할 수 없지. 그래서 함정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야.

어쨌든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검지로 책상을 두드린 아시모프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관련 파일을 불러냈다.

구룡 측과 접촉했을 때, 그들이 새로운 자료 일부를 제공해 줬어.

하지만 구룡도 우주 도시에 대해선 공중 정원보다 아는 게 없잖아.

현재 보유한 "에덴 계획" 관련 파일들은 이미 공개된 정보가 대부분이었고, 나머지 자료들은 퍼니싱의 침습과 수년간의 전쟁 속에서 모두 손실됐다.

네가 그쪽의 종이 지도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정말 뭐 하나도 네 눈을 피해 갈 순 없군.

황금시대에는 기밀 유지를 위해 대부분의 상세 주소는 종이에만 기록했다. 그동안의 재난으로 많이 유실되기 했지만, 일부는 남아있는 상태였다.

조심해. 이건 우리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유품이거든.

롱은 오래되어서 분해될 것 같은 종이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구체적인 위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당연하지. 이 지도는 최고 기밀 문서 중 하나야. 기념용으로 이 도시의 건설자 중 한 분께 전달된 것뿐이라고.

그럼, 대략적인 범위만 특정할 수밖에 없겠군.

아시모프는 단말기의 지도에 위치 하나를 표시했다.

비행 이합 생물의 활동과 지구 저궤도의 우주 쓰레기가 전파 전달을 심하게 방해하고 있어서, 우리가 포착하려 해도 신호 발신지의 위치를 확정할 수 없어.

하지만 반경 오차는 100km 정도니까, 지상 정찰하는 데는 큰 문제 없을 거야.

왜 꼭 정찰을 해야 하는 거야?

쓸데없는 질문은 그만...

구룡 영토의 최북단에 위치한 치올콥스키 우주 도시는 황금시대의 가장 첨단 우주항공 시설과 실험장이 있었다.

그곳은 한때 새벽-Ⅲ호 비행선의 발사 임무와 에덴 Ⅰ형의 연구 개발 및 기술 검증을 담당했었다.

만약... 만약 인간이 지구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면...

분위기가 잠시 무거워졌다.

구룡에서는 그 뒤에 정찰을 진행하지 않은 건가?

퍼니싱이 폭발한 후, 구룡 과학 이사회는 곡의 요청으로 모든 연구 자원을 만세명 계획에 쏟아부었어. 문명을 이어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 멀리 바라볼 여유가 없었던 거지.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우주 도시는 오래된 문서 속 전설이 되어버렸다.

더 필요한 건 없어?

조사 일정은 내가 군부와 조율해 볼게.

그나저나, 그쪽 진행 상황은 어때?

롱은 휴대용 단말기를 겨드랑이에 끼운 뒤, 다른 손으로 화면을 능숙하게 스와이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파일의 표지가 나타났다.

<Ω 무기 제어화 제2단계 실험 보고서 및 원체 호환성 연구 성과>

롱이 건넨 단말기를 받아 든 아시모프는 손끝을 따라 스크린을 훑어보며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몇몇 연산 결과는 초각 기체의 실전 데이터와 비교가 필요하지만, 일단 이 정도로 하지.

롱이 스크린의 파일 사본을 위로 살짝 밀었다. 그러자 책상 중앙 스크린 오른쪽 하단에서 메일 알림이 나타났다.

내용을 간단히 확인한 아시모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역시 난 따뜻한 차 향이 더 좋아.

……

아시모프는 창밖을 보며 감탄하는 롱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단말기를 열어 오늘의 업무를 시작했다.

회의실

회색으로 된 벽, 책상 그리고 의자가 회색빛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임무 브리핑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지휘관은 다 읽고 나서도 무의식적으로 종이를 넘기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기운이 없으신 이유가... 혹시 아침 식사를 못해서 그런 건가요?

식사비와 팁은 블랙카드로 한 번만 결제할 수 있어요. 그리고 할부로 하시면 그레이 레이븐의 특별 혜택으로 20% 이자만 적용해 드릴게요.

이 시간이면, 차라리 좀 더 기다렸다가 점심 드시는 게 어떠세요?

세리카가 입을 삐죽거렸다.

농담입니다.

세리카가 회의실 단말기를 켠 뒤, 지도를 투영했다.

휴, 매번 이런 식으로 시작하니까 좀 질리네요.

좀 질리더라도 공중 정원 대폭발을 다시 겪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늘 그래 왔듯 먼저 임무 정보를 설명해 드릴게요.

과학 이사회 1부에서 보고한 바로는, 오늘 아침 신무르만스크 항구 근처에서 갑작스럽게 신호를 포착했는데, 원격으로는 발신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해요.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이 지형에 가장 익숙하니까, 가장 적합한 선택이라 할 수 있죠. 수고스럽겠지만 두 분이 정찰 임무를 맡아주셔야 할 것 같아요.

루시아는 새 기체 변경을 준비하고 있었고, 초각 기체의 소유자인 리는 과학 이사회의 부탁으로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남아야 했다.

단순한 정찰 임무여서 지휘관과 리브 둘만으로 수행하는 데 크게 문제는 없어 보였다.

보고서 내용은 다 확인하셨죠? 구룡 쪽은 이제 기대할 수 없게 됐어요. 북극 항로 연합은 분쟁 이후 내부 정리하느라 바쁘고, 우주 도시 관련 자료들도 충돌 과정에서 많이 유실된 상황입니다.

관여하기 싫어서가 더 맞겠네요.

이렇게 빨리 대책을 생각해 내시다니, 역시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답네요.

얼마 전, 의회에서 신소피아시 물자 지원 방안을 승인해 줬어요. 그래서 최근 그쪽과 나름 밀접하게 소통하는 편이죠. 덕분에 이번 조사 활동을 위한 임시 거점도 준비해 줄 수 있답니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의장님께서 제게 꼭 당부하라고 하신 일들이 있어요.

세리카가 손에 든 데이터 패드를 확인하며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지금부터 민감한 내용을 전달할 차례군요.

신소피아시는 안정적이긴 하지만, 북극 항로 연합 쪽 상황이 좋지 않아요. 이미 무력 충돌까지 일어난 상황입니다.

승격자들의 습격 이후 분쟁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는 재건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었다.

교전 규모는 아직 크진 않지만,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우주 도시에서의 추정 위치는 변경 지대에 있는데, 퍼니싱이 발생한 이후로는 사실상 무인 구역이나 다름없죠.

그래서 무장 세력들이 그 지역에 들어올 일은 없을 겁니다.

그쪽보단 신소피아시의 상황을 더 주목해야 할 것 같아요.

현재 숲을 지키는 자들이 중립 정책을 유지하고 있어서 분쟁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들은 보호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다만 그 본분을 지키는 것도 전제 조건이 있죠, 바로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는 겁니다. 만약 신소피아시가 전투에 휘말리게 된다면, 외교원의 임원들은 골치가 아프겠죠.

숲을 지키는 자들은 안내자를 파견할 의향이 있긴 하지만, 대신 공중 정원의 부대는 출입 금지해야 한다고 그러더군요, 불필요한 분쟁을 일으키는 걸 피하려는 거겠죠.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정찰 작전은 후방 지원 없이 진행될 겁니다.

분쟁은 인류가 선택한 우주의 영원한 주제였다. 그리고 옛 문명의 뿌리와 새로운 사회의 싹이 황무지에서 공존하며, 자신들만의 질서를 조금씩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합 생물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하는 것보다, 인간들이 말하는 가시덤불과 총포의 수풀 사이에서 길을 개척하는 것이 어쩌면 더 까다로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수송기 배치 일정도 임무 보고서 뒤에 첨부해 뒀어요.

안전에 유의하시고, 무사히 복귀하시길 바라요.

세리카는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회의실을 떠났다.

대기권에 진입한 후에는 운송기의 터빈 엔진이 융합 램제트를 대신했다.

팬의 배기 소음과 기내의 무더위 때문에, 압축 공기와 연료의 혼합이 엔진 포드 대신 기내에서 직접 일어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좌석 아래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진동과 함께, 기체는 중력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었다.

화물칸 문이 천천히 내려가자 하얀 설원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답답한 더위도 순식간에 사라졌고, 얼굴을 때리는 찬바람이 극지 전투복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했다.

키가 큰 은발의 구조체가 수송기 앞에 서 있었는데, 이곳에서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오랜만이야.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리브.

로제타 님, 안녕하세요. 나스카 님은 이제 괜찮은 건 가요?

숲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침식체에 맞서 싸웠던 기억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스카

이제 활동하는 덴 지장 없어요. 그리고 의료 물자 지원해 주신 것에 감사드려요.

난방 핵심 시설은 아직 공사 중이지만, 도시 방어와 물자는 별문제 없어.

기지에서 잠시 쉬었다 갈래?

전초기지이긴 하지만, 시설은 다 갖춰져 있어.

팔을 들어 손목 단말기의 체온 모니터를 확인했다.

비행기 계류장 아래에 있던 몇몇 아인형 구조체들에게 따라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방문객들을 기지 가장자리의 숲으로 직접 안내했다.

조립식 캐빈과 접이식 프레임으로 이루어진 임시 건물군은 곧 뒤로 사라졌고, 고위도 지역 특유의 전나무와 솔잎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물론, 이끼 사이로 때때로 보이는 홀로그램 표식도 있었다. 금속 막대가 진흙땅에 꽂혀 있었고, 투영구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경고 표시를 비추고 있었다.

나스카

역시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이시네요.

출발하기 전에 자료를 읽어봤을 텐데, 이 근처에 그 우주 도시가 있다고 말이야.

응, 숲속에는 황금시대에 매설한 지뢰가 만 개 이상 있어, 일부는 우주 도시의 방어를 위해 설치한 것이고

그리고 새로 생긴 나머지는...

로제타는 갑자기 말을 멈춘 채로 주먹을 쥐며, 모두에게 은폐 신호를 보냈다.

리브는 재빨리 무기를 가동해 부유 캐논에 발사 에너지를 연결했다.

지휘관도 무의식적으로 총을 뽑아 이상한 움직임이 보이는 쪽을 겨눴다. 멀리 있는 바위 옆에 인간형 기계체 한 대가 서성이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를 찾는 듯,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주 도시의 각성 기계체야.

새로운 지뢰밭은 바로 저 녀석들이 설치한 거야. 아무래도 저 기계체들이 그 도시를 점령한 것 같아.

약실에는 총알이 장전되어 있었고, 엄지손가락이 천천히 안전장치 쪽으로 움직였다.

그 기계체의 동작은 경직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민첩하다고 할 수 있었다. 우주 헬멧처럼 생긴 두꺼운 보호구가 센서를 가리고 있어서 전체적인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컨스텔레이션의 기계체를 본 적이 있긴 하지만, 붓을 들고 있던 그 "꼬마 화가들"이 도시 하나를 점령했다는 건 여전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럼... 숲을 지키는 자도 우주 도시의 구체 상황을 모르는 건가요?

응, 우린 이 밀림에 접근할 생각이 없거든.

예전에 어떤 난민들이 우주 도시로 가기 위해 그 숲을 지나려고 했었는데, 그 후로 그들은 행방불명 상태였지.

그러다 북항 쪽에서 누군가가 우주 도시로 갔던 난민들을 봤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들이 도시 주인의 명령으로 물자 교환을 하러 나왔다고 하더라고.

너희가 오기 전에 내가 특별히 이 일에 대해 다시 물어봤는데, 긍정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었어. 그걸로 봐서 우주 도시는 난민을 배척하지 않은 것 같아.

그러니 우리가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지.

몇 분이 지나자, 그 기계체는 흥미를 잃었는지 드디어 몸을 돌려 숲속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네.

세리카의 당부가 없었더라도, 숲을 지키는 자는 최전선으로 깊이 들어갈 의무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이 분쟁에 개입할 순 없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개인적으로 도움 요청해도 돼.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돼. 지휘관.

응. 우리가 약속의 땅을 기대한 적은 없어. 하지만 하늘이 내린 보물이 우리 손에 들어왔어.

난 이 기회를 잡을 거야. 그럼, 나중에... 더 강한 모습으로 네 곁에 설 수 있을 거고.

로제타는 지휘관을 바라보다가 곧 몸을 돌려, 동행하던 동료들을 이끌고 해가 뜨는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