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릴 소리가 귀를 찢을 듯 울렸고, 흙탕물이 암석층을 뚫고 흘러들어와 발목까지 차올랐다.
구멍 뚫을 거니까! 어서 비켜!
바위틈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어두운 갱도를 비추었다.
뒤로 물러서요!
정비 부대가 고른 위치는 정확했다. 내부에서 보강한 갱도와 채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보강된 갱도가 웅웅거리며 진동했고, 셰릴과 지원 부대 대원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머리 위 안전 구역을 주시했다.
"쾅!"
굉음과 함께 정비 부대가 갱도 상부를 뚫었다. 그러자 마침내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휘관님.
눈이 멀어 버릴 듯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자, 루시아는 살며시 지휘관의 눈을 가려주었다.
지하에서 오래 계셨으니, 햇빛 조심하셔야 해요.
어이! 거기! 다들 괜찮아?
정비 부대의 대원들이 안전하게 구조 통로를 넓히며 구조 준비를 하는 동안, 카레니나가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player name], 루시아! 너네 괜찮아?
야, 천천히 가.
요즘 왜 자꾸 이런 데서 기어다니는 것 같지.
카레니나와 테디베어의 도움으로 광정에 갇혀있던 일행은 무사히 지상으로 구조될 수 있었다..
지금 할게. 테디베어!
구조 작업을 조율하던 카레니나가 바쁜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연락 중이야. 근데 신호가 좀 불안정한 것 같아.
됐어. 이제 신경 쓰지 말고 좀 쉬어.
임시 텐트로 안내하던 소녀는 텐트 자락을 들어 올리는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노르만 그룹 담당자?
깔끔한 정장 차림의 노르만 그룹 담당자와 노르만 그룹 연구실에서 파견된 대표가 임시 텐트의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그들은 공중 정원의 고급 회의실에라도 있는 것처럼 점잖은 모습이었다.
시기가 좀 그렇지만, 잠시 시간을 내어 저희의 요청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노르만 그룹도 이렇게 많은 지원을 무상으로 제공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저희 노르만 그룹도 이번 작전의 주도권이 공중 정원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채석장을 회수한 후에도 노르만 그룹이 유지 보수를 담당해야 하므로, 공중 정원 측의 전투 및 사후 처리 과정에서 채석장 내부의 기본 설비가 최대한 보존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채석장 내부가 침식체로 뒤덮여 있다고 해도?
죄송하지만... 그건 저희의 고려 사항이 아닙니다.
현재로선 설비를 재구축할 인력과 물자가 부족해서...
그래서? 그냥 툭 까놓고 말해.
이제부터는 연구실 관련 사안이니, 제가 설명해 드리죠.
채석장 내부의 실험실은 노르만 그룹의 투자로 건설되었고, 당시 상황이 급박해서 노르만 그룹이 철수할 때 모든 자료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실험실 담당자인 안젤을 협력 인원 중 한 명으로 파견하게 됐죠.
여기에 온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안젤을 데려가는 건데, 안젤은 어디에 있죠?
공중 정원이 제 연구원을 붙잡아둘 이유는 없을 텐데요.
일개 연구원이 무슨 증언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전 단지 안젤을 공중 정원으로 데려가 편히 쉬게 하려는 것뿐이에요.
……
교수님?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그룹 담당자는 한발 물러서며, 어색한 미소와 함께 양해를 구하고 교수를 데리고 텐트를 나갔다.
텐트 밖 말다툼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이건 빅토리아 님께서 지시하신 일이 아닙니다. 빅토리아 님은 채석장을 보전하고 그들을 지켜보면서 대규모 파괴만 막아달라고 하셨어요.
이건 실험실의 일이니,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에요.
텐트가 흔들리더니 연구실 교수가 다시 들어왔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공중 정원은 제 연구원을 구금할 권한이 없어요.
훔쳤다고요? 지휘관님, 그 자료는 원래 노르만 그룹 소속 채석장의 것입니다. 지휘관님의 표현은 적절치 않아 보이는군요.
노르만 그룹은 단순 투자자일 뿐이니, 그 실험 자료들이 공중 정원의 규정을 위반한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규정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새로운 법안은 소급 적용되지 않으니, 노르만 그룹이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죠. 따라서 노르만 그룹은 이 자료를 회수할 권리가 있어요.
나이가 지긋한 이 연구원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
이런 헛소리에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됐어.
분노에 찬 카레니나가 나가려는 순간, 테디베어가 그녀를 붙잡았다.
한 가지만 확실히 하죠. 안젤을 데려가려는 건 노르만 그룹인가요 아니면 다른 누구인가요?
당연히... 노르만 그룹이죠.
교수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테디베어가 무심하게 상대방을 훑어보고는 능숙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오, 찾았네요.
성함이 알비스... 꽤 빨리 진급하셨네요.
음... 경력란에 콘스탄틴 채석장 내부 실험실에서 공중 정원 노르만 그룹 본부로 특별 진급이라고 적혀있네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쿠로노의 덕을 봤나 보네요.
노르만 그룹까지 손을 뻗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테디베어가 냉소를 지었다.
노르만은 현재 실험을 재개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콘스탄틴 채석장을 확보하더라도 모든 생산품은 공중 정원에 먼저 공급되어야 할 테니까요.
노르만 그룹의 소속이면서 쿠로노를 위해 일하시다니... 월급을 두 곳에서 받아서 좋으시겠네요?
……
정말... 뭐가 중요한지 구분도 못 하는 작자네.
잠깐만, 광정 쪽에 문제가 있어.
이상해. 브리이타한테 연락을 시도하고 있는데, 계속 전송 실패라고 떠.
방금 채석장 안의 내부 통신망에 연결했고, 지원 부대가 통신 설비도 수리했다고 했잖아. 그러면 문제없어야 할 텐데.
설마...
네. 그 두 가지 경우밖에 없겠네요.
광정 아래 브리이타 말고 다른 누군가가 또 있나요?
"누군가가 엘리베이터를 파괴함", "검붉은 빛을 내는 카메라".
광정 안의 "그자"에요.
저도 같이 갈게요.
지금 광정 안은 어떤 상황이지?
다행히 사상자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지원 부대 대원과 연구원은 지상으로 구조되어, 현재 임시 텐트에 있습니다.
구조 과정에서 지원 부대 대원 일부가 후방 엄호를 위해 광정에 남았고, 이들에 대한 구조 지원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브리이타와 트로이만 연락 두절된 상황입니다.
트로이는 통화 연결은 되지만... 계속 응답이 없습니다.
"뚜-"
관제실에 있는 감시 스크린의 잡음 때문에 통신이 중단된 소리가 묻혀버렸다. 하지만 맞은편의 스카이처라는 "구조체"는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는지 쉰 목소리로 말했다.
헛수고예요.
제가 정신을 잃었을 때 혹시 모를 실수를 막기 위해, 이곳의 모든 통신 신호를 차단해 뒀어요.
이곳의 비밀은 영원히 묻혀야만 해요. 인간의 근시안적인 생각과 탐욕은 절대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노르만 가문의 명예...
젠장!
브리이타는 관제실의 지도를 따라 트로이와 헤어졌던 장소로 최대한 빠르게 돌아갔다. 하지만 문은 외부 충격으로 파손된 듯했고, 비밀번호를 입력해도 기계장치가 힘없이 덜그럭거릴 뿐이었다.
다시 한번 힘을 주어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트로이는 지금 어떻게 된 걸까? 밖에 있는 저건... 대체 무엇인 걸까?
당신 정체가 뭐야? 정말로 노르만 그룹의 집사인 거야?
왜... 이 자료에... 우리 부모님 이름이 있는 거지?
"쿵!"
브리이타의 질문에 돌아온 건 문밖의 큰 충돌음뿐이었다.
당신 정말로 노르만 그룹의 집사야? 정말로 노르만 그룹의 집사 스카이처라면... 대체 왜...
왜 당신이 기록한 이 자료에 소엘과 마리안이라는 이름이 있는 거야!
갑자기 문을 치던 소리가 멈췄다.
문밖의 자칭 스카이처라는 "구조체"가 움직임을 멈춘 듯했다.
소엘... 마리안...
왜 하필 그 둘의 이름을... 당신은 그들과... 무슨 관계죠?
소엘, 마리안은...
내 부모님이야.
브리이타는 화제를 돌리며 문의 옆면을 비틀어 열어보려 했다. 스카이처의 강력한 충격으로 문 측면이 뒤틀려 있었고, 이 틈새를 이용하면 문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리이타는 트로이를 혼자 밖에 둘 순 없었다.
소엘과... 마리안이... 당신의 부모라고요?
지옥의 울림 같은 쉰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들려왔다.
당신이... 크... 크흐... 브리... 이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브리이타는 놀랐지만, 문을 여는 동작은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았다.
크흐... 크흐... 으아아...
"쾅" 소리와 함께 문이 쓰러졌고, 문을 열어젖힌 브리이타는 마침내 스카이처와 마주하게 되었다.
누구시죠?
스카이처는 문이 열리자마자 본능적으로 주먹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갈색 머리의 구조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모든 동작이 굳어버렸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브리이타는 마리안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스카이처! 아기가 태어났어요!
그거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이름은 지으셨나요?
당연하죠. 마리안이 브리이타라고 지어줬어요. 조금만 더 자라면 같이 암벽등반이랑 오프로드를 할 수 있을 거예요!
하하, 몇 살 안 된 아기를 데리고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실 생각인가요?
이봐요. 노르만 가의 집사님. 예전에 우리와 같이 놀 때는 오프로드가 "위험한 일"이라고 한 적 없었잖아요.
그땐 젊었으니까요. 지금은 달라요.
지금이요? 지금도 충분히 젊으세요!
스카이처...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거죠?!
소엘? 마리안?! 어, 어떻게 당신들이...
우리는 콘스탄틴 마을에 살면서 이 근처의 수색구조 일을 해왔어요.
스카이처, 이게 무슨 일이죠?
말할 시간이 없어요. 어서, 이쪽으로요.
브리이타...
정말 오랜 세월이 흘렀군요.
광장에서는 낮과 밤을 구분할 수조차 없었다. 스카이처는 흘러가는 숫자들로만 자신이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가늠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저는... 으윽...
의식의 바다가 요동치며,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그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트로이!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브리이타가 스카이처를 피해, 트로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푸른 머리의 구조체는 벽 모퉁이에 쓰러져 있었고,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브리이타가 가지고 있던 긴급 구조 용품을 모두 사용하고 나서야 겨우 트로이의 생명 징후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채석장에서 만난 적이 있는 거야?
트로이의 생명 징후가 안정되는 것을 확인한 브리이타는 그녀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스카이처와 대치하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크윽... 어서 가세요.
스카이처는 충동을 억누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브리이타를 공격할 의도가 없음을 보였다.
관제실의 자료와 당신이 녹화한 영상들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다 제 잘못이에요. 쿠로노의... 자료는... 없어져야 해요.
쉰 목소리가 갑자기 끊겼지만, 브리이타는 그 말에서 중요한 단서를 놓치지 않았다.
쿠로노?!
어서... 가세요!!
혼란스러운 의식의 바다가 다시금 날카로운 파도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
눈앞의 이 구조체가 자신의 부모님과 어떤 관계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트로이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할 순 없었다.
스카이처의 정신이 흐트러진 틈을 타, 브리이타는 트로이를 업고 샛길을 통해 재빨리 그곳을 벗어났다.
크윽... 아아...
소중한 절친을 또다시 잃게 된 스카이처가 정신을 되찾았다.
저는... 평생 노르만 그룹과 노르만 가문에 충성하겠다 맹세했어요. 이런 일들이 밖으로 새어 나가 노르만 가문의 영광을 더럽혀선 안 됩니다.
그의 목에서 기괴한 소리가 새어 나왔고, 동공이 점점 흐려져 갔다.
없애버려야 해요.
샛길을 통해 스카이처의 시야에서 벗어난 후, 브리이타는 트로이를 업은 채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괴물은 분명 부모님에 대한 단서를 알고 있었다. 서로 아는 사이였거나, 어쩌면 그전부터 친구였을지도 모른다.
으흠...
트로이?! 정신이 들어?
브리이타가 몸을 숙여 상태를 확인했지만, 트로이는 의식 없이 낮은 신음만 내뱉고 있었다.
생명 징후는 안정적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잘은 모르겠지만 그 괴물은 트로이를 공격할 때 전력을 다하지 않은 듯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트로이의 구형 기체 모델로는 지금까지 버틸 수 없었을 것이었다.
갱도는 막혔고 엘리베이터도 사용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브리이타는 트로이를 안전한 곳에 숨겨두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좋아. 여기라면 안전할 거야.
브리이타는 예전에 보강해 둔 갱도에 트로이를 숨겼다. 그리고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갱도 입구에 표시를 남겼다.
이제부터는 브리이타가 이 전장에 맞서야 할 차례였다.
그 괴물은 모호하게 말했지만, "쿠로노"와 "자료"라는 단어는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관제실에는 쿠로노의 불법 실험을 입증할 만한 "자료"가 숨겨져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괴물은 그 자료를 없애버리려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됐다. 그 자료는 단순히 그녀 부모님의 행방뿐만 아니라, 이 심연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많은 이들과도 관련이 있었다.
헤이드가 이끈 "연구팀"의 기록만 보아도, 트로이를 비롯한 무고한 "실험체"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브리이타는 무기와 장비를 재정비한 뒤, 트로이가 가지고 있던 단말기의 통신 신호 수신 주파수를 최대 범위로 조정했다.
좋아. 이 정도면 [player name](이)가 분명 우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브리이타는 그 괴물이 모든 증거를 파괴하기 전에 반드시 그것들을 손에 넣어야 했다.
브리이타는 쿠로노에게 희생된 이들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둘 수 없었다.
다음에 만날 땐... 유사 알코올 전해액이나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브리이타가 몸을 돌려 다시 어두운 광정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