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갱도를 따라, 트로이가 불완전한 지도와 흐릿한 기억을 더듬으며 브리이타를 이끌고 나아갔다.
여기에 정말 감시 센터가 있었다니...
그렇죠. 뒤가 구린 이들은 쫓기는 걸 두려워하는 법이니까요.
그들은 권한 카드로만 해제할 수 있는 함정과 장치들이 필요했던 거에요. 그걸로 자신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했겠죠.
발걸음을 멈춘 트로이는 암석층에서 전해오는 미세한 진동을 다시 한번 감지했다.
뭔가 움직이는 것 같은데...
정비 부대가 굴착을 시작한 게 아닐까요?
이 시간에... 그럴 리 없어.
잠깐만...
브리이타는 조심스럽게 바위벽을 만져보았다.
붕괴...? 아니. 이건...
조심하세요!
등 뒤에서 무기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자, 트로이는 재빨리 몸을 돌려 옆의 브리이타를 잡아당겨 공격을 피했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 뭐지?!
로봇 부품을 기괴하게 조립해 놓은 듯한 거대한 인간 형태가 그녀들 뒤에서 나타났다.
넌... 누구냐!
엄청난 압박감에 브리이타는 뒷걸음질 쳤지만, 맞은편의 기괴한 생물체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공격해 왔다.
이건... 당신들이 계속 의심했던 광정 안의 "제3의 세력"이에요!
괴물의 공격을 피하는 순간, 트로이는 자신의 기체 관절에서 울리는 소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상대할게!
톤파로 방패를 전개하자, 괴물의 공격이 금속 표면을 긁어내며 귀를 찌르는 소음을 일으켰다. 하지만 브리이타는 그 충격을 견뎌내었다.
이거 완전 괴물이잖아.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에요!
거인은 말없이 무기를 다시 들어 올렸다. 그 혼란스러운 표정에서 대화의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래선 안 되겠어.
단말기의 타이머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트로이는 브리이타의 엄호를 받으며 함께 갱도 깊은 곳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괴물은 갱도의 구조를 꿰뚫고 있다는 듯, 귀신같이 그녀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브리이타가 상대의 공격을 방패로 또 한 번 막아냈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브리이타, 여기에요!
트로이가 숨겨진 장치문을 발견했다.
알았어!
브리이타는 재빨리 구르며 트로이를 향해 달려갔다.
그 사이, 트로이가 손에 든 권한 카드로 장치문을 열었다.
어서요!
트로이는 브리이타를 붙잡아 망설임 없이 비밀 통로 안으로 밀어 넣었다.
트로이!
브리이타가 트로이를 안으로 끌어당기려 손을 뻗었지만, 어느새 뒤따라온 거인이 트로이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문 닫아요! 어서요!
"쿵!"
두꺼운 금속 문이 브리이타의 눈앞에서 닫혔다.
트로이!!!
트로이가 무언가를 작동시킨 탓인지, 브리이타가 카드로 시도해봐도 문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암석층 너머로 무거운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젠장...
브리이타가 다시 한번 문을 강하게 내리쳤지만,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아니야. 이래선 안 돼. 잠깐, 관제실!
관제실이 이 지하 광정 전체를 통제하는 중심부라면, 그곳에는 분명 문을 여는 방법이나 방금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가는 더 빠른 통로가 있을 것이었다.
트로이, 조금만 기다려!
브리이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트로이가 알려 주었던 방향으로 달려갔다.
"쾅!"
갱도에서 다시 한번 굉음이 울려 퍼졌다.
으흠...
트로이가 신음을 토했다.
검은 산과 같은 위압적인 체격의 "구조체"가 트로이를 압박하고 있었다.
브리이타를 보내기로 한 건 역시 현명한 선택이었네.
그녀는 무기를 집어 들자마자 순식간에 옆 선반으로 뛰어올랐다.
착한 일도 했는데... 공중 정원에서 선행상이라도 하나 줘야 하는 거 아냐?
이번엔 내가 브리이타를 구했으니까, 지난번 은혜는 이걸로 대신하자.
그 생물체가 알아듣건 말건 트로이는 혼잣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너와 함께 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결국 우리는 이런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온 존재들이니까...
트로이의 민첩한 전투 기술로도, 거인과의 압도적인 체격 차이 때문에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탕".
트로이가 다시 한번 벽에 내동댕이쳐졌다.
트로이의 낡은 기체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트로이는 순환액이 새어 나오는 부위를 감싸려 했다. 하지만 브리이타가 가져온 구조체용 붕대를 감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왜... 애...
거대한 인간형 생물의 발성 모듈에서 혼란스러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쿨럭, 왜 도망치지 않았냐고?
괴물이 트로이의 코앞까지 다가오자 그 거대한 그림자가 희미한 등불마저 완전히 삼켜버렸다.
입과 관절에서 순환액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트로이는 저항할 힘마저 잃은 채 구석에 주저앉았고, 시각 모듈은 점점 흐려져 갔다.
원래는 이럴 생각이었는데...
흐... 나약... 하군요.
괴물은 의식이 다시 흐려지는 듯했다.
트로이는 흐릿한 기억 속에서 이 거대한 존재의 과거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이름이... 스카이처인 것 같았다.
말끔한 차림의 집사는 입만 열면 노르만 그룹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트로이가 딱 싫어하는 그런 타입이었다.
트로이는 헤이드와 실험실 담당자들이 스카이처를 이곳에 가두겠다는 대화를 엿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뒤의 일은... 기억나지 않았다.
트로이는 집사에게 도망가라고 경고한 기억은 없었지만, 그건 트로이답지 않았다.
왜 그녀는 항상 어둠 속에서만 살아가며, 선택 앞에서 버림받아야 하는 걸까?
하지만... 겨우 선택받은 거잖아.
다음 생에는 나도...
햇빛 아래에 설 수 있으면 좋겠다고 트로이는 생각했다.
크으으... 크악...!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문이... 열렸어.
조금 지체됐지만, 안젤이 건넨 높은 등급의 권한 카드로 관제실의 문을 열 수 있었다.
합선이 일어났던 관제실은 비상등만이 어둑한 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트로이와 안젤의 말대로 채석장의 중심이 이 관제실이라면, 분명 이곳에 단서가 있을 것이다.
감시기 앞 작은 스크린 중 몇 개는 꺼져 있었지만, 대부분은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들의 행적은 누군가에 의해 완벽하게 감시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브리이타는 재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문을 제어할 수 있는 키워드를 찾기 시작했다.
콘스탄틴 채석장... 콘스탄틴 실험실... 노르만 그룹 투자...
노르만 그룹 집사... 스카이처?
긴 문장과 함께 첨부된 이미지가 스크린에 나타났다.
잊으면... 으윽... 잊으면... 안 돼요.
아직 정신이 있을 때... 이름을 기억해야 해요.
소엘 그리고... 마리안.
이건... 엄마 아빠의 이름이잖아?!
쿠로노, 쿠로노가 배신을 했어요.
그들은 갱도 바닥에서 역병이 발생해 예방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했고 전 의심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들이 "성과"를 보여주겠다며, 저에게 강제로 인간들의 탄탈-이형 공중합체 과정을 보게 했어요. 전...
전 그들이 죽어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요.
실험은 실패했고... 통제할 수 없게 된 상황에 그들은 광정을 폭파해 버렸어요. 그리고 이 사건을 작은 광산 사고로 위장했어요.
노르만 그룹이 구조 대원을 보냈지만, 그들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소엘... 마리안...
소엘이 감금된 절 발견했고, 마리안은 절 반드시 데리고 나가겠다고 했어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찾았다!
브리이타가 침착하게 자료에서 문을 제어하는 암호를 찾아냈다.
"쿵!"
거대한 충돌음이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어떤 회로를 건드린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관제실의 안전 경고등이 일제히 켜지며 방 안이 검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그 순간, 모든 감시 스크린이 위험 신호를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