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장은 어두웠고, 고장 난 몇몇 로봇만이 희미한 붉은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트로이의 기체는 조금 전 충격으로 손상된 듯했으며, 팔뚝과 발목에서 순환액이 새어 나와, 지면을 적시고 있었다.
왜 철수하지 않은 거지?
브리이타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트로이를 쳐다보며, 한 걸음 물러섰다.
트로이는 브리이타를 구해주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선 눈앞의 구조체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저도 같이 철수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순간 문이 닫혀버렸어요. 광정의 엘리베이터가 워낙 튼튼해서 부수는 데 꽤 애를 먹었어요.
그리고 엘리베이터 통로를 따라 이곳까지 내려왔는데... 정확히 어딘지도 모를 곳에 도착해 있었어요. 두어 바퀴 정도 돌아다니다가 이쪽에서 소리가 들렸어요.
믿든 말든 저는 사실을 말하고 있어요.
트로이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녀가 쿠로노의 명령을 받고 현장을 정리하러 온 거라면, 권한 카드로 통로를 열 수 있었을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트로이는 붕대로 상처를 대충 감으며, 짜증이 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구두쇠 사장이 기체 수리비라도 대줬으면 좋겠는데, 안 그러면 돈이 얼마나 깨질지 모르겠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이딴 곳에 오지 말 걸 그랬어요. 그 기억들이 그렇게 중요했던 걸까요?
그냥 맥주 맛 유사 알코올 전해액으로 추억 없는 밤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거예요. 비싸지도 않고...
지원 부대를 통해 기체 수리를 신청할 수 있어.
와! 정말요?
당연하지. 당신은 이번에 지원 부대의 임무를 도왔으니, 내가 기체 수리비용을 신청해 줄 수 있어.
그럼, 고맙게 받을게요.
아니야.
힘주어 붕대를 조이던 트로이가 손을 멈추더니, 의심의 눈초리로 브리이타를 쳐다보았다.
근데...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요?
미안. 감정을 숨기는 게 좀 서툴러.
방금 그 갱도에서... 부모님의 유품을 봤거든.
구조 대원 규정상, 구조 대원에게 사고가 났을 때, 책임자가 반드시 사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지금은 실종된 사람들의 생사도 모르잖아. 절대 그들을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두진 않을 거야.
반드시 부모님에 대한 단서를 찾아낼 거야.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그분들을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둘 순 없어.
의식의 바다에 잔잔한 물결이 일렁였고, 흐릿한 기억들이 유리 조각처럼 눈 부신 빛을 반사했다.
으음...
"진실"이라...
기억이 돌아왔어?
아니요.
그냥... 조각 난 기억들뿐이에요. 방금 당신이 날려버린 그 침식체보다 더 조각나 있을걸요.
어떤 것들은... 잊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난 기억하고 싶어.
주변에 있던 침식체의 기척이 사라지자, 트로이는 조금은 안심하며 벽에 기대어 잠시 숨을 돌렸다.
쓸데없는 고민만 늘어날 텐데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고민이 없다면, 그게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어떤 기억들은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해. 예를 들면...
신병이었을 때, 이곳에서 진행했던 그 "구조 임무"가 내 유일한 실수였어.
……
트로이는 그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브리이타가 언급했던 실패한 "구조 임무"가 자신을 구해낸 그 순간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정말? 구조 의료 보고서에 누가 당신을 구했는지 적혀있지 않나?
정말로 잘 기억나지 않아요.
노르만의 연구원 말로는... 제 기체가 특수한 만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의식의 바다의 손상은 복구하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예전의 기억은 별로 남아있지 않아요.
미... 미안해.
괜찮아요. 딱히 아쉽지도 않아요.
기억을 잃기 전의 저는 선함과 거리가 멀었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내가 봤던 당신은 본보기가 될 만한 "좋은 교관"이었어.
하... 교관이라고요? 제가 그렇게 대단했다니...
트로이가 브리이타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리고 귀를 기울여 암석층의 진동을 감지했다.
트로이는... 그 "자"가 쫓아오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여긴 안전하지 않아요. 좀 더 앞으로 가죠.
더 앞으로...
안젤이 건넨 지도에 표시된 실험실 중 일부는 함정이었지만, 전반적인 위치는 지도와 일치했다.
여기가 채석장의 최하층이야. 조금만 더 가면 관제실이 보일 거야.
관제실이라...
음... 곤란하긴 해요. 그래도 관제실 직행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신청만 하면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의식의 바다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통증이 트로이의 생각을 방해했다.
관제실로 가죠. 교활한 토끼는 항상 중요한 곳에 탈출구를 만들어두거든요.
그곳이 아마 광정의 핵심 제어실일 거예요.
무거운 발소리가 통로에 점차 울려 퍼졌다.
바꿀 수... 바꿀 수 없어.
발소리가 멈추더니, 무언가를 발견한 듯 불빛이 들어온 방향으로 그는 몸을 틀었다.
찾았다... 너희들...
모독은... 용납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