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은 임시 주둔지로 돌아가는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혈흔이 끊긴 절벽 앞에 도착해서야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이 제 조수를 이 밑으로 던져 버렸어요.
갱도를 수색할 때, 혹시 시체를 발견하시면, 제대로 묻어 주시겠어요?
안젤에게 그 조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전에 수많은 조수와 비교해서, 그저 좀 더 쓸모 있는 인간형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이런 최후를 맞이하는 건 옳지 않았다.
갱도에서 발견하는 시체들은 잘 수습해 놓을게.
브리이타는 차가운 시선으로 안젤을 바라보았다. 그녀에 대한 인상이 좋진 않았지만, 이 부탁만큼은 거절하지 않았다.
고마워요. 여러분 모두 좋은 분들이네요.
흥, 이제 와서 좋은 분 타령인가요? 그런 말 할 시간에 당신의 목적이나 똑바로 설명해 보시죠.
……
안젤이 다시 한번 침묵했다.
안젤은 결국 연구실이 늘어선 통로에 들어섰지만, 교수의 옛 연구실이 어디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쿠로노 병사들의 날 선 시선에, 안젤은 조심스럽게 문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 개, 두 개, 세 개...
안젤은 쿠로노 병사들의 총구보다 빠르게 움직일 자신이 없었기에,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은 삼가야 했다.
여기는 아닌 거 같아요. 권한 카드로 열리지가 않네요.
태연한 표정으로 쿠로노 병사들에게 말한 안젤이 권한 카드를 꽉 움켜쥐었다.
노르만 연구원의 권한 카드는 공용 실험실의 일부만 열 수 있었고, 그녀에게는 교수로부터 받은 또 다른 권한 카드가 있었다.
안젤은 오는 길에 이미 여러 차례 시험해 보았다. 하지만 이 두 쿠로노 병사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쳇, 재수도 없지. 앞으로 더 가봐야겠네.
오직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불완전한 구조체에게 축축한 곳은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이 빌어먹을 임무는 왜 하필 우리한테 떨어진 거야.
너, 딴생각하지 마.
쿠로노 병사가 안젤을 위협하듯 무기로 툭툭 쳤다.
당신도 알다시피 노르만 연구원의 권한은 그다지 높지 않아요. 제가 담당자긴 해도, 윗선으로부터 받은 건 이 권한 카드가 다예요.
조금만 더 뒤로, 조금만 더...
우선 공용 실험실을 찾아야 해요. 공용 실험실에서 개인 실험실의 단말기를 해킹한 뒤, 제가 원하는 걸 가지고 돌아온다면, 당신들도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위치는... 아직 부족해. 좀 더 가야 해.
흥.
안젤의 말을 무시한 쿠로노 병사들이 발걸음을 늦췄다. 그리고 그녀가 혼자 권한 카드로 문을 열어보도록 내버려두었다.
방수 장비 없이 축축한 갱도를 오랫동안 헤매던 쿠로노의 구조체 병사 둘의 관절은 이미 경직되어 있었다.
[삐-], 누가 방수 장비를 챙길 생각을 했겠어. [삐-], 갱도가 이렇게 축축할 줄은 누가 알았겠냐고...
바로 여기야.
안젤이 침착하게 멈춰 서서, 권한 카드를 테스트하는 것처럼 행동하며 벽을 눌렀다.
삐... 삐... 삐...
그녀가 벽을 누른 순간, 경보음이 사방에서 울렸고, 적외선 불빛이 통로의 두 쿠로노 병사를 겨냥했다.
[삐-]!
쿠로노 병사는 뻑뻑해진 관절 따윈 신경 쓸 새도 없이, 곧바로 안젤을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차가운 금속 방탄 문이 그들의 눈앞에서 굳게 닫히고 말았다.
잘 가요.
문 너머로 열무기가 금속과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뭔가가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두 번 들렸다.
하지만 안젤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 후의 갱도에서는 그녀의 무거운 발걸음만이 울렸다.
쿠로노 병사... 비밀 실험실... 방금 지나온 갱도...
콘스탄틴 채석장에 발을 들인 후, 브리이타뿐만 아니라 트로이 역시 마음속 한편이 불안했다.
이곳의 모든 것이 이상하리만치 낯설지가 않았다.
단순한 "기시감"이 아닌, "이 모든 것을 이미 겪어본 듯한 느낌"이었다.
네가 콘스탄틴 채석장에서 구조된 건 맞지만... 그 이전의 이력은 찾지 못했어.
당시 노르만 그룹이 왜 너를 받아줬는지도 의문이야. 하지만 네가 노르만 그룹의 콘스탄틴 채석장에서 근무했다는 보고서를 발견했어.
그리고...
레오나르도가 오래된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난 지금 이 모습이 딱 좋아. 트로이.
하.
그래서 콘스탄틴 채석장의 개척 임무에 꼭 참여해야겠어?
네.
창밖을 보는 트로이가 평소답지 않게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한 번은 꼭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어차피 누군가를 보내야 한다면, 차라리 제가 가는 게 낫잖아요. 사장님, 직원이 자발적으로 일을 하겠다는데, 조금은 기뻐해도 되는 거 아닌가요?
뭘 기뻐하라는 거지. 외근비를 줘야 하는 걸 기뻐하라고?
암튼, 임무는 저에게 맡기세요. 나머지 일은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 그럼, 갈게요.
트로이가 시간을 거슬러 왔다는 터무니없는 가설은 접어두더라도, 그녀의 초라했던 이력을 되짚어 본다면, 진실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콘스탄틴 채석장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