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6 첨탑 위의 서광 /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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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6-9 지하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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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정 깊은 곳

내부 메인 홀

외부와 연락이 끊긴 지 벌써 3일이 지났다.

처음에 임시 주둔지를 가득 채운 건 긴장감뿐이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감은 불안감으로 돌변했고, 이제는 피로감만이 남아있었다.

의심을 받던 안젤조차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듯, 3일 내내 얌전히 행동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장!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야?!

안젤, 안젤이 사라졌습니다!

안젤을 감시하던 실리아도 같이 사라졌습니다!

트로이는 어디에 있지?

아... 저 여기 있어요.

미리 말하겠는데, 저는 안젤의 탈출을 도우라는 지시는 받은 적이 없어요.

이건 단순히 안젤의 개인행동이에요. 저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

트로이가 항복하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저쪽이에요.

드문드문 나있는 순환액의 흔적이 칠흑 같은 갱도 안까지 흩어져 있었다.

안젤과 조수 단둘이서 기척도 없이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게 분명해.

셰릴, 넌 인원들과 함께 여기 남아. 교대로 순찰하면서 물자를 지키고, 송수신기도 수리해 놔. 그리고 통신이 복구되면 바로 연락해.

네.

[player name], 루시아, 나와 안젤의 흔적을 찾아보자.

적이 나타나면, 바로 제압해야 하니까. 그리고 트로이 당신도 마찬가지야.

브리이타가 몰래 빠져나가려는 트로이를 노려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광정에 들어서자, 오래된 비밀들과 함께 묵혀있던 먼지가 얼굴로 날아들었다. 꼬리를 무는 의혹 속에서 브리이타는 옛 교관과 얽힌 감정들을 돌아볼 틈조차 없었다.

지금의 트로이는 무슨 속셈으로 이곳에 들어온 걸까?

전 당신의 적이 아니에요. 여러 번 말했잖아요.

당신도 안젤과 마찬가지로 노르만 그룹 소속이잖아. 난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어. 그래서 당신을 주둔지에 남겨두는 게 너무 위험한 것 같아.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새어 나온 순환액의 흔적을 봐선, 실리아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어서 그들을 찾아야 해.

이번 임무는 누워서 떡 먹기네. 어이, 거기 연구원, 뭐 하는 거야?

도와주세요. 제 조수가 다쳤어요.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구조체에 당했으니 어차피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설마 이런 곳에 의무실이 있을 거라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쿠로노 병사들이 말을 마치자마자 농담이 만족스러웠는지 실없이 웃어댔다.

……

회수를 돕는 조건으로 저와 제 조수의 안전을 보장해 주기로 했잖아요. 이건 약속과 다르잖아요.

어이, 눈치 좀 챙겨.

걸음을 멈추고 안젤을 노려본 쿠로노 병사의 눈빛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유토피아에서 겨우 빠져나오고, 그 미치광이의 추격까지 따돌려서 이제 좀 쉬려고 했건만.

네 녀석들이 일만 벌이지 않았어도, 우리가 이딴 곳에 배치되진 않았을 거라고!

이건 제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당신들이 자발적으로...

어떤 [삐-]가 우리 보고 자발적으로 왔대!

쿠로노 병사가 증오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료 회수 임무를 제안한 건 네 녀석의 스승이고, 조건을 내건 건 너야. 그리고 이건 알아둬. 그 조건에 합의했던 사람은... 여기 없어.

크흠... 그만해.

흥.

쿠로노 병사가 안젤을 위협하듯, 무기를 만지작거리며 말없이 앞으로 갔다.

중상을 입은 조수를 등에 업은 채 비틀거리던 안젤이 순간 혼란에 빠졌다.

안젤은 노르만 그룹의 촉망받는 연구원이자 노르만 탄탈 브랜치 연구실의 담당자였다. 원래라면 그녀는 실험실에서 데이터를 계산하고 물질의 규칙을 탐구해야 하지만...

어쩌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걸까?

교수님! 교수님이 주신 데이터를 검증했어요!

이 파라미터를 어떻게 구하신 거예요?

하하, 오랜 노하우라고나 할까. 그냥은 알려줄 수는 없지.

예전 실험에서 얻으신 건가요? 기초 실험이 없었더라면, 이 파라미터를 도출하기 어려웠을 거 같아요.

그렇게 궁금하면... 이 연구 노트를 읽어봐.

이 노트는 내가 수년간 쏟은 피와 땀의 결실이야. 내가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연구이기도 하지.

연구 노트에는 탄탈의 성질에 관한 연구부터 추가가 필요한 재료에 관한 가설, 다양한 재료가 실험 대상에게 미치는 반응까지... 자세한 데이터가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안젤은 보물을 발견한 듯 연구 노트에 깊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연구 노트는 절반밖에 없었고, 관건인 후속 연구의 방향성과 실험체 반응은 노트 마지막 부분에서 끊겨 있었다.

노트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한 안젤은 조급한 마음에 교수를 찾아갔다.

교수님, 제가 노트에 적힌 방법대로 여러 번 실험을 해봤는데 근삿값조차 얻지 못했어요. 뭐가 문제일까요?

음... 그건 우리가 각기 다른 대상으로 실험했기 때문이지.

실험... 대상이... 다르다고요?

공중합체는 결국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거야. 실험용 쥐 따위로 어떻게 정확한 파라미터를 얻을 수 있겠어?

안젤은 이해와 혼란이 뒤섞인 표정으로 교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녀는 갑자기 눈앞의 이 남자가 낯설게 느껴졌다.

안젤, 정말 나와 함께... 이 연구의 끝을 보고 싶은 거니?

늘 온화했던 교수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당연하죠. 저는 이 연구를 계속하고 싶어요.

누군들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빛나는 성과를 이루고 싶지 않겠는가? 모두가 제2의 아시모프가 되길 꿈꾸고 있었다.

이형 공중합체 연구만 성공한다면, 그러면...

안젤은 최고의 시상대에 오를 것이고, 그녀의 이름은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것이었다.

교수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너는 내 가장 뛰어난 제자이니, 가장 좋은 자원을 약속하마.

그 후 교수가 안젤을 쿠로노 그룹에 소개했다.

안젤은 노르만 그룹 내부 연구실의 담당자가 쿠로노와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전에, 쿠로노가 제시한 조건에 충격을 받았다.

높은 보수, 실험실에서의 더 높은 권한, 게다가...

그들은 안젤에게 원료와 "실험체"를 무상으로 제공해서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연구 결과는 쿠로노와 공유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실험실의 선임 연구원이 된 안젤에게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권한만으로도 이런 "임무"를 수행하기엔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공중 정원이 불법 실험실과 연구 프로젝트를 전면 단속하는 안건을 통과시키면서, 쿠로노의 활동은 위축되었고 그녀 역시 더 이상의 추가 "자원"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곧 새로운 전환점이 찾아왔다.

너도 들었겠지만, 공중 정원이 노르만 그룹과 손잡고 콘스탄틴 채석장을 뚫기로 했다.

콘스탄틴 채석장이요? 그룹에서 엄청난 투자를 했던 탄탈 채석장 말씀이신가요?

맞아. 그래서 말인데, 나머지 절반의 연구 자료가 필요하다고 했지?

콘스탄틴 채석장에서 사고가 터졌을 때, 난 이 연구 노트 하나만 가지고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어. 나머지는 채석장 내부 실험실에 그대로 있을 거야.

쿠로노 측에 협조 요청을 보냈고, 노르만 그룹에서 연구원 몇 명을 보내 콘스탄틴 채석장 개척 작업을 도울 거야. 그 명단에 네 이름도 올려놨어.

하지만 교수님, 전 평범한 연구원일 뿐이에요. 그 채석장은... 퍼니싱에 침식됐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콘스탄틴 채석장은 탄탈을 연구하는 실험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곳이다. 그곳은 한때 노르만 그룹의 자부심이자, 모든 탄탈 연구실의 이상향이었다.

하지만 그 채석장은 오래전에 침식체에게 점령당하지 않았던가?

쿠로노에서 무장 전투 인원을 파견해서 너를 지원해 줄 거야.

전 그 채석장에 대해 잘 모르는데...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건가요?

채석장의 지하에 내 옛 실험실이 있는데, 그곳에서 가지고 있던 권한을 넘겨줄게. 그 권한이면 노르만 그룹 연구원의 권한보다 훨씬 높을 거야.

……

망설이는 안젤을 보자, 교수는 고개를 저으며 연민 섞인 어조로 말했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이건 상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네가 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저는...

교수의 말에 담긴 연민을 느낀 안젤은 얼굴빛이 살짝 변했다. 이를 눈치챈 교수는 태도를 누그러뜨리며 화제를 돌렸다.

잘 들어. 그건... 정말 귀중한 자료야. 탄탈-이형 공중합체에 관한 것인데, 인간의 미래가 거기에 달려있어.

이 자료만 있으면, 우리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쿠로노와의 새로운 협상 카드를 손에 넣게 되는 거야.

새로운 이형 공중합체를 연구해냈는데... 내가 왜 이딴 노르만 그룹에나 갇혀 있어야 하는 거냐고! 쿨럭... 쿨럭...

교수님, 괜찮으세요?

하아... 나도 늙었구나.

교수가 감정을 추스르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너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있다. 안젤.

피와 땀으로 해낸 연구의 반쪽을 가져와주렴. 그걸 우리가 손에 넣는다면,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해 줄 거다.

알겠어요. 교수님. 하지만... 쿠로노 측에 몇 가지 요구할 게 있어요.

말해보렴. 합당한 요구라면,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맞춰주라고 할게.

명단에 제 조수도 포함시켜 주셨으면 해요. 그동안 많은 실험을 함께 해왔고, 자료를 빠르게 정리하려면 그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리고...

밤이 찾아오자, 시뮬레이션 천막에 어스름한 빛이 비쳐 들었다.

꾸물거리지 말고 움직여. 저 앞에 그 늙은이가 말한 실험실이 있다는 게 확실하겠지?

거친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안젤이 먼지에 연신 기침을 했다.

어이, 그 송장은 언제까지 끌고 다닐 건데?

갑작스러운 비아냥에 안젤은 굳어버렸다. 그녀는 그제야 업고 있던 조수가 어느새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깊은숨을 내쉰 안젤이 조수를 조심스레 갱도 한쪽에 내려놓았다.

묻어주는 걸 도와줄 수 있을까요? 정말 뛰어난 연구원이었는데...

쓸데없는 소리 마!

우리가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니라, 이 주변은 온통 암석이라 총알도 못 뚫는다고.

그냥 거기 놔둬.

알겠어요.

안젤은 쿠로노 병사가 자신의 조수를 갱도 아래 심연으로 거칠게, 내던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결국 입밖에 내뱉지 못했다.

교수는 안젤이 떠나기 전, 실험실로 이동하는 상세 지도를 건넸다. 특히 그들이 새로 보강해 둔 몇 곳의 비밀 통로를 강조해 두었다.

그래서 지도의 안내에 따라 금방 실험실 입구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먼지로 뒤덮인 조작 패널은 마치 "비밀 실험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네 연구원 권한 카드 어딨어?

권한 카드는 제 손바닥 정맥으로 다시 활성화했어요. 그래서 저만이 열 수 있죠.

젠장, 그럼 빨리 열어!

실험실에 가까워질수록 쿠로노 병사들의 태도는 거칠어졌다. 그중 한 병사는 안젤에게 대놓고 무기를 들이대며 조작 패널을 빨리 열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이곳에 있는 실험실은 모두 암호화되어 있어서 생명 징후가 있는 인간만이 열 수 있다고 교수님이 말씀하셨어요.

안젤이 조작 패널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자, 쿠로노 병사가 아무리 건드려도 반응이 없던 패널이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번거롭기는. 내가 봤을 때, 이 연구원이라는 놈들은 하나같이 쓸모가 없어.

쿠로노 병사가 욕설과 함께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 후 안젤을 옆으로 밀친 뒤 실험실 안으로 먼저 들어섰다.

순환액의 흔적이 이어져있어. 게다가 새로운 혈흔도 보이는 걸로 봐선 누군가 다친 게 분명해.

브리이타가 쪼그리고 앉아, 바닥의 혈흔을 자세히 살폈다.

공기 중에 화약 냄새도 남아있는 걸 보면, 충돌이 일어난 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았다.

바닥에 끌린 핏자국으로 봐선... 인간을 옮기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쫓아갈 건가요?

당연히 쫓아가야지.

안젤의 정체가 뭐든, 광정에 들어올 때에는 노르만 그룹의 직원이었잖아.

안젤의 정체가 뭐든, 광정에 들어올 때에는 노르만 그룹의 직원이었잖아.

안젤이 사라진 걸 그냥 넘어간다면, 노르만 그룹과 공중 정원에 설명하기 어려울 거야.

근데 이건 제 업무 범위에 속하지 않는데요.

쉿! 잠시만요. 저쪽에서 소리가 들려요.

루시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갱도 안쪽을 주시했다.

그 미세한 소리는 금속의 마찰음인 것 같았다.

갱도에는 금속 문이 많아요. 아마 그 문이 열리는 소리일 거예요.

광정 안의 실험실...

약속이나 한 듯, 현장에 있던 모두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소리는 뒤집어진 탑의 "정상"과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