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정 깊은 곳
내부 메인 홀
두 번째 사고는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휴식을 마치고 조사를 나간 인원들이 흩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갱도가 크게 흔들렸다.
암석이 붕괴하는 굉음이 광정을 따라 울려 퍼졌고, 그 소리는 채석장의 깊숙한 곳까지 메아리쳤다.
다른 대원들과 함께 메인 홀로 돌아오자, 홀 중앙에 대원들에게 둘러싸인 브리이타가 보였다. 그녀는 얼굴에 긁힌 상처가 난 안젤의 팔을 붙잡은 채,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갱도 붕괴로 보강 작업 중이던 소대에서 사상자가 발생했어. 우리가 이동했던 길이 완전히 차단됐고, 외부와의 통신도 두절됐어.
내가 조금만 늦었다면, 안젤과 조수도 사고를 당할 뻔했어.
브리이타의 보고에 불안한 술렁임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무리가 생겨났다.
소란은 점차 잦아들었지만, 브리이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브리이타는 안젤에게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안젤의 팔을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브리이타?
[player name]이(가) 주의하라고 하지 않았다면, 의심조차 하지 않았을 거야.
브리이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마음을 가다듬은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안젤, 당신과 조수는 왜 갱도가 무너질 때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
우리 쪽으로 올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는데 말이야.
브리이타.
루시아가 브리이타와 안젤 사이로 끼어들어 브리이타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그제야 안젤은 브리이타의 손아귀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안젤은 아래를 응시한 채 표정을 숨겼고, 브리이타에게 붙잡혔던 팔을 조용히 매만졌다.
죄송해요. 이런 위험한 상황은 처음이라... 순간 판단력을 잃고 제자리에 얼어버렸어요.
당신이 광정에 온 목적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의심은 좀 지나친 것 같네요.
나는...
미안해. 내 대원이 저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어서 날카로워졌던 것 같아.
브리이타는 깊은 한숨과 함께 반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잠시 마음을 추스른 뒤에야 차분히 입을 열 수 있었다.
맞아. 이 광정에는 내가 찾는 게 있고, 임무 외의 목적도 있어. 하지만 뭐가 더 중요한지 모를 정도는 아니야.
내가 오해했다면 사과할게. 하지만 안젤... 뭔가 숨기는 게 있다고 해도 상관없으니... 제발 허튼수작 부리지 마.
명심해. 과거의 진실을 밝히는 것도, 공중 정원의 임무도, 우리 모두가 무사히 돌아가는 것보다 중요하진 않아.
잠시 말을 고른 브리이타가 마음을 진정시킨 후, 다른 대원들에게 안젤 일행을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브리이타는 마지막 지시를 내린 후, 모두를 해산시켰다.
[player name],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네.
그래. 알았어.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어.
확실한 증거는 없어. 하지만 침식체가 나타난 직후 갱도가 붕괴했다는 건 너무 큰 우연이라 생각되지 않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해요. 그리고 지금 가장 심각한 건 외부와 연락이 끊겼다는 점이에요. 게다가 여기서 장기간 야영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 그에 맞는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요.
내가 잘 챙길게. 구조 활동에서 조난자들의 심리 상태를 관리하는 것도 우리의 기본 과목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게다가 좋은 소식도 있어. 셰릴이 광정 내부 통신 시스템을 발견했는데, 송수신기 모두 사용 가능한 상태라고 해.
광정 하부의 통신이 안정되면, 기술팀과 노르만의 연구원이 통신 장비를 개조해서 공중 정원과 연락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네.
공중 정원
쿵...
해머가 회의실의 테이블에 내리꽂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테이블에는 깊은 자국이 패였고, 옆자리에 있던 세리카는 움찔했다. 그것이 상대방의 거친 행동 때문인지 아니면 배상금 걱정 때문인지 그녀의 반응을 읽을 수가 없었다.
카레니나, 이렇게 중대한 일일수록 침착해야 해.
침착하라고? 이 구조 방안을 우리가 벌써 세 번이나 수정했다고! 대체 공중 정원은 언제 정비 부대를 보내겠다는 거야?
절대 무리하지 않을 테니 한 번만 믿어 줘. 광정의 상황을 보면서 안쪽으로 천천히 안전하게 진입할게.
저는 카레니나를 믿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요. 초조하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갈 거예요.
[player name] 지휘관과 연락이 두절된 지 5시간이나 됐다고. 꼭 규정대로 6시간을 기다려야만 하는 거야?
그 마음 잘 알아요. 하지만 신청과 인원 분배에도 시간이 필요해요.
이런 사고일수록 시간이 부족한데, 왜 이런 시간 낭비를 하는 거야!
통신 장애인지 사고인지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 그래. 게다가 광정은 환경이 꽤 복잡해서 어느 정도 대기 시간이 필요하다고.
섣불리 행동했다가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어. [player name] 지휘관님이 잠시 통신이 닿지 않는 구역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
잠깐만, 통신 범위를 벗어났다고? 테디베어 너까지 왜 그러는 거야?
테디베어는 카레니나의 격앙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중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리고 마지막 입력을 마친 후, 조용히 의자를 돌려 세리카와 시선을 맞췄다.
하지만 정비 부대도 준비 시간이 필요해요. 긴급 상황이 아니었다면, 오늘 대원들을 조기 퇴근시키거나 대체 휴가를 주면 될 것 같은데, 어때요?
…………
세리카의 눈앞에 뜬 입금 알림이 그녀의 말문을 막았다. 표시된 금액은 테이블 스무 개를 배상하고도 남을 액수였다. 하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계좌가 대외적으로 공개된 계좌 목록에 없다는 점이었다.
세리카는 무의식적으로 월리스를 바라보았다.
참모장님.
월리스는 안경을 벗어 내려놓았다. 그리고 피로한 듯 콧등을 문지르며, 담담하게 말했다
출발해. 그리고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말 지켜.
들었지? 신중하게 행동하라고. 승인은 나지 않았지만, 공항에 미리 준비하라고 해뒀어.
올드 디스트릭트호, 정비 부대 전용 수송선의 점검이 곧 끝날 거야. 어서 갔다 와.
역시 테디베어가 제일 믿음직스러워.
카레니나의 말의 뒷부분이 해머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에 묻혀버렸다. 그리고 카레니나가 순식간에 문을 차고 나가자, 바닥에는 깨진 타일 두 조각만이 남아 있었다.
돈을 좀 더 이체해 둔 게 선견지명이었네요. 바닥 수리비는 제가 안 물어내도 되겠죠?
흠...
월리스는 다가오려는 세리카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하고, 천천히 몸을 숙여 카레니나가 떨어뜨린 해머와 깨진 타일 조각을 주웠다.
자네의 선견지명은 이것뿐만이 아닌 것 같군. 광정의 사고도 미리 알고 있었나?
전 해커지 정치가가 아니에요. 음모와 추측은 제 스타일이 아니죠.
테디베어는 어깨를 으쓱이며 조작 중이던 시스템을 종료했다. 그리고 화면이 꺼지기 직전, 통신 목록에 있던 익숙한 아이콘을 흘깃 보았다.
노르만이 관련된 일이라면, 열에 여덟은 문제가 생길 거란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광정 깊은 곳
내부 메인 홀
다른 이들이 야영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브리이타가 트로이를 데리고 구석으로 갔다.
문제가 생기고, 절 따로 부르는 걸 보니, 제가 용의선상에 올랐다는 건가요? 어... 이건 유사 알코올 전해액이네요. 게다가 맥주 맛이군요.
트로이가 브리이타에게서 전해액 병을 건네받았다. 전해액을 가볍게 흔들어보며 포장을 살펴본 그녀는 다시 브리이타에게 돌려주었다.
됐어요. 이 망할 곳에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모르는 데 물자를 아끼시죠.
…………
전해액을 돌려받은 브리이타는 복잡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의 단도직입적인 성격과는 달리, 차분함을 유지하는 트로이에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아... 제가 예전에 당신과 이걸 마셨었나요?
어? 어떻게 알았어?
트로이는 아무 돌덩이나 골라 앉더니,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쳤다.
당신의 생각은 쉽게 읽을 수 있어요. 그게 아니라면 숨길 생각이 없는걸 수도 있겠네요.
제가 노르만 소속이라서 절 따로 부른 것만은 아니잖아요. 제 의식의 바다가 손상되면서 잃어버린 기억 때문이기도 하겠죠?
맞아.
트로이의 말에 브리이타도 감정을 추스르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때도 우린 여기 있었어. 이 통로는 아니었지만, 같은 광정이었지.
브리이타의 말이 귓가에 맴도는 순간, 트로이의 의식이 아득해졌다. 그와 동시에 시각과 청각 시스템에 미묘한 이상이 나타났다.
브리이타?
네.
로린?
네.
트로이?
……
트로이?
트로이?
네.
브리이타가 트로이를 거듭 부르고 나서야, 깊은 생각에서 깨어난 듯 천천히 대답했다.
뭐가 떠오른 거야? 여러 번 불렀는데 반응이 없었다고.
아니에요. 그냥 대답할 힘이 없었을 뿐이에요.
브리이타의 걱정 가득한 눈빛을 마주하자, 트로이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숨은 의도가 느껴지는 대화였음에도, 브리이타의 모든 말과 표정에는 변함없는 따스함이 묻어났다.
그 순간, 트로이는 이 임무를 맡은 이유를 다시 되짚어보았다. 트로이는 분명 임무 수행이 제일 싫었고, 대충 살자는 게 신조였기에, 당시의 선택이 더욱 의문스러웠다.
너무 열정적이어서 시체가 벌떡 일어날 지경이네요.
뭐라고?
방금 마신 음료값이라 생각하고 솔직히 말할게요.
자리에서 일어난 트로이가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브리이타와 거리를 벌렸다.
노르만이 저에게 안젤의 지원 임무를 맡긴 건 맞아요. 기회가 된다면 자료를 먼저 보내라는 지시도 받았고요.
하지만 강요는 아니었어요. 그냥 형식적인 제안이었고, 오히려 임무를 맡든 말든 제가 결정하라고 했죠.
그러니까...
음료 한 병으로는 이 정도가 전부예요. 자세한 건 안젤을 직접 조사해 보는 게 좋겠네요.
제가 정말 안젤과 한패라면, 안젤이 떠나고자 하는 순간부터 당신은 절대로 그녀를 데려가지 못할 거예요.
트로이가 뒤돌아보지 않고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다가, 인사하듯 손을 흔들었다.
저물지 않는 태양 씨, 안젤을 잘 지켜보는 거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