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쪽에 누가 있어!
총알은 소리보다 빠른 법이다. 브리이타의 반사적인 몸짓에도 불구하고, 총알은 이미 헤이드의 살을 스쳐 지나간 후였다.
으윽!
브리이타는 도망치는 발소리를 쫓아가려 했지만, 상대는 어두운 갱도를 능숙하게 빠져나갔다. 이곳의 지형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순간적인 대처 덕분에 치명상은 면했어요.
헤이드의 상처에 간단한 응급처치를 하던 로린이 눈살을 찌푸렸다.
연구원을 죽이려 하다니, 대체 목적이 뭘까요?
당신 정말 노르만의 연구원 맞아? 왜 모두가 당신을 노리고 있는 거지?
이 광정 아래에 대체 뭐가 있는 거야? 정말로 "탄탈 연구실" 몇 개가 다야?
잦은 습격과 복잡한 상황 속에서, 브리이타는 헤이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브리이타는 부모님의 죽음이 이 "연구원"을 노리는 세력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당신은 "오래전"에 노르만 광업에 들어간 뒤, 콘스탄틴 채석장에서 연구했다는 건가?
그럼, 이전의 갱도 붕괴 사고들은...
정말로 단순한 붕괴 사고였던 건가?
지쳐있는 헤이드를 똑바로 바라본 브리이타는 그의 표정에서 답을 얻으려 했다.
저, 저는 몰라요. 전 연구원일 뿐이라고요.
상처의 통증 때문인지, 연구원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헤이드는 눈동자를 좌우로 재빨리 움직이며 브리이타가 원하는 "올바른 답"을 필사적으로 알아내려 했다.
갱도 붕괴... 그러니까 갱도 붕괴 사고 중에는 실제로 일어난 것도 있고, 어떤 건 그들이...
트로이를 힐끔 쳐다본 헤이드는 트로이가 자신에게 불리한 말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팔짱을 낀 채 차갑게 웃은 트로이는 자신을 떠보는 헤이드를 무시했다.
다른 뭔가를 처리하기 위해서였어요.
헤이드는 빠져나갈 방법이 떠올랐다는 듯, 조심스레 변명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탄탈 공중합체를 연구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퍼니싱과 연관될 수밖에 없어요.
때로는 연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산물이 퍼니싱에 침식되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현장에서 바로 폐기할 수밖에 없었죠. 하, 하지만 그건 전부 로봇이나 동물밖에 없었어요.
저희는 절대... 절대로 불법 실험 같은 건 하지 않았어요. 일개 연구원인 저희가 그런 권한이 있을 리 없잖아요.
헤이드는 비위를 맞추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흥.
다른 연구실은 잘 모르겠지만, 붕... 붕괴된 갱도의 일부는 그들이 "예상치 못한 산물"을 처리하기 위해서였을 거예요.
진입한 구조 대원들은? 그들은 지금 어디 있지?
브리이타는 침착한 듯 앞장서서 길을 살폈다. 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브리이타의 진짜 의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구조 대원이라... 아, 맞아요!
일부는 무사히 나갔고, 나머지는 수색구조 중 퍼니싱에 침식돼서, 저, 저희가 아래층 실험실에서 치료하고 있어요!
여긴 노르만 그룹의 채석장이에요. 노르만 그룹의 명성을 떨어뜨릴 순 없었기 때문에, 반드시 제대로 치료한 다음 내보낼 생각이었어요.
아시잖아요. 퍼니싱에 침식된 상태로 지금 내보낸다면, 혈청을 구하기 힘드니 죽기만을 기다리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브리이타의 의도를 눈치챈 헤이드가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 어서 나가기만 하시면 돼요. 어서 나가세요!
그 실험실은 깊숙이 숨겨져 있어요. 밖으로 나가면 상세한 노선도를 그려드리고, 제 권한 카드도 드릴게요. 그러면 다시 내려와서 그들을 구조하실 수 있을 거예요.
허... 지옥에 오래 있더니 거짓말도 서툴러지셨네요.
교관님?
브리이타는 트로이의 작은 중얼거림을 놓치지 않았다.
마음대로 생각해. 브리이타.
적어도 지금은, 난 너의 적이 아니야.
트로이는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브리이타와 적으로 남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 다행입니다.
잇따른 사건들과 부모님의 실종에 관한 뜻밖의 "소식"에 브리이타의 마음은 혼란스러줘졌다.
브리이타는 헤이드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브리이타는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망설였다. 헤이드의 말이 진실일까? 헤이드와 트로이, 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지원 부대의 교관인 트로이는 가끔 결근은 했어도, 이번 사건 전까지는 "좋은 교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좋은 교관"인 트로이가 왜 연구원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던 걸까?
연구원 헤이드... 언뜻 보기엔 평범한 인간이지만, 그의 말과 행동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그는 정말 평범한 연구원인 걸까? 아니면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게 되어, 쫓기고 있는 것일까?
트로이가 적이 아니라면... 진짜 "적"은 누구일까?
조심해!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다. 또다시 헤이드를 겨냥한 공격이었다.
이래선 안 되겠어. 저들은 우리가 모르는 비밀 통로들을 훤히 알고 있는 것 같아. 이래선 잡는 건 불가능해.
브리이타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로린, 지원 부대의 소대까지 거리가 얼마나 돼?
표식과 흔적으로 보면, 10분 정도 거리예요.
갱도의 상태가 불확실해서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방향은 정확해요.
지상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때? 바로 올라갈 수만 있다면, 지상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갱도의 상태가 지금과 같다면, 10분 이상 걸릴 거예요. 정확한 시간은 예측하기 어려워요.
후... 그럼, 지원 부대와 합류하는 게 우선이겠네. 그 많은 대원이 있으면 연구원 한 명 보호하는 건 문제없을 거야.
로린이 선두를 맡으면, 트로이 교관님께서는 로린 뒤에서 이동해 주십시오.
브리이타는 헤이드를 트로이의 뒤에 배치했다. 둘 사이의 관계가 미심쩍은 상황에서 브리이타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둘 필요가 있었다.
무기를 압수했다 해도, 구조체가 평범한 연구원 하나 제거하는 건 손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브리이타는 부모님의 실종과 관련된 일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렇기에 자신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면, 적합한 이에게 "판결"을 맡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제 브리이타의 임무는 명확해졌다. 일행을 안전하게 지원 부대와 합류시키고, 다시 공중 정원으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신중한 건지 경솔한 건지... 내가 로린을 기습할 수도 있는데, 그건 걱정되지 않아?
?!
교관님은 그럴 분이 아닙니다.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정리되자, 브리이타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헤이드를 죽이려는 이유가 정말로 "맘에 안 든다."라는 것뿐이라 해도, 로린을 싫어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정말? 확신해?
교관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
앞에 있던 파란 머리 구조체가 침묵했다.
로린은 침묵 속에서 발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면밀히 관찰했다. 지원 부대의 표식으로는 이곳에 다리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부서진 돌덩이들이 끝없이 깊은 구덩이로 굴러떨어졌고, 앞에는 건널 수 없는 절벽만이 펼쳐져 있었다.
큰일이네요. 연결 통로가 폭파됐어요. 분명 그들이 한 짓이에요.
지도 좀 봐도 될까?
단말기의 지도를 열자, 험준한 갱도가 나타났다.
여기로 가면 저쪽이랑 연결될 것 같아. 이 방향으로 가자. 서둘러.
브리이타의 일행이 빠르게 움직이며 대응했지만, 숨어 있는 그들의 전술적 우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도가 가리킨 곳에는 낡은 현수교가 있었는데, 오랫동안 방치된 듯 다리는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제, 제가 먼저 가볼게요.
문제 없다면, 이 다리를 통해 지원 부대와 합류할 수 있을 거예요.
로린이 조심스럽게 다리에 발을 디뎠다. 노르만 그룹의 자금력 덕분인지 견고한 자재가 사용되어, 오랜 세월 방치되었음에도 최소 둘의 무게는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트로이와 헤이드가 차례로 다리에 올라 중간쯤 이동한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어디선가 날아온 폭탄이 다리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교관님!
쿨럭... 쿨럭쿨럭...
살려줘! 살려달라고!!
귀를 찌르는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연기가 걷히자 다리는 붕괴된 상태였고, 남은 건 고작 아슬아슬하게 교각에 걸려있는 케이블뿐이었다.
헤이드는 필사적으로 케이블을 붙잡고 있었고, 트로이는 반대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로린... 대답해 로린!
쿨럭... 소리 지르지 마. 로린은 기절했어.
폭발하는 순간, 날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돌덩이에 맞았어. 당분간은 깨어나지 못할 거야.
케이블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폭발로 손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삐-]. 천칭 같아졌네.
젠장, 난 왜 늘 선택받는 쪽이지? 언제가 돼야 선택하는 쪽이 될 수 있을까?
트로이 교관님, 조금만 버텨주십시오!
브리이타는 먼저 생존자들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헤이드는... 목소리가 큰 것을 보니 당장은 문제없어 보였다.
트로이는 좀 풀이 죽어 보였지만, 원래 저런 스타일인 것 같았다.
로린은 생명 징후로 보아 살아있음이 확인됐다.
이제 브리이타가 해야 할 일은 트로이와 헤이드를 구출해 내는 것이었다.
브리이타, 꿈 깨. 넌 한 명만 선택할 수 있어. 이 망할 케이블이 곧 끊어질 것 같거든.
난 너의 적이 아니니, 헤이드를 포기해. 그는 이미...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제가 구조 대원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요. 저는 탄탈-이형 공중합체 전담 연구원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필요할 거예요. 전 죽기 싫다고요!
아직 끝내지 못한 연구가 있어서 전 죽을 수 없다고요!
조용히 해!
트로이 교관님, 전 절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겁니다.
허... 저자가 네 부모님을 죽인 살인자라 해도?
아니에요. 그건 제가 아니라고요!
그가 정말 범인이라면, 여기를 벗어난 후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지원 부대 그리고 구조 대원은 처분 권한이 없습니다.
지원 부대와 구조 대원의 공통된 사명은 "어떤 희망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거 단 하나뿐입니다.
브리이타는 보급받은 갈고리를 힘껏 던져 견고해 보이는 바위에 걸었다. 그러고는 두어 번 잡아당겨 확인한 뒤, 케이블을 향해 몸을 던졌다.
하아...
트로이가 한숨을 쉬었다.
브리이타는 조금씩 그들과 가까워졌지만, 구조 대원의 의무와 개인적인 감정 모두가 헤이드를 살릴 수 없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미안. 브리이타.
난 네 성격이 꽤 마음에 들어. 우리가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헤이드, 이쪽으로 손을 뻗어.
구조체인 트로이는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서 먼저 헤이드를 안전 밧줄로 묶고, 브리이타 자신이 헤이드 대신 무게 추 역할을 하면, 관성으로 트로이를 안전한 곳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탕".
갑자기 날아든 총알이 브리이타의 귓가를 스치더니, 구원을 향해 손을 뻗고 있던 헤이드를 관통했다.
!
브리이타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트로이가 케이블에서 손을 놓은 채 헤이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허공에 떠 있던 트로이는 작별이라는 듯 브리이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 돼!
트로이의 행동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브리이타는 구조 대원이자 지원 부대의 사명을 잊지 않았다.
어떤 희망도 포기하지 않는다.
브리이타는 다리의 추진기를 한계까지 끌어올려 트로이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광정 속에서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평평한 곳으로 트로이를 던져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