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5 분노의 황사 /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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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5-13 아름다웠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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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맥스는 자신의 큰 책상에 앉아 있었고, 그의 앞에는 한 통의 뜯어진 봉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봉투 안에서 꺼낸 편지가 쥐어져 있었다.

말도 안 돼.

맥스는 편지를 찢어서 재떨이에 던져 넣은 뒤, 막 켠 시가의 불로 편지를 태웠다. 그러자 편지는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맥스는 손에 든 시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대처 방안을 고민했다. 편지에 적힌 골칫거리가 이렇게 재가 되어버릴 수 있다면, 골머리를 앓을 일도 없을 거로 생각했다.

오클레르... 난 벌써 이렇게 늙어버렸어.

서랍을 연 맥스는 그 안에서 빛바랜 사진 하나를 꺼냈다. 사진 속에는 밀밭에 함께 서 있는 가족 세 명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너무나도 밝아서 사진 속 젊은 남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걸 거의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갑자기 노크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이 시간에 맥스를 찾는 이들은 거의 없는 데다, 아래층 경비병이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것으로 보아 친한 사이일 것이다.

들어와.

서랍을 살짝 닫은 맥스는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에게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너구나...

……

반을 한 번 바라본 맥스는 시가를 입에 물고선 고개를 숙인 채 마을의 각종 사건에 대한 파일을 계속해서 검토했다.

오늘은 추수절이잖니. 순찰은 그만하고 좀 쉬면서 놀아...

아버지. 추수절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기억하시나요?

손에 든 펜을 내려놓은 맥스는 반의 눈을 굳게 응시했다.

물론 기억하지. 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밀 수확에 성공한 날이었지. 네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던지, 그래서 오늘을 "추수절"로 정한 거야.

맞아요. 그런데 오늘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기도 하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 맥스가 손에 든 파일들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세상에선 더 그렇고.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를 구할 수 있었잖아요.

반의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쉰 맥스는 순식간에 십 년은 늙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 얘기는 그만하자.

아니요. 오늘은 여기서 끝내지 않을 거예요.

반은 가슴 속에서 공중 정원의 제식 권총을 꺼낸 뒤, 맥스를 겨냥했다.

쯧... 예전엔 공중 정원을 그렇게 싫어하더니...

마을 외곽에 있는 버려진 양조장 안은 드몽 일당들이 임시로 거주하는 곳이었다.

쳇. 저 둘이 여기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것 좀 봐. 넌 도대체 뭐한 거야!

자기 옷자락에 묻은 먼지를 힘차게 턴 드몽이 언짢은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곳에서 버텨야 하는 건데...

그들이 공중 정원의 신분을 버리고, 이렇게 빨리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게 될 줄은 저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어쨌든 망각자의 공격 날짜가 다가오고 있으니, 그 전에 저 둘을 처리해야 해. 혹시 저 둘을 처리 못하더라도, 다른 목표는 분명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드몽은 공중 정원에 있을 때, 전투 부대에서 보급받은 자신의 제식 권총을 반에게 줬다.

다른 목표라면... 누구죠?

흥. 이 마을의 이장... 네 아버지다.

……

왜... 못하겠어? 맥스가 네 어머니를 죽였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넌 그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 리 없을 텐데.

아니요... 저에게 맡겨주세요.

반은 드몽의 손에서 권총을 받아 들고는 옷 안에 숨겼다.

맥스를 처리해버리면, 우리의 공격을 방해할 사람은 없어. 나머지 주민들은 네가 처리하면 돼. 맥스가 사라진다면, 그들은 오합지졸일 뿐이니까.

흥. 그들은 살기 위해 이곳에 머물고 있는 기회주의자들뿐이죠. 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망각자와 싸우진 않을 겁니다.

드몽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이 양조장을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봤다.

고작 저런 녀석에게 기대를 걸었나요?

나이젤은 드몽의 배후에서 갑자기 나타나더니 천천히 그의 맞은편으로 걸어갔다.

아이고, 그건 아니지. 나이젤, 나에겐 너희들이 있잖아. 살인을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저런 녀석은 우리랑 다르지.

넌... 가족을 죽인 적이 있나?

자신을 도발하는 듯한 나이젤의 발언에 드몽은 극도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이젤에게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든 상관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흠... 물론이지. 충분한 이익만 주어진다면, 난 누구든 처리할 수 있어.

……

아무 말 없이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린 나이젤이 버려진 양조장을 나섰다.

야. 내가 지시한 일 잊지 마! 반이 실수하면, 너희가 대신해야 해.

이 말을 들었는진 알 수 없지만, 드몽은 자신에게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쳇... 괜히 심기 불편하게 만드는 녀석이군.

단말기의 시간을 확인한 드몽은 곧 변장을 하고 추수절 거리로 잠입하려고 했다. 자신을 숨기고 어둠 속에서 상대를 조종하는 건 드몽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총구가 자신을 향하고 있음에도 맥스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망각자가 곧 공격해 올 거예요. 그러니 아버지, 여길 당장 떠나세요!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여긴 내 자리니까, 난 가지 않겠다.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 맥스의 말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위엄이 담겨 있었다. 잠시 망설였던 반은 결국 권총을 맥스에게 겨누고 천천히 다가갔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죠! 아버지가 정말 그들을 막아낸다 해도... 이 마을, 어머니가 남긴 이곳은 모두 파괴될 거예요!

반은 맥스의 머리에 총구를 겨눴지만, 손은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마을을 떠나세요. 그렇지 않으시면...

네가 틀렸다. 여기 주민들은 마음대로 오갔고, 건물이 무너지면 다시 지었고, 밀이 죽으면 새싹이 돋아났다. 몇 년을 이렇게 지냈어도 이 마을은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내가 물러서고, "뉴 오클레르"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오클레르의 뜻은 정말로 무너지게 되는 거다.

그만하세요. 당신이 어떻게 감히 어머니의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있죠.

총구를 응시한 맥스는 시가를 입에 물고 천천히 한 모금을 빨았다.

넌... 네 어머니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구나.

반의 기억 속 어머니는 공중 정원에 사는 부유한 가문의 딸이었으나, 가문에서 쫓겨난 후 맥스와 함께 지상에 남기로 결심했다.

어머니는 항상 따뜻하고 친절했어요. 그래서 당신에게, 불쌍한 척하는 난민들에게 이용당했고,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된 거예요.

그녀는 반을 낳고 나서 중병에 걸렸다. 공중 정원에 돌아가 치료받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고, 병이 악화하여 결국 세상을 떠났다.

반의 비난에 고개를 저은 맥스는 서랍을 열고, 수없이 본 그 사진을 꺼내어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오클레르. 나보다 훨씬 강하고 영리한 사람이었지.

맥스! 여기 봐. 이 밀들이 이삭을 피웠어!!

결정했어! 오늘을 "추수절"로 정할 거야. 앞으로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날을 축하해야 해. 그래서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즐겁고 걱정 없이 보내야 해.

그렇지 않아. 난 이곳을 개방할 거야. 그래서 여기에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평"과 "중립"의 원칙을 서로 인정하면서 이 마을의 주민이 될 거야.

과거에 어떤 신분이었든 상관없이 여기 "뉴 오클레르"에서는 일과 자신의 자리를 가지게 될 거야.

이 마을의 이름이야. 이름이 있어야 사람들을 모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만으로는 절대 경작지를 넓힐 수 없어. 난 바다처럼 넓은 황금빛 밀밭을 보고 싶어. 그리고 모두가 배불리 빵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렇지 뭐, 우린 수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될 거고, 또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거야. 맥스, 너라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분명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하하하하!! 내 마을은 이 밀과 같아.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자라날 것이고, 계속해서 번성해 나갈 거야.

어때? 맥스. 내 옆에서 이 모든 걸 함께 지켜봐 줄래?

맥스. 난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너희들이 날 계속 몰아붙인다면...

오클레르가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겨눴다.

너희들을 죽인 뒤, 난 자살할 거야.

잠깐. 진정해!!!

[삐--!]. 어떡하지!? 진짜로 그럴 거 같은데!

오클레르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공중 정원으로 돌아간다면, 내 병을 치료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내가 다시 떠나는 걸 놔두진 않을 거야. 그렇게 되면, 내가 사랑하는 모든 걸 다시는 볼 수 없을 거고.

맥스. 난 죽는 게 두려워. 천국이니 영혼이니 하는 건 믿지 않아. 죽으면 그만인 거잖아. 하지만...

당신 곁을 떠나고... 귀여운 우리 아들과 이별해야 하고... 이 마을 주민들과도 이별이잖아... 꿈속에서 보던 황금빛 밀밭을 떠나는 건... 날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어.

공중을 향해 총을 발사한 오클레르의 고집스러운 눈물이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 사람들에게 전해줘. 나 오클레르·노르만은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여긴 내가 스스로 선택한 내 삶의 터전이니까.

만약 운명이 정말 날 이 세상과 갈라놓으려 한다면... 난 여기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죽는 걸 선택할 거야.

난 이 마을이 좋아. 여기서라면 누구든 과거를 버리고 마음대로 살 수 있어. 저기. 맥스...

약속해 줘.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을 지켜줘. "뉴 오클레르" 주민들,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을...

오클레르는 휘청거리더니, 손에서 빠져나온 권총이 땅에 떨어지면서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누님!

의사! [삐--!]. 의사 불러...

모자는 닮는다더니, 너와 오클레르는 정말 닮았어. 내 인생에서 누군가가 총으로 내 머리를 겨눈 건 두 번뿐인데, 그게 다 너희 모자라니.

그게 진실이라면... 왜 알려주시지 않고, 지금까지 숨기신 거죠?

오클레르는 자기 죽음이 너와 이 마을에 얽매여서라고 생각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리고 인생이란 건 원래 죽음으로 끝나는 자연의 섭리라는 걸 네가 느끼길 바랐었다.

결국 네가 구조체가 되는 선택을 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이 정한 길을 따르지 않는 게, 그녀와 똑같구나.

오클레르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내가 선택한 마지막 터전이다. 난 "뉴 오클레르"를 마지막 순간까지 지킬 거다. 그리고 너도 이제 컸으니, 네가 원하는 미래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단다.

아버지...

그때 맥스의 사무실 책상 위 단말기에서 메시지 수신 알림이 울렸다.

공중 정원의 그 지휘관이 보낸 거군.

메시지에는 간단하게 한 줄만 적혀 있었다. "망각자가 왔어요. 당신은 위험해요!"

메시지의 진위를 생각하고 있던 맥스가 직감적으로 방 안의 이상함을 느꼈다.

맥스는 본능적인 반응으로 사무실 책상을 들어 올려 반의 옆 공간을 향해 내던졌다.

갑자기 책상이 두 동강이 났고, 다음 순간 날카로운 칼날이 반의 옆 공중에서 나타났다.

윽...!

날카로운 칼날이 반을 지키려던 맥스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 그러자 피가 순식간에 맥스의 반쪽 몸을 적셨다.

아버지!!??

반은 바로 맥스를 자신의 뒤로 숨긴 뒤, 공격해 온 방향을 향해 제식 권총으로 연속 사격을 시작했다.

어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 그리고... 가서... 쿨럭쿨럭...

맥스가 격렬하게 기침을 시작하자,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 지휘관을 찾아라! 그들이... 뭔가 알아냈을 거다. 게다가 그 녀석이 죽으면, 공중 정원과 망각자간에 싸움은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럼, 아버지는요?

하아... 그저 작은 상처일 뿐이야. 난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네가 이 마을의 "치안관"이라면, 네 임무를 수행해!

반은 이를 악물고 먼저 맥스를 안전한 곳에 안치한 뒤, 창문으로 뛰어나갔다.

오클레르... 제발 우리 아들을 지켜줘. 그리고 이 마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