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돼. 나 포기할래. 이 쓰레기는 진짜 아무 쓸모가 없어!
자신의 단말기를 침대 위에 내던진 녹티스가 창가에서 화가 난 듯 왔다 갔다 하며 중얼거렸다.
녹티스는 통신 단말기를 조금 개조해서 공중 정원의 통신 시설과 연결해 보려고 오전 내내 시도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손재주를 과대평가한 것인지, 리처럼 전문가가 아닌 두 명의 문외한이 이런 개조를 완성한다는 것은 다소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어? 그 노인이 여기서 조사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비밀리에 조사해서 드몽을 잡을 수 있다면, 맥스 이장도 아무 말 하지 못할 거야.
정말 될까? 하지만 여기서 가만히 있는 것보단 움직이는 게 낫겠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자니 답답해서 죽겠어.
한숨 쉰 녹티스가 먼저 방문 앞으로 가 단말기를 던졌다.
잊은 거야? 그들의 목표는 바로 너야. 네가 밖으로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넌 여기 있어서 통신만 유지하고 있으면 돼. 마을 쪽 조사는 내가 할 테니까.
꼭 단서를 찾을 거야. 내가 약속하지.
쓸데없는 소리 하긴, 오히려 네가 짐이 될까 봐 걱정이야.
녹티스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지만, 그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이곳 주민들과 잘 대화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싸움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편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이. 형씨. 혹시...
지나가는 청년을 막아선 녹티스가 드몽의 사진을 꺼내 보이며, 그를 봤는지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서 받은 건 불편한 시선뿐이었다.
저기 노부인. 혹시 이 사람을 본 적 있어?
간신히 길가 작은 가게에서 농산물을 파는 친절한 인상의 노부인을 찾았다.
녹티스가 들고 있는 통신 단말기를 살펴본 노부인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본 뒤,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꺼져!
노인답지 않은 힘찬 호통 소리와 함께 작은 가게의 문이 요란하게 닫혔다. 그리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녹티스는 문밖으로 쫓겨났다.
[삐-!]. 여기 주민들은 다 왜 이래!
그런데도 녹티스는 투덜거리며, 자기 말을 들어줄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단서를 찾겠다고 말했으니,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어. 그럼, 너무 창피하잖아.
녹티스가 눈치채지 못한 마을의 어두운 구석에서 그가 찾고 있는 사람이 이미 그를 노리고 있었다.
헤... 저 멍청이 아직도 날 찾고 있네. 내가 눈앞에 있다는 걸 평생 알아채지 못할 거야.
드몽은 동료의 어깨를 두드리며 우쭐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반 네가 도와줘서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어. 고마워.
전 이 마을 태생이라, 여기 사람들을 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이번엔 저 공중 정원에서 온 외부인들이 고생할 차례예요.
망각자 부대가 곧 이곳을 지나갈 거야. 네가 날 도왔으니, 우리 망각자의 친구가 된 거야. 마을 사람들에게는 피해 주지 않을 거니 안심해.
자기들이 원해서 마을로 온 그놈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그냥 다 쫓아내 버렸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이 마을은 파괴되어선 안 돼요. 여긴 어머니의 마지막 추억이 담긴 곳이니까요.
그건 쉽게 해결할 수 있어. 하지만 네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 네 아버지는 이 마을이 중립을 유지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던데.
우리가 몇 번이고 사람을 보내 경고했지만, 네 아버지는 길을 터주려 하지 않았어. 이 작은 마을이 존재할 수 있는 게 누구의 보호 덕분인지 정말 모르는 것 같아.
망각자와 마을의 협력 관계를 통해, 망각자 주둔지는 "뉴 오클레르" 마을에 관문을 세우고 침식체의 침입을 수년간 막아왔다.
아버지께서는 구시대적인 이념에만 매달려 계셔요. 중립이니 자유니...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완전히 잊으신 거 같아요.
미소를 지은 드몽이 반을 바라봤다. 그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이보다 더 조종하기 좋은 대상은 없었다.
이번 일이 잘 풀린다면, 난 통솔자에게 널 추천할 거야. 그럼, 망각자에 들어와 공중 정원에 복수할 수 있을 거야.
공중 정원에 복수할 수 있다고요? 정말 가능한가요?
우리 망각자도 너와 마찬가지야. 공중 정원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 통솔자가 합류한 이후로 우린 공중 정원에 박해받던 사람들을 조용히 포섭해 왔지.
이제 우린 무시하지 못할 힘을 갖게 될 거고, 공중 정원에 사는 저 귀족들은 이 모든 걸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
드몽은 멀리 있는 파란빛을 발하는 거탑을 가리키며, 날카로운 눈빛을 드러냈다.
저 빛이 닿는 곳엔 우리의 자리가 마땅히 있어야 해. 하지만 지금은 공중 정원의 놈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
망각자는 정화 구역을 공격하려는 건가요?
맞아. 그리고 이 마을은 정화 구역에 인접한 중요한 요충지인 데다, 침식체의 교란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야. 마을이 망각자 부대가 통과하도록 허가만 해준다면, 분명 성공할 거야.
눈을 가늘게 뜬 드몽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녹티스를 주시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중 정원에서 온 두 대원이 우리의 가장 큰 장애물이야. 만약 그들이 우리의 계획을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그땐 곤란해져.
평소엔 뻔뻔한 얼굴로 마을을 흐리게 만드는 녀석들이지만, 지금은 이용해 볼 만한 타이밍인 거 같네요.
좋은 생각이야. 여기 주민들이 나서면, 그 공중 정원의 대원들도 그들의 위선적인 규칙 때문에 주저하게 될 거야.
반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몇몇 건달에게 눈짓을 보냈다.
히히...
[삐-], [삐-]...
지휘관은 여관 안에서 할 일 없이 지루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녹티스가 통신 단말기를 통해 알려온 내용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한숨이 나왔다. 오랜만에 느끼게 된 무력감으로 지휘관은 자기의 한계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그때, 문밖에서 느긋하면서도 정확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통신 단말기를 던진 손이 본능적으로 권총이 있는 베개 밑으로 향했다.
답변이 돌아오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거구의 남성이 수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당당하게 들어왔다.
네가 공중 정원의 지휘관이로군. 듣기론 아주 똑똑한 양반이라던데.
의자에 앉은 맥스는 손에 든 지팡이를 수행원에게 넘겼다.
맥스는 녹티스의 행방에 전혀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어쩌면 일부러 녹티스가 없을 때를 노려서 방문한 모양이다.
그럼, 네 무모함이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길 바라지. 여기선 너희들의 규칙이 통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여기 사는 주민들은 범죄자, 건달, 인간쓰레기들이라,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아.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언제 어디서 갑자기 목숨을 잃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거든.
저 구조체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여기에 남아 있는 거겠지. 하지만 내가 봤을 때 넌 달라.
맥스는 방금 전까지 지휘관이 조정하던 통신 시설을 봤다. 그 장비에는 공중 정원의 통신 내용이 표시되어 있었다.
적어도, 넌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 안 그래?
그래서 녹티스가 없는 틈을 이용해, 지휘관을 설득하려고 했던 거였다.
드몽을 찾지 못한다면, 대부대에서 왜 예기치 않게 떨어지게 됐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었고, 용의자인 녹티스와 함께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반역 혐의에 가담한 것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남는다 하더라도 조사할 수 있는 게 없어. 내가 말했던 것처럼, 이곳은 너희를 환영하지 않으니까. 여기는 다...
맥스는 다소 놀란 듯 보였다. 지휘관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맥스의 눈빛이 조금 더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흥... 정말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너희들을 막을 수 없겠군. 너희는 "뉴 오클레르"의 새로운 피가 될 거다.
맥스는 일어서서 수행원한테서 지팡이를 받고, 힘차게 바닥에 꽂자 묵직한 소리가 났다.
이제 너희도 마을 주민이 된 이상, 다른 사람들처럼 "취직"을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직업이 없는 녀석들은 여기 머무를 수 없거든.
지휘관 업무 외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손에 쥔 통신기에서 거대한 소리가 울린 뒤, 비명 소리가 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