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5 분노의 황사 /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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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5-8 황사에 묻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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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이것만 주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낡은 주둔지에서 구조체 한 명이 손에 든 금속 물품을 힘껏 들어 올린 뒤, 맞은편 구조체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

……

정화 부대 소속의 구조체는 말없이 땅에 떨어진 명패를 주운 뒤, 다소 얼룩진 제복 소매로 명패에 묻은 흙을 닦아냈다.

필요 없으면, 내가 가져갈게.

그는 명패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돌아서서 떠날 준비를 했다.

그게 다야? 더 할 말은 없고?

할 말은 다 했어.

그는 아직 살아있는 거야?

그건 말해줄 수 없어.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그런 거지?

그건 말해줄 수 없어.

네가... 네가 직접 처리한 거야?

집행 부대 제복을 입은 구조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정화 부대 대원은 잠시 침묵했다.

그건... 말해줄 수 없어.

여전히 차가우면서도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 잠깐의 망설임에서 집행 부대 대원은 이미 어떤 대답을 얻은 듯했다.

정말 네가 한 짓이었구나... 우리 셋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정화 부대의 망할 놈아, 꼭 시체를 밟아서라도 올라가고 싶었던 거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성을 잃은 구조체는 주먹을 들어 올렸고, 상대가 정화 부대 소속임을 잊은 채 분노에 휩싸였다.

어이쿠, 이건 모른척할 수 없겠어.

구조체의 주먹이 내려가기도 전에 더욱 힘센 손이 가로막았다.

뭐 하는 거야, 어서 놓아줘!

녹티스... 놓아줘. 난 괜찮아.

하... 설마 내가 지금 널 도와주고 있다고 착각한 건가?

왠지 모르게 흉악한 미소를 지은 붉은 머리의 남성은 바람막이 안경 너머로 비웃는 눈빛을 보였다.

솔직히 난 너희 둘 다 별로거든, 근데 그중에서도 특히 저 녀석이 마음에 안 들어.

징징대지 말고 어서 꺼져!

상대가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녹티스의 언행에서는 어떤 예의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근데 너 방금 뭐라고 그랬냐? 아, 맞다. 정화 부대의 망할 놈이라고 했지.

난 다른 놈들처럼 성격이 착하지 않아서 말인데, 넌 사과할래, 아니면 나한테 맞을래?

내가 틀린 말을 했어? 너희 정화 부대는 동료들을 짓밟고 올라가는 거잖아!

다 같은 구조체인데, 왜 너희는 우리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건데?

무슨 헛소리야? 너희들의 생사를 결정짓는 건, "흑심"을 품었는지에 달렸다고.

이런 시기에 흑심을 품은 놈들은 죽어도 싸거든.

그렇다면 그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한번 말해봐!

내가 굳이 그걸 알아야 하겠니? 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지면, 우린 수행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쳇, 주인의 명령에 꼬리를 흔드는 개가 따로 없군.

뭐라고?

녹티스는 순간 눈을 부릅떴다. 그를 잘 아는 이라면, 이 표정이 주먹을 휘두를 전조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최전선에서 침식체와 목숨 걸고 싸울 때, 너흰 안전 구역에서 편하게 지냈겠지?

침식될 걱정도 없고, 보급 문제로 골치 아플 일도 없을 테고.

그러다가 우리가 허약해지고, 상부에서 거슬리다고 여길 때쯤, 우릴 제거해버리겠지... 너희는 시체를 핥아먹는 귀신이나 다름없잖아!

밸러드... 그분은 진정한 영웅이었는데, 권력자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해 버렸어! 그리고 너희 같은 사냥개들을 데리고 동료들을 숙청했지.

넌 사과를 안 해도 되겠네.

녹티스는 상대방의 손을 놓았다.

녹티스!

정화 부대의 구조체가 다가올 사태를 감지하고 경고의 어조로 말했다.

오늘은 빌어도 소용없어. 널 죽기 전까지 패버릴 거야!

그래, 덤벼! 나라고 가만히 있을 거 같아!

그만!!

미안. 손이 미끄러졌네.

이번 달에만 벌써 다섯 번째 징계를 먹는 거야.

단출하고 조금 쌀쌀한 방 안. 중년 남성 구조체가 녹티스의 맞은편에 앉아 손에 든 처분 보고서를 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 자식이 뚫린 입이라고 막말을 하니까...

상대방의 시선을 느끼자, 평소 겁이 없었던 녹티스마저도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을 체험하는 것 같았다... 비록 지금 앉을 자리도 얻지 못했지만 말이다.

녹티스가 가장 힘들고, 이성을 잃고 있었던 시절에 그를 제압하고 입양해서 키워준 자가 바로 밸러드였다. 이 계기로 절망의 심연으로 돌진하던 녹티스의 인생에 되돌아갈 길을 만들어준 존재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했음에도 녹티스에게 밸러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해서 녹티스와 밸러드 사이에 거리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녹티스는 자신에게 두 번째 삶을 준 밸러드에게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대장, 이거 좀 내려놓으면 안 될까? 머리가 눌려서 터질 것 같아.

녹티스는 서커스단의 광대처럼 머리 위에 수많은 철제 더미를 이고 있었는데, 더미가 떨어져서 발을 찍을까 걱정이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내가 내려놔도 된다고 할 때까지 절대로 내려놓으면 안 돼. 네 성질을 제대로 고치기 힘들 것 같으니, 이런 방법을 써서라도 널 갈고닦아야 해.

그래도 지난달보다는 징계가 많지 않잖아. 왜 벌칙은 점점 더 세지는 거야?

이번 달은 겨우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잖아. 게다가 이번엔 감히 같은 부대 대원한테까지 손을 대?

그 녀석이 징징대는 것도 모자라서, 계속 남의 편을 드는 거야. 난 우리 정화 부대의... 어, 어, 어! 대장! 왜 내가 말하는 틈을 타서 고철 덩어리 두 개 더 얹는 거야!

갑자기 늘어난 무게 탓에 필사적으로 균형을 잡기 위해 아득바득 애를 쓰던 녹티스는 더 이상 호들갑을 떨 여유가 없어졌다.

계속 이러면 나중에 널 찾아오는 건 감사원일 거야. 그런 날이 오면 나도 널 도와줄 수 없어.

타인이 뭐라고 하든 그냥 지나쳐, 불안정한 요소는 더 이상 만들지 마.

이해받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건 필요한 정의다.

세 번째 대철수가 끝난 지 얼마 안 됐고, 어둠 속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는 자들이 너무 많아. 상황이 더 혼란스러워지지 않도록, 누군가가 똑같이 어두운 곳에 숨어 그런 녀석들을 감시해야만 해.

이게 바로 내가 정화 부대를 설립했던 취지였지.

"침묵의 감시", 정화 부대의 원칙은 이 마크처럼 되어야 하는 건데, 네 성격은 참...

무거운 철판을 이고도 계속해서 날뛰려고 하는 녹티스의 모습을 보며 밸러드는 고개를 저었다.

널 비앙카의 소대에 다시 보내서 한동안 더 배우고 관찰하는 게 좋을지도.

안 돼. 안 돼!!

녹티스는 마치 꼬리를 밟힌 개처럼 소리를 질렀다. 머리 위에 덩어리가 없었다면, 벌써 뛰쳐나갔을 것만 같았다.

대장. 제발 그 소대로 보내지 마, 고지식하게 규칙을 요구하는 그 소대에 있으면 속 터져 죽을 거 같단 말이야.

녹티스는 괴로운 기억이 떠오른 듯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말했다.

좀 지각했다고, 의심스러운 놈을 두어 대 더 때렸다고, 고작 이런 일 때문에 무려 두 페이지 이상의 보고서를 써야 했어.

그렇게 융통성 없고, 성질도 더러운 녀석이랑 같이 있으면, 내 기체가 십 년은 더 노후화되는 거 같아.

차라리 나이젤이랑 임무 수행하는 게 낫겠어.

미안하지만 난 확성기를 들고 임무 수행하고 싶지 않아.

검은색 코트를 입은 구조체가 녹티스의 옆을 지나갔지만, 그가 말하기 전까지 녹티스는 상대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삐-]. 걸을 때 소리 안 나는 건 그렇다 쳐도, 문 열 때도 소리가 안 나는 건 뭐야?

두뇌 용량이 육식 공룡이랑 비슷한 어떤 녀석이 깜빡하고 문을 안 닫았으니까.

갑자기 공룡 얘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 맞지?

머리 위의 철판이 떨어질 것 같네.

쳇.

녹티스와 나이젤은 밸러드의 오른팔과 왼팔 같은 존재였지만, 나이젤은 녹티스와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둘 중 한 명은 시끌벅적하고 정면 돌파를 잘했고, 다른 한 명은 조용하면서 잠복 및 암살에 능했다. 녹티스는 처벌을 너무 많이 받아서 소문이 자자했지만, 나이젤은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녹티스와 나이젤의 성격상 서로 잘 맞지 않았지만, 비슷한 과거를 겪었던 그들은 형제처럼 지낼 수 있었다.

다 조사했나?

네.

녹티스. 벌칙은 끝났으니 먼저 돌아가도 돼.

그럴게!

밸러드의 말이 떨어지자, 녹티스는 곧바로 머리 위에 올려둔 철판을 내려놓았다.

후... 드디어 자유로워졌네.

녹티스는 붉은 머리를 만지며 눌린 부분을 다시 푹신하게 만들었다.

또 나쁜 놈들을 찾아낸 거야? 그렇다면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걸.

녹티스는 손목을 돌리며, 투지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큰 소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는 목표라서 네가 나서기엔 적절하지 않아.

밸러드는 나이젤이 제출한 명단을 훑어보며 말했다.

넌 잠시 대기하고 있어, 징계 기간이 끝나면 그때 움직여.

알겠어.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몸의 실력을 얕보는 거냐"라고 말대꾸를 했겠지만, 밸러드 앞에서는 녹티스도 그런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갈 때 문 닫아줘.

녹티스가 스쳐 지나갈 때, 나이젤이 태연하게 한마디 했다.

알았어.

녹티스는 무뚝뚝한 "형제"에게 중지 손가락을 추켜세우며 문을 쾅 닫았다.

기체가 거친 호흡 소리와 함께 공기를 내부로 빨아들이면서, 후각 감각 기관에 구조체 순환액의 짙은 향을 가져다줬다.

구조체에게 호흡은 필수 행위가 아니었지만, 이 순간 그에겐 인간으로서의 본능만이 남아있었고, 오로지 그것만이 그를 쓰러지지 않게 지탱해 줬다.

남은 오른팔로 몸을 지탱한 그는 반드시 죽여야 할 사람이 있는 벼랑 끝으로 힘겹게 걸어갔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대답해. 내 질문에 어서 대답해!"

이를 악문 그는 벼랑 끝에서 발버둥 치며 일어서려는 남자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는 평소대로 화를 불러일으키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언제나 말 없고, 차분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었던 그의 유일한 "형제".

하지만 그 무거운 침묵이 오히려 그의 마음을 깊이 찔렀다. 그리고 어디에도 쏟아낼 수 없었던 분노와 슬픔이 터져 나왔다.

그 분노의 대가로 나이젤은 그의 한쪽 팔이 잘린 채,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땅바닥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슬픔의 근원이자, 녹티스가 가장 존경하는 밸러드가 모든 생기를 잃고 나이젤의 발아래 쓰러져 있었다.

원래는 복잡하지 않은 임무였다. 그래서 밸러드, 녹티스 그리고 나이젤이 함께한다면 더더욱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녹티스가 자신이 맡은 목표를 시멘트 기둥에 묶으면서 오랜만에 이렇게 수월한 임무를 맡았다고 내심 감탄하고 있을 때, 밸러드와 나이젤은 동시에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녹티스는 전투의 흔적을 따라 마침내 그들을 찾아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 중 하나를 찾았다.

밸러드가 왜 나이젤의 발 앞에 쓰러졌는지, 나이젤은 왜 밸러드의 가슴에서 평소 사용하던 전투 지팡이를 뽑아냈는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기체가 먼저 반응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아... 아아아아!!!

야수처럼 돌진해 순환액이 묻은 그의 손을 잘라내자, 불의의 일격을 당한 나이젤도 발로 땅에 떨어진 제식 태도를 차올렸다.

녹티스

나이젤!!!

녹티스는 왼손이 절단됐음에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나이젤의 이마를 향해 머리를 들이받았다.

녹티스

대체 왜!!

기체의 모든 부분을 사용하면서도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야수 같은 공격 방식에 나이젤이 자랑하던 기동성은 전혀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제식 태도는 격렬한 충돌 속에 부러졌고, 폭발적인 움직임 때문에 기체는 과열 상태가 되었고, 의식의 바다도 함께 요동쳤다.

검은색 그림자는 조금씩 벼랑 끝으로 몰려갔다.

녹티스

"그래. 좋아! 아무 말도 안 하겠다는 거지?!"

이를 악문 그는 떨리는 손으로 옆에 떨어져 있던 흠집 투성이의 제식 태도를 있는 힘껏 주워들었다.

녹티스

그렇다면...

죽어버려!

나이젤

아...

녹티스가 조금씩 다가서자, 나이젤은 포기한 듯 한숨을 쉬었다.

나이젤

이게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될지도 모르니, 딱 한 번만 말할게, 잘 들어.

생각해 봐. 밸러드 말고 누가 날 움직일 수 있지?

나이젤은 평소와 달리 긴 문장을 내뱉었다. 그러나 녹티스는 여전히 부러진 칼을 내려놓지 않았다.

녹티스

혹시...

나이젤

상부의 명령이야.

나이젤은 녹티스가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추측을 확신시켜 줬다.

녹티스

왜?

나이젤

선을 넘고 거슬리니까.

녹티스

그럴 리가 없잖아! 대장이 인간을 배신할 리 없어.

나이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떤 이들의 눈에는 구조체를 위한 평등권이나 특별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인간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하거든.

녹티스는 나이젤의 어조를 통해 자조가 섞인 느낌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나이젤

물론 이게 가장 중요한 건 아니고, 정말 중요한 건 정화 부대라는 열매가 익었는데, 밸러드는 그들의 수확을 방해하는 허수아비가 돼버렸다는 점이지.

녹티스

그게 무슨 뜻이야?

나이젤

밸러드가 정말 아무것도 안 알려줬나 본데, 하긴, 네 성격에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진작에 소란을 피웠겠지.

공중 정원의 상황이 복잡해서 드러내면 안 되는 문제들이 많거든, 때론 문제를 일으키는 이를 처리하는 게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것보다 쉬울 때가 있단 말이야.

하지만 밸러드가 정화 부대를 그렇게 이용하는 걸 거절했을 때, 그 역시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버렸어.

녹티스

그렇다고 해도 넌 그럴 리가 없잖아... 그리고 방금 나한테 독을 쓰지도 않았고, 분명 너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을 거야. 그렇지?

녹티스는 이를 악물고 나이젤한테서 어떤 이유라도 받아내고 싶었다. 나이젤이 누군가에게 협박당했다거나, 이게 밸러드의 계획이었다거나, 설득력이 부족하더라도 일단 이유를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나이젤

밸러드를 상대하는 게 그렇게 쉬울 줄 알았니? 내 독은 그와의 싸움에서 이미 다 써버렸어.

못 믿겠다면 날 죽이고 내가 방금 했던 말을 잊어.

나머지 일은 다른 누군가가 알아서 할 테니, 넌 그냥 모른 척을 해.

녹티스

나이젤!!!!!

녹티스는 싸움에서 받은 상처보다 나이젤의 무심한 말투에 더 큰 아픔을 느꼈다. 그는 단검을 휘두르려는 분노를 억누르며, 이를 악물고 말을 짜냈다.

녹티스

아니. 넌 나랑 같이 돌아가야 해.

내가 대장을 죽이라고 지시한 놈들을 네 입에서 직접 끄집어낸 뒤, 그들에게 죗값을 받게 할 거야.

이게 바로 대장이 말한 진정한 정의라고!

나이젤

녹티스... 넌 마음이 너무 약해, 역시 정화 부대엔 어울리지 않는군.

네가 못하는 일들... 난 할 수 있거든.

녹티스

(이건! 방금 내가... 날아차기를 당한 건가?)

단검이 순식간에 나이젤의 손에 들어갔다.

슬슬 널 보내 줄 때가 됐어.

공격과 방어의 입장이 다시 바뀌었다. 녹티스는 일어서려 했지만, 방금 날아차기를 당한 바람에 가슴 부위로부터 마비가 온 것 같았다.

녹티스

독... 다 썼다고 했잖아?

너에게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넌 순진함으로 날 실망시켰어.

다음 생에는 적의 말을 믿지 마.

녹티스

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녹티스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거칠고 날카로운 그의 웃음소리는 땅속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같았다.

녹티스

나랑 같이 돌아가기 싫다면...

방금 격투 도중 나이젤의 머리에 달린 센서가 심각하게 손상되어 인식 능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나이젤은 녹티스가 방금 날아갔을 때, 제자리에 눈에 띄지 않는 "돌맹이" 하나를 남긴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녹티스

그럼, 같이 죽자고!

격렬한 폭발이 녹티스를 날려 버렸고, 나이젤과 밸러드의 모습을 삼켜버렸다.

이게 전체 사건의 경과인가?

네가 몇 번을 더 물어봐도,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생명의 별에서 의식을 되찾은 후, 녹티스는 감사원으로 끌려갔다.

이해해 주길 바란다. 현장에 남은 폭발 흔적으로 봤을 때, 네 말이 사실이라면...

전 정화 부대 대원인 나이젤과 전 정화 부대 대장인 밸러드의 시신을 온전히 찾기가 매우 어려울 거야.

상황이 그래. 다만 지금으로선 그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졌는지 아니면 네 폭탄에 의해 산산조각 났는지 결론을 짓기는 어렵고.

그게 아니라면...

아니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

녹티스는 눈앞의 사람들을 파리 쫓듯이 쫓아버리고 싶었지만, 현재 입밖에 움직일 수 없는 처지라서 어쩔 수 없었다.

의식의 바다에 있는 기억 데이터를 불러올 수 있잖아. 그거 보면 되는 거 아냐?

그렇게 할 거야. 하지만 너의 현재 부상 상태와 군부 사령관님 및 정화 부대의 신임 대장의 권고를 고려했을 때, 그건 나중에 네가 회복된 후에 진행할 거야.

정화 부대의 신임 대장이라니? 벌써 새로 임명한 거야?

엄밀히 말하자면, 임시 대리인이지. 말 나온 김에 그녀를 불러서 네 거취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

문이 열리자, 녹티스의 시야에 익숙한 그림자가 들어왔다.

쯧, 너였구나.

비앙카는 병상에 누워 있는 녹티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한 뒤, 그의 날카로운 인사는 무시한 채 감사원을 바라봤다.

감사원님. 제 의견은 여전합니다. 확실한 배신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녹티스는 정화 부대에서 이탈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너도 요즘 정화 부대의 내부 소문을 알고 있잖아, 다들 녹티스가 그 둘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으니 문제지.

정화 부대 내부의 단결을 위해서라도, 녹티스를 다른 곳으로 전출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소문은 결국 소문일 뿐이에요. 그런 이유로 누군가를 강제로 전출시킨다면, 그것은 정의에 대한 모독입니다.

저에게 시간을 주세요. 이 문제는 제가 처리할게요.

감사원과 비앙카가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녹티스는 갑자기 절벽 위에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물론 이게 가장 중요한 건 아니고, 정말 중요한 건 정화 부대라는 열매는 익었는데, 밸러드는 그들의 수확을 방해하는 허수아비가 돼버렸다는 점이지.

밸러드가 정말 아무것도 안 알려줬나 본데, 하긴, 네 성격에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진작에 소란을 피웠겠지.

공중 정원의 상황이 복잡해서 드러내면 안 되는 문제들이 많거든, 때론 문제를 일으키는 이를 처리하는 게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것보다 쉬울 때가 있단 말이야.

하지만 밸러드가 정화 부대를 그렇게 이용되는 걸 거부했을 때, 그 역시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버렸어.

녹티스... 넌 마음이 너무 약해, 역시 정화 부대엔 어울리지 않는군.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건 어때?

……

아... 역시 기분 전환을 해야겠어.

녹티스는 평소처럼 농담하는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자연스럽게 기지개를 켜려 했지만, 온몸의 극심한 통증 때문에 결국 포기해야 했다.

게다가 비앙카 밑에서 일하는 건... 어우, 제발 날 살려줘.

녹티스...

녹티스는 비앙카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려 침대 옆 기기에 관심을 보이는 척했다.

어쨌든 이 정화 부대에는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 너도 계속 나한테 신경 쓰고 싶지는 않겠지. 대장?

알겠어요. 당신의 의지를 존중할게요. 그리고 그런 소문은 제가 처리하도록 하죠.

그리고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그냥 혼잣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도망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비앙카가 떠난 후, 병실에는 녹티스와 감사원만이 남게 됐다.

왜 아직도 안 가는 거지? 아직 물어볼 게 남았나?

감사원은 가슴에 달린 영상 장치를 끈 뒤, 전자 스크린을 닫았다.

네가 옮겨갈 자리에 대해 제안할 게 있거든.

이건 하산 의장님의 제안이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