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량 수송차가 황무지를 질주하고 있었고, 이에 일구어진 모래먼지가 시야를 크게 가렸다.
지휘관이 자랑하는 방향 감각은 이 순간 전혀 쓸모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방향에 대한 판단 능력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 시간에 대한 판단력은 둔해지지 않아서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 있었다. 차의 속도를 감안했을 때, 30분 전에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황혼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
드몽은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세요. 이제... 곧 도착할 겁니다.
그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 시야 끝에서 공중 정원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금빛 밀밭이 저녁노을에 물들었고, 바람에 따라 파도처럼 일렁이면서 황혼의 무더운 기운을 안겨줬다.
어쩌면 황금시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일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이 지구 곳곳에 퍼니싱이 창궐하는 상황에서는 이렇게 넓은 농경지가 있다는 건 상상조차 어려웠다.
네. 이 밀밭을 지나면 말씀드렸던 그 마을이 보입니다. 협곡 사이에 위치했기 때문에 침식체들이 쉽게 들어올 수 없는 곳이거든요. 그 덕에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넓은 농경지를 가꿀 수 있었습니다.
드몽의 말대로, 밀밭의 끝에 큰 절벽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외부와 연결해 주는 건 개폐교 하나뿐이었다.
지휘관은 개폐교의 견고함을 대충 한 번 시험해 봤다. 비교적 안정적이긴 했지만, 모양새는 꽤 걱정할만했다.
차를 몰고 이 다리를 지나가긴 어렵습니다, 지휘관님, 걸어서 건너갑시다.
경량 수송차를 개폐교 옆에 세워두고, 지휘관과 드몽은 다리를 천천히 걸어서 건너기 시작했다.
저기... 지휘관님, 파오스 학교 수석 졸업했다면서요?
하, 그렇죠. 운... 운이 참 중요하죠. 우리처럼 운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결국 이렇게 구조체가 돼버리니까요.
개폐교 위에 선 드몽은 뒤돌아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구조체...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었다면, 아무도 그런 선택을 하진 않았겠죠.
다시 고개를 돌린 드몽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지휘관님처럼 파오스에서 수석으로 졸업한 학생이 구조체가 됐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참 멍청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듣자 하니 어딘가에서 크롬에 관한 소문을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크롬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의지에 대해선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판단으로 크롬을 비난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전 단순히 무기의 주인이 될 수 있는데, 왜 굳이 남에 의해 조종되는 무기가 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한 말입니다.
그 말과 함께 드몽은 개폐교 끝에 도착한 뒤, 손을 내밀었다.
지휘관님, 도착했습니다.
훈련을 받은 몸이라고 해도, 바람에 흔들리는 개폐교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상당한 체력을 요구했다. 결국 드몽의 손을 잡고 개폐교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절벽 양쪽이 이렇게 좁은 개폐교 하나로만 이어져 있다니 상상하기 힘드네요.
드몽이 일어서서 개폐교 건너편을 바라보자, 반대편에 주차해 놓은 경량 수송차가 선명하게 보였다.
퍼니싱 폭발 이후, 인류와 구조체 사이의 균형 관계는 이 낡은 개폐교처럼 위태위태한 상태죠.
개조 적응성이 없는 인간은 구조체를 자신들의 무기로 삼아야 하지만, 구조체는 인간을 그렇게 필요로 하지 않잖아요.
능력이 강한 구조체들이 오히려 인간에게 복종해야 한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드몽은 미소를 지으며 가슴 속에서 눈에 띄지 않는 검은 장치를 꺼냈다.
이 관계의 거짓된 균형도 이제 깨질 때가 됐습니다. 먼저 "영웅"으로 만들어진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의 실종으로 시작하죠!
드몽이 장치 위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개폐교 반대편에 있던 경량 수송차에서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고, 옆의 개폐교도 연쇄 반응을 일으켜 세차게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하하하. 제가 지휘관님이었다면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않을 겁니다.
지휘관은 몰래 이사루스의 통신 신호를 연결해 보려고 했지만, 어떤 반응도 없었다.
포기해. 여긴 네가 가진 단거리 통신 단말기의 수신 범위를 이미 벗어났어. 정화 부대의 녀석들은 네 구조 요청을 듣지 못할 테니, 그냥 순순히 항복하는 게 좋을 거야.
드몽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정화 부대 대원들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해도 이곳을 찾을 수 없을 것이고, 설령 찾아낸다 해도 이미 끊어진 개폐교는 건널 수 없었다.
드몽이 손을 흔들자, 밀밭에서 소속 불명의 구조체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건, 모두 공중 정원에서 온 구조체들이었다.
정화 부대는 배신자들을 청소해야 마땅하잖아. 그게 바로 너희 인간들의 정의지. 무기에 피를 묻히고는 높은 곳에서 너희의 도덕과 법으로 우리를 서로 죽게 만들다니.
닥쳐! 비앙카는 정화 부대의 대장으로서 쓸데없이 착해... 착한 마음씨를 가졌기 때문에 너희들한테 쉽게 이용당하는 거고, 그래서 그녀가 정화 부대의 대장이 된 거잖아.
배신을 저지른 두 구조체가 서서히 다가오며 제식 태도를 뽑아 들었다. 이런 상황은 수없이 많이 겪어왔지만, 이번에 상대하는 적은 바로 지휘관, 자신이었다.
지휘관은 경고 사격을 위해 호신용 권총을 빼 들었지만, 구조체들은 신경 쓰기는커녕, 멈추려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난 네가 저항하지 않는 걸 권하겠어. "통솔자"의 뜻은 네 목숨을 살려두는 거니까. 네가 너무 강하게 저항하면, 이 녀석들이 살살하지는 않을 거야.
드몽의 입에서 나온 "통솔자"가 누구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구조체들이 호신용 권총의 유효 사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탕- 탕! 두 발의 총소리가 울렸지만, 총알은 한 구조체의 다리 부위 아머를 명중시키는 데 그쳤다.
하, 이런 상황에서도 봐주는 거냐!? 날 우습게 보지 마!
배신한 구조체가 비웃으며, 다시 한번 걸음을 내딛으려 했다. 하지만 총을 맞은 다리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어, 안 돼. 저 지휘관이 우리의 방진 장치를 조준하고 있어!
다양한 환경에서의 전투를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이 구식 구조체들의 다리 아머는 방진 기능도 겸하고 있긴 하지만 겨우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배신한 구조체들은 지상에서 장시간 활동하게 되면서 제대로 된 수리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이로 따라 방진 장치 안에는 많은 양의 모래와 먼지가 쌓여 있었다.
만일 방진 장치가 파괴된다면, 많은 양의 모래와 먼지가 관절 부위로 동시에 유입되면서 내부 감지 시스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삐-!] 이 녀석 어떻게 알았지!
다시 방아쇠를 당기자, 총성과 함께 빠르게 접근하던 또 다른 구조체가 쓰러져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쓸모없는 것들. 인간 한 명을 잡지 못하는 거야? 이봐! 너희들 어서 공격해! 이제 총알이 얼마 없을 거야!
드몽이 다시 손짓했지만, 주변에 그의 명령을 듣는 구조체는 없었다.
이봐! 어서 움직여. 귀먹었어!?
어? 저들을 말하는 거야?
드몽이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자신의 두 부하가 이상한 자세로 머리 위로 들어 올려지고 있었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서로의 머리가 부딪치는 걸 봤다.
노, 녹티스!?
의식을 잃은 구조체를 버린 빨간 머리의 구조체가 입을 씰룩거리며 드몽 앞에 나타났다.
너,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방금 전 이사루스에게 연락을 시도했을 때, 단거리 통신 범위를 넘어서 연락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다른 누군가의 통신 신호를 발견했다.
"배신"을 한 녹티스가 지휘관의 구조 요청에 응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모험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안녕. 구조 요청을 한 게 너였냐?
이런 멍청한 놈! 도망쳤으면서 통신 단말기는 왜 파괴하지 않는 거야!
헤헷, 그거참 미안하게 됐네, 마침 까먹었어... 그리고 난 도망간 게 아니라 전술적 후퇴라고!
음흉한 미소를 지은 녹티스가 드몽에게 접근했다.
이거 참 공교롭다니까. 내가 마침 날 모함한 놈을 찾으려던 참이었거든! 너였구나~
하지만 내 폭탄 제조법은 네가 알 수가 없었을 텐데... 혹시...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은 녹티스가 드몽을 빤히 쳐다봤다.
누가 너에게 사주했지? 어서 말해!
녹티스에게 조금씩 몰린 드몽의 시선이 다시 지휘관 쪽으로 쏠렸다. 하지만 지휘관의 총구는 이미 드몽을 겨누고 있었다.
쳇...
드몽의 실루엣이 순식간에 흐릿해졌다. 지휘관이 서둘러 총을 발사했지만, 총알은 드몽을 통과해 뒤쪽 땅에 박혀버렸다.
입체 잔영이라니... [삐!], 도망쳐버렸어!
이곳은 절벽이었기 때문에 드몽이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그 마을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녹티스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
오케이!
밀밭을 지나자, 규모가 꽤 큰 마을이 보였다. 건물들은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상당히 오래된 모습이었다.
그 마을은 공중 정원의 도움을 받아 건설됐거나 황금시대부터 존재해 온 보육 구역들과는 거리가 꽤 있어 보였다.
잠깐. 여기 사람들 좀 이상한 거 같지 않아?
녹티스가 말한 것처럼, 마을 주민들은 각자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곁눈질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긴 인간뿐만 아니라, 구조체도 있는 것 같아. 근데 어디서 온 걸까?
지휘관이 부르는 소리엔 관심이 없었던 녹티스는 바로 길가에 있는 주민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하하하. 여기 이상한 로봇도 있어! 이것도 모두 여기 주민인 건가?
녹티스는 길가에 말라붙은 밀짚을 치우고 있던 로봇을 가볍게 두드리며 크게 웃었다.
어? 귀찮아. 무슨 일이야?
녹티스가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주변에 있던 많은 주민이 모여들어서 자신을 에워싸고 있었다.
이 주민들의 손엔 어느새 각종 무기가 들려 있었고, 방금 전까지 밀짚을 치우던 로봇의 손에도 소리가 나는 벌목도가 쥐여져 있었다.
설마... 우리가 포위당한 거야?
녹티스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는 듯 전투 준비를 취한 뒤, 무장한 주민들의 몸을 빠르게 훑고 있었다.
누구부터 시작하지? 저 전기톱을 든 가면 쓴 큰 녀석?
뭐야! 그럼, 무기를 든 저들이 우리랑 수다라도 떨려고 한다는 거야?
그때, 주민들 사이로 서서히 길이 열리기 시작했고, 누군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위엄을 풍기던 단호한 발걸음이 멈춰 서자, 주변 주민들이 선두에 선 남자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과장된 헤어스타일의 주민이 무릎을 꿇고, 그의 손에 든 시가를 불붙여주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어!? 넌 또 뭐야!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네.
뭐라고? 진짜 죽고 싶냐? 아주 보내줄까보다!?
[삐-!], [삐삐!], [삐--삐!].
선두에 선 남자는 침묵한 채, 자신을 둘러싼 주민들의 떠들썩함을 내버려뒀고, 그의 손에 들린 시가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달려들려고 한 녹티스를 손을 뻗어 강제로 막아선 지휘관이 천천히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름이...
너희들 이름 말이야...
지휘관은 녹티스와 눈을 마주친 후,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은 녹티스야. 이 대원은 [player name]이고, 네 이름은?
편하게 맥스라고 부르면 돼, 아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이장"이라고 불러도 되고.
"뉴 오클레르 마을에 온 걸 환영한다"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유감이군.
손에 든 시가를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인 맥스는 짙은 연기를 녹티스의 얼굴에 뿜어냈다.
여긴... 너희를 환영하지 않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