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오클레르 마을"
녹티스는 걸어가면서 머레이가 준 쪽지를 펼쳐봤다. 쪽지엔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선 주소가 적혀있었다.
그 녀석이 정말 살아 있다면...
녹티스는 왼쪽 로봇 팔로 쪽지와 사진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갑자기 튀어나온 전기 불꽃이 쪽지와 사진을 불태워버렸고 눈 깜짝할 사이에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하, 내가 직접 그 녀석을 다시 지옥으로 보내주겠어.
녹티스는 손바닥 위에서 서서히 흩어지는 재를 바라보며, 마음을 굳힌 듯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왼팔이 잘리면서 느껴졌던 환상통이 다시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로봇 팔 위에 이상한 것이 덧대어진 걸 의식했다.
이게 뭐지?
로봇 팔의 은폐된 구석에 귀엽게 입을 벌리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카툰 강아지 스티커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이건 누가 봐도 21호가 한 짓이 틀림없었다.
젠장. 이건 내 최신 로봇 팔이란 말이야! 삼칠이 녀석, 언제 붙인 거야! 죽여버리고 말겠어.
녹티스는 이를 악물고 본능적으로 스티커를 떼어내려고 손을 뻗었다가 잠시 멈칫하더니 또다시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
쳇, 됐어. 다시 보니 나름 멋진데... 이번만큼은 봐준다.
녹티스는 웃으며 손바닥에 잔류한 재를 털어버렸다.
이젠... 슬슬 할 일을 하러 가야겠어.
감사원의 사무실 안은 항상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으로 가득 차 있어서, 마음에 죄가 있는 녀석들은 증거를 들이대기도 전에 벌써 겁에 질려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의자에 우아하게 앉아서 블랙커피를 마시는 붉은 머리의 구조체에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좀 싱거운데. 원래 구조체의 미각 수신기는 별로라서 말이야. 다음엔 좀 더 진한 커피를 준비해 줬으면 해.
베라의 도발적인 말에도 눈앞의 감사원 구조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베라 씨는 오늘이 최종 수사 마감일이라는 걸 알고, 특별히 감사원까지 와서 '적극적으로' 우리 일을 도와주는군.
감사원의 중요한 업무를 방해할 순 없잖아. 물론, 너희들에게 증거라는 게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야.
있을 거야.
이스마엘이 가볍게 내뱉은 말에 베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웃음을 거뒀다.
뭐라고?
이스마엘은 미소를 유지하면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그러니까 내 말은... 증거가 있을 거라고, 곧 나타날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의 문이 열렸고 감사원 소속인 구조체가 이스마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든 저장 장치를 건네준 뒤 조용히 떠났다.
너희들 모두 전투의 세부 사항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이 저장 장치 덕분에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대체 뭘 하려는 거야?
이 백도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구속기에 기록된 전투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어.
아주 세밀한 데이터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누가 구속기를 풀었는지 정도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어.
21호의 기체 자료는 쿠로노 쪽 사람들만 가지고 있었고, 감사원이 백도어 프로그램을 손에 넣었다는 건 분명 쿠로노의 도움이 있었다는 걸 의미했다.
21호의 의식의 바다가 겨우 안정됐는데, 너희들은 또다시 21호를 미치게 만들고 싶은 거야?
실행 여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너에게 달려있어.
베라는 이스마엘을 노려보며 입을 열지 않았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네, 베라 씨, 천천히 생각해 봐. 어쩌면 그 전투에 대한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잖아.
베라의 상황, 21호의 상황 그리고 너희들이 이합 재난 구역이라 부르는 그 지역과 거기에서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이합 생물에 대해서도 말이야.
미안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
자동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누군가 손을 내밀어 문을 거칠게 밀고 들어왔다.
당신은... 케르베로스 소대의 녹티스 씨.
아무리 침착한 이스마엘이지만, 녹티스의 깜짝 등장에 의혹을 금치 못했다.
녹티스? 여기 왜 왔어. 당장 돌아가.
하하. 대장. 오늘 내가 찾는 사람은 네가 아니야.
이스마엘은 녹티스의 뒤에 익숙한 이가 서있는 걸 발견했다.
라스티. 네가 녹티스를 여기로 데려온 거야?
자기 이름을 들은 라스티는 문틀을 거의 다 채운 녹티스의 옆을 힘겹게 비집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네! 저 여기 있어요! 선배님, 혹시 화나셨나요?
한숨을 내쉰 이스마엘이 다시 말을 이었다.
화난 거 아니야. 하지만 내가 오늘은 관련 없는 이를 감사원에 데려오지 말라고 전에 얘기했었잖아.
하지만 녹티스는 관련 없는 이가 아니에요. 자수하러 왔다고 했어요.
이스마엘은 손으로 턱을 괸 채 녹티스를 조용히 바라봤다. 하지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자수라...
맞아. 사실 삼칠의 제한 장치를 풀어준 사람은 나야!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잠시 침묵에 빠졌다. 이윽고 이마를 짚은 베라가 입을 열었다.
그만 됐어. 녹티스. 바보야, 너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물론 알고 있지. 오히려 대장은... 내가 바꿔치기한 것도 모르고 있었잖아.
녹티스는 하하 웃으면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리 준비해 둔 구속기의 마그네틱 키를 꺼냈다.
선배님. 이건 우리가 21호에게서 회수한 마그네틱 키와 똑같은 거예요.
하지만 현장에서 찾은 마그네틱 키는 전투 후에 심하게 손상돼서 데이터를 불러올 수가 없었다.
라스티, 확인해 봐.
장난기 어린 표정의 라스티는 이스마엘에게 간단하게 경례를 하고는 마그네틱 키를 들고는 자리를 떠났다.
녹티스. 어디서 이걸 구했는진 모르겠지만, 위증과 증거 조작은 매우 심각한 범죄라는 걸 알고 있길 바라.
태연하게 의자에 다시 앉은 이스마엘은 미소를 짓고 있는 녹티스를 봤다.
네 말이 다 사실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할 거야.
빈정거림을 숨기지 않은 녹티스가 베라를 슬쩍 쳐다본 뒤, 무심히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나 녹티스. 내가 한 일은 내가 책임져.
그럼, 녹티스. "범행 과정"을 대략 설명해 주겠어?
우선 초반에 난 베라의 무기 상자에 접근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마그네틱 키를 바꿔치기 한 거지. 베라가 들고 다닌 건 처음부터 가짜였어.
그건 물론 거짓말이었다. 녹티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스마엘의 반응을 훔쳐봤지만, 그녀에게서 이상한 기색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녹티스가 계속 이야기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컥. 그러고 나서 몇몇 "기술자"들을 찾아갔어. 뭐,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이 날 도와서 권한을 수정해 줬지.
그럼, 왜 이런 일을 하게 된 거지?
간단하지. 생각해 봐. 옆에 있는 동료가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미치광이인데, 누구든 21호를 제어할 수단을 갖고 싶지 않겠어?
머레이가 녹티스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사전에 모두 알려줬다.
그럼, 왜 그때 21호의 제한 장치를 풀었지?
그때, 삼칠이랑 베라가 가장 강력한 적을 막고 있었어. 그녀들이 실패했다면, 다음으로 고생하는 건 우리였을 거야.
그래서 적어도 그녀들이 시간을 끌 수 있게 해주고 싶었어. 그래서 삼칠의 제한 장치를 풀었지. 혹시 그 과정에서 베라도 같이 처치된다면, 누구도 마그네틱 키가 가짜인 걸 알아채지 못할 거로 생각했어.
옆에서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었던 베라는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오? 난 네가 그렇게 똑똑한 줄은 몰랐는데, 남의 손을 빌려 죽이는 수법까지 알고 있었다니.
과찬이야. 난 언제나 이렇게 똑똑했어.
베라는 녹티스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냥 말썽을 부리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에 그를 막지 않았다.
그럼, 왜 인제야 "진실"을 말하는 거지?
그건 너희들이 이것저것 조사하니까, 곧 내 차례가 올 거로 생각했어. 들키기 전에 자수하는 게 처벌도 덜 받지 않겠어?
네가 조금만 더 일찍 이걸 깨달았다면, 우리 모두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을 거야.
이스마엘은 노트북 형태의 단말기를 닫으며, 미소를 띤 채 베라를 바라봤다.
녹티스가 말한 범행 과정의 사실 여부는 곧 알 수 있을 거야.
……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 감사원의 사무실 문이 다시 열렸다. 조사를 위해 마그네틱 키를 가져갔던 라스티가 돌아와 이스마엘의 귀에다 조용히 말을 건넸다.
선배님! 이 마그네틱 키... 아무래도 진짜 같아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와 차이가 없어요. 그리고 사용 기록에도 녹티스 혼자 사용한 것으로 나와 있어요.
알았어. 고마워.
이스마엘은 라스티가 건넨 마그네틱 키를 받아 들고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녹티스. 조사 결과 이 마그네틱 키는 진품이며, 그 안에서 네 사용 흔적만 발견할 수 있었어.
하지만 이전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 제출한 작전 보고서에 따르면, 넌 전 과정을 그 지휘관과 함께 행동했어. 그렇다면 언제 마그네틱 키를 사용할 수 있었던 거지?
녹티스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듯,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음...
고개를 저은 베라가 녹티스를 힐끗 바라보며,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 옆에서 라스티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작게 탄성을 질렀다.
아. 선배님. 오늘 아침에 너무 바빠서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이 작전 보고서를 수정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 지금 방 안에는 우리 둘뿐이니까요.
라스티가 손뼉을 치자 갑자기 방 안의 불빛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고, 작전 요약을 보여주던 스크린이 강한 교란을 받은 것처럼, 모든 화면이 사라졌다.
이렇게 되면 도청이나 감시 장치도 일시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에 있더라도 말이죠.
이 감사원의 여자는 그레이 레이븐의 구조체 대원들이 모두 임무 수행을 위해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해 갑자기 찾아왔다. 그녀의 목적은 꽤 흥미로웠다.
에이... 이렇게 부탁하는데도 거절하시다니요.
한숨을 쉰 라스티가 매우 자연스럽게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목적이라면... 사실 제 목적은 아니에요. 누군가의 부탁을 받은 거죠.
라스티는 손가락으로 앞머리를 말아 올리며, 볼을 부풀리고는 마음에도 없는 듯 중얼거렸다.
라스티는 감사원의 일원으로 등급이 높지는 않았다. 그래서 관련 없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난처한 상황에 빠뜨릴만한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건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제가 완전히 상관없다고는 할 수 없어요.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이번 조사는 쿠로노 쪽에서 신고한 거예요. 그들이 왜 베라를 겨냥하고 싶어 하는진 아직 알 수 없어요.
라스티가 볼을 괴고, 킥킥 웃으며 이쪽을 봤다. 그리고 그녀가 한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사실 저도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한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남의 손에 놀아나는 건 정말 싫거든요.
사실은 이건 녹티스가 제안한 거예요. 그러니 지휘관님도 한번 고려해 보셨으면 해요.
라스티는 자백서를 꺼내 보여줬다. 거기엔 녹티스가 직접 쓴 사건 경과가 적혀 있었다.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둘러댄 세부 사항들이 몇 가지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전투 중에 모두와 함께 있었던 그만이 알 수 있는 정보였기 때문에 거짓인 거 같지는 않았다.
녹티스처럼, 사람들에게 문제아 취급받으며, 여기저기 걷어차이는 느낌은 저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웃음을 거둔 라스티가 드물게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작전 보고서를 다시 내밀었다.
전 녹티스에게 케르베로스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결심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겠죠.
대퇴부를 톡톡 치며 일어선 라스티에게 언제나처럼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다시 떠올랐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작전 보고서는 여기 두고 갈게요. 어차피 부탁받은 일은 다 마쳤으니까요.
작전 보고서와 녹티스의 사건 경과를 바라보던 지휘관은 결국 한숨을 내쉬고 펜을 들었다.
이스마엘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 작성한 작전 보고서를 살펴봤다. 그런데 내용 중 일부가 수정되어 있었으며, 특히 중요 수정 부분은 녹티스의 단독 행동 시간이었다.
모든 증거가 일치하네. 이렇게 되면, 감사원 측에서도 반박할 부분이 없을 거 같아.
베라를 바라본 이스마엘이 빈틈없는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미안하게 됐어. 케르베로스 소대 대장 베라. 귀중한 시간을 빼앗아서...
이스마엘은 녹티스를 바라보며, 얼굴에는 더 짙은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녹티스. 넌 작전 도중에 임의로 행동했고, 승인 없이 21호의 제한 장치를 해제한 것에 대해...
최종 처벌은 나중에 전달되겠지만, 안타깝게도 넌 케르베로스 소대에 더 이상 남아 있을 수 없게 될 거야.
아... 알고 있어.
녹티스는 태연하게 인사를 한 뒤 문을 밀고 나가버렸고, 베라와는 눈길 한 번 교환하지 않았다.
베라 씨... 정말 훌륭한 대원을 뒀네.
하... 녹티스는 더 이상 내 대원이 아니야.
베라를 문밖으로 배웅한 라스티가 아무렇지 않은 듯 이스마엘에게 물었다.
선~배~님~ 정말 이렇게 사건을 마무리하실 생각이에요?
그래. 이 정도면 저 잔소리쟁이들을 달랠 수 있겠지. 아주 "확실한 증거"가 있잖아, 안 그래?
그들은 왜 베라한테 그렇게 집착하는 걸까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요. 그런데 말이죠, 선배님도 이 사건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던데요?
이스마엘은 무심코 임무 보고서에 언급된 이합 재난 구역을 힐끔 봤다. 그것은 반이중합 탑을 기반으로 생성된 특별한 적조 이중합 구역이자 새로운 형태의 이합 생물이 탄생한 곳이었다.
라스티. 내가 질문 하나 해도 될까?
에이~ 선배님은 왜 항상 질문으로 질문에 답하시는 거예요? 그래도 뭐, 일단 질문하시죠~
라스티의 킥킥 웃으면서도 이스마엘의 모든 행동을 놓치지 않았다.
넌 인간이 동물이라고 생각해?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해 온 거잖아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동물이 맞긴 하죠.
그럼, 구조체는? 우리를 인간이라고 생각하니?
라스티는 이스마엘의 질문에 담긴 진짜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우리요? 인간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인간일 때 좋아했던 옷이나 화장이 구조체가 된 후에도 변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음. 훌륭한 대답이군.
이스마엘은 미소를 지었지만, 라스티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고 다시 임무 보고서를 한 장씩 넘겨보기 시작했다.
세상이 변하고 있나 봐. 그렇지?
야... 거기 서。
베라가 걸음을 멈추고 감사원을 떠난 후, 아무 말 없이 앞장서서 걷던 녹티스를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인데...
이제 슬슬 말해줄 때가 됐잖아. 네가 죄를 뒤집어쓰겠다고 이래저래 수고한 이유를 말이야. 너 혼자 감사원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귀신을 속여라.
쳇...
반박할 수 없었던 녹티스는 오랫동안 침묵했다가, 베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가 꼭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어떻게든 찾아내고 싶은 진실이라고 할 수도 있지.
베라는 전혀 놀라지 않은 기색이었고, 묵묵히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나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어. 근데 네가 케르베로스를 떠난다고 해서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야.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 몸에게는 방법이 다 있으니까. 대장은 알 필요 없어.
쳇... 대장? 난 이미 바보 같은 너의 대장이 아니야.
녹티스의 얼굴엔 잠시 서글픔이 스쳐 지나갔지만, 곧 장난스럽게 웃었고, 손을 흔들며 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이것도 나쁘지 않잖아. 어차피 난 남에게 빚지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냥 이걸로 너에게... 케르베로스에게 빚진 거 갚는 거로 생각해.
베라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멀어져 가는 녹티스를 보며 코웃음쳤다.
흠, 다 갚았다고? 케르베로스의 이름은 그렇게 저렴하지 않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