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5 분노의 황사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R05-1 봉인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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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가 거친 호흡 소리와 함께 공기를 내부로 빨아들이면서, 후각 감각 기관에 구조체 순환액의 짙은 향을 가져다줬다.

구조체에게 호흡은 필수 행위가 아니었지만, 이 순간 그에겐 인간으로서의 본능만이 남아있었고, 오로지 그것만이 그를 쓰러지지 않게 지탱해 줬다.

남은 오른팔로 몸을 지탱한 그는 반드시 죽여야 할 사람이 있는 벼랑 끝으로 힘겹게 걸어갔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대답해. 내 질문에 어서 대답해!"

이를 악문 그는 벼랑 끝에서 발버둥 치며 일어서려는 남자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는 평소대로 화를 불러일으키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언제나 말 없고, 차분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었던 그의 유일한 "형제".

하지만 그 무거운 침묵이 오히려 그의 마음을 깊이 찔렀다. 그리고 어디에도 쏟아낼 수 없었던 분노와 슬픔이 터져 나왔다.

"그래. 좋아! 아무 말도 안 하겠다는 거지?!"

이를 악문 그는 떨리는 손으로 옆에 떨어져 있던 흠집투성이의 제식 태도를 있는 힘을 다해 주워들었다.

"그렇다면..."

"죽어!"

………… ……

"하... 하..."

"에취!!"

휴게실에 누워서 낮잠을 자던 녹티스는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녹티스가 눈을 뜨자, 시선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꼬리를 안고 자신을 향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21호였다.

크응!!

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잠깐만.

녹티스는 코를 만지더니, 콧등에서 투명한 털 한 올을 떼어냈다.

이건 네 꼬리털이잖아. 삼칠아! 또 내 얼굴 위에 꼬리를 올려놨었냐! 왠지 이상하다 했다니까, 이것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코가 간질거렸던 거였어.

21호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두툼한 꼬리를 자기 몸 뒤로 숨겼다.

21호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근데 녹티스가 내 꼬리에다 재채기를 해서 엄청 더러워진 건 분명해!

위생에 신경 쓰지 않는 녀석에게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대장이 말했거든!

하. 좋아. 누가 누굴 가르친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네!

녹티스와 21호는 평소처럼 폼을 잡고 대치를 시작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에게 달려들어 싸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몇 초도 못 버티고 21호의 굳었던 등이 서서히 풀리더니, 기운이 빠진 듯 바닥에 엎드려 기지개를 켰다. 그러자 녹티스도 따라서 한숨을 쉬며 주먹을 거뒀다.

쳇, 괜히 힘 빠지네.

21호는 나가서 놀고 싶단 말이야.

이합 재난 구역 사건이 마무리된 후, 21호는 무단으로 기체의 제한을 풀었던 관계로 까다로운 감사원에게 발각되어 감시를 받게 됐다.

감사원의 조사가 종결될 때까지 케르베로스 대원들은 소대 휴게실 주위 제한된 구역에서만 대기해야 했다.

야. 삼칠아, 전에 감사원들의 대화를 엿들었지? 혹시라도 그녀들에게 뭔가 책잡히게 된다면, 베라는... 어떻게 될까?

귀가 축 처진 채 바닥에 엎드려 있던 21호는 바닥에 널브러진 캔을 소일거리로 쌓고 있다가, 잠시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

음... 느낌이 묘한 그 핑크 머리 감사원이 그러던데... 만약 사실이라고 밝혀진다면 21호는 조사받으러 끌려가게 될 거고, 그리고...

대장은 직위 해제당한 뒤, 더 이상 이곳에 남을 수 없어.

21호는 눈을 깜빡이며 케르베로스 소대의 휴게실 문을 바라봤다. 오늘은 감사원의 최종 조사일이었는데, 베라는 감사원에 간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만 지나면, 감사원도 더 이상 군부의 집행 부대 일에 간섭할 수 없게 된다.

21호는 대장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

다리를 꼬고 휴게실 테이블 위에 살짝 걸터앉은 녹티스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 평소처럼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하, 삼칠이 넌 여전히 베라 없으면 안 되는 꼬맹이잖아.

녹티스는 21호가 평소처럼 화내며 자신과 다투기를 기대했지만, 21호는 고개를 흔들며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니. 21호는 예전과 달라. 대장이 없으면 안 돼서 그런 게 아니고, 이곳을 떠날 수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야. 난 여기 남고 싶고, 대장 곁에 있고 싶어서 그래.

쳇, 예전과 같지 않다더니, 확실히 말주변은 늘었구먼.

녹티스는 손에 들고 있던 빈 캔을 휙 던졌다. 그러자 캔이 공중에서 몇 바퀴를 돌더니, 21호가 쌓아 놓은 캔 탑 정상에 정확히 떨어졌다.

오오! 야, 삼칠아, 봤어? 나 대단하지?

21호는 녹티스를 힐끗 보더니 성의 없는 박수를 보냈다.

녹티스는 정말 한심하다니까.

네가 뭘 알아. 이 신규 로봇 팔로 이렇게 정밀하게 움직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녹티스가 일어서서 허공을 향해 주먹을 몇 번 휘둘렀다. 그가 일으킨 주먹 바람에 3~4m 떨어진 캔 탑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정말 멋있지 않냐!

21호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녹티스가 장난으로 일으킨 주먹 바람을 막기 위해 꼬리로 캔 탑을 보호했다.

으으... 아무리 그래도 21호의 클로가 더 강하다고 생각해.

그 섬뜩한 숲에서 돌아와 며칠이 지난 후, 녹티스는 갑작스럽게 과학 이사회에 신청서를 제출해 왼팔 전체를 로봇 팔로 변경했다.

마치 무언가를 예상했던 것처럼 말이다.

팔꿈치 관절의 움직임이 아직도 좀 어색하네... 이러면 팔꿈치로 공격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어이, 삼칠. 넌 집이나 잘 지키고 있어. 난 과학 이사회 좀 다녀올게.

안 돼! 대장이 말했어. 감사원 녀석들에게 빌미를 줘선 안 된다고, 대장이 돌아올 때까지 휴게실을 떠나면 안 돼.

녹티스는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흔들며 휴게실을 나서려고 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감사원 녀석들이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는 상대는 너랑 베라잖아. 나하곤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고.

녹티스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전체 조사 과정에서 감사원들은 녹티스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녹티스가 휴게실을 떠난 후, 과학 이사회 쪽으로 이동하지 않았다는 걸 눈치챈 사람도 없었다.

집행 부대의 휴게실 구역 변두리에는 비어 있는 사무실이 꽤 있었다. 이곳은 개인이나 각종 기관이 신청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불법으로 차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평소대로라면 사람 이외의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불이 켜진 곳이 한 곳만 있었다. 금발의 청년이 머리를 문지르며, 파일 더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머레이는 명목상 케르베로스 소대의 지휘관이었지만, 케르베로스의 성격이 다소 특별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케르베로스의 전투나 관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머레이는 여태 대원들 배후에서 조용히 뒷수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것도 니콜라 사령관이 그를 케르베로스 소대 지휘관으로 임명한 이유 중 하나였다.

휴...

익숙해진 일이었지만, 이번 감사원의 개입이 꽤 골치를 썩이게 했고 오랫동안 커피에 시달렸던 위도 조금씩 '항의'를 하는 것 같았다.

역시 쿠로노와 관련이 있었던 거야?

감사원의 감시를 피해 이곳에 방금 도착한 녹티스가 머레이 앞에 섰다.

하하,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하지. 이번 사건이 그렇게 심각한 위반 사항은 아니었음에도 감사원들이 죽기 살기로 물고 늘어지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나도 한낱 지휘관 신분이라, 감사원의 조사 행동을 마음대로 간섭할 수는 없어.

머레이는 다소 난처한 척 말을 꺼냈지만, 마음속으론 만반의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다만 정말 처리하기 시작한다면,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의 골칫거리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감사원에 있는 그 여성 구조체가... 정말 까다롭더라고.

이중합 탑 소동 때, 잠깐 마주친 적이 있는 사이지만, 이스마엘은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이래서 내가 너한테 기대를 하지 않잖아. 내가 부탁했던 일은 끝낸 거야?

머레이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마그네틱 키를 꺼내 녹티스 앞으로 밀었다.

그냥 물어보는 건데, 진짜로 결심한 거지?

쓸데없는 소리 하긴...

녹티스는 머레이가 마음을 바꿀지 두려운 듯, 마그네틱 키를 재빨리 집은 뒤 자기 옷 주머니 안에 넣었다.

좋아. 이 마그네틱 키는 베라가 가지고 있는 거랑 똑같아. 이미 안에 든 자료는 조작해 뒀어. 그리고 해제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사람도 너로 설정해 뒀어.

오! 정말이네. 내가 미처 생각 못했어. 고마워, 나중에 내가 술 한잔 살게!

머레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잔에 담겨 있는 음료를 바라봤다. 리의 권유를 듣고 블랙커피 대신 위에 좋은 구룡 청차가 담겨있었다.

고맙긴... 이건 나한테도 도움이 되는 일인데 뭐.

하하하. 그냥 하는 말이야. 널 다시 볼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잖아.

녹티스가 정말로 21호의 제한 장치를 푼 일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다면, 감사원의 쿠로노 세력도 더 이상 베라와 21호에게 손을 쓰지는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사건의 책임자인 녹티스는 더 이상 케르베로스 소대에 남아 있을 수 없게 된다.

헤, 어차피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니까, 어딜 가든 상관없어. 하지만 저 두 녀석은 달라.

베라와 21호가 없는 케르베로스는 진짜 케르베로스라 할 수 없지.

머레이는 녹티스를 올려다보며 결국 말하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아! 그리고 네가 부탁했던 그 일도 결과가 나왔어.

녹티스는 머레이가 꺼낸 사진을 보며 더없이 진지한 표정을 보였고, 그의 시선은 사진 속 극도로 흐릿한 인물의 실루엣에 집중했다.

녹티스가 갑자기 찾아와서 이번 사건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겠다고 말했을 때, 머레이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 생각해 보면, 녹티스는 아마 이번 기회를 빌어 케르베로스 소대를 떠나, 사진 속의 그 사람을 조사하려고 작정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한때 녹티스와 함께 정화 부대 소속의 대원이었던 것이다.

집행 부대가 지상의 정화 구역 근처에서 작전을 수행할 때, 네가 찾는 사람과 닮은 구조체를 본 적이 있는데, 위치는 여기야.

음. 고마워.

녹티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진과 주소가 적힌 종이를 챙긴 후, 머레이에게 격식에 맞지 않는 군인식 경례를 한 다음 머레이의 사무실을 떠났다.

머레이는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알던 녹티스는 자기에게 경례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케르베로스 소대 전체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참...

그는 한숨을 쉬더니 오랜만에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책상 위에 놓인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조금이나마... 지휘관다워진 걸까?

머레이는 관자놀이를 두드리며 한참을 고민하더니, 책상 서랍을 열고 최근에 받은 명함을 꺼냈다. 그리고 명함 위에 적힌 이름을 유심히 봤다.

마지막으로 보험을 하나 더 들어야겠군.

머레이는 특별히 개조된 비밀 통신 채널을 통해 명함에 적힌 연락처로 연락했다.

안녕하세요. 머레이 님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