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4 그 꽃이 꿈속으로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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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4-15 지옥에 묻힌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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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아.

하지만 그들은 잘못한 게 없잖아! 그들은 죄가 없다고!

넌 신을 믿어?

신?

신이 악을 막으려 하는데, 막을 수 없다면 그 신은 무능한 거야.

신이 악을 막을 수 있지만, 막지 않는다면 그 신은 사악한 거야.

신이 악을 막으려 하고 그럴 능력이 있다면, 왜 세상엔 악이 존재할까?

신이 악을 막고 싶지도, 능력도 없다면 그걸 신이라 할 수 있을까?

……

고난과 죄악은 이 세계에서 끝에서 두 번째로 잔혹한 거야.

끝에서... 두 번째?

펑!

이곳에서 요람이 부활했음을 선언한다!

그리고 우린 위선적인 신앙으로 가득 찬 이 건물을 접수했다!

우린 이곳을 출발점으로 위선적인 구룡의 폭군 통치를 타도할 것이다!

우리가 이 건물을 가져다 사용하는 동안, 모두와 밀접히 협력하고...

야. 용신.

응?

요람들이 실험에 대해 말하는 거 들었어?

스승님 아래에 있는 많은 제자가 참가하러 갔어.

다들 전자기기로 극락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면, 수행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어.

설마 너도 이런 걸 믿는 거야?

내가... 믿을 리 없잖아. 그냥 극락세계라는 게 현실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지를 알고 싶을 뿐이야.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어. 난 그 실험이 위험하다고 생각해.

나에게 있어 환상이나 현실은 모두 한순간의 생각일 뿐이야.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나에게 조건을 제시했어.

친구로서 네가 그 실험에 참여하는 걸 막고 싶어.

난 야항선에 있을 때부터 현실이 무엇인지 찾고 있었어. 실제로 그걸 찾아내기도 했었지.

하지만 그 대가로 난 내 친구에게 상처를 입혔고, 지켜야 할 것을 잃어버렸어.

알겠어.

이렇게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고, 그들이 거짓된 세계에서 방황하지 않을 수 있다면 난 기꺼이 대가를 치를 거야.

난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고 있어.

하지만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꿈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 그래서 그들은 꿈을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지. 그건 너무 슬픈 일이잖아.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해야 하는 속죄 또는 내 숙명일지도 몰라.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모두 찾았어?

전부는 아니지만 비리야가 남긴 기술과 야항선 동료가 보내온 마지막 보고서는 모두 여기에 있어.

휴...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서 다행이야.

암살 사건 이후, 비리야가 우리 조직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현상금을 3억이나 걸었다고 들었어.

흥. 꿈도 크지.

새로운 DEBUG 보고서가 있으면, 실험 구축도 곧 시작할 수 있겠어.

비리야 그 자식... 참으로 귀찮은 걸 남겼어.

원래대로라면 그런 규모의 구축을 완료하는 데에는 강력한 연산 능력을 갖춘 관리형 AI가 적어도 한 대는 있어야 해. 하지만 지금은 부딪혀 볼 수밖에 없어.

알겠어. 나이도 적지 않은데, 너무 늦게 자지 마.

하, 편안히 잠을 잔 게 언젠지도 모르겠다.

구룡의 곡이든, 비리야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요람"을 위하여.

"요람"을 위하여.

스승님! 그들은 모두 떠났어요.

갔어? 잘 갔군. 본심을 지키지 못한다면 아무리 수행해도 소용없지.

스승님. 저도 이별을 말씀드리려고 왔어요.

허? 너도 그 실험에 참여하고 싶은 것이냐?

아니요. 전 그곳에 가서 모두를 데려올 거예요.

네 친구도 그들과 함께 간 것이냐?

네.

이번 일은 어찌 될지 예측할 수 없고, 스승님을 혼자 두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해요.

안 될 것 없지.

동의하신 건가요?

가고 안 가고는 너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네. 알겠어요.

하나의 등불로 천 개의 등불을 켤 수 있다면, 등불 하나는 꺼져도 상관없겠지.

성공했어! 대규모 복합 추출 및 인간 데이터 백업 구조가...

코어는?

야항선에서 온 남성 실험체 013호야. 우리에게 연산 능력이 강한 AI가 없으니, 인간의 뇌를 저장 장치로 대체할 수밖에 없어.

연산 능력은 좀 떨어지겠지만, 어쩔 수 없지.

백업한 인간 데이터에 야항선 동료가 보내준 DEBUG 보고 내용을 결합하면, 가상 환경에서 로봇을 제어하는 게 가능해질 것 같아. 하지만 실험 재료가 없어.

야항선이 있잖아. 그들이 귀항하면 널린 게 사람인데 뭐.

좋은 생각이야. 근데 그렇게 되면 전투는 피할 수 없을 거 같은데?

선배님들이 남긴 그 로봇의 전투력이 꽤 높은 거 같던데, 쓸모가 있을 거야.

그... 다음은?

뭔 다음?

이 기술은 다 개발했어. 그다음엔 어떻게 할 거야?

일단 계속 진행해. 실험용 로봇과 인간은 내가 마련해 볼게.

알겠어.

그런데 모두 죽은 거 맞아?

내가 생물학 전문가는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이론상으론 죽었다고 할 수 있어. 게다가 비리야가 남긴 기술을 완전히 분석할 수는 없어서 추출과 백업을 완성하려면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어.

정말로 죽은 거 맞아? 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데, 그걸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무슨 뜻이야?

죽은 사람은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어. 하지만 그들은...

모... 모르겠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제 미래는 부모님께서 정해주셨어요.

부모님은 모든 것을 통제했고, 전 소원조차 가질 수 없었죠.

그건 정말 지옥, 아니 지옥도 그보단 살기 좋았을 거예요.

부... 부탁할게요...

제발... 부탁이에요. 절... 죽여 주세요.

전 억울해요! [삐삐!]

그 사람들은 사건의 진실 따윈 신경 쓰지 않아요! 그냥 질투하는 거라고요.

콜록콜록... 콜록콜록...

공기를 마시는 것 같지 않아요. 이건 마치... 콜록...

가슴이... 도와주세요. 아이가... 보고 싶어요... 콜록콜록...

죄를 지은 자, 이 안에서 구원받으리라.

절망하는 자, 이 안에서 희망을 얻게 되리라.

죽어가는 자, 이 안에서 영원한 삶을 얻으리라.

그들은 내 안에서 달리며 분노했다.

그들이 인간이었을 때, 그들의 고통은 곧 다른 이들의 극락이었다.

그들이 죽어 윤회했을 때, 다른 이들의 고통은 곧 그들의 쾌락이었다.

고독, 비원, 증오, 공포 모든 것이 순환했다.

미고

이십여 년 전, "요람"은 그에게 실험에 협조한다면,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그 남자는 찢어지게 가난해서 옷에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을 정도였다. 아무것도 없는 그는 더 이상 잃을 게 없었어.

미고

그 후, "요람"은 그의 대뇌를 타인의 의식을 담는 용기로 개조했고, 그를 이용해 로봇을 제어했지.

미고

결국 그 남자는 자기 친구들을 구하지 못했다네. 그리고 그의 세계에서 친구들과 재회하게 됐지. 하지만 그건 그의 친구들이 모두 죽었다는 걸 의미했지.

그렇게 그들은 죽은 뒤, "새로운 세계" 속에서 살게 됐지.

미고

하지만 "요람"은 현실과 가상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그의 대뇌를 열어, 복제와 증식을 반복했지. 그렇게 이 산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추출하게 됐어.

그 때문에 그는 과거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게 됐지. 그의 친구, 스승, 하물며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렸어.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요람"은 스승의 이름과 가장 친했던 친구의 이름을 그에게 가르쳐 줬다네.

그래서 그 남자는 창피해하면서도 자신의 스승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삼았다네.

미고

그거 아나? 이 산은 어떤 계절이 돼도 나비가 나타나지 않아.

하지만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그날, 산 정상에 수많은 나비가 나타났었지.

집... 집에 가야 해... 복수...

쫓겨나... 집에 돌아가...

집이 아니야... 안 돼...

잘못하지 않았는데... 죄가 없는데...

자네도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나?

이게 바로 "그들"인가요?

그래. "그들"은 모두 이 늙은이 안에 있지.

산 밖에서 온 방문객도 있고, 원래 산에서 수행하던 사람도 있고, "요람"의 망령도 있다네.

"요람"의 망령이요?

죽은 해커도 이 늙은이 안으로 들어와, 내 일부가 됐지.

그래서 이 늙은이는 해커들의 소원과 포부도 들린다네.

그들이 원망스럽지 않나요? 그들이 아니었다면 어르신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았을 거잖아요.

물론 원망도 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원망하지 않아. "그들"도 포기했어.

시간은 기억을 야금야금 갉아먹지. 살아 있는 해커 중 많은 이들이 자기 조직이 가지고 있던 처음의 소원을 잊어버렸지.

복수를 위한 복수라... 그 사람과 같네요.

이 늙은이는 그들을 비웃을 자격이 없어. 하지만 자네는 있을지도 모르겠군.

저요?

인간은 관성에 의해 살아가는 생물이지만, 자네는 달라.

전 생물이 아니라 로봇이에요.

그게 뭐 어떤가?

로봇과 인간의 분계선을 넘지 않은 이상, 그 누가 둘의 차이를 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자네는 이미 선택했잖은가.

선택이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지키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걸 해치고 빼앗기 마련이지.

이 사실의 잔혹함을 겪어봤고, 이해했기 때문에 선택을 한 게 아닌가?

그때, 함영은 꽉 쥐고 있던 부채에서 익숙하고도 불안한 진동이 전해져 오는 게 느껴졌다.

오! 이 나무가 벌써 이렇게 크게 자랐군.

이 나무를 보신 적이 있나요?

몇 년 전에 한번 봤었는데, 그땐 이렇게까지 크진 않았어.

이곳은 다른 사람의 꿈속이라고 문지기가 알려줬어요.

맞아.

어르신의 꿈인가요?

아니. 이 늙은이의 꿈은 아니야.

이 산의 모든 것이 이 늙은이의 사상에서 반복적으로 추출해서 만든 꿈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이 나무는 본 적이 없어. 그래도 이 씨앗의 존재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젊은 시절의 조각 하나를 분리해서 이 씨앗을 지켰지.

노인이 단풍나무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자, 모든 것이 정지된 것처럼 바람에 흩날리던 나뭇잎도 공중에 멈췄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부탁해도 될까?

허허, 이 귀찮은 늙은이를 용서해 주게나.

네.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

돌아가면 이 산의 이야기는 비밀로 해주게나. 이미 역사 속 먼지가 된 우리가 새로운 미래 위에 쌓이지 않았으면 좋겠네.

어차피 우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네. 그러니 이곳에서의 일은 마음에만 간직해 뒀으면 하네.

그럴게요. 어르신.

그래. 그거면 됐네.

노인은 공중에 떠 있던 나뭇잎 하나를 집은 뒤, 자세히 관찰했다.

이 늙은이는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꿈을 꾸고 싶었지.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조차도 지금 꿈속에 있는 게 맞는지 분간할 수 없게 됐네.

어쩌면 우린 진작에 깨어났을지도 모르지. 현실이든 환상이든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군.

이 모든 걸 끝내주게나.

함영은 혼자 대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모든 것을 끝낸다는 건, 함영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그 일은 이 세계에서 제일 잔혹한 일이었다.

그곳은 나무로 만든 다락방 안에 있는 감호실이었다. 몇 평 안 되는 방안은 크고 작은 전자기기들로 가득 차 있었고, 창문도 작은 거 하나뿐이었다.

방 중앙에 생명 유지 캡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함영은 먼지투성이인 유리 캐슐 표면을 손으로 닦았다.

생명 유지 캡슐 속에 누워있는 건 평온한 얼굴을 한 중년 남성이었다. 그의 몸, 특히 뇌에는 굵기가 다른 탐침이 연결되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전달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야항선에 있을 때, 함영은 "정체"라는 의학 휴면 기술로 인간이 늙는 속도를 최대한 늦출 수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평생 수면 캡슐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시간은 그가 "우리"가 된 날에 멈춰버렸다.

늙지 않으면서도 노인의 얼굴을 선택하셨네요.

그리고 그 세상에서 영생하면서도, 영생에서 벗어날 출구를 찾고 있으셨군요.

케이블에서 흐르는 전류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방이었다. 전류는 함영이 꽉 움켜쥔 그 케이블을 통해 생명 유지 캡슐 내로 들어가, 그의 생명을 유지하는 여러 가지 에너지로 전환됐다.

이 전원 코드를 뽑으면, 그는 죽게 될 것이고, 모든 것은 끝나게 된다.

그가 짊어지고 있던 모든 기억, 소원, 집념도 함께 끝날 것이다.

그는 곧 "죽게" 될 것이고, 범인은 함영이 된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고, 위험을 피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르신은 그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을 뿐, 사실은 다 알고 계셨던 거죠?

깨어나는 것을 선택하거나 꿈속에 있길 선택하는 건 모두 우리 마음속 답에 달려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죽음으로 영원한 삶을 마감하는 건 그와 그들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함영이 그때 선택했던 것과 같았다.

한 가닥의 먼지가 흩날리더니, 주위가 조금씩 어두워졌다.

방 안엔 작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뿐이었다.

잘 자요.

산의 바람과 낙엽이 현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녀들<그들>의 여정이 종착점에 다다랐다고.

용신

다락방에선 이 나무를 볼 수 있어요.

나뭇가지의 일부만 볼 수 있었지만, 그건 그 창문에서 보이는 유일한 풍경이었어요.

미고

그랬군.

용신

이 나무가 한 백여 년은 살았다고 들었어요.

미고

그럼, 앞으로도 계속 살겠군.

용신

네.

미고

홰나무를 본 적이 있나?

홰나무에서 꽃이 활짝 필 무렵이 되면 무척 아름답지.

다 쉬었으면, 이제 출발하자꾸나.

용신

이젠 스승님을 쫓아갈 필요 없겠네요.

미고

갈 길이 머니 서두를 필요 없다.

수많은 나뭇잎 중에 유난히 붉은 단풍잎이 함영의 손에 떨어졌다.

그건 신앙이 없는 슬픈 영혼이었다.

몸은 썩었고, 영혼도 천국으로 가는 문을 찾을 수 없었다.

땅에 떨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떠돌며, 영원히 찾아다닐 슬픈 영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