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는 우뚝 솟은 부오산을 부수려는 듯, 산꼭대기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종소리는 은은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아닌 노여움이 담긴 굉음 같았다.
함영은 두 바위 사이에 있는 좁은 길을 걷고 있었다. 좁고 험준한 산길에서 증폭된 종소리는 산 벽 위에 있는 얇은 서리도 떨어뜨릴 만큼 크게 울리고 있었다.
이런 굉음 속에서 평범하게 대화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함영과 스프너는 로봇의 공용 무선 신호로 소통했다.
(종소리의 간격이 조금씩 빨라진다는 건, 우리가 그 인간이 말한 결정적인 장소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거겠죠?)
(하지만 쉽사리 도착할 수 있는 곳은 아닌 것 같아요.)
(그 어르신 말에 따르면, 이곳엔 용신이라는 로봇 외에 문지기도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 가상 공간의 개념과 구조에 대해서도 잘 모르잖아요.)
구불구불 산길을 걷고 있는 함영의 어깨에 서리 낀 붉은 잎이 떨어졌을 때, 산을 울리던 종소리가 뚝 그쳤다. 이에 함영도 발걸음을 멈췄다.
함영과 스프너 앞에 그 "문"이 보였다.
두꺼운 구름 사이로 석양이 산 정상에 드리웠다. 그리고 노을빛으로 물든 계단 끝엔 문지기가 조용히 서 있었다.
문지기는 특징이 뚜렷한 로봇이었다. 드러난 기계 구조 위에 쌓인 서리가 햇빛에 비치면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그것이 처음부터 여기에 있어야 했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함영은 스프너에게 신호를 보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누구...
계단 위에 있던 문지기가 자세를 바꾸지도 않고 물어왔다.
……
함영. 스프너.
저희 이름을 아세요?
문을 지키는 건 내 의무이기 때문에 오는 이의 이름을 아는 건 당연한 거다.
저흰 사람을 구하러 왔어요. 제발 지나가게 해주세요.
조금 전 종소리는 훈계였다.
당신도 종소리의 제어를 받나요?
문지기인 난 문의 제어만 받는다.
전 여길 반드시 지나가야 해요.
문지기로서 통과시킬 수 없다.
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로봇은 비켜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
전에도 "전 여길 반드시 지나가야 해요."라고 말했던 이가 있었다.
그녀들도 이 세계의 출구를 찾고 있었다.
유유인가요?
포뢰를 말하는 건가? 다른 이름이 유유인가?
유유는 이곳을 통과했나요?
그렇다. 그녀는 이미 지나갔다.
종소리의 훈계가 그녀들의 통행을 허락한다고 전해왔다.
하지만 너희들은 안 된다.
우리가 꼭 지나가겠다면요?
문 너머의 세계가 네가 바라던 세계가 아니라면? 혹은 이와 달리 또 다른 꿈이라면 어떻게 할 건가?
그래도 이 문을 통과하겠는가?
어떤 꿈이든 깨어날 때가 있죠.
비켜주지 않는다면, 당신을 쓰러뜨리고 지나갈 수밖에 없겠네요.
말없이 서 있는 문지기가 산의 문을 지나가려는 이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지면서 전투태세를 갖춘 도전자와 문지기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잠깐.
열쇠를 가지고 있나?
열쇠요?
문지기는 의아한 표정으로 함영을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이고 길을 비켜줬다.
모르는 눈치네.
너희들은 통과해도 된다. 이곳으로 들어가라.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죠?
열쇠 하나로 열 수 있는 자물쇠가 하나인 것처럼, 너희들은 이 문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자물쇠는 열쇠로만 열 수 있다.
이때, 함영의 몸에서 작은 빛이 반짝였다.
그건 마르고 보잘것없지만, 따뜻한 빛을 발하고 있는 씨앗이었다.
어르신께서 주신 씨앗이 열쇠였어요.
이걸 가지고 있으면, 이곳을 지나갈 수 있는 건가요?
난 그냥 문지기일 뿐이다. 문은 방문자 스스로 열어야 한다.
반신반의하며 계단을 오른 함영은 문 앞에 서서 작은 씨앗을 손에 쥐었다.
문의 반대편에서 모든 것을 하얗게 물들이려는 듯 구름과 안개가 산 쪽으로 몰려 들었다.
그러자 주위 경치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원래 있던 산길과 잔도가 사라진 대신 굳게 닫힌 문과 반쯤 무너진 낮은 벽이 나타났다.
문 뒤엔 또 다른 꿈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었다.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저 문을 열지 않고 돌아가도 된다.
하지만 네가 이 문을 연다면, 그 뒤에 무엇이 있던 우린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우리"인가요?
방문자가 문을 통과하게 놔두는 건 문지기의 치욕이다.
네가 이 문을 연다면 난 널 막아야 한다. 그럼 난 죽게 될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전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을 죽이고 싶지도 않아요.
내 존재의 의미는 문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할 것 없다.
어떻게 할지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군. 결국 우린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말을 마친 로봇이 방금 전과 같이 문을 등지고 섰다.
녹슨 문고리를 잡은 함영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