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4 그 꽃이 꿈속으로 /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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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4-9 질문과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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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기네요.

우리는 줄곧 이곳을 빙빙 돌고 있어요.

스프너는 자신이 두 시간 전에 처마에 놓았던 자갈을 으스러뜨렸다.

이곳의 산길...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복잡한 것 같아요.

당신 친구도 우리처럼 이 산에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방금 그 길에선 유유의 흔적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어요.

저기 봐요!

함영은 스프너가 가리킨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산 벽 잔도에 구부정한 노인을 보았다.

인간인가요?

우리가 이 산에 들어 온 이후로 인간을 본 적이 없어요.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 때마침 나타난 인간이라... 뭔가 수상한 것 같은데, 어떠세요?

이것도 "요람"이 파놓은 함정일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린 이 산속을 너무 오랫동안 헤맸고, 더 이상의 단서는 보이지 않고 있어요.

이것이 함정이라고 해도요?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새끼 호랑이를 잡을 수 있겠어요?

당신의 "구룡 말"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죠.

인간과의 대화에 서투른 저보단 함영이 대화해 보는 게 좋겠어요.

스프너와 함영이 의논하고 있을 때, 구부정한 노인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곧장 그들 곁을 지나갔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아아! 미안하구먼. 귀가 먹고 눈이 침침해서 말이야.

난 미고라고 하네. 자네들은 처음 보는 얼굴들이구먼.

어르신, 이 산에서 살고 계세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산에 있는 절에서 지내고 있다네.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혹시 "요람"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그리고 한 여자아이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보아하니 묻고 싶은 게 많아 보이는데, 쉽게 끝나지 않겠구먼.

노인은 손으로 바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 뒤 그 위에 앉았다.

산 정상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으니, 잠시 쉬어 가는 것도 괜찮을 걸세.

노인의 말을 들은 스프너가 경계하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저희가 산 정상까지 가려고 하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거기 말고, 갈 곳이 또 있나?

……

예로부터, 이 산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산 정상에 오르고 싶어 했지.

자네들이 날 믿을 필요는 없지만, 물어본다면 대답은 해 줄 수는 있네.

그럼, 함영한테 맡길게요. 전 근처를 정찰하고 있을 테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저한테 연락해 주세요.

구룡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에둘러 말하나요?

함영에게 눈짓을 한 스프너는 잔도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함영? 참으로 좋은 이름이구나. 좋구먼. 좋아.

이곳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오는 길에 어르신 외엔 아무도 보지 못했어요.

몇몇 불청객이 산에 왔었다네.

"요람" 말인가요?

그래. 몇십 년 전에 그들이 와서 절을 차지했어.

오래전부터 있던 절에 그들이 왔을 뿐이네. 절은 몇 년이 지나도 남아 있겠지만, 그들은 없어질지도 모르지.

어르신께선 이 조직에 대해 잘 알고 계신 거 같네요.

알고 있는 것도 별로 없어. 난 이곳에서 오랫동안 쓸고 닦는 일을 한 늙은이일 뿐일세.

이런 일들은 다른 사람이 알려준 걸세.

여기에 다른 사람도 있나요?

이젠 없지.

그럼, 혹시 흰 망토를 두른 열대여섯 살의 여자아이를 본 적이 있으세요?

흠... 그 모습이라면, 이제 어린애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보셨나요?

그녀는 며칠 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을 데리고 이곳을 황급히 지나갔었어.

대검을 들고 있었는데, 꼭 두목 같은 모습이었어. 틀림없을 거야.

노인은 지팡이로 절벽 뒤 잔도를 가리켰다.

자네랑 같았으니 틀림없을 걸세.

저랑 같다고요?

무명에 갇힌 자는 나방과 별반 다르지 않지 않은가?

사람들은 "요람"이 지어낸 망상을 추구하고, 그 여자아이는 "요람"의 망상으로 인한 악과를 찾고 있지.

자네도 그녀와 같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요. 제 소원은 결코 "망상"이 아니에요.

자네가 찾고 싶은 게 정말 그녀일까?

노인은 바위 옆 나무 그늘에서 사과 하나를 꺼냈다.

자넨, 이 산이 왜 부오산이라고 불리는지 아나?

그건... 잘 몰라요.

천여 년 전만 해도 이 산은 부오산이라고 불리지 않았다네. 그러던 어느 날 "장오거사"라는 시인이 이곳에서 돌아가셨지.

그녀는 이 산을 본 순간, 이곳에서 여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다네.

그 이후로 이 산은 부오산이라고 불리게 됐지.

장오거사, 부오산 모두 이름뿐일세.

중요한 건 이름 아래에 숨겨져 있는 것들이지.

이름 아래에 숨겨져 있는 것들이라니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어떤 이치는 인간조차도 이해할 수 없다네. 그럼, 로봇이라면 더욱 이해할 수 없겠지.

하지만 로봇도, 인간도 모두 중생을 논할 수 있고, 모두가 정이 있다고 생각하군.

자네 언젠가는 알게 될 걸세.

그리고 이 산은 부오산이라고 불리지만, 사과나무가 한 그루도 없어.

노인은 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함영에게 건넸다.

이런 사과는 맛이 분명 좋을 거예요.

그럼, 과육은 단단하면서 씹히는 맛은 좋고 매우 달아.

그런데 이거 사과 맞나요?

그래.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선 사과가 맞아.

사과는 정말로 존재하는 것처럼 싱그러운 과일 향을 풍기며, 탐스러운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다가 함영의 손에 있던 사과가 갑자기 자라면서 큰 단풍나무가 됐다. 하지만 순식간에 시들고 마르더니, 앙상하고 가느다란 종자로 변해서 조용히 그녀의 손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건... 불가능해요. 환각인가요?

성주괴종, 모든 건 이처럼 흘러간단다.

현실에선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여긴 꿈속이겠군요.

함영은 답을 구하는 듯 노인을 바라봤다. 하지만 노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함영을 바라볼 뿐 대답해 주진 않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아무런 느낌이나 현상은 없었는데...

"요람"이 벌인 짓이겠군요.

맞아.

그럼, 유유도 이런 상황에 부닥쳤겠네요.

사흘 전이었을 거야. 그녀는 이 앞에 있는 길로 이곳을 지나갔어.

길을 잃지 않았나요?

"그들"은 그녀에게 관심이 많았는지, 그녀가 길을 잃게 놔두지 않고, 바로 산꼭대기로 향하게 했어.

"그들"이요? "요람" 말인가요?

노인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유유를 찾아서 이곳을 떠날 방법이 있나요?

예로부터, 이 산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산 정상에 오르고 싶어 했지.

산 정상에 다다르면 모든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다.

……

왜 그러지? 다른 문제라도 있는 거냐?

그럼, 어르신은요?

나? 난 그저 한낱의 늙은이일 뿐이야.

저희가 산에 들어오고 난 후 만난 인간은 어르신밖에 없어요. 나머진 모두 요람이 개조한 로봇이었어요.

여기가 정말 꿈속이라면 왜 저에게 이런 것들을 알려주시나요?

어르신을... 믿어도 될까요?

믿을지 말지는 자네 마음에 달렸어.

진실이라 해도 마음이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렸지. 이름과 본질의 관계처럼 말이야.

노인은 함영이 들고 있던 씨앗을 도로 쥐었다.

이 씨앗은 내가 보관하고 있으마. 다음에 또 만나자꾸나.

이런, "그들"이 날 찾으러 왔군.

노인의 몸이 갑자기 데이터화되기 시작했다.

함영!

곁에서 지켜보던 스프너가 이내 이상함을 눈치챘다. 하지만 스프너가 함영 곁으로 달려왔을 땐, 바위에 앉아 있었던 노인은 데이터 파동으로 변해 사라진 뒤였다.

스프너. 전 괜찮아요.

역시 뭔가 이상해요!

어르신의 말대로라면, 이곳은 진실이 아니에요.

무슨 뜻이죠?

어르신은 저에게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어요.

이곳에선 상상을 초월한 현상들과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어요.

어쩌면 우린 처음부터 "요람"이 파 놓은 함정에 걸려들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지금 우린 가상 현실에 있다는 건가요?

믿기 힘들지만,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잖아요!

우리가 처음부터 함정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 거라면...

이곳에선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꿈처럼 애매할 수 있어요.

이걸 꿈이라고 할 수 있나요? 이론적으로 로봇은 꿈을 꾸지 않잖아요.

굳이 꿰맞추자면 사고 회로를 최저 효율로 유지하는 휴면 상태만 인간의 "꿈"에 가까운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스프너는 꿈을 꾼 적이 없나요?

없어요.

전 "선현님"께서 저를 깨워 주시기 전까지 줄곧 꿈속에서 헤매고 있었어요.

심지어 지금의 저에겐 야항선에서 유유와 함께 보낸 날들도 어젯밤 꿈처럼 느껴져요.

로봇도 꿈을 꾼다는 건 처음 들어보네요.

제 꿈속에선 모든 것이 현실적이었어요.

어쩌면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것이 꿈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 무슨 수를 써도 깨어날 수가 없었어요. 아니,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가 맞겠네요.

그전에 선현님과 만난 적이 있나요? 아니면 선현님의 그림을 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기계 선현님께서 로봇을 계몽시킬 수 있고, 로봇에게 "마음"이라는 걸 만들어 주신다는 것만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함영은 선현님을 접촉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여자아이랑 생활만 했을 뿐인데, 자발적으로 각성했다는 거네요?

인간의 기록에 의하면 꿈은 강렬한 자의식의 표현이라고 해요.

진정으로 각성한 로봇만이 "자아"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고 진정한 "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것이 바로 로봇의 "마음"이라는 거죠.

로봇의 "마음"이요?

기계 교회에 가입한 이후로, 자신의 의식을 "꿈"으로 표현하는 건 당신뿐인 것 같아요.

선현님조차도 "꿈"에 대한 이야기는 잘해주지 않으셨어요.

스프너의 말은 이미 그 답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각성했다면, 당신은 이미 그 순간부터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교회에 있을 때 세르반테스 님도 비슷한 추측을 말해준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전 그것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아르카나 님조차도 "마음"이라는 부품이 부품이 무엇인지 증명할 수 없었어요.

음... 그건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죠.

스프너는 당혹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건 저도 잘 몰라요.

근데, 당신은 그 인간을 믿나요?

"요람"이 우리를 현혹하기 위해 준비한 미끼일지도 모르잖아요.

그의 어조는 매우 온화했고, 말하는 내용에도 깊은 뜻이 담겨 있었으니까... 절 속인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의 말에는 뭔가를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요.

참 이상한 일이네요.

"요람"이 우리를 속이려고 마음먹었다면 여기서 계속 헤매게 놔두면 될 텐데요.

하지만 어르신께서는 "진실이라 해도 마음이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렸지"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어느 길로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것처럼요.

우리의 생각만으로 떠날 수 있다는 건가요? 너무 비현실적인 생각이 아닌가요?

정말로 꿈속이라면 우리가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 봐도 되지 않을까요?

방금 어떤 길로 왔죠?

이쪽 절벽을 따라 왼쪽에서 왔어요.

함영은 방금 전까지 몇 번이고 걸었던 잔도를 다시 밟았다.

그 길은 이미 여러 번 걸었었어요.

그럼 다시 한번 시도해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