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릴 이렇게 열렬히 환영해 주는 건가요?
스프너가 이상하게 생긴 돌사자의 머리 절반을 날려버리자, 그제야 잔도 위가 조용해졌다.
이 로봇들은 상당히 낡았고, 마모도 심한 편인 데다 이끼까지 자랐어요.
이런 로봇 모델은 처음 봐요. 적어도 야항선에선 보지 못했던 로봇 모델이에요.
뭔가 이유가 있을 거예요.
스프너는 잔도의 로봇 잔해를 조사하면서, 함영에게 녹슨 로봇 부품 하나를 건넸다.
부품 위에는 구룡의 고대 문자와 숫자로 구성된 작은 글자가 두 줄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녹이 슬어서 어떤 내용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이건 제작할 때부터 로봇 내부에 부착된 식별 명패인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지만 반대쪽을 보세요.
스프너가 함영의 손에 들고 있던 로봇 부품을 뒤집자, 새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색상 케이블들이 보였다.
이 케이블들은 최근에 개조해서 추가한 게 분명해요. 그리고 그 아래에 보면 더 오래된 개조 흔적이 남아 있어요.
게다가 로봇마다 개조 방식이 다 다른 것 같아요.
단순한 개조라기엔 개조 방안이 너무 제멋대로예요.
아마도 "요람"의 짓일 거예요.
그들의 전자두뇌에서 "요람"과 관련된 정보를 읽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 산에 대한 정보라도...
힘들 것 같아요. 이 로봇들의 기억 장치가 모두 파괴됐어요.
하지만 그 대신 송수신 기능이 탑재돼 있어요. 이렇다는 건 그들이 조종되고 있었다는 걸 설명하죠.
도구이기 때문에 사고할 필요 없다는 거겠죠.
전에 인간을 싫어하냐고 물어보셨죠?
네. 하지만 스프너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서 더 묻지는 않았어요.
교회 멤버들은 각자 자신만의 과거가 있어요. 그중에서 전 오래전에 인간의 손에서 탈출한 로봇이었어요.
콜로세움에서 그곳을 지배하는 인간에게 싸우는 걸 계속 강요당했어요. 그 상대가 로봇일 때도 있었고, 심지어… 인간일 때도 있었어요.
"관객"들은 바닥이 잔해와 피로 물드는 걸 보고 싶어 했고, 그걸 선사하는 것이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그 인간들에게 있어서 전 그들의 잔혹한 욕망을 채워줄 도구에 불과했죠.
그 인간들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죠. 우리 눈앞의 잔해가 바로 그 증거니까요.
손에 쥔 로봇 잔해를 내려놓은 스프너가 한숨을 푹 쉬었다.
로봇은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면 안 되나요?
오래전에 절 만든 제작자도 전 도구이고, 그 어떠한 사고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었어요.
당신의 제작자는 구룡 사람이죠?
맞아요.
스프너는 자신을 만들어 준 제작자를 기억하나요?
그 설계사의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을 보면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로봇은 잊을 수 없어요. 상응한 기억 장치를 보유하고 있는 한 우리의 전자두뇌는 오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계속 저장할 수 있죠.
잊을 수 있는 인간에 비하면 참으로 잔인하게 좋은 점이죠.
……
전 절 만들어 준 제작자에게 버림받았어요.
전 그가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없었고, 그의 소원도 들어줄 수 없었어요. 심지어 이름도 가지지 못했죠.
그리고 그는 구룡을 떠나던 날, 절 그 방에 완전히 방치해 버렸어요.
그렇다는 건 당신을 그가 만든 창조물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군요.
네?
"제작자는 자기 창조물에 반드시 이름을 붙여야 한다"라는 통용 원칙이 인간에게는 있다고 네빌이 알려줬어요.
그래서 네빌은 항상 자신이 만든 물건에 이상한 이름을 지어줘요.
한 사람이 자기 창조물에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는 건, 그것이 자기 창조물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
그렇다면 비리야는 처음부터 제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것도 나쁠 건 없잖아요.
우리의 존재 가치가 반드시 제작자로부터 얻는 건 아니니까요.
우리에게 있어 제작자는 전자두뇌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명령이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하지만 그뿐이에요.
확실히 제 존재 가치는 제작자한테서 얻은 게 아니에요.
제 몸속에 만들어진 "마음"이 뛰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가 "마음"이라는 부품을 찾기로 마음먹고, 저에게 그걸 찾게 하는 계기가 되어 준 사람은 제 제작자가 아니에요.
당신이 찾고 있는 "유유"라는 인간인가요?
그런 것 같아요.
당신의 이름도 "유유"라는 사람이 지어준 건가요?
그건 제가 구룡의 고전 서적에서 찾은 호칭에 불과할 뿐, 진짜 이름은 아니에요.
제가 "이름"이라는 것을 "갖게" 되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유유는 그것이 제 이름이고, "저 만의 이름"이라고 말해줬어요.
그때, 처음으로 저만의 것을 갖게 됐어요.
유유가 당신에게는 정말 중요한 존재였군요.
"교황"이 로봇은 두 번의 탄생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첫 번째 탄생은 제작되어 몸이 탄생할 때이고, 두 번째 탄생은 자아 각성하여 의식이 탄생할 때라고 했어요.
그렇다면 "유유"라는 아이가 당신의 각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함영이 산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렇다고 해도 비리야는 절 만들어 준 제작자예요.
함영은 자기 몸에 담긴 기대와 원한을 묻기라도 하는 듯 자기 손을 바라봤다.
그 사실은 영원히 변치 않아요.
안 좋은 일을 떠올리게 해서 죄송해요. 제가 이런 심오한 이야기에는 좀 서툴러서요.
괜찮아요.
스프너의 말처럼 교회 멤버들은 각자 자신만의 과거가 있으니까요.
그 말은...
함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 그냥 교회에 가입하기 전에 제가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에요.
게다가 지금의 야항선, 아니면 더 나아가 구룡엔 제 자리가 없을 거예요.
절 깨워주신 선현님이나 도움을 주신 교회 여러분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전 아르카나 님의 초대를 받아 동포들을 위해 제 힘을 보탤 거예요.
기계 교회는 모든 동포를 환영해요. 아르카나 님이 들으셨다면 무척 기뻐하셨을 거예요.
음. 이렇게 말하면 좀 부적절할 수도 있겠지만, 기계 교회에 있을 때 편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유유와 함께 있었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가끔은 농담도 하고, 딱딱하게 대할 필요도 상대방의 생각을 헤아릴 필요도 없으니까요.
그게 바로 가족이 아닐까요?
네. 맞아요. 가족이에요.
함영은 산안개 너머 자신이 "집"이라고 불렀던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돌아가기 위해서 계속 앞으로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