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과 스프너가 항구 외곽에서 합류해 요람이 말한 좌표로 갔을 땐 이미 여섯 시간이 지난 후였다.
절벽 위에 다 이런 길을 어떻게 만든 걸까요?
금속 받침도 없이 목재만으로 이렇게 복잡한 공사를 해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네요.
건설 양식으로 보면 적어도 황금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 같아요.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이 목조 구조물은 훼손되지 않았네요.
게다가 고농도 퍼니싱도 감지되지 않고 있어요.
야항선이 먼바다에서 항해하던 시절에도 산발적인 침식체의 습격을 간혹 받곤 했다.
퍼니싱이 없는 곳이 존재한다는 걸 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곳은 구룡 순환 도시와 그렇게 멀지 않은데, 퍼니싱을 어떻게 피할 수 있었을까요?
구룡 순환 도시와 야항선 외에도 구룡은 광활한 땅을 통치하고 있었고, 그 안엔 많은 무인구역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렇게 험난한 걸 보면,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죠.
흥. 지금쯤이면 퍼니싱은 피할 수 있어도, 인간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스프너가 비웃었다.
퍼니싱은 영점 에너지라는 요람 속에서 탄생했다.
퍼니싱이 탄생한 날부터 그 속은 다양한 색깔의 "피"로 물들어 있었는데, 그중엔 인간의 피도 포함돼 있었다.
그 핏빛 속에서 다른 색채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도 있었지만, 진홍색 물을 마시며 끝없는 파티를 즐기려는 인간도 있었다.
우리가 야항선에 도착하기 전, 스프너는 시장에 들어가는 대신 밖에서 기다리는 걸 선택하셨죠.
스프너는 인간을 싫어하나요?
싫어하지도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전 굳이 인간과 엮이고 싶지 않아요.
고개를 저은 스프너가 산으로 이어지는 잔도로 향했다.
기계 교회엔 비밀이 없었다.
로봇은 대부분 마음이 순박하고 사상도 단순했기 때문이다.
세르반테스가 말한 것처럼 기계 교회는 신뢰와 단결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교회 동포들은 서로를 무조건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로봇이라도 자신만의 과거가 있기 마련이다.
그나저나 "요람"의 취향도 참 이상하네요.
네? 뭐라도 발견하셨나요?
아니요. 나름 고도화된 해커 조직이 이런 곳을 거점으로 삼았다는 게 조금 이상해서요.
스프너는 구룡이 처음이죠?
네. 전에는 소문으로만 접했었어요.
비유하자면 이런 거예요. 우리 로봇들은 이곳을 객관적 사실인 "아름다운 풍경"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죠.
하지만 구룡 사람들에게 산과 강을 감상하거나 사색에 잠겨 감성적인 단어로 표현하는 건 그들 사상에 새겨져 있는 것들이에요.
그러니까 인간은 종종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무시한다는 건가요?
그렇게 쉽게 단언할 수는 없어요.
함영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스프너가 고개를 저었다.
인간은 참으로 복잡하군요.
그건 일종의 미묘한 무언가예요.
하지만 당신은 이런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것 같군요.
수천 개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샘, 수많은 계곡을 둘러싼 푸른 숲...
네?
미안해요. 갑자기 옛날에 읽었던 시가 생각나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경치를 표현할 수 있는 다른 어휘가 떠오르지 않아서 구룡 고서에 있던 시를 인용했어요.
뭔가 은은하게 표현되는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전 구룡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구룡 문화의 본질은 직설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보단 은유나 절충적으로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언어와 문자에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거에 능숙해요. 하지만 언어와 문자에 감정이 숨겨진 상태로 전달되는 이상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죠.
음. 인간의 언어와 문자는 로봇처럼 직접적인 정보 교환만 하지는 않나 보군요.
하지만 언어와 문자를 잃는다면,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잃게 되겠죠.
함영의 전자두뇌에는 눈앞의 경치를 표현한 고전 기록이 수없이도 많았다.
동일한 시각, 동일한 장소에서 본 동일한 사물이더라도 그것에 대한 표현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감정과 "마음"은 에돌고 모호한 글자 속에 숨겨져 있었다.
당... 당... 당...
이 소리는... 종소리인가요?
초록빛으로 물든 산골짜기에 종소리가 유유히 들려왔다.
조풍의 보고서에도 이 "종소리"에 관한 내용이 언급돼 있었어요.
이 산에 와본 적 있는 사람들의 말로는 산 근처에 발을 들이기만 하면 이 소리가 울린다고 했어요.
번개가 치고 요괴가 나타났다는 목격담도 있고요.
당신은 이런 신화 같은 이야기를 믿나요?
전 그것들을 믿을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아요.
하지만 구룡의 많은 풍습이 자연 숭배와 증명할 수 없는 "신화"에서 비롯됐죠.
그런 이야기는 워낙 많이 들어봐서 그런지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네요.
당... 당... 당...
여전히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함영 앞에 나타난 건 구룡 신화에 등장했던 것들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