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올라가면서 가끔 흔들렸지만, 조풍 손에 들고 있는 등롱은 단단히 균형을 잡은 손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함영은 야항선의 깊은 어둠에 빠져든 것처럼, 끈적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넌 아직 시간이 남긴 상처가 뼈저리게 느껴지지 않는가 보군."
사고가 없는 한 로봇의 "수명"은 인간보다 훨씬 길다. 그래서 로봇 하인이 몇 세대의 주인을 떠나보내는 것은 황금시대에도 흔한 일이었다.
아무리 정성껏 관리하더라도 늙어가고 결국 죽음에 품겨 들어가는 것은 인간에게 특유한 운명이지만, 로봇은 모든 것이 초기화된 순간의 모습대로 살아간다.
그러니 로봇은 그저 "죽음"이라는 결과를 지연시킨 걸지도 모른다.
"본 기체의 00001번째 가동에 성공하셨습니다. 비리야 님. 본 기체의 코드네임 혹은 이름을 설정해 주십시오."
이곳은 함영의 시간이 시작된 곳이자, 모든 것이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곳이었다.
그 시작 이후로, 시간이 함영의 몸에 남긴 유일한 흔적은 목덜미에 있는 검은 항쇄 자국뿐이었다.
항쇄가 분출하는 최대 전류는 그것을 제거하려는 이를 죽일 수 있을 정도였다. 순간일지라도 펄스 전류의 고통은 엄청난 고열과 고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었다.
다만 인간에게 이러한 고통은 영원한 해방을 의미했고, 미래의 어느 날 그 순간을 되새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의미했다.
함영은 본능적으로 목덜미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손끝이 항쇄 흔적에 닿으려는 순간 손을 거두고 그것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건 시간이 함영의 몸에 남긴 유일한 흔적이었다. 하지만 그 어두운 흔적 아래엔 시간이 그녀의 기억 속에 남긴 또 다른 게 있었다.
그것은 함영만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뒤에 느낀 슬픔과 기쁨, 쓴맛과 단맛, 고통과 행복...
"그럼... 그냥 살아. 우리 같이 살아가자."
살아가자라...?
도착했어.
조풍의 말은 생각하는 함영을 깨웠다.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리자, 정오의 태양이 함영과 조풍을 맞이했다.
조풍은 등롱의 불빛을 몇 번 건드려 끈 뒤, 엘리베이터 옆에 걸었다.
야항선의 길은 기억하고 있을 테니, 안내해 줄 필요 없지?
네.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부희가 네 신분 정보를 우리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해 뒀으니까, 야항선과 구룡성에서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야항선은 승인한 자유에 대해선 제한하지 않아.
각자 해야 할 일이 많을 테니, 여기서 헤어지자.
함영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살짝 숙이자, 조풍도 답례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작별 인사한 후, 함영은 망설임 없이 햇빛이 가득한 갑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언니. 이 거리는 왜 이름이 곡창 거리야? 이 거리엔 크고 높은 곡창이 없는 것 같은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 야항선에서 창고를 열고 곡식을 나눠주던 곳이었어.
이곳엔 식당과 간식이 엄청 많아. 와! 설탕 공예도 있어!
먹고 싶어? 나한테 남은 청부가 있는데...
저기 봐! 함영 언니! 무대에서 무술 연습을 하고 있어. 공연하고 있는 거야?
아니. 그들은 일종의 보디가드라고나 할까. 부자들이 자신과 화물을 지키기 위해 고용한 거야.
어, 이 정도로도 보디가드가 돼서 돈 벌 수 있는 거야? 그럼, 유유도 할 수 있겠네!
의지만 본다면, 유유는 지금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공연이 끝날 때쯤이면 시간이 늦을 텐데, 그때에도 시장이 열려 있으면 이 거리에 와서 간식거리 사자.
……
탕후루~ 갓 만든 탕후루~
장아찌, 갓 만든 장아찌~
따뜻한 햇볕이 갑판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가슴을 펴고 걷는 자와 생계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자 모두 무대 위에서 조용히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하? 그 여자아이?
잘 생각해 봤어요? 이거 절대 적은 돈 아니에요? 자질구레한 재료와 원체 그리고 개조 수술 비용까지...
그건 제가 다 준비해 놓을게요. 돈은 걱정하지 마세요.
흥. 아무리 메인 무희라고 해도 돈 계산은 철저히 해야겠죠. 구조체 개조를 끝내려면 당신이 버는 그 몇 푼으론 어림도 없어요.
제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게요. 다만... 꼭 비밀로 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그건 장사의 기본이죠.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요.
……
너무 비싼 거 아냐? 그리고 상태도 별로인 거 같은데, 다른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단골손님이시니 20% 할인해 드릴게요. 삼천칠백은 어떠신가요? 더 깎으면 저도 남는 게 없어요.
쳇...
알겠어요. 삼천오백에 가져가세요.
깎은 가격이 내심 마음에 들었는지, 손님은 고개를 저으며 꼼꼼하게 포장된 종이 꾸러미를 들고 가게를 나갔다.
그쪽은요? 뭘 보시겠어요?
지난달 출항할 때, 가져온 여과 필터의 상태가 아주 좋아요.
……
여기 장신구도 있는데, 모두 아딜레의 귀족들만이 사용하는 고급품이에요. 지금 당신 옷차림에 꼭 맞을 거 같네요.
아니면 달리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혹시 사장님 계시나요?
사장이요? 제가 바로 사장인데, 무슨 일이죠?
금만당의 사장은 김 사장님 아니셨나요?
그분 말씀이군요. 그분의 친구분인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아아. 이걸...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참 어렵네요.
당신도 알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하기 쉽잖아요.
돌아가셨나요?
네. 이 가게는 2년 전 사장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저한테 물려주셨어요.
당신은 이곳에서 일했던 종업원인가요?
네.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금박을 붙인 "금만당"이라는 간판의 글자가 햇볕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덕분에 행인들은 나무로 만들어진 간판이 낡았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뭐 드릴까요?
…………
맛있는 거!
뭐 먹고 싶어?
음... 완자 튀김!
그래. 양이 적지 않은데, 유유는 다 먹을 수 있지?
당연하지! 지금의 난 뭐든 다 먹을 수 있다고!
천천히 먹어. 빨리 먹다간 체해.
너무 힘들어서 그렇단 말이야...
유유는 무대에 서는 게 좋아?
응! 허드렛일이 대부분이지만, 행복해.
언젠간 유유도 함영 언니처럼 무대에서 내 몫을 다 해낼 거야!
…………
꽃잎이 베개에 떨어지고~ 피곤한 밤이 달콤하게 잠드니~ 봄의 경치는 멈추지 않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불빛 아래의 연약한 그림자~ 매미의 울음소리가 빗소리 같구나~
채!
먼 곳을 향하는 날갯짓~ 가을 구름이 굽이치니 만 리를 뒤덮네~
오만방자하면서도 외로워하는구나~
이곳은...
겨울이 오면~
창산은 눈으로 뒤덮이고~ 새들은 날갯짓하며 하늘 높이 맴도는구나~
채!
갑판 위 거리의 끝에는 야항선의 중앙 무대가 있었다.
그건 나(그녀)의 무대였다.
여길 떠나서 구룡성으로 돌아가.
그리고 꼭 부모님을 찾아.
함영 언니!
미안해. 유유.
나(그녀)는 유유를 속였어.
뒤돌아보면 안 돼. 유유. 뒤돌아보면 안 돼.
이 자세의 포인트는 뒤돌아보지 않는 거야.
미안해. 유유.
나(그녀)는 돌아왔다.
신중하게 행동하고~ 비용을 절약해~ 네 재능은 손초를 뛰어넘으니~
하지만 너(나)는 뒤돌아봤다.
맞아.
왜?
나도 몰라.
속박돼 자유롭지 못한 처지도~ 자유롭게 다니는 젊은이도~ 늙어간다네~
그럼, 너(나)는 무엇 때문에 춤을 춘 거야(죽은 거야)?
나도 몰라.
높은 구름에 닿고~ 남쪽 바다에서 은둔하니~ 내 마음이 편안한 곳, 그곳이 내 고향이네~
너(나)는 이미 과거를 만났구나.
그래.
그럼, 미래는?
넌 항상 이곳에 있었구나.
나? 오래전부터 있었어.
춤은 더 이상 추지 않는 거야?
응. 추지 않은 지 오래됐어.
난 더 이상 이곳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
근데 이 무대 위에 있는 넌 여전히 능숙하네.
마지막 가사는?
모르는 거야? 이건 구룡의 옛 시인이 쓴 거잖아.
글쎄. 무대는 날 위해 준비된 게 아니야. 관객이 있어야 무대도 의미가 있는 거니까.
가사조차도 널 위해 준비된 게 아니야.
그래서 마지막 가사는?
수평선 위의 태양은 여전히 눈부셨다.
망망한 속세에서... 돌아간 이를 그리워하네.
쓸쓸히 퇴색된 무대 옆에 선 그녀는 한숨을 살짝 쉬었다.
모든 것이 변한 것 같기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야항선은 여전히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을 싣고 있었다. 하지만 함영의 기억 속에 새것이었던 것들이 지금 시간의 흔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과거 함영이 올랐던 무대도 지금은 퇴색된 상태였다.
멍하니 앞으로 걸어가던 함영이 정신을 차렸을 때, 너무나도 익숙한 "집"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곳에서 함영과 포뢰는 함영의 기억 속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을 보냈었다.
이 집도 시간의 흐름은 거스를 순 없었지만, 누군가가 일부러 보수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함영은 페인트가 벗겨진 문고리를 잡았지만 문은 밀지 않았다.
깍깍!
집의 반대편에서 거대한 역사 로봇이 서툴게 달려왔다.
아이치!
깍깍...
다녀왔어요. 아이치.
함영은 녹슨 아이치의 겉면을 쓰다듬으며,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를 바라봤다.
깍! 깍깍...
제가 없는 동안 계속 이곳에 있었던 거예요?
…………
고생했어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아이치. 그녀가 당신을 데려가지 않은 건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거예요.
……
그리고 그때 일은 제 책임이에요. 아이치의 잘못이 아니에요.
제가 유유를 지키지 못한 거예요.
깍!
안 돼요. 아이치는 여기에 남아요.
고개를 끄덕인 아이치가 손에 들고 있던 빛바랜 분홍색 리본을 함영에게 건네준 뒤,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이건... 유유의 리본인가요?
깍... 깍.
알겠어요.
이번엔 꼭 유유를 무사히 데리고 돌아올게요.
함영은 아이치의 팔에 리본을 묶어 준 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녀는 결국 그 집문을 열지 않았다.
함영은 아이치에게 작별을 고한 뒤, 곧바로 야항선을 떠났다.
그 늙은 죄수의 말대로라면 유유는 지금 그 산에 있을 것이다.
유유도 곤경에 처할 정도라면... 도대체 어떤 상황인 걸까?
하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안녕.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함영이 맞지?
찻집 옆에 편안하게 앉아 있던 여성이 찻잔을 내려놓고, 야항선 아래 시장에서 인파를 헤집고 다니는 함영을 불러 세웠다.
그녀는 언제든지 시장의 시끌벅적한 소리에 파묻힐 것만 같은 목소리로 함영을 불렀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갈대처럼 유연하고도 강인하여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절 아세요?
내 이름은 두형이고, 만난 적은 없을 거야.
네. 초면인 것 같네요.
하지만 네 이름은 20여 년 전 야항선의 역사에 기록돼 있지.
무슨 일이죠?
함영은 드물게 상대방의 말을 끊었다. 더 이상 과거의 사소한 일들을 이야기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풍의 부탁으로 몇 가지 일들을 말해주려고, 이곳에서 널 기다리고 있었어. 일단 앉아봐.
테이블 밑에서 의자를 꺼낸 두형은 살갑게 웃으며 함영에게 차를 따라줬다.
고마워요. 그런데 용건이 뭐죠?
잠깐만 시간을 내줘. 들으면 너도 흥미를 느낄만한 이야기야.
총 두 가지 일인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첫째, 아직도 존재하는 "요람" 해커 조직의 주둔지는 늙은 죄수가 알려준 그 산에 있어.
둘째, "요람"은 매우 복잡한 복합 기술을 장악해 지능 수준이 낮은 로봇을 제어할 수 있어. 다행인 건 그 기술이 하급 접합 기술에 불과하다는 거야.
포뢰가 향한 곳은 "요람"의 기지인 것 같지만, 정보에 따르면, 당분간은 안전할 거야.
배에 있는 죄수는 당신이 말한 것들을 언급하지 않았어요.
그는 20년 넘게 배에 갇혀 세상과 단절돼 있었어. 그의 조직조차 그를 버린 지 오래됐겠지.
자기 조직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하는 건 흔한 일 아닌가?
그들이 로봇을 제어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럼, 보조성에서 만났던 로봇들도 "요람"이 제어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 네 말이 맞아. 네가 야항선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심어놓은 스파이가 야항선에 정보를 전달했어.
그럼,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요? 비리야 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순환 도시도 폐허가 됐는데요.
혹시 단순히 "복수"를 위해서일까요?
우리가 어떻게 해커의 생각을 이해하겠어. 그리고 그들은 무슨 일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야.
그렇게 말한 두형은 차 한 모금을 마셨다.
시간이 촉박한 것에 대해선 전혀 신경 쓰지 않으시네요.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포뢰는 당분간 무사할 거야. 차 몇 잔 더 마신다고 해서 일에 지장이 생기진 않아.
야항선 감옥에 있던 "요람"이 차디찬 얼음이라면, 눈앞의 두형은 고즈넉한 옛 우물 같았다.
야항선에서 함영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봤었다. 때론 몇 마디 나누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성격을 알 수 있었고, 그것에 맞춰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형의 눈에선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
날 믿지 않아도 네 동생은 믿어야 해. 그녀는 그렇게 쉽게 죽을 애가 아니잖아.
함영은 두형이 "동생"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강조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방금 전의 무례함에 사과드려요. 계속 말해 보세요.
두형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은 정보였고, 앞으로 이야기할 건 조풍의 부탁이야.
그는 네가 포뢰를 찾아 데려오길 바라.
그건 조풍이 부탁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란 걸 잘 아실 텐데요.
그렇다면 다행이야. 방금 전달한 건 "부탁"이었지 "명령"은 아니야. 그러니 오해하지 마.
"부탁"이지 "명령"이 아니라는 건...
조풍도 포뢰가 구룡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을 텐데요?
당연히 알고 있지. 하지만 지금의 조풍은 대가족에 시집간 새댁처럼 구룡과 구룡 백성을 모두 책임지고 잘 보살펴야 해.
그것과 별개로 조풍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은 하지 않아. 그래서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도 힘들다는 거야.
두형은 함영의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럼, 구룡은 우리에게 뭘 해줄 건가요?
난 공중 정원의 의원이야. 구룡 사람은 맞지만, 구룡파는 아니야. 그래서 난 아무것도 보장해 줄 수 없어.
하지만 구룡은 어떤 구룡 사람이든 포기하지 않을 거야. 물론 너도 포함해서.
두형은 또다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걸 본 함영은 탁자 위의 찻주전자를 들어, 두형의 찻잔을 가득 채워줬다.
넌 안 마셔? 가루차긴 하지만 구룡에서만 맛볼 수 있는 거야.
전 많이 마셔봤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고, 야항선에서 가장 보편적인 찻잎이었거든요.
그래. 지금은 많이 비싸졌지.
이 정도 돈은 신경 쓰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돈은 많은 걸 살 수 있어. 하긴 "우리"가 이런 걸 신경 쓸 사람은 아니긴 하지.
찻잔을 들어 입에 가져간 두형은 미소를 지으며 함영을 바라봤다.
조풍한테서 들으셨겠지만, 전 인간이 아니에요.
물론이지. 그는 모든 것을 세심하게 고려하고 배정하는 사람이니까.
로봇, 구조체, 인간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행동만...
혹시 신을 믿나?
두형이 갑자기 말을 돌렸다.
구룡엔 전통 신화 이야기가 많이 들었는데, 어떤 신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무엇이든.
믿는다고 할 수도 없고, 믿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어요.
신화에 관한 해석이나 리뷰는 많이 읽었어요.
하지만 전 그것들을 믿을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아요.
그러면 됐어.
인간이 신을 믿는 건 인간 자체가 결함이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 결함을 보충하기 위해 신이 탄생했지.
그리고 신 또한 결함이 있을지도 모르지.
역시 넌 보통 로봇이 아니구나. 대도 참 기술이 좋아.
이건 비리야 님과 상관없는 일이에요.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던 건 비리야 님 때문이 아니니까요.
그건 그렇지. 대는 다른 사람을 위해 죽지도 다른 사람을 위해 살지도 않으니까.
다만 구룡 거리를 거니는 흔한 로봇에 비하면 넌 참 특별하다는 거야.
자, 잡담은 여기서 끝내지.
네 친구가 시장 밖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어.
고마워요.
고마워할 것 없어.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이야. 여기, 가루차 한 주전자 더 줘.
시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한가로운 찻집은 연약한 그림자만 남아 있었다.
두형은 잔에 담긴 차를 단숨에 들이켰고, 잔 밑에 있는 찌꺼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맞은편에 두형이 함영에게 따라준 차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갈증으로 죽고 싶지 않다면, 모든 잔에서 마실 수 있는 만큼 마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