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이 공중에서 발차기를 날리자, 로봇이 빙글빙글 돌면서 폐허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흙먼지가 흩날린 후, 속에선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른 로봇들은 상황이 불리해지자,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도망쳐 버렸다.
빌어먹을 로봇... 콜록콜록...
싸움 잘하네. 덕분에 살았어... 콜록콜록...
가면 너머로 스캐빈저 대장의 기침 소리가 심하게 들렸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함영은 손을 내밀어 스캐빈저 대장을 부축하려 했지만, 상대는 신경 쓰지 말라며 손사래 쳤다. 그래도 함영은 스캐빈저 대장을 부축한 뒤, 몸에 지니고 있던 손수건을 건넸다.
콜록... 고맙군. 기침하고 나면 괜찮아져. 신경 쓰지 마. 몇 년 전에 생긴 지병 때문이니까.
더러워진 손수건을 돌려주기 민망했는지, 스캐빈저 대장은 함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누렇게 변한 손수건을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옷차림을 보니 구룡 사람이지? 이상한 기계 하인을 데리고 있군.
네?
아니에요. 오해하셨어요. 제 친구예요.
친구? 그렇군. 근데 너 같은 부잣집 딸이 왜 이런 곳에 오게 된 거지?
구룡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침 이곳을 지나게 된 거예요.
구룡으로 간다고? 너도 그 소식을 듣고 왔구나.
무슨 소식이요?
음... 별거 아니야.
야항선이 정박한 뒤로 그들은 구룡 순환 도시 재건을 준비하고 있어.
지금 구룡엔 살아 있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아. 그래서 야항선 사람들은 타지에서 떠도는 구룡인들을 소집하기 위해 소식을 보냈어.
그게... 콜록콜록... 우리가 구룡으로 돌아가려는 이유야.
구룡 순환 도시를 재건한다고요? 하지만 순환 도시 지도자인 곡은 오래전에 사라졌잖아요?
곡? 야항선에서 사라진 곡 님을 말하는 건가?
잠깐만요.
야항선의 곡 님이요?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누구긴 누구야? 야항선의 주인을 말하는 거지.
네!?
비리야 님이 돌아가셨나요?
비리야? 님?
함영이 말한 "비리야"가 누군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함영의 말투에 흥미를 느낀 스캐빈저들이 스캐빈저 대장 옆으로 몰려들었다.
너 설마...
죄송해요. 야항선에 있을 때, 곡 님의 관할 구역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호칭을 바로 바꾸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대장은 함영이 믿을만한지를 고민하는 듯 경계하는 눈빛으로 함영을 관찰했다가 이내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네 목에 있는 거, 그거 항쇄 맞지?
네. 정확히 말하면 항쇄를 해제할 때 생긴 상처예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야항선의 관할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군. 너도 그 곡 님의 억압을 받았던 사람이었군.
대장은 다른 스캐빈저들에게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눈빛을 보냈다.
배 위에선 그 무슨 항쇄를 달아야 하고, 장사가 안되면 바다에 내던져졌고, 남의 눈치도 봐야 했다지?
미안하군. 우리가 야항선에서 버림받은 생존자들을 많이 받다 보니 이런 것에 대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나도 그 곡 님은 갑자기 사라졌다고 그들한테서 들었어.
근데 내 생각엔 죽은 거 같아. 콜록콜록...
혹시 야항선에 대해 알고 계시는 게 더 있으세요?
우리도 최근에 다른 곳에서 돌아온 거라 자세한 건 잘 몰라.
혹시 유유라는 아이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열대여섯 살 정도 됐고 망토를 걸치고 있는 여자아이예요.
야항선에서 탈출할 때, 제 동생을 데리고 나오지 못했거든요.
동생? 안타깝게도 난 보지 못했어. 너희들은 봤어?
대장 뒤에 있던 다른 스캐빈저들이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찾고 싶다면, 항구 쪽에 있는 시장에 가서 물어봐.
야항선은 순환 도시의 남쪽 항구에 정박해 있는데, 여기서 가까워.
그리고 배와 성안의 모든 일은 이미 야항선에 있던 주룡파에서 관리한다. 콜록콜록...
대장, 오경이 지났어요.
그럼, 출발해야겠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이야. 구해준 것에 대해선 다시 한번 고마워.
스캐빈저 대장이 함영에게 구룡식 인사를 건네자, 함영도 서둘러 답례 인사를 했다.
별말씀을요.
우린 갈 길이 멀어서 먼저 가겠네.
네. 조심히 가세요.
스캐빈저 대장이 손을 흔들자, 폐허 속에서 쉬고 있던 스캐빈저들이 크고 작은 짐을 짊어지고 다양한 모델의 픽업트럭에 올랐다. 그런 뒤, 아침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을 대화하는 데 능숙하시네요.
이건 제가 야항선에서 배운 소통 전략이에요.
인간은 때론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들으니까요.
그들은 당신이 로봇인 걸 눈치채지 못한 것 같더군요.
그건 제가 디자인될 때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야항선에서 인간의 신분으로 살아갈 수 없었겠죠.
함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함영에게 인간 외형을 준 "창조자"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 마지막 순간에도 비리야의 존재는 함영의 목적과 원칙이 아니었다.
연기와 짙은 구름 사이로 구룡의 아침이 밝아왔다.
보조성은 구룡을 침범하는 자들을 막기 위함이 아닌 구룡을 떠나려는 자들을 붙잡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한 적이 있었다.
떠나는 것과 돌아오는 것의 어려움은 앞이 아닌 뒤돌아보는 것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가요.
천하의 백성들을 모아, 천하의 물건을 모은다.
야항선이 세계 각지를 항행할 땐, 종종 야시장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의 야항선과 구룡성은 새벽시장을 주로 열었고, 밤이 되면 오히려 인적이 드물었다.
웃통을 벗은 채 다양한 화물을 짊어진 노동자와 철근, 콘크리트 같은 건축 재료를 짊어진 산업용 로봇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광경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가전 수리"라는 네온사인 간판을 단 수리 노점 옆에 조식 맛집이 있었다. 그곳의 커다란 찜기에서 모락모락 나오는 김은 조식 맛집 최고의 간판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기계로 모든 조리 과정을 자동으로 완성할 수 있는 시대지만, 구룡 식당들은 아직도 수제를 고집하고 있었다.
손님, 뭘 드시겠어요?
맛집 주인은 맛집 앞에서 발길을 멈춘 손님에게 물어보면서 찜기의 뚜껑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고기와 반죽 냄새가 뒤섞인 증기가 양복 입은 손님의 모습을 순식간에 가려버렸다.
음... 차사오 만두 세 개랑 두유 한 잔 주세요. 그리고 창펀 있나요?
있어요. 여기 창펀 일 인분!
맛집 주인은 눈앞에 있는 손님의 신분에는 관심 없다는 듯 나무집게로 찜기에 있는 새하얀 만두 세 개를 접시에 담은 뒤, 눈앞의 손님에게 건넸다.
두유는 저쪽에 있으니 직접 가져가세요. 총 9개 청부예요. 종업원!
네! 창펀 한 그릇,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소박한 맛집 안쪽에서 앞치마를 두른 소년이 달려 나와, 익숙한 솜씨로 주방의 찜기를 끄집어냈다.
손님은 주머니에서 청부 9개를 꺼낸 뒤, 낡은 돈 상자에 넣었다. 맛집 주인은 손님이 낸 금액이 맞는지보다 다른 만두가 잘 익었는지가 더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만두를 든 손님이 따뜻한 두유를 한 모금 마신 뒤, 고개를 숙이고는 문발 뒤에 있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맛있는 조식 맛집"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필적은 힘찼지만, "곡"의 서명이 전서체로 쓰여 있었기 때문에 되려 진품인지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보단 접시 위에 있는 음식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맛집 내부 몇몇 테이블엔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는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금방 들어온 손님도 의자 하나를 끌어 사람이 없는 테이블 옆에 앉았다.
손님. 여기 주문하신 창펀이에요.
재빨리 접시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소년은 주문이 밀릴까 봐 곧장 주방으로 돌아갔다.
창펀은 찜판 냄비에 넣어 1분 정도 찌면 완성된다. 시간이 길어지면 딱딱해지고 짧으면 익지 않아서 떼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타이밍이 중요한 요리이다.
다 찐 창펀을 여러 조각으로 썬 다음, 양념간장과 곁들여 먹으면 쌀의 순수한 향기와 짠 조미료가 조화를 이루면서 구룡 최고의 먹거리가 된다.
어디 맛 좀 볼까? 음, 바로 이 맛이야!
음식에 대한 칭찬은 곧 요리사에 대한 칭찬이었다. 하지만 너무 바쁜 요리사는 낯선 손님의 칭찬을 들을 겨를도 없는 것 같았고,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손님이 그 칭찬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그렇지? 배 씨네 조식의 맛은 어딜 내놔도 손색이 없거든.
네. 이렇게 맛있는 조식은 오랜만이네요.
옷차림을 보니 멀리서 왔나 봐? 아침부터 만두에 창펀에 적잖이 주문했구먼.
네? 맞아요. 일 때문에 밤새 왔거든요.
손님은 입을 우물거리며, 다른 손님의 말에 대답했다.
당신은... 누구세요?
어르신이라니... 난 이 구룡성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두형이에요. 구룡성은 일 때문에 왔어요.
다른 손님은 넉살 좋게 웃으며 젓가락으로 구룡성 방향을 가리켰다.
몇 년 만에 돌아온 건데, 예전과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말도 마. 예전엔 집에 가는 건 둘째 치고, 배에서 내리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었지.
지금은 힘들긴 하지만, 모두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아.
전에는 야항선에서 생활하셨나요?
맞아. 난 야항선에서 자랐고, 어릴 때부터 계속 건설 현장에서 일했었어.
그러다가 야항선이 정박한 후로는 구룡성을 재건하느라 바빠.
어? 지금은 구룡성에 들어갈 수 있어요?
응. 아, 퍼니싱을 걱정하는 거야?
야항선이 정박하기 전에 구룡파가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르겠는데, 여과탑 코어 여러 개를 설치해 놔서 괜찮아.
그리고 지금은 포뢰파도 수가 많아졌잖아. 오는 길에 못 봤어?
시장 밖에 있는 포뢰파를 말하는 건가요?
지금 구룡파 중에선 포뢰파의 수가 제일 많을걸? 그렇다고 특별히 많은 건 아니지만 이곳의 안전은 그들이 지켜주고 있으니깐.
순간 맛집 안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식당 사장이 시간을 체크해 가며 찐 만두가 다 된 듯했다.
수가 제일 많다고요? 하지만 오는 길엔 몇 명 정도밖에 없는 것 같던데요?
무슨 일이 있어서 나갔겠지. 대충 평화롭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손님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입을 닦은 뒤, 옆에 놨었던 안전 헬멧을 썼다.
천천히 먹어. 난 일하러 가야 해서 먼저 일어날게.
노동자가 문발을 걷고 나감과 동시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뭐로 드릴까... 크흠, 조풍 님께서 어쩐 일이 신가요? 식사하려고 오신 건가요?
"조풍"이라는 말을 듣자, 맛집 내 다른 손님들은 모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방금 전에 들어온 양복 차림의 손님은 여유롭게 차사오 만두를 먹고 있었다.
아니. 사람 찾으러 왔어.
네네. 천천히 살펴보세요.
조풍이 문발을 걷고 식당으로 들어가자, 눈앞의 음식을 허둥지둥 입 안에 쑤셔 넣은 다른 손님들이 뭔가에 쫓기듯 쪼르르 맛집을 떠났다.
그러자 맛집 안은 음식 먹는 소리, 아궁이 불꽃 소리 그리고 물 끓는 소리만 남게 됐다.
편해 보인다?
왜요? 아침도 못 먹나요?
아침에 도착하면 의논할 게 있다고, 네 입으로 말해 놓고선 내가 직접 찾아오게 만들어?
아... 맛있네요.
만족스러운 듯 한숨을 내쉰 두형이 눈앞의 빈 접시를 밀었다.
역시 아침은 구룡 음식이 좋네요. 커피와 빵 같은 건 아무래도 입맛에 맞지 않아요.
다 먹었어? 그럼, 가지.
네? 어딜 가요?
어디든. 설마 조식 집에서 일 얘기하려는 건가?
그게 뭐 별일이라고 그러시죠. 그리고 주위를 보세요. 당신이 들어오는 바람에 손님들이 싹 다 도망가고 아무도 없잖아요.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세를 바로잡은 조풍은 눈앞에 있는 여성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공중 정원에서 돌아온 이유가 뭐지?
당연히 구룡에 관한 일이겠죠.
왜? 공중 정원에서 뭐라고 했는데?
별거 아니에요. 그냥 노력은 하지 않고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에요.
두형의 손가락은 앞에 있는 접시의 가장자리를 문지르고 있었지만, 시선은 조풍의 가면에 고정돼 있었다.
……
구룡은 그 놈들의 정원이 아니야.
일부 사람들 눈엔 크나큰 구룡에서 구룡성만 이용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일부 사람들은 우릴 도와주고 싶어 해요.
조건은?
아직 확실치 않지만, 위에선 그럴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공중 정원의 많은 의원들에게 정치란 매주 금요일 정례 회의 후 과일과 디저트를 즐기기 위함이겠죠.
하지만 저희에게 정치는 인간 그리고 구룡의 미래를 존속시키기 위함이에요.
너희들?
조풍의 질문에 비아냥이 담겨 있음을 가면 너머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은 아닌가요? 참으로 아쉽네요. 야항선에 있었을 때 당신은 귀여운 대를 위해 동분서주했었는데, 그땐 양심이 살아있었나 보죠?
난 의원이 아니야.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남은 구룡 사람들과 함께 살아남는 거야.
누가 무엇을 약속했든 중요하지 않아. 우리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게 중요해.
그 "우리" 속엔 저도 있겠죠?
그건 너한테 달렸지.
그럼, 제가 어필을 잘해야겠네요?
두형은 휴대용 여행 가방에서 파일 하나를 꺼내 조풍에게 건넸다.
이게 뭐지?
일단 보세요.
맛집 안이 또다시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하지만 이번엔 사고파는 떠들썩함은 없었고, 고요한 정적만이 남아있었다.
조풍은 손에 들고 있던 파일을 빠르게 훑은 뒤, 침묵을 깨는 목소리가 전보다 더 가라앉아 있었다.
이거 진짠가?
물론이죠. 제가 언제 당신을 속인 적이 있었나요?
어디서 알아낸 거지?
당신과 마찬가지로 저도 저만의 정보망이 있죠.
하지만 이 파일의 신호원은 구룡성이야.
아마도 구룡성에 수완이 뛰어난 인물이 있다고 봐야겠죠.
그렇게 말하는 넌 그 말을 믿는 건가?
왜 그러시죠?
성에 남아 있는 사람은 천문대 묘지기들 몇 명밖에 없어.
그들을 봤어요?
내가 그들을 만날 필요는 없지.
처음부터 우릴 거절한 사람한테 무시당하면서까지 들이댈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그 "진짜" 곡 님은...
조풍은 잠시 머뭇거렸다가 결정한 듯 이어 말했다.
이미 사라진 거 아니야? 순환 도시 이후로 아무도 그 "곡 님"을 만난 적이 없잖아.
오?
두형이 말을 잇기도 전에 맛집 문발이 걷어 올려지면서 허둥대는 구룡파가 들어왔다.
조풍은 얼른 손에 쥐고 있던 파일을 닫았다.
조, 조풍 님!
무슨 일이야? 천천히 얘기해.
구룡파는 조풍 맞은편에 앉은 두형이 신경 쓰였는지 입을 열지 않았다.
괜찮으니까, 그냥 말해.
부두를 지키는 형제가 제3 현제 밖에서 배에 오르려고 하는 자를 잡았대요.
매일 일어나는 일인데 웬 호들갑이야? 자세히 심문해서 문제없으면 풀어주고 문제 있으면 쫓아내면 돼.
그렇긴 한데, 다른 문제가 생겼어요. 자신을 함영이라고 말하면서 구룡 신분을 증명할 물건은 없다고 해요. 좀 더 추궁했을 때, 콕 집어서 유유라는 자를 만나고 싶대요.
함영?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인데...
왜 그래요?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 알긴 한데, 그녀는 죽었을 텐데?
구룡의 전통 이야기에서 죽었다 살아나는 장면은 흔한 거 아닌가요?
너 유신론자였어?
아쉽지만 아니에요.
됐어, 내가 직접 만나볼게. 그리고 이 사람을 야항선 선실로 안내해.
이 사람도 구룡의 신분 증명이 없으니까 등록부터 해. 그리고 선실에 도착하면 그녀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돼.
알겠어요.
좁은 맛집 안에는 또다시 뜨거운 열기만 남게 됐다.
지금의 전 "우리"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겠죠?
구룡파 주둔지에 간소하게 마련된 방에서 함영은 오랫동안 보수하지 않아서 녹슨 천장의 구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난 20년간의 비바람이 녹슬고 얼룩진 답이 되어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이 배나 함영 자신이나 할 것 없이 이미 잊혔을지도 모른다.
이 땅에 모인 사람들은 구룡성 폐허 위에서 악착같이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무거운 철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온 조풍 때문에 함영의 생각이 중단됐다.
안녕.
안녕하세요.
서로 서먹서먹한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둘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이름이 함영이라고?
네.
예전엔 야항선 무희였는데, 후에...
수장... 암살에 실패해서 죽었지.
함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20년 전, 함영이 일으킨 비리야 또는 "곡 님"에 대한 암살은 함영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 당시의 진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함영과 유유뿐이었다.
지금에야 이런 말을 하기엔 늦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어요. 그때의 전 제 의지로 행동한 게 아니에요.
그건 이미 알고 있어. 사건의 경위도 다 조사했고, 카이사이도 우리에게 모든 진실을 말해줬어.
그리고 그도 몇 년 전에 죽었어. 네 표정을 보니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시장 밖에서 만난 스캐빈저가 야항선과 구룡의 근황에 대해 말해줬어요.
네가 본 대로야.
조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우리의 기억 속 함영은 20년 전에 스스로 항쇄를 풀고 죽은 걸로 되어 있어.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로봇이 그렇게 강한 펄스를 받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
저도 이유는 몰라요.
하지만 그날 이후로 전 계속 꿈속에서 헤맸다가 최근에야 지금 동포들의 도움으로 깨어나게 됐어요.
동포?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함영이라는 것만은 확실해요.
조풍은 함영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눈치챘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나도 네가 어떻게 "부활"했는지는 관심 없어. 요즘 이상한 일들이 좀 많아야 말이지.
내가 알고 싶은 건 네가 야항선으로 돌아온 목적이야.
네가 구룡과 야항선의 안전에 해를 끼칠지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해.
유유를 찾기 위해서예요.
함영의 목소리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유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왔어요.
포뢰를 말하는 거군.
유유가 벌써 포뢰가 된 건가요!?
그 암살 사건 이후, 포뢰는 구룡 용의 아이에 들어가게 됐어.
그 후, 포뢰가 널 배 밖으로 조용히 내보낸 건 알고 있었어. 다른 사람은 속일 순 있어도 난 속일 순 없거든.
그렇군요.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포뢰는 지금 야항선에 없어.
나흘 전에 부하 몇을 데리고 순환 도시의 북서쪽에 있는 산에 간 뒤로 아직 돌아오지 못했어.
뭐라고요!?
최근 구룡에서 발생한 구룡 주민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그곳에 갔는데, 그녀들까지 실종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
그렇다면 인원을 파견해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함영의 질문에 조풍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한동안 방안에선 항구 시장의 시끌벅적한 소리만 들려왔다.
내가 파견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내가 파견한 인원들도 실종됐어.
야항선의 사람들이 육지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규모와 범위가 점점 커지고 있어. 우리 인력만으로도 관리가 힘든 상황에서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부을 순 없잖아.
함영은 가면에 가려진 조풍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해상에 있을 땐 퍼니싱의 침식을 적게 받아서 괜찮았지만, 육지에 있는 지금은 남겨진 장비와 물자 그리고 해상 교역으로 획득한 여과탑으로 간신히 방어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야항선에 사람이 많다고 해도 구룡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 텅 빈 도시에선 구룡인의 목숨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했다.
죄송해요. 유유였어도 구룡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을 거예요.
이해해 줘서 고마워.
굳이 말하자면 포뢰가 이번에 떠난 건 너와 관련이 있어.
무슨 뜻이죠?
그녀가 부대를 이끌고 출발하기 전에 그 암살 사건의 주범을 만나러 감옥에 갔었어.
"요람"이라고 불리던 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