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3 전하지 못한 말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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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3-10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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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에 입구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밤비나타가 꼭 그 안에 있다는 것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만일을 대비해 바네사와 베라는 각 방을 빠르게 살펴보며 밤비나타의 흔적을 확인했다.

결핍된 느낌이 다시 바네사를 찾아왔다.

테슈가 떠난 데 이어 "인형"의 부재가 이렇게나 빨리 재연돼 버리고 말았다. 바네사는 밤비나타가 테슈와 같은 길을 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오랫동안 누적된 불안감이 바네사의 마음속을 초조함으로 가득 채웠다.

문 열고 수색하고 다시 닫았다. 낡은 문이 여닫는 과정에서 '삐걱삐걱' 소리를 냈고, 그 소리는 바네사의 귀가를 맴돌며 그녀가 떠올리기 싫은 꿈을 속삭이는 것 같았다.

바네사의 추억 속에도 문이 하나 있었다. 그 문이 닫힐 땐, 그 어떤 문보다 큰 소리가 울렸다.

바네사 언니, 자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한다는 건, 바네사가 고민이 있다는 걸 느꼈거나 평소 바네사의 호흡 소리와 다른 걸 인지했다는 것이다.

……

지금은 너한테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구나.

방금 엄마 아빠가 한 말을 고민하고 있나요?

밤비나타, 네가 말해 봐. 정말 아무 재능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내 노력이 매번 부족해서인가?

바네사가 실험실 조수 선발에서 한 명 차이로 탈락하게 되자, 레이먼드는 연줄을 동원해 모집 정원을 "때마침" 한 명 더 늘이게 했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페트라는 노발대발하며, 바네사에게 두 번 다시 망신당하지 않도록, 앞으로 한 달 동안 집에서 접하게 될 프로젝트를 예습하라고 명령했다.

바네사 언니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노력했는지 밤비나타는 잘 알아요.

재능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시간을 노력해도 소용없어.

발레를 배울 때랑 똑같아. 내가 연습하고 있을 때, 넌 그냥 옆에서 내 연습이 끝나길 기다린 것뿐이잖아.

넌 나처럼 멍청하게 기본기만 반복적으로 연습하지 않아도 잘했어.

바네사 언니는 실험실에 가고 싶지 않은 건가요? 엄마는 실험실에 들어가면,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난 발레 재능보다 과학 연구 쪽으로 더 재능이 없거든.

드디어 몸을 돌린 바네사가 밤비나타를 향해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재능이 없는 이상 가봤자 소용없어. 최선을 다해도 다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면... 나절로 웃음이 나오네.

아니에요. 바네사 언니는 그냥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한 것뿐이에요.

바네사가 그렇게 자신을 비하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밤비나타는 급하게 바네사를 대신해 부인했다.

과거 바네사가 언급했던 결론으로 말하자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건 분명 그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을 지은 밤비나타는 시선으로 바네사의 눈에 감춰져 있는 부서질 것 같은 무언가를 쫓아갔으며, 진지한 눈빛으로 방금 그 말을 증명할 수 있길 기대했다. 눈빛 속에 담긴 열정이 너무 뜨겁게 느껴져서 그런지, 바네사는 마지못해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바네사

이런 말을 들어주는 건 너뿐이네. 하, 어렸을 땐 네가 집에 오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밤비나타... 내가 정말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을 찾아낸다면, 넌 날 응원해 줄 거야?

밤비나타

네.

바네사 언니가 무엇을 하든 밤비나타는 모두 응원할 거예요.

이 순간, 쓸데없는 말이나 예쁜 말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었다.

바네사는 밤비나타에게 왼쪽 귀에 있는 이어폰을 건넸다. 끝나지 않은 곡이 둘로 갈라지면서 서로 다른 구조의 심장 속에서 울려 퍼졌다.

며칠 후.

뭐? 실험실에 가고 싶지 않다고?

응.

바네사는 부모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밤비나타에 비해 바네사는 더 이상 어린 시절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때 어린아이였던 바네사도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싶은 나이가 돼 있었다.

하지만 나이 많은 기수가 방향을 안내하는 깃발을 내려놓지 않았는데, 젊은 탐색자가 어떻게 제멋대로 결승점에서 이탈할 수 있을까?

안 돼.

바네사, 네 아버지가 널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연락했는지 알고 있니? 그리고 엄마가 그저께 밖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굽신거렸는지 알기나해?

네사, 너...

그렇게 부르지 않기로 했잖아.

지금 네 행동은 충동적인 거고, 엄마 아빠의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야. 언제쯤이면 우리가 널 위해 계획한 일이 가장 정확한 길 중 하나라는 걸 알아주겠니?

하지만 난 엄마 아빠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어. 난 연구 천재도 아니고 연구를 좋아하지도 않아서, 이 분야에서 내가 원하는 결과도 얻을 수 없다고. 그렇다면 퍼부은 노력과 시간은 모두 의미를 잃게 되잖아? 차라리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엄마 아빠가 원하는 것도 내가 우수한 결과를 선보이는 거잖아?

천재가 아니고 네가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네가 뭐라도 되니? 이 세상은 너만을 위해 돌아가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나도 혼자서 세계를 탐색할 권리가 있잖아?

그래. 네 안목으로 재능이 있고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치자, 그럼 넌 그걸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하니?

소파에서 일어난 페트라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내가 누구 때문에 내 프로젝트, 내 학위를 포기했는데?

만약 내가 네 아버지와 함께 그 해의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면, 지금 내 주된 연구 방향은 다른 부잣집 부인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게 아니었을 거야.

지금 다 컸다고 너 혼자서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니? 넌 네가 태어나고 자라온 그 따뜻한 둥지가 누구의 깃털로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 본 적은 있어?

페트라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곳의 모든 것이 그것과 공명하듯 억울함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네사... 바네사, 아빠 말 들으렴. 엄마 화나게 하지 마.

앞으로 한 달 동안 외출 금지당해서 기분이 나쁜 거야?

그럼 이렇게 하자. 밤비나타와 3일 휴식하고 나서 다시 예습하는 거야. 어때?

레이먼드는 옆에 있던 밤비나타를 바네사 앞으로 끌어당기며, 밤비나타한테 바네사를 설득하라고 눈치를 줬다. 밤비나타가 바네사의 손을 가볍게 잡자, 바네사의 눈빛이 더 단호해졌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처럼 되길 바라는 거야? 날 조종해서 엄마가 포기했던 꿈을 이루라는 건가?

아빠, 실험실에서 프로젝트 책임자로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아빠의 위상이 되는 거라면, 프로젝트의 불필요한 세부 사항은 물어볼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여긴 집이잖아.

아빠는 내가 몇 살로 보여? 지금처럼 아빠의 "프로젝트" 발전에 영향 줄 때 빼고는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본 적이 있어?

솔직히 바보 같은 질문 하나 하고 싶어... 하지만 엄마 아빠가 이 문제를 절대 고민해 본 적이 없을 것 같아... 엄마 아빠는 날 정말 사랑해?

날 사랑해? 질문 자체는 충분히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큰 소리였지만, 밤비나타는 바네사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이 방 안에서 가장 작은 존재인 밤비나타는 바네사의 손을 꼭 잡았다. 보잘것없는 힘이라도 곁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럼 내가 왜 널 위해, 이 가정을 위해 그렇게 많은 걸 희생했을까? 바네사,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아니.

난 엄마 아빠가... 사랑할 가치가 있는 부분만 사랑한다고 생각해.

엄마 아빠 관점에서... 가치 있는 부분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 맞지?

난 이미 결정했어. 이 집에서 나갈거고,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에 입학해서 공부할 거야. 난 스스로 정의하는 가치를 찾겠어.

군사 학교?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데...

단말기에서만 전황에 관한 설명을 봤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선택의 위험성을 전혀 모르는 건 아니야.

난 내 눈으로 보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할 거야.

바네사, 언제까지 말썽 부릴 거니?

하하, 네 눈으로 보고, 스스로 판단하겠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네가 전쟁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 건, 관련 실험에 참여한 쥐만도 못할 텐데, 어떻게 판단하려고 그러니?

부모에게 반항하는 게 네가 생각하는 자유와 성장이니?

아니면 단말기에서 본 자료만으로, 너의 천직이 군대에 있다고 확신하는 거야?

엄마 말이 맞긴 하지, 그것만으로 확신할 수는 없어. 하지만 난 이렇게 통제 속에서 실패한 꼭두각시처럼 사는게 지겨워.

바네사, 어떻게 그걸 통제라고 생각하니? 이건 우리가 네 미래를 위해 정밀하게 계산한 결과라고.

어떻게든 전쟁에 이바지하고 싶은 거니? 연구 방향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중 전투에 관한 건 셀 수 없이 많거든, 게다가 우리 가문의 세력과 자원이 있으니 넌 더욱 쉽게 성과를 이룰 수 있단다.

그때가 되면 누구나 너의 성과를 인정하고 너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거야. 그리고 네가 얼마나 완벽한 과학자의 요람에서 태어났는지도 알게 되겠지. 이런 간단한 이치를 대체 왜 이해하지 못하는 거니?

그래서 내가 얌전히 과학 연구를 한다고 해도, 연구 방향과 미래를 다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결국엔 이미 기초를 닦아놓은 길만이 왕좌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난 왕관의 보석일 뿐이고, 진정한 왕관을 쓰는 건 내 성씨겠지.

바네사는 밤비나타의 손을 잡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됐어. 난 처음부터 엄마 아빠가 내 말을 진심으로 이해하기를 바라지도 않았어.

난 단말기로 협의에 이미 서명했고 모든 준비는 끝났어. 4일 후 아침이면 파오스에서의 첫 수업이 시작될 거야.

짐 정리도 거의 끝났어. 마지막으로 밤비나타는 내가 데리고 갈게. 밤비나타의 기억 칩 정비 방법을 알려주고, 교체 품도 줘.

바네사, 넌 참... 사람을 실망시키는구나.

이렇게 하는 건 너 자신의 가치를 낭비할 뿐이야.

……

안 돼. 지금... 밤비나타의 프로젝트는 정체기야. 밤비나타는 떠날 수 없어.

그리고 난 네 행동에 동의한 적도 없고, 또 실험의 중요 멤버를 데리고 가게 놔둘 수 없어.

실험의 중요 멤버? 지금까지 엄마 아빠에게 밤비나타는 집에서 키우는 실험품에 불과했던 거야?

그리고 겸사겸사 엄마 아빠를 대신해 내 놀이 상대가 되어 주는 것과 동시에 완벽하게 "말 잘 듣는" 본보기였던 건가?

우린 밤비나타와 널 똑같이 공평하게 대했어. 그리고 지금까지 밤비나타를 단 한 번도 막 대한 적 없어.

밤비나타, 너까지 바네사한테 영향 받아서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니?

밤비나타, 아빠는 네가 그렇게까지 반항적인 애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너도 엄마 아빠가 네 실험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지?

우릴 떠나서 바네사와 함께 말도 안 되는 난리를 칠 생각은 아니겠지?

밤비나타는 엄마 아빠의 실험을 위해 존재하는 동물이 아니라고!

"자신"의 생각?

금속과 다양한 합성 재료로 짜인 기체에서 한 번도 직시하지 않았던 문제가 떠올랐다.

발레 교실의 커다란 거울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고, 밤비나타는 거울에 비친 작고 낯선 인간 형태의 모습을 응시했다.

"자신"이라는 게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의식의 바다? 합금 척추? 아니면... 기억 칩?

밤비나타는 인간 형태의 각 부분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자신"을 적재한 부품과 "자신" 그 자체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넌 발레를 좋아하잖아? 내 말이 맞지?

어떤 이의 모습을 동경해서, 그녀가 회전하며 추는 춤을 따라 하는 행위가 좋아한다는 표현일까?

밤비나타... 내가 정말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을 찾아낸다면, 넌 날 응원해 줄 거야?

바네사 언니의 결정을 응원하는 건... 명령에 따르는 습관 때문일까?

새끼손가락도 걸었으면서, 기억도 못 하고...

무엇을 잊었는지 알고 싶어하는 건 착한 아이와 어긋나는 일일까?

딱딱한 벽 아래 부드러움 마음을 듣고 싶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눈물을 막고 싶어.

하나하나의 결과에 열매가 맺히지 않아도 노력에 대해 인정 해주고 싶어.

하지만...

어떻게 하긴...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면 돼.

그러니...

폭풍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는 세 사람은 일제히 밤비나타를 바라보며, 그녀의 입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 있게 기대하고 있었다.

밤비나타의 대답은...

침묵이었다.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 이것과 어긋나는 <//자신>은 틀렸다.

"하고 싶어"도 잘못된 걸 선택하면 안 된다.

수천 일을 곁에서 올려다봤던 바네사의 눈을 지금은 마주할 용기가 없었지만, 침묵은 밤비나타가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정답에 무한대로 가까운 대답이었다.

……

하, 거봐. 지금 네가 이렇게 하는데, 진심으로 너와 함께하고 싶다는 이가 있을 리 없지.

바네사, 밤비나타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너보다 말 잘 듣고, 우리의 마음을 잘 헤아려 줬어. 그런데 넌... 그동안 하나도 배운 게 없니?

바네사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고 담담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인 밤비나타를 바라봤다. 마치 방금까지 밤비나타와 함께 가겠다고 한 사람이 자신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손바닥을 가볍게 폈더니 그 자그마한 손은 힘없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비나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러자 바네사는 시선을 거두고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됐어. 솔직히 나도 내 옆에 귀찮은 인형이 항상 따라다니는 게 지겨워.

곁에 두고 싶은 게 있다면, 내가 강해진 다음 빼앗으면 되니까.

언젠가 아무도 날 거역하지 못하게 할 거야. 그때가 되면 난 다시 돌아와 스스로 찾아낸 가치를 보여줄게.

말을 마친 바네사는 침실로 돌아가 자신의 캐리어를 꺼내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고 현관으로 향했다.

네사!

가게 놔둬!

쾅!

자동으로 닫히는 문을 일부러 소리 크게 닫았다. 밤비나타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었지만,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것은 마치 모든 이에게 있어 조용하고도 공정한 통치자와 같았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시간 속에서 결심을 굳힌 사람은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뤘고, 겁쟁이는 자신의 막막함 속에서 계속 가라앉았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을 적재한 작은 칩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밤비나타가 쫓을 수 있는 건 허상 속 그림자밖에 없었다.

바... 네사?

정례 검사를 마치고 페트라는 다시 리셋된 밤비나타를 침실로 돌려보냈다. 침실 문에 걸려 있는 이름표를 보고 밤비나타는 문득 의문이 생겼다.

이전 기억상실과 달리 이번 재가동 후, 기억 칩 속 바네사와 관련된 데이터는 이미 새로운 일상에 덮어 씌워져 버렸다.

밤비나타가 계속 바네사의 침실을 쓰면 많은 불편함이 생길 걸 알면서도 페트라는 바네사의 흔적을 집에서 지우려 하지 않았다.

페트라는 "밤비나타가 결핍된 기억 데이터에 대해 특별한 피드백이 있는지를 관찰할 기회다"라는 대답으로 자신의 이유를 설명했다.

바네사는 네 언니야. 그 아이는... 말 안 듣는 아이였지. 그리고 지금은 집에 없어.

바네사...

밤비나타가 낯설면서도 기시감이 가득한 이름을 중얼거리자, 의식의 바다에서 뭔가 싹트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에 접근할 수 있는 틈새를 찾을 수 없었다.

들어가서 쉬거라. 오늘 검사 시간이 평소보다 30분이나 더 길었으니 2시간 정도는 휴면할 수 있어. 아빠가 돌아오기 전에 깨울게.

말을 마친 페트라가 방문을 닫았다.

새하얗고 거대한 침대. 밤비나타는 무의식적으로 침대의 한쪽에 가서 누웠다. 그리고 중간 선을 넘어 반대쪽 공간을 침범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 처음엔 왜 문과 가까운 쪽에 눕지 않았던 걸까? 분명 그쪽이 더 편리했을 텐데.

완전히 휴면에 지입하기 전, 눈을 감은 후 어둠 속에서 이러한 질문이 떠올랐다.

기억 데이터에서 이런 무의식적 행동의 발원지를 검색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새롭고 또 조금은 두려운 느낌이 밤비나타를 자극했다. 밤비나타는 이 질문의 답을 찾고 싶었다.

밤비나타는 전례 없는 용기를 내어 침대에서 일어나 방 안의 물건들을 추측하면서 그 투명한 그림자를 쫓아가려고 했다.

옷, 액세서리, 향수... 이곳의 모든 디테일이 머릿속 혼돈에서 어떠한 윤곽을 그려냈지만, 윤곽 속의 건 계속해서 파고들며 답을 찾아야만 했다.

아직은 부족해. 뭔가 더...

밤비나타는 시선을 돌려 침대 옆을 바라봤다. 그리고 어디선가 솟은 "직감"을 따라 처진 이불을 살짝 들어 올렸더니, 지나치기 쉬운 서랍이 보였다.

서랍에는 똑같이 설명할 수 없는 수집품이 있었는데, 그 옆에는 접어놓은 종이 한 묶음이 있었다.

밤비나타는 그중에서 유일하게 그림이 그려진 페이지를 펼쳤다. 그 위에는 춤을 추고 있는 소녀와 이름 모를 작은 인간 모양새가 그려져 있었다.

햇빛, 커튼, 음악, 우아한 자태... 밤비나타가 일시적으로 의식의 바다에서 떠올린 일부 조각들을 접근하기도 전, 모든 것이 갑작스레 사라졌다.

잊으면 안 돼.

잊고 싶지 않아.

적어도 마지막 윤곽을 잡고 싶어.

닥치는 대로 서랍 속에서 펜을 집어 든 밤비나타는 허상의 그림자가 없어지기 전에 남길 수 있는 걸 남기려고 노력했다.

수년 후.

지휘관님, 이곳에서 서 있는 게 벌써 20분째라고요...

……

내가 말하라고 허락한 적 있니?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은 구조체가 눈치껏 바네사 옆에서 뒤로 물러났다.

바네사는 손에 들고 있던 흠집 난 출입문 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문을 두드렸다.

누구...

표준적인 사교성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연 페트라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주위의 공기가 사람을 짓누를 정도로 무거워지기 전에 바네사는 뒤에 있는 대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대원이 화면 조정이 완료된 단말기를 바네사의 손에 건넸다.

바네사...

이건 징병령이야. 규정에 따라 구조체 밤비나타는 우리와 함께 집행 부대로 돌아가 백로 소대의 예비 엘리트 멤버로 활동하게 됐어.

문 손잡이를 놓은 페트라는 바네사 기억 속의 모습처럼 팔짱을 꼈다.

안 돼.

거기 너, 군령 조항을 거절하면 어떤 처벌이 있는지 읽어줘.

구조체 병사가 말하려고 하자, 페트라가 무정하게 그 말을 끊었다.

우리 집에서 밤비나타를 대신해 입대를 신청한 기억 없으니, 넌 밤비나타를 데려갈 권리가 없어.

내가 밤비나타 대신 신청했어.

우리 집 구조체는 전투형이 아닌 집에서 실험 연구를 보조하기 위한 거야. 기능 적응도 고려하지 않고 바로 징병하다니, 군부의 높으신 분들이 이렇게 이성적이지 않은 결정을 내리진 않았을 텐데?

군부는 당연히 병사가 표준에 달하는 전투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요. 그건 당신이 걱정할 일이 아니에요.

너!

바네사, 밤비나타가 해야 할 일을 뻔히 알면서도 이곳에서 강제로 데리고 가겠다는 거니?

징병령과 연관된 조항 문제 외에 난 대답할 의무가 없어.

바네사, 난 네가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몇 번이고 상상했어. 가끔은 네가 성인이 되어 돌아오면 철도 들었을 거라고 기대했거든. 하지만 내가 너한테 헛된 기대를 품었던 것 같네. 넌 타인을 실망시키는 능력만큼은 여전하구나.

오랜만에 만나서 나누는 훈훈한 인사가 이런 건가? 페트라 여사, 고마워.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 내 대원을 데려가도 될까?

레이먼드 박사가 밤비나타에게 정기 검사를 진행하고 있어. 데려가려면 끝날 때까지 기다려.

그리고 우리도 가족으로서 밤비나타와 작별할 시간이 필요해.

일단 들어와서 기다려. 이웃이 보면 우리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오해하겠어.

페트라는 몸을 돌려 계단을 향했고, 반쯤 열린 문과 바네사를 햇빛 속에 남겨뒀다.

페트라의 모습이 계단의 모퉁이에서 사라지자, 바네사는 뒤에 있는 병사를 이끌고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던 문으로 들어갔다.

방향제 냄새만 바뀌었을 뿐 소파, 카펫, 조명 색상 등은 바네사가 기억하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뒤에 따라 들어온 구조체 병사는 주택가에 처음으로 들어와 보는 듯, 거실 한쪽에서 쭈뼛쭈뼛하면서, 한 편으로는 집안을 힐끔거렸다.

넌 여기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네. 지휘관님.

바네사는 예전 자기 방으로 걸어갔다. 문에 달린 자석 장식에는 여전히 익숙한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고정된 자석 장식 하나가 떨어진 것 외에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이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았다.

문을 살며시 열자 익숙한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방 안의 개량 식물마저도 떠날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바네사의 손끝이 넓고 부드러운 침대를 스치자, 문득 학교 숙소에 있을 때, 침대가 너무 딱딱해서 잠을 설쳤던 세월이 생각났다.

그럼, 밤비나타도 적응이 안 되겠지?

흥, 구조체는 익숙하거나 불편한 게 딱히 없겠지?

새하얀 이불에서 시선을 거둔 바네사는 침대 옆에 있는 "비밀 서랍"을 열었다.

서랍 속은 예상처럼 얇은 먼지가 쌓여 있었다. 열지 않은 지 오래된 것 같았다.

밤비나타가 소중하게 간직하던 머리핀, 마음에 들지 않아 밤비나타에게 준 리본, 일부 손가락 인형과 붓 그리고 십여 장의 미완성 그림이 들어 있었다.

바네사가 종이들을 펼쳤다. 첫 번째 그림에는 발레 하는 소녀와 성의 없이 그린 인간 형태가 있었다.

두 번째 그림에는 문제집을 풀고 있는 소녀와 성의 없이 그린 인간 형태가 있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모든 그림에는 어린 시절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그림과 한 장도 예외 없이 공백의 인간 모양새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밤비나타는 여백 부분에 그때그때 생각나는 말을 썼다.

"언니"

"검은색 나비 머리핀"

"밤비나타 좋아?"

"울지 마"

"실험"

"가지 마"

"기억해"

그 외에 쓰여 있는 건 모두 바네사의 이름이었다. 처음은 강력한 필체였지만 조금씩 망설이고 둔해지는 듯한 필체였다. 심지어 아랫부분의 대부분 필체는 정확한 철자가 아니었다.

언제 그린 거지...

바네사는 종이 위에 흩어져 있는 글씨를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눈길이 끌려서 계속 그것들을 보게 됐다.

거실에서 작은 기척이 들려오자, 바네사는 즉시 도화지를 접었다. 그리고 서랍을 향해 2초간 머뭇거린 바네사가 도화지를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서랍 속의 다른 물건을 살펴봤지만, 밤비나타의 의식을 안정시키는 데 특별히 도움 될 물건은 없는 것 같았다. 바네사는 서랍을 닫고 거실로 돌아왔다.

지휘관님!

무슨 일이야?

방금 레, 레이먼드 박사님이 이 구조체를 저한테 주고 위층으로 올라갔어요.

기체 가동은 적어도 세 시간 후에 하는 게 좋을 거야.

페트라의 냉담한 얼굴을 훑어보던 바네사는 밤비나타의 뒤통수 슬롯을 만져봤다. 예상대로 기억 칩을 꽂아야 할 곳이 텅텅 비어 있었다.

너도 알다시피 레이먼드 박사는 그 어떤 연구 내용도 누설할 리가 없어. 군부 명령은 거역할 수 없지만 우리 또한 우리의 연구 성과를 회수할 권리가 있어.

당신들...

적당히 해. 바네사. 너도 이런 결과가 초래될 걸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고집했잖아.

네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내가 너한테 바친 모든 것이 헛되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나와 네 아버지가 밤비나타에 대한 사랑도 물거품이 되진 않았을 거다.

사랑? 하...

밤비나타를 운송 장비에 옮긴 뒤, 바로 과학 이사회로 가자.

네!

바네사!

걸음을 멈춘 바네사가 고개를 돌려 목이 쉬도록 외치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여전히 차가운 모습인 페트라는 깊게 숨을 내쉬더니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쓴맛을 삼켰다.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마!

… 응, 엄마.

기체 혁신 수술은 성공적이야. 밤비나타의 현재 기체 규격은 전투용 기준에 도달했어.

교체한 일부 오래된 부품은 전에 말했던 것처럼 내가 보관해도 될까?

그래.

알았어.

기억 칩은?

칩의 원형이 없는 상태고, 네 설명만으로 칩을 복각할 수는 없어. 그래서 인터페이스와 실행 회로를 분석한 뒤, 기억 데이터의 외장 기억 모듈을 다시 디자인했어. 이론적으로 저장 효율과 안정성은 이전보다 더 높을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칩을 꺼낼 때, 정상 절차로 진행한 게 아닌 것 같아. 밤비나타의 남아있는 유효 기억 데이터는 매우 적고 혼란스러워. 그래서 첫 번째 테스트 실행에서 의식의 바다 편차 증상을 간접적으로 야기하게 된 거야.

이러한 상황이 전투에 영향을 미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내가 외장 기억 모듈에 별도의 구역을 설정했어. 예를 들면 전투, 소속, 임무 정보 등등 기본 정보들을 입력했어. 어떤 이유로 기억 데이터가 흐트러지거나 손실돼도 기본 정보는 원활하게 읽을 수 있을 거야.

일단 입력한 정보가 정확한지 확인해 봐.

이 호칭은... 네가 입력한 거야?

바네사는 "바네사 언니"라고 쓰인 단말기를 가리켰다.

일부 내용은 밤비나타의 잔류 기억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동 정리한 거야. 의식의 바다에 다시 편차가 생기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물론, 수정하고 싶으면 단말기에서 직접 편집할 수도 있어.

밤비나타의 이전 기억 데이터는 복원할 수 없어? 그런 거야?

이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야. 개인적으로 "그 실험"으로 인한 후유증인 것 같지만, 나한테 실험에 관한 상세 데이터가 없으니 자세한 판단은 내리기 어려워.

밤비나타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역원 장치가 밤비나타의 의식의 바다에서 충돌을 일으킨 이유와 해결책을 찾아야 해.

하지만 역원 장치 원리는 아직 탐색 중이라서 기존 연구 지식만으로는 올바른 해결책이나 회피책을 찾기 어려워.

역원 장치의 비밀이 풀리면 거부 반응과 관련된 지식을 보완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게 확실해.

……

유일한 좋은 소식을 말하자면, "기억상실"의 본질은 데이터 손실이 아니라, 기억 데이터가 의식의 바다 심층에 빠져서 밤비나타 스스로 불러올 수 없다는 거야. 인간도 기억나지 않는 일이 많지만, 사실 그 기억이 잠재의식에 존재하잖아. 그것과 비슷해.

즉,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이론상 밤비나타는 모든 기억 데이터를 불러올 수 있어.

아시모프가 이게 최선의 처리 방식이라고 판단한다면 일단은 그렇게 해.

앞으로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구조체는 명령만 잘 따르기만 하면 돼.

그렇지? 밤비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