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3 전하지 못한 말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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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3-08 게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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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어. 우선 왼쪽 방부터 확인하자.

가자.

바네사는 방 한구석에서 시선을 거뒀다. 한편, 베라는 곁눈질로 바네사가 조사 중에 발견한 낡은 토슈즈를 계속 신경 쓰는 걸 눈치챘다.

상대방이 이 주제를 이어가고 싶어 하지 않자, 베라도 더 이상 바네사의 감정을 추스르는 데 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지 않아서 아예 못 본 척했다.

……

네가 오늘 아빠 실험을 도와준다고 해서 배우지 못한 부분이 있으니 내가 다시 춰줄게. 미리 말하지만 잘 못 춰도 웃으면 안 돼!

네! 바네사 언니, 고마워요.

종이와 펜을 든 채 고개를 끄덕인 밤비나타는 말 잘 듣는 모범생 같았다.

네가 다음번에 우스꽝스럽게 행동하면, 너 때문에 내가 부끄러워질 것 같아서 알려주는 거야.

밤비나타에게 말할 여지를 주지 않은 바네사는 재빨리 단말기로 오늘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공유해 준 연습 음악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멜로디에 맞춰 발끝을 세웠고 우아한 춤 동작에 맞춰 팔을 움직였더니 미풍을 일으켜 커튼도 살살 흔들렸다. 햇살을 받으며 춤을 추는 바네사는 부드럽고 따뜻해 보였다.

밤비나타는 뜬금없이 의식의 바닷속에서 유리 우리에 갇힌 백로 한 마리를 떠올렸다. 그 백로는 뚫을 수 없는 곤경에 허덕이면서도 그녀의 고귀한 머리와 날개를 움츠리지 않았다.

회전, 다리 접기, 인사. 이 침실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움은 바네사가 음악을 중단하자 뚝 그쳤다.

대충 이런 느낌이야. 첫 수업이라 너무 복잡한 내용은 가르쳐 주지 않았어. 다 기록했어?

다가온 바네사가 밤비나타의 노트를 확인했지만, 종이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밤비나타! 왜 아무것도 안 적은 거야!

방금 바네사 언니가 춤추는 모습을 전부 밤비나타 의식의 바다에 기록했어요.

됐거든. 네가 언제 잊어버릴지 몰라서, 적으라고 노트를 준 거잖아.

난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빨리 동작 요령이나 정리해.

일상복을 갈아입고 침실로 돌아오자, 밤비나타가 자신이 춤추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어린아이답지 않은 진지한 얼굴로 햇빛이 비치는 그 자리를 바라보는 밤비나타를 보고 있자니, 바네사는 왠지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바네사는 살금살금 밤비나타에게 다가갔다. 밤비나타의 품에 있는 종이엔 바네사가 홀로 넓고 환한 방에서 따듯한 햇빛을 만끽하며 눈을 감고 춤을 추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 밤비나타는 머뭇거리더니, 바네사의 옆에 더 작은 인간 모양새를 그렸다.

그리고 펜 끝이 멈췄다. 타원과 직선으로 이루어진 공백 인간 형태 위에 의미 없는 검은 점이 많이 생겼다.

동작을 정리하라고 했더니, 뭘 그린 거야!

그건 그렇다 치고, 이건 또 뭐야?

이 사람은... 아직 상상이 안 돼서요.

바네사 언니 옆에 서 있을 사람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안 가요.

옆에 서 있을 사람? 가끔은 정말 밤비나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서투른 모습을 보니, 밤비나타가 혼자 망신당하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참나, 나와 함께 기본기나 연습하자. 기본기를 잘 다져서 나쁠 건 없어. 이리 와서 매트 펴는 것 좀 도와줘.

밤비나타는 순순히 종이와 펜을 내려놓았다.

밤비나타는 그 공백으로 남긴 인간 모양새를 마음에 두게 됐고 바네사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