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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3-02 알아내지 못한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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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 전.

이렇게 한가하신 걸 보니, 은퇴하실 때가 되셨나 보네요.

레베카가 테이블 위에 있는 잔이 진동에 흔들릴 정도로 많은 자료가 포함된 파일을 테이블에 내동댕이쳤다.

은퇴라, 고려해 볼 만한 일이군. 하지만 내가 있는 이 위치가 은퇴한다고 해서 편하게 차나 마시면서 지낼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러니 지금은 일단 여유를 가지는 게 좋잖아.

그린스는 갓 내린 홍차를 눈앞의 아름다운 여자에게 권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리스트의 지난번 계획은 당신이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실패로 끝났지만, 당신도 손실이 없다고 할 수 없겠죠. 결국은 둘 다 패한 셈이죠.

어디 맛 좀 볼까. 습, 정말 쓰네. 레베카, 네 기분보다 더 쓴 것 같아.

분노한 레베카의 얼굴이 조금씩 더 뜨거워졌고,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기 직전인 것 같았다.

이건 알아두셔야 할 것 같아서 말하는데요. 달 표면에 있는 기지 수리가 곧 완료되면, 리스트가 다시 반격해 올지 몰라요. 공중 정원이 달 표면 기지와 영점 에너지 원자로의 관리권을 넘겨받으면 괜찮겠지만, 노르만 가에선 그렇게 쉽게 권리를 넘겨주지 않을 거예요.

그 말을 들은 그린스는 미소 지으며, 컵에 담긴 홍차에 많은 양의 설탕을 넣고 녹을 때까지 천천히 저었다.

전 당신이 왜 이렇게 차분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대로 계속 간다면, 전 제 계획을 다시 한번 검토할 필요가 있겠네요. 그리고 전 기본적으로 이해관계자가 아니란 걸 잊지 마세요. 제가 필요한 건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이지, 그 친구가 누군진 상관없어요.

당연하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워. 그 속엔 너도나도 포함되어 있지. 만약 리스트가 더 좋은 "친구"라고 생각된다면, 리스트 옆으로 가도 돼. 단 걸 좋아하는 나로서, 아주 조금의 어리석은 단맛을 위해 세계와 적대할 각오가 되어 있으니, 너 하나 추가된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어.

그린스는 깔깔 웃으면서 레베카의 홍차에도 설탕을 듬뿍 추가했다.

하지만 난 네가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단 거 한 잔 마시고 다시 이야기하지.

그린스가 옆자리를 툭툭 치자 레베카는 마지못해 눈살을 찌푸리며 앉았다. 레베카가 찻잔을 들려고 할 때, 그린스는 느릿느릿 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리스트 그 자식이 좋은 기회를 찾긴 했지. 그건 정말로 감탄해. 잠시 루나를 잃었지만, 리스트의 "케어"가 없었다면, 위에서 내 손에 있는 승격자에 관한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하라고 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나도 언젠가 쿠로노가 나에 대한 신뢰를 잃을 거라고 예상은 했어. 그러니 나도 여기서 질 생각은 추호도 없어. 여기 너한테 부탁해서 손에 넣은 이 자료가 바로 내 카드야.

그린스는 방금 레베카가 테이블에 던진 파일을 들고 천천히 파일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발효된 향기로운 술의 병 마개를 딴 것처럼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미소를 지었다.

오래된 실험 기록이 당신의 카드라고요? 제가 알아봤는데, 이 실험들은 유효한 결론을 얻지 못했어요. 설마 노망이 나서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도 잊어버린 건 아니시죠?

잊었다고? 아니. 난 지금도 두 눈으로 본 이 실험을 전부 기억하고 있어. 다만 내가 나서서 이걸 뒤지면 누군가 알아챌까 봐 너한테 부탁한 거야.

초기에 얼마나 많은 인력과 물자를 이 프로젝트에 투자했는지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도 없을 거야. 이 프로젝트에서 역원 장치의 원리를 알아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실험의 산물인 루나를 보며 루나나 모든 승격자의 출현이 역원 장치의 변수와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을 생각했었어.

아무리 캐논 박사라도 당시에 역원 장치의 원리를 풀 수 없었어. 그러니 내 추론엔 어떠한 데이터 근거도 없어. 그냥 개인 억측일 수도 있지.

지난번 달 표면 기지에서 루나와 이야기했을 때, 그녀는 역원 장치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았어. 즉 역원 장치의 원리는 승격 네트워크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

네가 날 침식체로 만든 건가?

당연히 아니지. 네가 침식이 된 건 사고였어. 아니, 필요한 희생이라고나 할까.

당시의 구조체 개조 기술은 캐논 박사의 연구 때문에, 성공률이 크게 향상됐지만, 결함은 계속해서 존재했어.

"필요한 희생".

그래? 너희들은 그걸 "사고"라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달 표면 기지의 사고로 우린 루나를 잃었지. 그러니 루나의 입에서 더 이상 답을 들을 수는 없을 거야.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은 그린스가 잔혹한 사실을 잠시나마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건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역원 장치 연구를 진행하면 되니, 승격자 프로젝트는 일시적으로 정지돼도 상관은 없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역원 장치라는 큰 산에 올라야 해.

초기에 막대한 돈과 노력을 들인 연구이니 아직은 쓸모가 있어.

하지만 이전에도 일부 실험 데이터를 회수하지 않았나요? 기체 개발팀에서는 일부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역원 장치 연구팀에서는 큰 진전이 없었어요.

이 시리즈의 실험 자료를 완전히 회수하지 못했어. 베살리우스 손에 있는 건 회수 우선순위가 가장 높거나 외부인에게 알리기 적합하지 않은 것들뿐이야.

나머지 실험 자료의 회수 우선순위가 낮아진 건 그들이 더 이상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사람이 많으면 길이 열린다고 베살리우스가 아무리 구조체 연구 영역에서 뛰어나다 해도 일부 실험과 자료는 혼자서 완성할 수 없어. 하지만 베살리우스 보고 과학 이사회와 협력하라고 한다면 싫어하겠지.

더군다나 의회는 착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생체 실험을 하진 못할 거야. 하지만 정보통에 따르면 그들도 이 데이터를 비밀리에 조사하고 있어. 즉 이 데이터가 있으면, 그들을 도와 데이터 연산으로 판정할 수 없는 틀린 답의 일부를 배제할 수 있겠지.

틀린 답이요? 그 말씀은 지금 의회 측에서도 역원 장치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건가요?

지금이 아니라 쭉 연구해 왔어. 어찌 됐든 구조체 이론적 토대와 관련된 장치이니, 과학 이사회에서도 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려고 할 거야.

그들이 역원 장치를 계속 조정하고는 있지만, 정확한 이론적 토대를 갖고 있지 않은 그들에게 이 자료는 가치가 있는 거지.

그럼, 당신은 자료로 의회 사람들과 협력을 거래할 건가요? 솔직히 의회에 이런 출처도 알 수 없는 자료를 준다고 해서, 그들의 연구 결과를 우리에게 공유해 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난 거래하겠다고 말한 적 없어. 의회는 그들의 연구 결과를 보내주지 않을 거지만, 우리가 우리의 자료를 보내줄 수는 있지.

그럼, 우린 뭘 얻게 되는 거죠?

보물 열쇠의 일부분이 우리 손에 있어. 만약 이 일부를 바쳐서 보물을 열 수 있다면, 우리가 보물을 가지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보물의 형태는 볼 수 있겠지.

아직도 감이 안 와? 역원 장치의 비밀을 우리가 직접 밝힐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누가 이 영역의 선구자가 되든 결국엔 결과를 공유할 수밖에 없을 거야.

이건 모든 인간의 생사에 관계된 수수께끼야. 그때가 되면, 누군가가 숨기려 해도 세계 정부에서 수를 써서 공유하게 만들 거야.

역원 장치의 작동 원리와 루나한테서 얻은 승격자 정보는 우리 퍼즐을 완성하는 데에 중요한 두 조각이야.

일하는 건 차를 음미하는 것과 같아. 조금 식었을 때가 최적의 시기일 수도 있지.

조금 식은 홍차를 쭉 들이킨 그린스가 통신을 연결했다.

이상 연구팀에서 보내온 주간 보고서예요.

연구팀은 현재 투입한 인력만으로 충분히 납득할 만한 효율을 해냈다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그러니까 연구에 아직 큰 진전이 없다는 거네.

역원 장치의 연구는 항상 운과 연관이 돼 있었어. 우린 시종일관 운명과 대항하고 있는 거야.

그 기체에 대한 원래 계획을 달성하려면, 역원 장치는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야.

응. 나도 알아.

그레이 레이븐 소대 대원인 리를 적합자로 한 새로운 특화 기체의 연구 과정은 시급하지만, 진전은 없는 상태였다.

자기 손상을 대가로 싸우는 백야 기체와 달리, 새로운 특화 기체는 사용자가 퍼니싱에 완전히 면역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 기체의 성공은 인간이 퍼니싱을 대항하는 길에서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고, 진정한 반격이 시작됐음을 의미했다.

백야 기체가 적합자에게 고통스러운 경험을 주게 된 건, 기체에 탑재한 역원 장치의 작동 효율이 퍼니싱을 흡수하는 특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Ω 무기의 흡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게 되자, 축적된 퍼니싱이 적합자를 침식하게 된 것이었다.

역원 장치의 파라미터를 변경해서 적합자의 필요에 따라 최적화시킬 수만 있다면, 새로운 특화 기체는 퍼니싱의 침식을 완벽하게 "대사"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역원 장치의 원리를 풀어나가는 연구의 우선순위 등급이 다시 상승했다.

지상은? 좋은 소식이 있나?

세리카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쁜 소식이 없는 게, 희소식이라면 희소식이에요.

회의실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환기 시스템이 내보내는 찬 공기와 뒤섞여 컵 안에 온도를 조금씩 가져갔다.

잠깐만요. 통신? 쿠로노의 그분인데 거절할까요?

아니. 연결해 줘.

의장, 오랜만이야. 리틀 닉도 있었군. 습, 스크린 너머로 그곳의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그린스, 무슨 일인가? 수다 떨고 싶은 거라면 끊어. 너와는 다르게 우린 지금 매우 바쁘거든.

달 표면 기지의 긴급회의가 종료된 후, 그린스는 갑자기 회의장에 나타났을 때처럼 순간 잠적했었다.

"그린스의 세력이 조금씩 잠식되고, 리스트가 가진 쿠로노에서의 권력이 커지고 있다."라는 소문이 근거 없는 건 아니었다. 궁지에 몰린 그린스가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에, 니콜라와 하산은 그가 지금 출현한 목적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수다 떨려고 통신한 건 아니지. 내가 좋은 소식 하나를 가져왔거든, 들어보면 리틀 닉이 나한테 밥 한 끼 사야 할 걸.

스크린에 암호화된 파일 전송 준비 표시가 떴다. 하산과 니콜라는 눈빛을 주고받더니 세리카에게 받으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소식이라? 가뭄에 단비 같군.

내 손에 자료 하나가 있는데, 쿠로노 초기에 비밀리 연구한 기록이야. 주제는 자네들도 알겠지만, 역원 장치에 관한 거고.

하산과 니콜라가 재빨리 눈빛을 교환하는 걸 보자, 그린스의 말투가 더 밝아졌다.

이 자료는 가장 초기의 실험 기록이고, 모두 실제 데이터야. 그러니 현재 계산으로 얻는 실험 결과와 얼마나 차원이 다를지는 자네들도 잘 알겠지.

생체 실험의 기록?

구조체에 대해 생체 실험을 하는 건 엄연히 규칙 위반이야. 이런 것들이 감사원 손에 넘어간다면 넌 다음 생까지 콩밥을 먹게 될 거야.

그러니까 소중한 자료라는 거야. 이 실험들은 모두 구조체 보호 규정이 나오기 전에 한 것들이니 오해하지 말게. 개인적으로 진보를 위해 희생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나름 법을 준수하는 착한 시민이거든.

원하는 게 뭐야?

리틀 닉이 보기엔 내가 대가 없이 줄 거 같지 않나 보네?

이것도 인간의 진보를 위한 것 아닌가. 내가 바라는 건 인간을 위해 역원 장치의 비밀을 밝히는 것뿐이야.

……

데이터에 손댔다는 의심을 없애기 위해 그 데이터를 제일 먼저 손에 넣게 해줄게. 어때? 성의가 넘치지? 동시에 난 의회가 데이터 백업을 회수한 후 원래 데이터를 나한테 돌려줄 거라고 믿어.

회수? 네 말은 이 데이터가 지금 지상에 있다는 건가?

그래. 전쟁 초기에 우린 수많은 사회 복지 기관을 열었거든. 그중 수용자였던 아이들이 보답하겠다고, 우리가 추진하는 구조체 의식의 바다와 역원 장치에 관한 연구에 도와주는 걸 자처했었어. 하, 이 이야기는 언제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군.

그린스는 슬픈 장면을 연출이라도 하는 듯,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안타깝지만, 그때 철수 준비 시간이 너무 짧았던 탓에 수많은 가치 있는 물건들이 아직 지상에서 발굴되길 기다리고 있지.

내가 복지 기관의 좌표를 하나 보내줄게. 대원을 파견하면 그 자료들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니콜라는 그린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의 표정에서 "호의"의 함정을 찾으려고 했다.

리틀 닉의 표정을 보니 정말 섭섭한데? 난 우리 사이에 최소한의 신뢰는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면 내가 좀 더 참여해 주길 바라는 건가? 음, 그럼 내가 회수 임무를 수행할 대원을 지정해 줄게.

잠시 생각에 잠긴 그린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떠올랐다.

리틀 닉, 케르베로스의 베라는 어때?

베라? 왜 그녀를 선택한 거지? 베라는 이제 쿠로노와 관계없어.

알지. 알지. 하지만 쿠로노의 옛 시설을 조사하는 거라면, 베라가 제일 적합하지 않겠어?

흥. 세리카. 베라가 지금 무슨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

베라는 이틀 전 임무를 마치고 현재 대기 상태예요.

잘 됐군. 다른 소대에서 현재 대기 중인 구조체가 또 있나?

잠시만요. 확인해 볼게요. 현재 백로 소대의 밤비나타와 블랙 램 소대의...

음... 그럼, 밤비나타와 베라한테 맡겨. 현재 지상의 상황이 좋지 못한 상태니 둘이 같이 가면 효율과 안전성을 높일 수 있을 거야.

알겠어요. 즉시 임무 세부 사항을 준비할게요.

이걸로 거래는 성사된 거야? 이런, 거래가 아닌 걸 잊었군. 그럼 좋은 소식을 기다리지.

그린스의 목적이 불분명한 이상, 이렇게 행동하는 건 리스크가 높아.

알아. 하지만 그린스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려면, 그가 가진 모든 카드를 알아야 하지 않겠어?

쿠로노의 실험에 대해선 너나 나나 일부만 알고 있잖아. 데이터도 충분히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고, 이 건에 대해 우리도 검토했었지만, 그린스가 스스로 보내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 베라 쪽은 어떤 제안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계획 말인가? 그건 내가 베라한테 전달할게.

알았어.

백로 소대의 구조체 말인데, 굳이 베라와 동행할 필요가 있을까?

밤비나타의 이력에 대해서는 기억하겠지?

물론이야. 하지만 밤비나타의 지금 상태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하나의 내기인 만큼 숨겨진 모든 확률이 작동되길 바라야지.

케르베로스 소대의 대장이요? 설마 저번에 의회 집행 부대와 연결이라도 된 건가요?

아니. 베라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은 것뿐이야.

왜 베라를 회수 임무에 참여하도록 지정하셨죠? 그녀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거라면 의회에서 그녀를 주목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좋았을 텐데요? 저번 아틀란티스에서 그녀가...

베라와 리틀 닉은 모두 쿠로노에서 나간 이들이야. 한 번 와본 이들이라면 제일 견고한 연결고리가 이익이라는 걸 잊지 않았을 거야. 자신의 이익이 손상되지 않으려면, 강아지가 말을 잘 들어야겠지. 난 단지 그들의 "연결고리"가 얼마나 견고한지 보고 싶을 뿐이야.

그린스는 하산이 방금 지명한 또 다른 구조체가 생각났다. 그 이름을 어디서 본 것 같았던 그린스는 기억을 더듬으며 또 다른 자료에서 내용을 찾아 두 페이지 보더니 폭소하기 시작했다.

밤비나타? 하하-

왜 웃으시죠?

아무것도 아니야. 인연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이런 임무에 정말로 구조체 두 명이 필요한 거야?

수송기의 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수송기 특유의 소독 냄새와 섞인 바람이 베라의 적색 머리칼을 부드럽게 흩날렸다.

베라, 현재 지상 상황이 비교적 복잡한 관계로, 하산 의장님과 니콜라 사령관님은 베라와 밤비나타가 신속하고 안전하게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나뿐만 아니라, 이 조용한 바비 인형도 같은 질문을 하고 싶은 거 같은데?

베라가 단말기를 밤비나타 쪽으로 돌렸다.

밤비나타는 임무에 이의가 없어요.

필요하다면, 밤비나타 혼자 임무를 완수할 수도 있어요.

거봐.

???

세리카. 이리 줘 봐.

긴급 임무이기도 하고, 목표 지점에 대한 사전 정찰을 실행하지 못했어. 그러니 지금 둘을 파견하는 건 회수 과정에서 사고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 내린 결정이다.

아직도 의문이 있다면 적합한 시간에 적절한 방식으로 답해 주겠다. 이상.

……

베라, 밤비나타, 부탁할게요.

세리카의 어투는 변함없이 상냥했지만, 베라는 니콜라의 말에서 강압적인 부분을 느꼈다. 게다가...

언뜻 보면 간단한 임무 아래엔 진흙탕 같은 내기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베라는 저항할 수 없는 힘에 휘말려 들었고, 눈앞에 있는 인형 같은 구조체는 자기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특별히 배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통신 중에 니콜라가 말한 "적합한 시간"과 "적절한 방식"은 높은 확률로 총사령관이 베라를 명령에 복종시키려고 설득한 말이 아닐 수도 있었다.

베라는 이미 출발 준비를 마친 동료를 바라봤다. 수송기가 도착한 뒤, 밤비나타는 줄곧 뒤 칸에 조용히 앉아서 베라의 통신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네가 어느 소대라고 했지?

주인님의 소대는 백로 소대에요.

주인님? 하하하하하하하, 괜찮은 호칭이네. 녹티스 녀석한테도 그렇게 부르도록 훈련해야겠어.

네 주인이 널 그렇게 꾸민 거야? 임무가 없을 때 너희 백로 소대 대원들은 집안에서 소꿉놀이라도 하는 모양이지?

베라의 "농담"에 밤비나타는 대꾸하지 않았고, 베라도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 귀찮아졌다.

이때, 힘찬 발소리가 다가오는 것이 들렸다. 수송기의 문이 위쪽으로 닫힐 때, 발 하나가 천천히 이동하는 갑문을 밟았다.

주인님? 어떻게...

이번 임무에 날 임시 지휘관으로 파견했어.

바네사는 지금 누가 이곳의 지배자인지를 깨닫게 하려고, 켜진 단말기 스크린을 베라에게 보여줬다.

백로 소대의 지휘관? 아~ 생각났다. 너희 소대에 대원이라고는 밤비나타밖에 남지 않았지? 네 주인이 널 많이 아끼나 보네. 지휘관이 일개 구조체를 위해 지상 임무까지 직접 신청하고 말이야.

베라는 바네사의 눈을 바라보며 조금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마침 잘 왔어. 네 대원이랑 소통하고 있었거든.

우아하게 단말기를 집어넣은 바네사가 돌아서서 밤비나타의 옆에 앉았다.

밤비나타는 익숙하게 바네사에게 안전벨트를 매어준 뒤, 밖에 있는 수송기의 이륙 지휘를 맡은 안전원에게 계속 갑문을 조종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래서 케르베로스의 대장은 내 대원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많으니까.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