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이 벨라를 처음 만난 건, 17살 되던 해의 겨울이었다.
노안이 수송 부대에서 성장하는 동안, 오셀럼호에서는 여러 갈등이 점차 한계를 넘어섰다. 그러면서 군중과 질서는 부패해지기 시작했다.
정교한 보호 장비를 갖춘 상층 초병에 대항하기 위해, 레이첼은 오랜 탐색과 노력 끝에 협력하기를 원하는 몇 명의 무기 공급업자를 몰래 찾아냈다.
하층 칸에서는 밴크로프트처럼 궁지에 몰려, 정보를 누설하는 "배신자"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었다.
계획 유출 방지 및 초병들의 검열을 피하고자, 수송 부대는 산 무기를 다른 화물 상자에 분산시켜서 적재했다. 이에 따라 무기는 수송 차량과 함께 사방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그리고 기회가 돼야지만, 열차에 옮길 수 있었다.
안녕. 레이첼 대장님께서 남은 행운의 박스를 이곳에서 회수하라고 하셨어. 혹시 베테 어르신 계시나?
할아버지는 일을 마치시고 주무시고 계셔. 넌 수송팀 쪽 사람이니? 레이첼 대장님은?
레이첼 대장님도 다른 일로 바쁘셔서, 이번엔 내가 하게 됐어.
음.
레이첼 대장님은 주변 사람들을 잘 믿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아이를 대장으로 임명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은 줄은 몰랐네.
그녀는 손으로 노안의 신장을 가늠해 봤다.
내가 천재라서 레이첼 대장님의 기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 주면 안 될까?
자신을 의심하는 말에, 노안은 어릴 때처럼 짜증을 내지 않았고, 웃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베테 어르신이 안 계시면... 물자 관련으로 너랑 얘기해도 될까?
알았어. 마지막 "화물" 말하는 거지?
응.
무기 부품, 탄약, 모두 레이첼 대장님의 방안대로 분해한 뒤, 판매가 부진한 행운의 박스에 넣어놨어.
이렇게 해서 숨길 수 있는 거야?
초병들은 이 박스를 너무 자주 봐서 그런지, 컨테이너를 열어서 다른 화물은 검사하겠지만, 행운의 박스는 일일이 열어서 검사하지 않아.
레이첼은 무기를 대량 구매할 때마다, 판매 부진한 행운의 박스로 위장해서 난민 거점에 숨겼다.
예전에 귀족들이 "판도라의 상자"를 이용해 하층 칸을 무너뜨렸듯이, 지금의 수송팀도 이를 이용해 반격의 힘을 수송하고 있었다.
다 계획이 있는 거면 다행이고.
"화물"이 담긴 행운의 박스를 제외하고도, 며칠 동안 31개가 팔렸어. 아직도 이 사기 같은 물건을 믿는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어.
과거 대비 판매량이 많이 떨어졌어, 열차에서도 더 이상 행운의 박스를 생산하지 않아. 지금은 미처 판매하지 못한 재고만 남았어.
대리 판매한 다른 물자는 어때?
너희들이 주조한 양조주를 포함해서 거의 다 팔았어. 이건 명세서고, 우리가 요구하는 보수도 거기에 적혀있어.
고마워, 지난 번에 얘기했던 일은...
할아버지께서 거절하셨어. 당신들의 "동료"가 되면, 분쟁에 휩쓸리게 될 거라고 하셨어. 그럼 물자를 제공하는 동시에 당신들까지 받아줘야 하니, 그런 일이 끝도 없을 것 같다고 하셨어.
더 이상 참여하면 거점의 입장도 위험해져. 이렇게 무기를 파는 것만으로도 한계야.
알겠어. 나도 이해해.
가서 네 일을 하도록 해. 일벌 부대도 어젯밤에 기지 재건 작업을 끝냈으니, 그들도 데려가고.
눈앞의 여성은 일벌 부대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슬픔과 증오 속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도 참... 엉망이네.
노안과 08호 수송 소대가 일벌 부대의 임시 휴게소로 걸어갔을 때, 평소 이곳에서 작업 감독을 하던 상층 초병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일벌 부대의 멤버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얼굴에는 피로와 서러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부대 멤버들의 주변에는 핏자국이 얼룩덜룩했다. 마치 흔한 사고를 소리 없이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또 초병들이야?
그들 말고 누가 있겠어? 우리 중 누군가 그 터무니없는 업무량을 완성하지 못하면, 모두의 물자를 압수한다더라.
결국 우리 대장님이 열받아서 초병이랑 한판 싸웠어.
또 작업을 완료하지 못했나요?
완료했을 리가 없지.
대장은 갈라진 목소리로 포효하며, 상처를 움켜쥔 채, 땅에서 일어섰다.
이 구역을 재건할 때, 초병들이 여과탑을 완벽히 수리하지 않았어. 그리고 보호 장비도 부족해, 근데 "자라 진상"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어.
매번 재건에 참여하려고 하면, 첫 몇 달 동안은 여과탑이 잘 작동하지 않았어. 일찍 오면 목숨을 잃게 되고, 늦게 오려고 하면, 그게 가능하지도 않잖아?
아침에 뚱뚱한 "자라 진상" 초병이 와서 왼쪽 집부터 고치라고 했는데, 저녁에는 다른 "자라 진상" 초병이 와서 우선 실험용 논을 뒤엎으라고 하네.
작업량이 얼마나 되는지 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 각자 새로운 작업을 맡긴 뒤, 수수료만 챙기고 있어.
열차에 굶어 죽는 사람이 저렇게나 많은데, 일일 식량을 아끼기 위해서 인원은 추가하지도 않고 있어.
4년 전만 해도, 난 일이 너무 적어서, 많은 사람을 열차에 올라타게 하고 굶기는 것을 원망했었어. 하지만 상황이 더 나빠질 줄은 몰랐어. 열차에 남으면 굶어 죽고, 떠나면 힘들어 죽는 거야!
가뜩이나 시간이 촉박하니, 초과 근무를 할 수밖에 없잖아. 지지난 주, 한밤중에 재건 구역의 여과탑이 고장 났는데, 우린 아래 현장에서 일하느라, 표시등이 언제 빨갛게 변했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했어.
당직실에서 발견한 거점 기술자가 우선 감독하는 "자라 진상" 초병과 연락했지만, 초병들은 술을 마시고 잠들어 버렸어. 그리고 잔 게 아니더라도 밤에 이런 잡일을 처리하려고 하지 않잖아. 기술자도 우리가 현장에 없는 걸로 알잖아!
아침에 "자라 진상"이 깨어났을 때, 우리 쪽은 이미 4명이나 침식돼 있었다고! 혈청도 스스로 교환해야 했어!
항상 똑같아. 초병들과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다음 생을 기다려야 할 거야!
하지만 벌금을 부과할 때, 초병들은 조금도 봐주지 않아. 작은 실수 하나하나까지 모두 돈으로 공제해! 그중에 어떤 건 완전히 불합리하다고!
적어도 완공하고 결산할 때쯤이면, 남는 게 있을까 했는데, 한 명의 성과가 나빠져서 모두가 돈을 받지 못했어.
열차에서 내릴 때 대장님은 "어쨌든 우리를 뽑았으니, 굶어 죽지는 않을 거야. 일이 많아도 그러려니 하자."라고 하셨지.
지금 그 공제금까지 계산하면, 우리가 초병에게 배상해야 해.
그들에게 따져보려 했지만, "자라 진상"이 "아딜레에서 최소 하루에 두 끼는 제공해 주잖아"라고 했어. 그리고 조금 더 따지면, 휴게소의 여과탑과 정수기도 끊어버리겠다고 했어!
이걸 또 참냐?
여과탑과 정수기를 끊는 다는 건 직접 사람을 죽이진 않지, 하지만 결국 다를 게 없잖아!
우린 그래서 싸운 거야!
이길 수 있었나요?
그들이 아무리 무장을 잘했다 해도, 우린 사람이 많거든! 근데... 사람이 많다 해도 무장 때문에 다치는 건 피할 수 없지.
그럼, 초병은요?
갔어. 초병들도 목숨은 아까우니깐, 더 이상 싸우지 않았어.
따라가서 때려죽였어야 했어요!
초병이 단말기의 통신을 켠 걸 못 본 거야? 계속 싸웠다면, 책임을 묻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았을 거야! 돌아가면 어떻게 할 건데?
부상 입은 대원은 몇 명인가요?
여섯, 아니, 그까지 해서 일곱이겠네.
노안은 빠르게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구석에는 여섯 명이 임시로 조립한 판자로 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경상을 입은 사람들은 더러운 헝겊을 든 채, 상처를 싸매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남은 두 명의 중상자 곁에 둘러앉아 있었다.
복부의 간 쪽에 총상을 입고 의식불명 상태인 한 명이 보였고, 한 명은 갈비뼈가 부러졌지만, 다행히도 깨어 있었다.
그들이 무엇인들 하지 못하겠어요!
우선 사람을 구하죠. 운반할 물자에 약이 좀 있을 거예요.
그건 상품이에요. 수량에 오류가 생기면 돌아가서 초병에게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럼... 우리도 결국 처벌받게 될 거예요.
제가 보충할게요.
가지고 계신 물자가 아직 있어요? 일벌부대는 당신에게 갚을 수 있는 물건이 없어요. 그나마 가장 가치가 있는 게 자신들의 목숨뿐인데.
노안, 죽는 걸 그냥 보고 있으려고 하는 건 아닌데, 단지...
알아요.
한때는 수송 부대도 일벌 부대의 부러움이나 질투의 대상이었다. 수송 부대에는 비교적 안정적인 제도와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보수 그리고 부하를 감싸주는 리더가 있어서였다.
지금은 일벌 부대와 다를 바 없이, 자신을 지키기 어려워졌고, 타인을 구조할 자격도 잃게 됐다.
우선 중상자부터 돕도록 하죠. 물자는 항상 빠듯했잖아요. 그리고 그들도 우리를 도와준 적이 있어요.
간 쪽에 총상을 입은 사람은 구할 수 없을 거예요!
그 사람 말고도 5명을 더 구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노안의 말 들어. 이건 레이첼 대장님의 생각이기도 해. 게다가 우린 곧 "준비"가 되잖아.
네 말이 맞아. 가자.
수송 대원은 서로를 부르며, 화물을 쌓아 놓은 창고로 달려갔다.
고마워.
일곱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했잖아요. 한 명은 어디에 있나요?
에드 어르신을 말하는 거야? 이미 돌아가셨어.
이번에 일을 완료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에드 어르신이야. 빌어먹을 초병 같으니. 에드 어르신은 연세가 있으신 데다 몸도 안 좋으신데, 노인을 데려다 일을 시키다니!
어르신은 어디에 계시죠?
화가 나서 얼굴이 어두워진 일벌 부대 대장은 서쪽 폐허를 가리켰다.
가지 마. 어르신은 침식 때문에 돌아가신 거야.
노안?
가게 두세요. 에드 어르신은 노안이 어렸을 때부터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줄리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에드 어르신이었어요.
침식돼도 난 몰라!
일벌 부대 대장은 분풀이할 곳 없어서 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묵묵히 울리는 여음이 잦아들 무렵, 사람들 뒤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여성의 울음소리를 들렸다.
간에 총알을 맞은 사람은 결국 고통 끝에,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채 차가운 세상을 떠났다.
일벌 부대의 대원이 죽은 사람을 안장했다. 그리고 짐을 싸고는 슬픔에 잠긴 채 수송 차량에 올랐지만, 또 다른 악재가 노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화물 검사를 맡은 수송 대원들이 무너진 화물 상자의 근처에 서서,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의 핏자국을 바라봤다.
상층 초병이 방금 여기에서 물건을 검사했는데, 행운의 박스 몇 개가 너무 불룩한 것을 발견했어요.
…………
상층 초병들의 주의를 돌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창고의 기중기가 갑자기 가동되면서 맨 위에 쌓여 있던 컨테이너를 밀어내 버렸어요.
수송 대원이 먼 곳의 조작 콘솔을 가리켰다. 그 위에는 한 명의 여성이 앉아 있었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래쪽의 참상을 보지도, 조작 콘솔에서 내려오려고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의 아내예요.
…………
어떡할까요? 초병 세 명을 단숨에 때려죽였으니, 이젠 해명할 수도 없어요.
초병들의 사인은 사고였으며, 행운의 박스나 원한 관계는 아니었다고 보고하세요.
다른 초병들이 믿을까요?
내가 증인이 돼줄게.
내 책임도 있어. 행운의 박스를 포장할 때,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고마워. 하지만 초병이 행운의 박스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도, 이 일은 일어났었을 거야.
콘솔에서 흐느끼는 여성을 본 노안은 한숨을 쉬었다.
폭력으로 이룬 특권은 언젠가 폭력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질 거야.
다 처리했어?
응. 보수는 정리해서 A1 창고에 넣어놨어. 우린 이제 가야 해. 그리고... 고마워.
괜찮은 거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여.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인다고? 내가?
이곳에 다른 사람이 또 있어?
…………
그녀의 경고를 들은 노안은 가슴이 막힌 듯한 아픔이 조금씩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아. 단지 좀 피곤해서 그래.
정말?
네 대원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일벌 부대 사망자 중에, 널 어릴 적부터 돌봐준 할아버지가 계셨다고 하던데.
…………
정말 괜찮은 게 아니었다.
늘 이런 사별을 마주했지만, 이 일은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린 지금 물살이 센 역류 한 가운데에 서 있어. 자칫하면 수송 부대의 수천 명이 함께 파멸하게 될 수도 있어.
구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근원을 해결해야만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어.
지금의 넌 대장직을 맡고 있고 또 수송 부대의 핵심 멤버이니, 네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있어. 절대 흥분해서 어떤 행동을 취하면 안 돼! 참아! 성숙해져야 해!
됐어. 임무를 잘 처리한 것만으로도 넌 대단한 거야. 네 나이 때 수송팀 가입도 어려운 사람이 수두룩한걸, 대장은 더 힘들지.
칭찬해줘서 고마워.
이렇게 빨리 웃음을 되찾다니... 조숙한 거야 아니면 냉철한 거야? 알다가도 모르겠네.
조숙하지도, 냉철하지도 않아.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어서 슬퍼할 시간이 없을 뿐이야.
레이첼이 왜 이렇게 중요한 일을 너에게 맡겼는지 이해가 좀 가네.
궁금한 게 몇 가지 더 있는데, 물어봐도 돼?
응.
열차의 물자는 일반 난민의 거점보다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 그런데 레이첼은 무슨 방법으로 이렇게 많은 물건을 입수해서 무기로 바꾼 거야?
나도 잘 몰라. 레이첼 대장님에게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는 거 같은데, 나한테 알려주지는 않아.
승산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
모르겠어. 확정되지 않은 일들과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지금 추측하는 건 자기 위안에 불과해.
이게 마지막 무기야. 당신들... 언제 시작할 계획인 거야?
모르겠어. 그건 레이첼 대장님이 결정할 일이거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다음 단계를 진행하다니, 설마 죽으려고 작정하고 가는 거야?
아니. 레이첼 대장님이 다른 사람에게 세부 계획을 말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
귀족들은 우리가 뭘 하고 싶은지 눈치는 챘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어. 그래서 계속 압박하며, 수색만 할 뿐이지. 만약 꼬투리를 잡힌다면... 그 결과는 차마 상상할 수 없어.
그렇게 궁금하다면, 레이첼 대장님의 제안에 동의하면 되잖아. 당신과 베테 어르신은 오랫동안 비밀 협력한 거래상들이니, 레이첼 대장님이 당신에게 계획을 알려줄지도 모르잖아.
안정적으로 도움을 제공해 주는 거점이 있다는 건 든든한 뒷받침이 될 텐데, 더군다나 당신은 이미 우릴 도와주고 있잖아.
아니. 베테 할아버지께서 안 된다고 하셨어. 도와주는 건 네가 나한테 빚 진 거고, 거점이나 베테 할아버지와는 상관없어.
고개를 숙인 그녀는 잠깐 침묵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너희들이 실패하게 될 거라고 하셨어. 한 걸음만 더 가게 되면, 무덤에 발을 들이게 되는 거야.
아딜레 쪽의 소란은 거점에 큰 영향을 줬어. 너희들이 전멸하게 되면, 우리의 물류도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될 거야.
열차에 너 같은 아이나 노인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죽는 한이 있어도 귀족의 노예나 졸개가 되는 것보다는 낫지.
너... 어린 나이에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거야?
모두가 그렇게 말하곤 해. 난 그냥 보고 배웠어.
그나저나 대원들이 다 너보다 나이가 많은데, 널 제대로 따르긴 해?
날 따를 필요는 없어. 난 주변 사람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어서 대장이 됐으니까.
내 능력에 복종하는 게 아니라, 동료로서 날 지지하고 믿어주는 것뿐이야. 나도 대원들의 조언은 자주 듣는 편이고, 대원들도 내 생각을 참고하는 거지. 모두가 평등한 관계라고 할 수 있어.
평등? 너 같은 꼬마가 대장 자리를 차지했으면, 거만해질 만도 한데? 너 올해 몇 살이니?
올해 여름이 되면 18살.
14살 정도로 보이는데, 그냥 성장이 더딘 거구나. 열심히 살아. 넌 아직 내게 빚진 게 있잖아.
응, 걱정해 줘서 고마워.
노안은 앞으로 이 약속이 어떤 후회를 가져오게 될지 모른 채, 그녀를 향해 정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름은?
내 이름은 벨라야. 성은 할아버지랑 같은 베테고. 벨라·베테라고 해.
좋은 이름인걸. 그럼, 이제부터 널 벨베라고 부를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안은 머리에 세게 한 대 얻어맞았다.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고 레이첼 대장님이 알려주지 않았나 보네.
레이첼 대장님은 줄곧 베테 어르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했거든, 베테 아가씨.
그냥 누나라고 불러. 어차피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알았어. 베테 누나.
노안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벨라를 누나라고 불렀다.
노안은 벨라나 베테 할아버지를 다시는 못 만날 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희생을 각오했다.
나중에 봐.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는 약속을 한 노안은 예전의 미소를 짓고는, 손을 흔든 뒤, 몸을 돌려 거점을 떠났다.
…………
노안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벨라는 깜빡하고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름이 뭐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