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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2-01 썩은 야초
>난 침묵하고 있을 때, 충만함을 느낀다. 난 입을 열면, 그와 동시에 허전함을 느낀다.
과거의 생명은 이미 사망했다.
난 이로써 그것이 살아있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난 이 죽음에 크게 기뻐했다.
사망한 생명은 이미 부패했다.
난 이로써 그것이 아직 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난 이 죽음에 크게 기뻐했다.
루쉰 <야초>
내 기억에 따르면... 난 이미 죽었다.
살아 있는 동안, 난 많은 생명의 시혜를 받았고, 미래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쳤다. 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사랑받았다.
난 야초처럼 썩고, 또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 모두의 곁으로 돌아갈 것이다.
마냥 기뻐해야 하는데 도무지 기뻐할 수가 없다.
어째서... 기억 속에서 큰 조각이 사라진 것 같을까?
…………
잠깐.
난 "지금" 왜 죽은 걸까?
잘못된 선택을 해서... 누군가 오셀럼호에서 날 내던진 것 같은데.
다른 일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날이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너무 어두웠다.
너무 춥다.
너무 아프다.
아프다...
난 누구지?
혼란스러운 기억의 바다에는 수많은 이름의 허상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손에 쥘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은 역겨울 정도로 몸을 찢는 익숙한 환상통만 존재할 따름이다.
지금 꿈을 꾸는 걸까? 아니면 죽기 전에,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건가?
의식은 고통과 죽음으로 채워져, 다른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난 반드시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나야 해.
[인간형 물체]는 혼란 속에서 몸부림치며, 신체의 윤곽을 찾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마침내 손끝이 가볍게 떨리면서 감각을 찾았고, 고난에 둘러싸여 있던 생명은 점차 되살아나는 의식 속에서 무거운 두 눈을 떴다.
시각 모듈 교정 중>>>>>>78.13%
시각 모듈?
낯선 개념이 머리에 쏟아져 들어왔다.
이 절차에 익숙하진 않았지만, 자동으로 교정된 시각은 그에게 [사후의 우리]를 똑똑히 볼 수 있게 해줬다.
이곳은 어디지?
인간형의 생물은 헝클어진 머리를 문지르며 습관적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사지와 옷가지를 체크하고, 매우 불확실한 결론을 내렸다.
아직... 사람이겠지?
다시 한번 자기 신체를 확인해 봤다. 생체공학 피부와 로봇 구조는 낯선 위화감이 가득했다.
이걸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언제 이렇게 변한 걸까?
그날 이후인 건가?
…………
그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답이 없는 건 이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단서가 없었다.
막막한 청년은 어둠 속에서 목적 없이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구불구불한 지하 터널을 따라 30분 넘게 걷다가, 마침내 출구를 통해 나왔고 도시의 윤곽을 봤다.
출구 옆의 자갈밭에는 깨끗한 숄더백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살인범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흉기처럼, 다른 모양의 검 두 자루가 눈에 띄게 놓여 있었다.
가방을 주워서 안을 살펴보니, [에너지 검]이라고 적힌 설계도와 피 묻은 메모가 함께 들어 있었다.
피 때문에 노트가 붙어서 펼칠 수가 없네.
청년은 노트를 챙기면서 텅 빈 것처럼 보이는 숄더백을 털어봤더니 가방 옆쪽 포켓에서 안경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
그는 엉겁결에 낯익은 안경을 주워 들고 도로변에 고인 물가로 다가갔고 수면을 거울삼아 자기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주은 안경을 썼다.
…………
그제야 그는 자기 몸에 익숙한 모습이 조금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이 숄더백 안에 있는 물건들이 자기 신체보다 낯익게 느껴졌다.
도대체 누가 여기에 이런 걸 두고 간 걸까?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그는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면서, 근처를 빙빙 돌았다.
해가 질 무렵, 멀지 않은 곳에서 질서정연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저기에 아직 사람이 있어!
누구세요?
겁먹을 필요 없어. 우린 공중 정원의 집행 부대야. 지금 지구 표면에서 수색과 구조 작업을 수행하고 있어.
갈 곳을 잃은 노숙자라면, 우선 우리와 함께 보육 구역으로 가자.
아니야. 자세히 봐봐. 저 녀석은 구조체야.
구조체요?
어느 소대 소속의 구조체지?
저도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싶지만... 우선 구조체가 뭔지 알려주시겠어요?
뭐라고?
간략한 소통을 거쳐 양측은 서로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의식의 바다에 편차가 생겨서, 기억이 혼란스러운 걸지도 몰라. 최근에 이런 구조체가 적지 않거든.
하지만 이 녀석, 데이터베이스에서도 자료를 찾을 수 없어.
몸에 걸려있는 물건 말이야, 통신 장치 같은데, 한번 확인해도 될까?
구조체 대원은 청년이 몸에 지니고 있는 설비를 검사했다.
어때?
고장 났어. 공중 정원의 통신 장치도 아닌데, 버려야 할까?
돌려줘. 어쩌면 단서가 될 수도 있잖아?
혹시 구룡이나 아딜레 상업 연맹 아니면 북극 항로 연합 쪽에 있는 미등록 구조체가 아닐까?
그럴 수도 있어.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승격자들도 등록된 정보가 없지 않나?
구조체 대장이 그 세 글자를 꺼낸 순간, 다른 구조체들은 무기를 든 채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잠깐만요. 방금은 구조체란 무엇인지만 설명했잖아요. 승격자는 또 무엇인가요?
…………
세 사람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에게 승격자라는 신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생하게 설명했다.
그들 때문에 지금 상황이 이렇게 심각해진 거야.
그러니까, 그들은 나쁜 사람인 거군요.
맞아. 적조의 재난, 배신하는 구조체, 모두 그들 "덕분"이라 할 수 있지.
이해했어요.
청년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할까? 그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다른 걸로 검사해 볼 수 있어? 예를 들어, 퍼니싱 농도 같은 걸로?
검사해 봤어. 침식도는 높지 않지만, 이걸로는 단지 수격자가 아니라는 것만 증명할 수 있어. 자료에 따르면, 승격자는 퍼니싱을 제어할 수 있다고 했어.
엘리트 소대가 이 구역을 지나간다고 들었어. 그들에게 문의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들은 지나갈 뿐, 거점에는 오지 않을 거야. 정화 부대 쪽 일은 매우 바쁘고,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님도 몸이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최근까지도...
대장님이라고 불리는 구조체는 말을 다 끝내지 않은 채, 한참을 고민한 뒤, 앞에 있는 청년을 믿기로 했다.
먼저 우리와 함께 거점으로 돌아가서 후속 검사를 다 마친 다음 다시 이야기하지.
하지만!
이상이 있으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고. 의심스럽다고 한 사람을 포기하는 건 양심상 용납할 수 없어.
대장님 말씀이 맞아. 우린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을 잃었어. 물론 경계도 해야겠지만 구해야 할 사람은 구해야 해.
면전에 서 있는 소대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가장 근본적인 선의에 이끌려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모두 감사해요.
청년은 구조하러 온 소대를 따라 "임시 거점"이라는 곳에 왔다.
그는 방금 찾은 "위험 물품"인 에너지 검과 검의 설계도를 모두 건네줬다. 그리고 거점 내 보조형 구조체에게 간단한 검사를 받았다.
손상은 없어. 보아하니 의식의 바다가 이탈하면서 발생한 후유증 같아.
의식의 바다 이탈이요?
이것도 모르는 거야?
보조형 구조체는 의식의 바다와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했다.
이탈의 후유증 중 하나가 바로 기억 손상이거든.
넌 운이 좋네. 보아하니 기억을 불러오는 것에만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안에 있는 데이터는 모두 정상이야.
이런 경우는 드물어. 만약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나중에 구조될 기회도 없었다면, 대부분 구조체는 더 심각한 후유증이 남았을 거야.
어쩌면 넌 매우 안정적인 의식의 바다를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제가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어요.
모두 가능성이 있지. 이곳은 시설이 완벽하지 않아서 치료해 줄 방법이 없으니, 다른 곳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니면 기억이 차차 돌아올 거라고 믿고 한번 걸어봐도 되고.
치료 없이도 회복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래. 네 의식의 바다가 충분히 안정적이라는 전제하에서 말이지.
하지만 대부분의 구조체는 그러지 못하거든,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녀는 웃으면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어디 가시려는 건가요?
난 다음 임무가 있어서 말이야. 넌 이곳에 머무르도록 해.
청년은 상대가 떠나는 걸 주시하고는 아무 생각 없이 방구석에 앉았고, 분주한 사람들 사이에서 침묵을 유지했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 침묵했고, 달빛이 대지를 완전히 뒤덮은 그때, 문밖에서 갑자기 소동이 일어났다.
계획과 다른게 누군가 이곳을 찾아온 모양이었다.
너희는 왜 갑자기 이곳에 온 거야?
정비하러 왔어. 치료가 필요한 구조체 몇 명에 지휘관님도 계셔서.
청년은 구조체가 가리키는 방향을 봤다. 사람들 뒤에 한 인간이 서서 옆에 있는 구조체에게 낮은 목소리로 무엇을 말하고 있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님만 계시는 거야?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다른 멤버들은?
처음부터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님과 루시아 대장만 내려오셨어. 그 두 분은 오시지 않았고.
그럼 루시아 대장은 왜 지휘관님을 따라오지 않은 거야?
급한 상황이라 임시로 계획을 변경해서 이곳으로 왔어. 그쪽에 인력이 워낙 부족해서 대장님은 그쪽에 남게 된 거고.
정보를 교환을 마친 후, 그들은 재빨리 각자의 휴식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원래 이곳에 있던 구조체 대장과 지휘관만 남게 됐다.
두 사람이 테이블 옆에 앉은 뒤, 구조체 대장은 무언가를 물으며, 하얀색 의료 상자를 열었다.
(의료 상자... 인가?)
상처를 감싸거나, 봉합해야 할 사람이 더 있나요?
과거의 화면이 갑자기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난... 의사였던 건가?
그는 멀리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인간과 그 하얀 의료 상자를 보며, 방금 떠올린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봤다.
후, 드디어 이 <외과 제21권>의 하편을 찾았네.
청년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페이지를 만졌듯이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였다.
"의료 상자를 만지면, 더 많은 것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그는 용기를 냈다.
죄송하지만, 제가 상처를 감싸도 될까요?
뭐라고?
제가 어쩌면, 아니, 의학을 공부했던 기억이 있는데, 상처를 감싸 드려도 될까요?
갑자기 뭐가 생각난 거야? 안 돼. 우리가 널 구조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널 정말 믿는다는 건 아니야. 그건 좀 이해했으면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네 신분을 파악하지 못했는데, 부상당한 인간 더군다나 엘리트 소대의 지휘관님을 만지게 할 수는 없어.
구조체 대장이 청년을 밀치려 하자, "엘리트 소대의 지휘관"이 대장의 두 손을 막았다.
…………
구조체 대장은 지휘관을 보며, 머뭇거린 채 몸을 일으키고는, 자리에 경계하는 시선을 뒀다.
지켜볼 거야.
…………
안녕.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
기억나지 않아.
부르기가 불편하다면, 청년A 혹은 A군이라고 불러줘.
정말?
…………
지휘관이 기억하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모두가 경계해야 하는 캐릭터였나?
인간 지휘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다소 무거운 말투로 변했다.
…………
응, 의료 상자를 봤을 때, 예전에 외과 교본 몇 권을 봤었던 것과 거점의 의사를 도와줬던 게 떠올랐어.
응, 방금 미처 이름을 물어보지 못한 보조형 구조체도 그렇게 말했어.
내가 지휘관 일행과 같이 돌아가도 될까? 난 아직 신분도...
청년은 이 말을 내뱉은 순가, 상대방도 같은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졌다는 걸 눈치챘다. 청년이 기억상실로 가장했다면, 홀로 "적군"의 본거지로 향해야 하는 일에 분명히 동요했을 것이었다.
이곳의 구조체가 청년을 구했지만, 그들의 말대로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청년은 자기 자신도 믿을 용기가 없었기에, 의심의 합리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제멋대로 자신을 정의의 진영에 넣는다면, 가면을 벗게 되는 순간이 왔을 때, 위장한 악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청년은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겠어. 생각할 시간을 줘.
그래? 알겠어.
청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청년은 재빨리 상처를 감싼 후, 자신이 있던 구석으로 돌아갔다.
…………
밤이 되자, 거점의 분위기도 많이 조용해졌다.
대부분의 사람이 잠에 들었고, 기운찬 소녀 한 명만이 구석에서 나이 많은 남성과 나지막하게 뭔가를 논쟁하고 있었다.
그건 그들이 모두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종이야! 그곳에 낙서하면 안 돼!
하지만 종이는 이미 버려졌고, 전 낙서하지 않았어요.
네가 무엇을 썼든 종이는 모두 그들 것이니, 넌 가질 수 없어!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단말기도 없어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들이 이 종이로 모두에게 메시지를 남겨야 해.
흑흑...
아빠도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 어서 종이를 그들에게 돌려주고 와.
…………
어째서인지, 논쟁하는 두 사람을 바라본 그의 마음속에서 서글픈 그리움이 스쳐 갔다.
(나도 이런 가족이 있었나?)
청년은 소녀가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흐느끼며 구겨진 종이를 집어 들고, 방금 그 인간 지휘관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봤다.
멀리서 두 사람이 나지막하게 어떤 대화를 나눈 뒤, 지휘관은 종이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웃으며, 소녀의 머리를 토닥이고는, 자신이 가져온 노트 한 장을 찢어서 소녀에게 줬다.
고마워요!
…………
소녀의 진심 어린 기쁨을 본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청년은 고개를 들어 그 지휘관을 쳐다보니, 상대방도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침묵의 시선은 얼마 가지 않았다. 상대방은 시선을 내리곤 구조체 대장에게 나지막하게 뭔가를 말했다.
(다음 임무를 의논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걸까?)
그는 약간 쑥스러운 듯, 표정을 거뒀다.
난 정말로 이곳에 남아도 되는 걸까?
소외감은 견고한 우리처럼 청년을 한구석에 가뒀고,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지도, 떠나지도 못하게 했다.
기억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있지 않을까?
…………
청년은 생각에 잠기기 전에 자신 곁으로 조금씩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그 지휘관이었다.
무슨 일이야?
상대방은 가볍게 몸을 숙였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펜 한 자루와 노트에서 떼어낸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야?
환하게 웃었다고?
잠시 말이 막혀 어쩔 줄 모르는 청년은 자신의 표정을 볼 수 있는 도구를 찾으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내 표정에서 그렇게 티가 났어?
…………
고마워.
이 추가적인 선의는 청년을 당황하게 했고, 청년은 급히 일어나, 두 손으로 펜과 종이를 받았다.
…………
청년은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앞에 있던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리를 떠나 버렸다. 오직 청년만이 제 자리에 혼자 서 있었다.
전장을 누비는 영웅은 매일 수많은 피로한 전사, 방랑자, 난민을 만난다.
이런 우연한 만남은 보잘것없었고, 하나하나 깊이 파고들 힘은 더욱 없었다. 영웅은 최전선에 서서 가장 위험한 문제를 다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청년 그리고 청년과 마주칠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한 걸음을 놓친다면, 심연으로 떨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