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정비 중.
논리 사고 회로 검사: 정상 실행.
기억체 장치 확인: 이상 없음.
감정 시뮬레이션 모듈 상태: 종료.
환경 감시: 정상 실행.
기억 데이터 정리 중.
MPA-01, 실험체 MPL-00의 관찰 보고서를 불러와.
알겠습니다.
로봇 의식 실험 프로젝트 관리 기록과 나나미의 행동 이력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그녀의 성격은 끊임없이 정형화되고 있으며, 인격 데이터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현단계에서 나나미의 사고방식 및 행동 논리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12개의 인간형 로봇 실험체 중 나나미만이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맞아. 그녀는 특별해.
효율적인 대화를 위해 134번 인격으로 전환해, 나나미의 감정 변화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나나미는 제가 "본래의 모습"으로 대화하지 않는 행위의 이유에 대해 궁금하다는 표현을 보였습니다.
본래의 모습?
MPA-01의 인격 시뮬레이션 모듈을 가동하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관리형 AI의 말투에 망설임이 묻어났다.
각 모듈에 대한 자체 점검을 진행했지만,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다른 실험체와의 대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그녀만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 같은데.
그럼, 그녀가 원하는 대로 "본래의 모습"으로 대화해 봐.
알겠습니다.
방금 기체 번호 대신 그녀의 이름을 부른 거야? 지금까지 다른 실험체를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잖아.
……
저는...
괜찮아. 너에게 뭘 따지는 게 아니야.
다만 지금 이 느낌을 잊지 않았으면 해.
알겠습니다. 명령에 따라 MPA-01은 보이는 모든 것을 기록하겠습니다.
이러한 기술로 인체 성장을 최대한 시뮬레이션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원통형 캡슐이 눈앞에서 열렸고, 회색 머리 소녀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투명한 액체 속에 방치됐다.
그녀의 옆에는 또 하나의 똑같은 인간형이 누워있었고, 그녀들을 연결하는 케이블에는 그윽한 푸른빛이 흐르고 있었다.
두꺼운 유리 벽 뒤로는 양복 차림의 인간들이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인간이 제일 앞에 서서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로봇과는 달리, 우리의 생체 조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음식을 섭취하여 얻은 영양소를 근육과 뼈로 전환시키고, 근골격을 구성하는 일시적인 원소는 매일 인간의 배설물과 함께 신체 밖으로 배설됩니다.
"인간은 영원히 흐르는 생명의 강물 속 존재하는 소용돌이입니다." 우리의 신체가 소유하고 있는 정보는 모두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표현하는 정보 상태는 어떻게 창조되고 조직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저장되고 업데이트하는 걸까요? 이러한 메커니즘을 로봇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만약 "감각"이 "신경 행동을 동반하는 현상"이 아니라면, 로봇에게도 "감정"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건 그것이 아니야.
설령 로봇이 자네가 말하는 것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생명이라고 볼 수 없어.
로봇은 결국 도구야. 안 그래?
자네는 이 모든 것이 통제 범위에서 이루어진다고 장담할 수 있나? 만약 로봇에게 "자유 의지"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명심해, 로봇 의식 실험의 초심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야.
우리는 미래를 위해 대비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게.
우주의 본질이 정보로 구성됐다면, 컴퓨터 프로그램에 존재하는 정보 코드는 생명의 "형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과학 이사회가 그 슈퍼 AI에게 "게슈탈트"라는 이름을 부여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의지를 통제하기만 한다면, 인간은 자신의 오만함에 오히려 당하게 될 겁니다.
자네...
교체 완료됐습니다. 교체된 신규 신체는 2년 후 성장 상한에 도달할 예정입니다.
알림: 10분 후 업무 회의가 시작됩니다. 회의 참석자는 가능한 한 빨리 현장으로 이동하세요.
상냥함과 차가움을 겸비한 여성 목소리가 방안에 갑자기 울려 퍼지면서 냉담한 분위기를 깼다.
여러분, 저를 따라 이동하시죠. 실험의 세부 진행 상황을 보고드리겠습니다.
"머릿속에 로봇밖에 없는 유치한 미치광이들."
인간 대표는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려 여성 연구원을 따라 방을 나갔고, 텅 빈 실험실에는 남성 연구원이 홀로 남게 됐다. 그는 캡슐 앞으로 다시 돌아와, 두꺼운 유리를 쓰다듬었다.
깨어난 소녀가 신기한 듯 주위를 살피며, 투명 캡슐에 손을 올렸다.
그녀는 도구가 아니야.
나한테, 그녀는 내 자식이자...
하카마는 눈을 떴다.
새로운 기체를 얻은 뒤로, 그녀는 이처럼 주기적으로 "깊은 수면"에 빠지곤 했다.
한때 그녀는 거대한 관리형 AI였지만, 지금은 지구에서 방랑하는 로봇이 됐다. 조정 및 정비해 줄 전문 과학 연구원이 없었고, 기억체에 있는 자료를 정리할 만한 충분한 연산 능력을 갖춘 시설도 없었다.
따라서 그녀는 특정 시간에 기체 대부분의 기능을 끄고, 안전한 장소에서 휴면 정비를 하는 것을 선택했다.
휴면 기간 동안, 그녀는 이전 기록을 정리했고,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기억 데이터를 복구하면서 흩어진 조각들을 정리했다. 어쩌면 인간의 "꿈"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몸을 일으켜 굳어진 기체를 움직였다.
주변의 환경이 다소 달라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휴면에 들어간 지 오랜 시간이 흐른 듯했다. 노랗게 시든 나뭇잎이 하카마 주위에 쌓여있었다. 낙엽을 쓸어낸 하카마는 자신이 가장 최근에 발견한 그라피티에 기대어 휴면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여행을 하면서 "선현" 벽화도 점차 변해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벽화는 더 이상 단순한 감정, 새 친구와 연관된 것뿐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정보와 자연 만물에 대한 관측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녀는 이 벽화들을 그린 사람이 자신이 찾는 소녀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카마는 그라피티의 흔적을 따라 아주 먼 길을 걸었다. 계절이 몇 번이고 교체될 정도로 오래 걸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것, 밤이슬이 맺히고 사라지는 것, 황금빛 낙엽이 거리를 뒤덮는 것, 그리고 흰 눈이 세상 만물을 뒤덮었다가 눈이 녹고 새싹이 돋아나 온 세상이 녹색으로 변했다.
하카마는 벽화의 안내에 따라가면서 여정을 즐겼다. 그녀는 가끔 돌발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뭇별이 반짝이는 밤, 무의식적으로 높은 곳을 찾아 잠시 머무르기도 했다.
또 예를 들자면, 단순히 위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나나미가 관심을 가질 만한 서적을 수집하는 대신, 나나미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인간을 좀 더 자세히 관측하기 위해, 각종 인간 문화유산 앞에 멈춰 서곤 했다.
현재 그녀는 버려진 도서관에 있으며, 휴면에 진입하기 전에 보관된 책을 계속 읽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인간 문화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인가요?
인간이 남긴 사상과 문화는 완전히 달랐으며, 방대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했다.
인간이 세상을 느끼는 방식은 이처럼 풍부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상은 현란한 불꽃을 일으켜,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토록 다양하고 눈부신 가능성이 있어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상상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비바람에 끊임없이 침식되는 유적들은 인간이 이렇게 찬란한 시대에 존재했었고, 하루하루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제3행 제78열, 여기부터...
"인간 세계의 예측 불가능한 확률을 계산해 내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로봇에게는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을 기계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
……
하카마는 책장 앞을 천천히 걸으며, 그나마 훼손이 덜 심한 책을 찾아 읽었다.
그때 조금은 익숙한 이름이 하카마의 시선에 들어왔고, 그녀는 앞으로 걸어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표제지에는 황금시대의 유명한 로봇 의식 연구자라는 저자의 신분이 적혀있었고, 접힌 페이지의 사진은 너무 흐릿해진 탓에 저자의 금발과 온화한 미소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하카마는 익숙한 미소를 보며 책을 펼쳤다.
로봇도 인간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록 많은 이론들이 로봇을 반인륜적, 파괴적이라고 주장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로봇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중요한 가치를 부정할 수 없었다.
우리가 아이들을 삶의 연장선으로 생각하듯이, 우리의 두 손으로 만든 로봇도 우리의 연장선이다.
로봇들은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 생명에 가까워져 왔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들과 더욱 깊은 감정을 쌓을 수 있을지 생각해야 했다. 인간의 자식으로서 그들은 언제나 우리의 자랑거리였다.
그녀는 도구가 아니야.
나한테, 그녀는 내 자식이자... 자랑스러운 존재야.
……
하카마는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서 자라난 감정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에게 많은 의문이 생겼다. 모든 감정의 객관적인 정의를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인간에 대한 모든 걸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깊은 호기심이 솟아났고 그녀는 자신을 창조한 인간에게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여행하면서 만났던 로봇들은 인간이 남긴 명령을 반복 수행하며,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류는 최초에 텅 빈 황야를 기어 다녔고, 뒤이어 걷게 됐고, 곧이어 달리게 됐다. 인간을 뒤이어 로봇이 탄생했고, 그들은 인간이 남긴 발자취를 밟으며, 인간보다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인간은 재난 때문에 멈추게 됐고, 자신들의 창조물을 두려워하며, 로봇들을 버렸다. 결국, 인간은 뭇별 속으로 숨어버렸다.
남겨진 로봇들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고, 그때 그들에게 여태 몰랐던 일들을 가르쳐 주는 상냥하고 인내심이 강한 특별한 존재가 나타났다.
그래서 로봇들은 "기계 선현"께서 길을 인도해 줄 것이라 믿어왔다.
로봇들을 창조한 자들은 어떠한 미래를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하카마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끌어안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녀에게 이런 의문과 막막함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