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반 로봇은 원래 물류 회사에서 생산한 신에너지 수송 로봇이었지만, 투입되기도 전에 퍼니싱이 그 구역으로 퍼져버렸다.
창고 깊숙이 버려져 있던 운반 로봇은 인간들이 보급품을 찾기 위해 창고의 문을 열었을 때, 휴면에서 깨어났다.
운반 로봇은 재난 발생 전의 명령을 수행하려 했지만, 인간들은 더 이상 그를 이용해 물건 배송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만 운반 로봇은 인간에 의해 손상된 몸을 이끌고 계속해서 운반할 물건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벽에 그려진 벽화에 이끌렸다, 로봇들은 그것을 "선현님"께서 남긴 계시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미완성된 벽화 앞에서 기이한 로봇을 만났다. 그녀는 흥미진진하게 벽에다 화려한 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림이 완성되자 즐겁게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즐거워하던 소녀는 구석에 숨어있던 운반 로봇을 보게 됐고,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 순간, 운반 로봇은 "따뜻함"이라는 느낌을 처음으로 감지하게 됐다.
소녀가 신분을 밝히지 않았지만 운반 로봇은 그녀가 바로 로봇들 사이에 소문으로 돌고 있는 "선현"인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선현"은 인간의 유산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보물"을 탐색하고, 다른 로봇들을 불러 모아 "롤플레잉"이라는 게임을 흥미진진하게 즐겼다.
운반 로봇은 이런 놀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소녀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벅차오르는 감정은 운반 로봇 마음의 허전한 구석까지 메꿔주었다.
하지만 소녀는 금방 이곳을 떠났다. 그녀는 손을 흔들며 로봇들에게 "안녕, 나나미는 정말 즐거웠어"라는 말을 남기고 눈부신 햇살 속으로 사라졌다.
만약 그녀가 좋아하는 물건을 수집해 놓는다면, 언젠간 돌아오지 않을까?
그래서 운반 로봇은 인간이 도시에 남긴 예술작품, 책, 게임, 장난감 등 물건들을 수집해 거점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수집된 "공물"들은 이렇게 창고 속에 가지런히 쌓이고 쌓여 주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예전에 선현님께서 오셨을 때보다 더 많은 물건을 수집했으니, 분명히 그때보다 더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선현님이 계속 오시지 않는 이유가... 아직 "결정적 아이템"을 수집하지 못하셔서 그런 걸까요?
제 동료들도... 아직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운반 로봇은 의혹스러운 듯 "공물"과 로봇의 잔해 속에 서 있었다.
혹시... 당신의 동료는 어떻게 생겼나요?
저와 모델이 같은 운반형 로봇입니다.
그녀는 쇼핑몰에 들어오면서부터, 운반 로봇이 좀 수상하다는 걸 발견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뿐만 아니라, 다른 로봇 동료를 식별하는 능력 또한 고장이 났던 것이다.
퍼니싱에 침식된 로봇은 더 이상 운반 로봇과 같은 식별 신호를 보낼 수 없으므로, 그들이 이 운반 로봇 앞에 있더라도 과거를 함께한 동료로 식별될 수 없었다.
방금 전, 하카마는 운반 로봇 앞에서 침식된 그들을 직접 파괴했던 것이고, 지금 그들의 잔해들은 이곳에 흩어져 있었다.
……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요?
그녀는 눈앞의 로봇에게 이 모든 것을 알려야 했지만, 도저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닙니다. 이 물건들... 선현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선현님"의 흔적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저의 사명입니다.
하카마는 창고 한구석에서 웅크리고 앉아, "공물"로 둘러싸인 벽화를 쓰다듬었다.
벽화의 흔적에는 새것과 낡은 것이 섞여 있었다. 다소 오래된 붓놀림 속에는 순수한 기쁨이 녹아있었고, 그림의 주인이 매우 기뻐 보였다. 아마도 그림을 통해 이 기분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새로운 벽화에는 어린 소녀와 로봇 무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하카마는 벽화를 보며 나나미가 그렸던 그림, 그리고 그때 소녀의 웃음을 떠올랐다.
그녀는 현재 어디에 있고, 어떤 일을 겪고 있을까?
하카마는 눈을 감고,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자신의 의식을 차지하게 내버려 뒀다.
만약 선현님을 찾게 된다면, 저희가 이곳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줄 수 있나요?
그럴게요. 그녀에게 운이가 당신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줄게요.
감사합니다! 전 선현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이곳을 계속 지키고 있겠습니다.
하카마가 손을 뻗어 로봇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운이는 하카마를 조용히 바라봤다. 투명한 렌즈 속에 그리운 모습이 비치는 듯했다.
하카마는 떠나기 전에 운이를 도와 창고에서 벌어진 전투 때문에 생긴 난장판을 정리하고, 다른 운반 로봇의 잔해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크고 작은 로봇들이 부드러운 매트에 옹기종기 누워, 평온한 휴면에 들어간 것 같았다.
유일하게 서 있는 운반 로봇은 하카마 쪽으로 끊임없이 손을 흔들며, 그녀가 자신에게 고개를 끄덕여 작별 인사를 할 때까지 하카마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운반 로봇은 여성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눈 부신 햇살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