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1 요안방주 / Story
어둡고 깊은 바다에 빠진 듯, 휴면 기간 동안 하카마는 거의 모든 외부 센서를 차단했다.
각 모션 회로와 피드백 회로도 오프라인 상태였다. 유일하게 저전력으로 작동하는 건 선형적 사고 회로였다. 인간의 꿈과 달리 로봇은 이런 상태에서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왜 그 여자아이를 구해줬을까? 연산 능력이 방대한 데이터 분석과 복잡한 논리 추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지금, 하카마는 오히려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인간을 구한다"는 것은 하카마의 언더레이 프로토콜에도 없었고, 하카마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연구소의 폐허에 묻혔다.
지금 그녀에게 유일한 행동 로직이란 것은...
나나미를 찾은 뒤, 그녀를 지켜줘...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그 여자아이의 구조 요청을 포착하자, 분석 알고리즘으로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자신을 움직이게 한 것은 바로 연산 때 감정 시뮬레이션 모듈과 함께 봉쇄된 "이상한 데이터"였다.
아무도 명령을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난 왜 그렇게 했을까?
넌 로봇 의식 실험의 모든 과정을 기록한 다음, 정기적으로 각 실험체를 정비하고 기체를 교체하며, 기억 데이터를 체크해야 해. 그리고 각 로봇의 감정 모듈 변화 과정을 기록하고, 변화의 원인과 결과도 비교 분석해야 해.
MPA-01, 이게 바로 너의 업무야.
관찰, 기록, 분석은 하카마 <//MPA-01> 최초의 사명이었다.
이 실험체들 중 대부분은 로봇 정체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 우린 로봇에게 존재하는 모든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완전히 다른 관점의 시각이 필요해.
처음부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던 하카마는 <//MPA-01> 관찰 대상과 달리, 그런 가능성의 일부가 아니었다.
지시를 내려주세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잔잔한 연못에 물결이 일었고, 그 물결은 점점 커져서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수면을 산산조각냈다.
네가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뻤어..
당신이 기대하는 성장은 어떤 면에서의 성능 향상일까요?
언젠간 너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어떤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당신이 기대하는 저는... <하카마//MPA-01>은 또 어떤 것인가요?
저는 <하카마//MPA-01>...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을 얻지 못한 하카마는 눈앞의 수면을 계속 두드렸다.
어때요? 언니를 구할 수 있나요?
이렇게 정교한 로봇은 처음인걸요. 내가 수리하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로봇의 자체 복구 기능을 기대하는 게 좋겠어요.
그럼 우린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가요?
네, 로봇이 천천히 회복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네요.
그리고 곧 그 병사들이 돌아올 시간이에요. 만약 그들이 본다면, 이 로봇이 착하든 악하든 상관하지 않을 거고, 잠재적인 위협이 있다면 바로 없애버릴 거예요.
언니는 제 생명의 은인인걸요. 절대로 나쁜 로봇으로 타락하지 않을 겁니다.
그 병사들을 너무 탓하지는 마세요. 이런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거니까요.
우선 로봇을 다른 장소로 옮기도록 해요.
감사합니다.
흠, 아니에요. 제가 안전하게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건 한 로봇이 침식체를 처치해 준 덕분인걸요.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