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1 요안방주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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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1-4 희망 없는 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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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마지막 발신지인데...

하카마가 메모리에 있는 좌표 지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이틀 뒤였다. 좌표 지점과 연구소의 거리가 멀고 침식체가 그녀를 방해했던 것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미지의 바이러스가 폭발한 뒤, 인간이 무차별로 로봇을 적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감정 시뮬레이션 모듈 손상 상태 재확인... 일부 통제 기능은 오프라인 상태이며, 장면 연산의 편차율은... 0.023%입니다.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됩니다.

하카마는 뒷머리의 상처를 만지며, 일부 고장 난 부품을 제거했다.

커다란 상처는 뒤통수를 가로질러, 생체공학 스킨을 통째로 들춰내어 정밀한 통합 전기회로를 드러냈다.

이 상처는 시민을 호송하던 병사가 그녀를 침식체로 잘못 판단하고 남긴 것이었다.

하카마는 이런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그 뒤로 사람들을 피해서 움직였다.

이로 인해 피난 행렬이 잦은 직통 도로는 노선 연산에서 제외됐고, 에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하카마는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됐다.

좌표 데이터 수집 시작... 수집 완료... 장면 연산 설정을 시작합니다.

가상 데이터로 이뤄진 광경이 하카마 앞에 나타나면서 시간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뒤로 감기 버튼을 눌렀다.

살려줘!

안돼!

그를 놓아줘!

한 발짝도 물러서면 안 돼!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비명이 그녀의 전자두뇌 속에 스며들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었지만, 몇몇은 인파와 등을 돌려 도시로 향하고 있었다.

하카마는 자신처럼 역행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마치 강물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조그마한 물결을 일으키고는 적색 조수에 삼켜졌다.

하카마는 인간들이 이들을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자"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왜 이렇게 행동할까? "명령" 때문일까? 하카마는 곧 이 판단을 부정했다. 그녀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기록에 의하면, 인간을 절대적으로 복종시킬 수 있는 "명령" 같은 건 없었다.

그럼, "본심" 때문일까? 로봇이 언더레이 프로토콜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인간도 어떤 비슷한 존재에 따라 행동하는 걸까?

분명 다른 존재고 서로 다른 경험을 겪었는데 왜 지금 같은 선택을 했을까? 같은 "본심"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개인의 "유일성"은 또 어디에 있는 걸까?

하카마는 쓰러진 자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며칠 전 그 병사를 떠올렸다. 그는 거의 얼굴 절반을 잃었지만 여전히 자기 뒤에 있는 사람을 지켰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하카마를 향해 외쳤다.

명령에 의존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선택...

이것은 감정 시뮬레이션 모듈에 존재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데이터였다. 통제 기능이 손상되면서, 하카마는 이를 분석하고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감정 시뮬레이션 모듈의 모든 기능을 끄고 자신이 해왔던 일을 계속했던 것이었다.

인파와 시간을 거슬러 가던 하카마는 핏빛 바다에서 기록 속의 그 모습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다. 방대한 데이터 스트림은 한편으로 그녀를 묻어버릴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흰옷은 점점 검붉게 물들었고, 목청껏 외친 고함 소리가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고 있었다. 뒷머리의 통합 모듈은 고속 가동으로 인해 불꽃이 튀고 있었다.

기체의 온도는 안전 임계치를 초과한지 오래됐고 주변 공기는 열파로 인해 뒤틀렸지만, 하카마는 연산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불필요한 센서와 회로를 모두 차단하고 과거에 대한 연산에만 집중했다.

그냥 혼자야...

그녀는 끝내 "망망대해 속의 그 물방울"을 찾아냈고 상대의 행동 노선도 연산해냈다.

연산을 마친 하카마는 가장 유력한 노선을 따라갔다.

침식체는 여자아이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여자아이는 당황한 나머지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다.

제발 누가... 저를 좀 살려주세요.

하지만 떨리는 부르짖음은 영웅의 등장을 맞이하지 못했다. 여자아이는 차가운 빛에 놀라 눈을 감았고, 죽는 순간만큼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침식체

삐삐!

원래 죽을 땐 통증을 조금도 못 느끼는 건가?

???

목표 제거... 아니군요... 음...

싸늘한 여자 목소리가 들리다 잠시 끊겼고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바뀌었다.

???

꼬마 아가씨, 이제 괜찮아요. 눈 떠도 돼요.

꼬마...

앗!

하카마의 노출된 전자두뇌에 놀란 듯, 레이니는 울먹이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려고 하다가 차가운 벽에 부딪히게 됐다. 공교롭게도 더 물러설 길이 없었다. 바로 그때, 여자아이는 하카마의 발 옆에 쓰러져있는 침식체를 봤다.

레이니는 하마카의 뒤통수에서 시선을 강제로 돌려 상대의 온기 없는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나쁜 로봇이 아닌가요?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가장 훌륭한 가사도우미입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하카마는 가사도우미 인격을 선택했다. 하지만 감정 시뮬레이션 모듈이 오프라인 상태라서 그녀는 인격 내부에 저장된 예시 문구만 불러올 수밖에 없었고 실시간 조정은 불가능했다.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봉변을 당한 여자아이는 며칠만에 철이 든 것 같았다. 레이니는 울음을 참고 질문하고 싶은 생각도 억눌렀다. 그리고 하카마에게 흐느끼는 목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괜찮아요. 자... 천천히 일어서 봐요. 참 잘했어요!

하카마는 인격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따라 가볍게 손뼉을 쳤다.

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

병사 아저씨께서 피난처 위치를 알려준 적이 있어요.

하카마는 그 병사의 행방에 대해 묻지 않았다. 여자아이의 표정만 분석해 봐도 그 병사의 결말을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환경 감시 장치에서 대량의 침식체 신호가 포착됐고, 으르렁 소리가 폭풍처럼 이쪽으로 몰려왔다.

여자아이를 데리고 포위를 뚫고 나가려면, 침식체 무리와 직접 부딪칠 게 분명했다. 게다가 레이니가 조금이라도 상처 입지 않게 하려면...

논리 알고리즘과 데이터 분석은 곧 하카마에게 놀라운 답을 알려주었다. 기체 손상도가 높을수록, 그에 비례해서 성공 확률도 높았다.

……

언니?

제가 한번 안아도 될까요? 정말 착한 꼬마 아가씨네요.

하카마는 쪼그리고 앉아 부들부들 떠는 레이니의 가냘픈 몸을 끌어안고,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 줬다. 하카마는 레이니의 등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가슴팍에 묻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개를 들면 안 돼요.

가사도우미 인격의 시뮬레이션 목소리는 살벌한 공기와 사뭇 달랐다.

낫으로 침식체 동력 척추의 틈에 박은 뒤, 팔로 잡아당겨 반으로 갈랐다.

환경 감시 장치에는 더 이상 침식체의 신호가 보이지 않았고 하카마의 기체도 한계에 도달했다.

레이더와 시각 모듈은 물론이고, 기동 부품도 심하게 손상돼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다행히 레이니가 언급했던 피난처와 현 위치는 아주 가까웠고, 남은 길은 레이니가 혼자 가더라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하카마는 레이니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여자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개를 들거나 몸부림치지 않았고 약속했던 것처럼 말을 잘 들었다.

언니...

나머지 길은... [경고. 전력 유출. 연산 능력 이관 중... 안전] 꼬마 아가씨가 ... [모듈 오프라인] ... 문제없습니다.

전력을 다해... [이상 프로그램 차단] ... 달려가세요. 아셨죠?

싫어요. 언니랑 같이 갈래요. 거긴 어른들이 많으니까 꼭 수리할 수 있을 거예요.

하카마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피난 인원 중 자신을 수리할 수 있는 기술자가 없을 수도 있고 게다가 현재 상황에서 사람들이 침식 리스크를 무릅쓰고 로봇을 곁에 두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카마는 수없이 연산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고, 자기 뒤통수에 남겨진 균열 흔적이 가장 유력한 증거였다.

피곤해요... 강제 휴면 수행... 휴식...

가까스로 인격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유지하며, 상대방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려 노력했지만, 발성 모듈에서 나오는 것은 지지직거리는 전자음뿐이었다.

제, 제가 빨리 가서 사람을 불러올게요.

네, 저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만...

하카마는 멀어지는 레이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파손 직전인 부품들을 하나씩 껐다.

휴면하기 전 마지막 순간, 그녀는 다시 돌아오는 발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