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1 요안방주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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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1-5 깨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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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가리킨 방향을 수색했지만, 인간의 흔적을 찾지 못한 걸 보면, 떠난 지 너무 오래돼서 바람과 시간이 상대의 흔적을 없애버린 것 같았다.

길을 따라가다 보니, 도시의 구석구석... 벽, 창문, 문 심지어 7.0m 높이의 신호등까지도 그라피티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고 또한 무시할 수도 없는 그라피티들의 "익숙함"에 이끌려 길을 따라 탐색했다.

그러다 결국 먼지를 뒤집어쓴 거울 앞에 멈춰 서게 됐다.

그라피티의 작성자가 거울 앞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됐다. 오면서 봤던 단순한 창작과 달리, 이번의 그라피티에는 여러 번 덧칠한 흔적이 있었고, 한 겹의 그라피티 위에는 또 다른 그라피티가 있었다.

제일 아래 측의 그라피티는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제일 위에 있는 그라피티 또한 뒤섞여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건 유일하게 "미완성"된 작품이었다.

그녀는 그라피티에 손을 올렸다. 마치 그것의 본모습을 조금씩 복구시키려 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이어서 그것을 그리려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옅은 금빛을 띤 눈동자로 그라피티를 평온하게 응시했다.

분석 시도.

경고. 감정 시뮬레이션 모듈 오류 발생.

분석 시도.

경고. 감정 시뮬레이션 모듈 오류 발생.

분석 시도.

이 익숙한 화면을 보며 하카마는 <//MPA-01> 처음으로 "배척"이란 걸 느끼게 됐고, 그녀는 다시 감정 시뮬레이션 모듈을 완전히 차단하게 됐다.

눈빛이 생기를 잃은 뒤에도 이상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고, 데이터베이스에서 대비 분석을 진행할수록 무효 중복 데이터가 늘어났다.

그녀는 휩쓸리는 나뭇잎처럼, 무질서한 데이터의 폭풍 속에서 흔들렸다.

데이터 분석 기능 오프라인.

그동안 생존의 필수로 여겼던 분석 기능을 종료했다.

논리 알고리즘 기능 오프라인.

더 이상 고정된 알고리즘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러한 "이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인격 시뮬레이션 인터페이스 로딩 종료.

모든 정의가 사라진다면, 하카마에게 <//MPA-01> 무엇이 <//누가> 남게 되는 걸까?

옅은 금빛 눈동자가 점차 어두운 회색으로 물들더니 더 이상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졌다.

그녀가 부딪히며 쓰러지자 먼지가 흩날렸고 거울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 위에 그려진 그라피티도 면치 못하고 조각으로 돼버렸다.

"이상 데이터"가 "수면의 봉쇄"를 뚫고, 하카마는 <//MPA-01> 처음으로 호수의 수면을 뚫고 고개를 내밀었다.

여성용 모자가 머리에서 바닥으로 떨어졌고 모자에 의해 가려졌던 전자두뇌가 드러났다.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야!

??

큰일이에요. 병사가 왔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거운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저... 저 여자는?!

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저를 구해줬거든요.

??

병사님, 그녀는 이미 정지된 거나 다름없어서 위험하지 않아요. 이거 보세요.

……

일시적인 침묵이 흘렀다. 마치 심판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왜? 그쪽에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 이상 없어.

파손된 기체 위에 천 조각 하나가 떨어졌다.

이건 지하실 열쇠야. 그녀를 지하실에 안치하도록 해.

정... 정말 그래도 될까요?

그리고 방법을 써서 그녀의 머리 부위를 좀 감춰.

어떤 물건이 머리에 씌워졌다.

모자... 라던가...

멀지 않은 곳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침식체!

너희들은 어서 이곳을 떠나!

발소리가 멀어지자, 하카마는 <//MPA-01> 비로소 이 목소리의 주인을 떠올렸다. 얼굴 절반을 잃은 그 병사였다.

하카마는 <//MPA-01> 자신이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 어느 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 모자는 인간의 선의가 담긴 선물이었다. 그 어떤 계산도, 외부 명령도 없이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카마는 <//MPA-01> 흩어진 그라피티의 조각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고 새로운 이해가 생겼다.

그녀는 더 이상의 분석도, 졸렬한 모방도 없이 그림에서 기쁨, 기대, 의혹 그리고 막막함을 "경험" 하려고 시도했다.

세상만사에 "최고의 정답" 만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고 "의문"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의 표식이었다.

각기 다른 "의문"은 여러 갈래의 길을 구성시켰고, 모든 길 위에는 또 색다른 "선택"이 있었다.

그 순간, 논리 알고리즘과 데이터 분석은 하카마를 <//MPA-01> 더 이상 지배 <//제한>하지 않게 되었고, 엄연히 그녀의 도구가 됐다.

하카마는 <//MPA-01> 자신만의 선택을 했다.

하카마는 굴러떨어진 여성 모자를 주워 들어 다시 머리에 썼다.

그녀는 다시 "선현"의 미완성 그라피티를 바라봤다, 마치 몇 년 전처럼... 하지만 과거의 그녀에게는 응답해 줄 손길은 없었다.

하카마는 옆에 버려져 있는 스프레이를 주워 그라피티에 몇 획을 추가했다.

이것은 그녀만의 미완성 벽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