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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판의 게임이 끝났다. 슐츠는 예전처럼 "샌드박스"의 구석에 쓸모없는 데이터를 심어 타티아나가 세상의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방해했다.
이번 게임도 마치 완벽하게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매우 안정적이고, 예상 밖의 상황은 없었다.
굳이 부족점을 말하자면, 슐츠를 조금 불안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그의 손에서 탈출한 그 의식<//특별 샘플>이었다, 운 좋게도 빠져나갔던 그 샘플 때문에 슐츠는 왠지 목이 조여오는 것처럼 불안했다.
그 의식은 외부의 정보<//투영자>와 접촉하며 불필요한 각성 사고가 생겼고, 원래는 게임이 끝나면 삭제하고 회수해야 할 존재였다…
쳇, 괜찮아. 그녀는 이 샌드박스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야.
내가 샌드박스의 통제자로 있는 한, 무수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각성 기계들의 결말을<//정해진 미래> 찾아낼 수 있어.
슐츠는 전체 시스템의 혼란스러운 데이터 흐름을 정리한 후, 정지된 또 다른 "타티아나" <//다른 샘플> 옆으로 다가갔다.
너도 실패했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버려진 정보가 다시 천천히 버퍼에 흘러들어가며 중앙 명령에 따라 분해되고, 재조합되어 새로운 장면 정보로 컴파일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모래 도시"가 이 전자 바다 위에 다시 태어날 것이다.
슐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눈앞의 장면을 바라보았다. 이는 그의 권능과 지배 욕망이 동시에 절정에 이르는 순간이었다.
날 위해... 멸망하고 다시 태어나라!
맞아... 나는 이곳의 절대적인 지배자라고.
이 샌드박스만 있다면, 계속 반복할 기회만 있다면...
모든 것이 내 손안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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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선 모양으로 끝없이 맴돌던 양자 소용돌이 속에서 화려한 오로라처럼 찬란한 빛이 솟구쳐 올랐다.
유성처럼, 하늘의 궤도처럼
순간, 그 빛은 심연의 바닥을 뚫고 나오더니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멀리서 자유롭게 하늘로 향해 날아올라, 결국 하늘의 끝에 닿을듯했다가...
결국엔 다시 '모래 도시' 중앙에 내려앉았다.
...
눈부신 빛이 사라지자, 키가 크고 우아해 보이는 그림자가 슐츠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따뜻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지만, 표정은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넌 특별 데이터 샘플인가? 아니면 시뮬레이션 데이터?
슐츠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극도로 난감한 기색이 드러났다.
그럴 리 없어! 난 샌드박스에 네 구조체 형태 데이터를 입력한 적이 없다고! 너한테 그런 기억이 있을 리가 없단 말이야!
그 끔찍한 외부자가 끌어들인 데이터인가? 아니… 결국 처음부터 이 탈출한 특수 샘플을 무시해서는 안 됐어!
지금 당장 롤백하야 돼! 지금 당장 롤백! 지금 당장 롤백하라고!!!
네가 뭔데?
타티아나가 눈을 떴다. 그녀의 차가운 파란 눈동자 속에는 얼어붙은 냉기가 서려 있었다.
고작 샌드박스 시스템 안에 잠시 기생했다고, 네 진짜 모습을 잊어버린 거야?
네가 시뮬레이션 구역에서 여기저기 숨어다니며, 간신히 살아온 그 날들을 내가 다시 생각나게 해줄까?
발꿈치에 달라붙은, 악취 나는 벌레처럼 비참하고 혐오스러운 처지였던 그 시절은 기억하나?
그녀가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갈 때마다, 샌드박스 모델 안으로 흘러 들어간 연산력은 점차 청색 빛이 되어 다시 그녀에게 돌아왔다.
그녀<//타티아나>의 힘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벽돌 하나, 모래 한 뭉치... 그녀는 신소피아를 조금씩 세워갔고, 그 모든 건 그녀의 기억에서 분리된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중요한 기억을 훔쳐간 이 기생충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모든 걸 청산할 시간이야, 슐츠.
얼굴이 일그러진 기계체가 같은 수법을 반복하며, 가상 형체로 변해 도망치려 했지만, 그의 몸은 곧 하늘에서 떨어진 푸른빛 창에 의해 관통되었고, 찰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고 땅에 쓰러졌다.
으... 윽!
넌 내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어.
어떻게 죽고 싶은지, 네가 선택해.
여기 남아서 모래의 도시에 짓눌려서 부서지거나, 쫓겨나서 다시 집 없는 개처럼 살아남을 곳을 찾아야 할지...
타티아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녀의 얼굴엔 어느새 노골적인 혐오감이 역력했다.
아니, 됐어. 너 따위 기생충 같은 건 남겨둘 가치조차 없지.
그녀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고, 산력으로 의해 응축된 총검이 그녀의 손에 나타났다.
넌 여기서 죽어버리는 게 더 어울려.
아니, 아니야, 안 돼, 절대 허락할 수 없어!
절대 용납 못해,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 난 여기서 끝날 수 없다고!!!
궁지에 몰린 슐츠는 미쳐버린 듯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는 제어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모아 반항의 광선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미약한 빛줄기들은 타티아나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슐츠가 아무리 발악해도, 타티아나의 몸에는 단지 몇 개의 얕은 긁힌 자국만 남을 뿐이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비틀며 몸을 밖으로 돌리려 했고, 자신을 관통할 듯한 총기를 피하려 애썼다.
이젠 다 끝났어.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금속과 돌이 떨어지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통제자 신분 전환 프로토콜 개시...]
[샌드박스 시스템 통제자 신분 전환 완료]
[확인 완료. 통제자를 타티아나로 전환하였습니다.<//Tatyana>]
타티아나는 천천히 총검을 거두었다. 이곳에는 더 이상 "슐츠"나 "기생자"라고 정의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통제자"로서, 그녀는 방금 "슐츠"라는 데이터 의식을 샌드박스 내에서 실질적으로 제거했다.
샌드박스 시스템이 이렇게 조용해진 것도 처음이었다. 고요함이 너무 깊어서 타티아나는 저절로 앉아 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기억을 되찾고, 권능이 회복되면서 드디어 자신이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고, 어째서 계속 이 게임에 참여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외부" 세계로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자신은 기나긴 잠을 자면서 어떤 자태로 변했을지 확인이 필요하다.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을 여러 번 이끌어 주었던 그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러나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휴...
그녀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럼 이번엔 내가 널 찾으러 갈게.
너한테 그렇게 큰 신세를 졌으니, 직접 찾아뵙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지.
눈부신 빛의 흐름이 다시 그녀의 주위로 모여들었고, 서서히 도시의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그녀의 발아래엔 어느새 청록색 빛을 띤 길이 펼쳐졌다.
내가 널 찾기 전까지, 조금만 기다려 줘.
그녀는 멀리 있는 하늘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나의... 투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