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다차원 연출 / 극지의 서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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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잡는 자

우우웅~

깊은 심해의 빛깔을 닮은 화물선이 저음의 뱃고동을 울리며 나타났다. 하얀 안개를 가르며 얼음바다를 건너오는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천산만해를 넘어온 계절풍이 대륙의 숨결을 담아, 은빛으로 빛나는 극지의 품에 안겼다.

대륙의 온기가 서린 물자들이 화물선 가득 실려 있었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건너온 이 귀한 짐들은 극지인들의 희망이자, 항구도시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생명력이었다.

화물선의 접안을 알리는 쇠 종이 울리자, 그 소리는 도시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거리의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가운데, 사람들은 물결처럼 해안가로 모여들었다.

새로 들어올 보물 같은 물건들을 기다리는 상인들, 호기심 어린 눈빛의 행인들, 들뜬 발걸음으로 달려온 아이들까지, 부둣가는 기대에 찬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자, 그만 구경하고 돌아가. 내일이면 가게 진열대에서 다 볼 수 있을 거야!

정말 궁금하면 내일 일찍 일어나서 줄 서. 좋은 물건들 몰래 빼돌리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세르게이가 만류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기대감은 커져만 갔고, 부둣가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정말이에요? 세르게이 아저씨, 제가 먹고 싶었던 "귤"도 먹을 수 있나요?

아, 그리고... 지난번에 다이아나가 말해준 "사과"도 먹어보고 싶어요.

세르게이 아저씨, 저도 먹고 싶어요!

아이들의 소란에 머리가 지끈거린 세르게이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다들 조용히 해. 내가 약속하마. 그 과일들이 오면 너희들 몫은 꼭 챙겨둘 테니까.

자, 꼬맹이들아, 이제 모두 위로 올라가. 곧 화물선이 들어와서 짐을 옮기기 시작할 거야. 우리가 일하는 데 방해되지 않게 조심해.

알았어요! 세르게이 아저씨는 약속 꼭 지키실 거죠?

조금 전까지 재잘재잘 떠들던 아이들은 기대하던 "특권"을 얻고서 키득거리며 달아났다.

아이들을 가장 힘들어하던 세르게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마를 찌푸렸다.

하아... 이 꼬맹이들 전부 나한테 맡겨 놓고, 혼자서 성 밖으로 도망가다니...

안토노프, 넌 정말...

한편, 차가운 바람이 신소피아시의 상공을 지나 황량한 평원을 건너, 도시에서 수천 미터 떨어진 설산의 숲에 다다랐다.

타티아나와 숲을 지키는 자들은 북극 항로 연합과의 회담을 마쳤다. 무역 항로 구축을 논의한 그들은 이제 도시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슈테센과의 협상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엠베리아 사건"의 수습이 마무리된 이후, 그들은 이런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신소피아시에 기술 지원과 재정 보조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협상 내용에는 향후 신소피아시에 연구소를 설립하여, 이곳을 극지의 최전선 기지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곳은 장차 극지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며, 동시에 침식체에 대항하는 중요한 방어 거점이 될 것이었다.

국경 협회의 안토노프는 북극 항로 연합에 남아 슈테센과의 후속 협력을 이어가기로 했다. 타티아나와 숲을 지키는 자들은 먼저 도시로 돌아가 향후 계획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신소피아시 근처에는 이제 더 이상 떠돌아다녀야 하는 난민들이 없겠지.

우리가 방어 기지로서 책임을 다하고 정기적으로 침식체의 위협을 막아낸다면, 그들도 근처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거야.

이곳을 다시 "낙원"으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비록 이 협정들을 이제 막 체결했지만, 문득 깨달았어.

로제타, 우리의 임무와 책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하네.

앞서가던 로제타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으며 응답했다.

하지만 넌 분명 해낼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처음 배에서 내렸을 때부터, 넌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안 된다"고 한 적이 없잖아?

힘내, "부장", 우리 모두 널 믿고 있어.

뒤따라오던 다이아나도 미소 지으며 대화에 합류했다.

하, 하췌! 어떻게 다이아나까지...

찬바람에 코가 시려진 타티아나는 다이아나와 로제타의 장난스러운 놀림에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오늘의 바람은 평소와는 달랐다. 계속해서 한 방향으로만 고집스럽게 불어왔다. 마치 이 바람에 의지가 있는 것처럼, 그녀에게 어떤 곳을 보라고 끊임없이 재촉하는 것 같았다.

응? 이상하다, 저쪽에 뭐가 있지?

바람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거대한 건물이 타티아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도시 외곽의 대로 근처에서 이런 건물을 본 적이 없었다.

타티아나의 시선을 따라 일행도 함께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이 건물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그것은 거대한 고래의 뼈였다. 혹한의 눈보라가 남긴 두꺼운 눈 아래 묻혀 있던 것이, 이른 봄의 얼음과 눈이 녹으면서 그 거대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멀리서는 은빛 건물로 착각할 만했으나, 앞에 서자 형언할 수 없는 위압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기둥처럼 솟은 뼈대는 태고의 거인이 남긴 잔해와도 같았고, 그 존재만으로도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했다.

오래전에 좌초된 고래네.

뼈의 변색 정도로 봤을 때, 퍼니싱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여기 좌초된 것 같아.

그래, 그 시절엔 바다에 진짜 고래들이 흔하디흔했지.

얼음바다를 헤엄치는 기계 외뿔고래들이 진짜 고래를 기리기 위해 만든 "모조품"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와.

이렇게 마주하니, 역시 진짜 고래가 훨씬 거대하구나...

숲을 지키는 자들은 숙연히 서로의 감상을 나누었다. 수많은 곳을 다녀본 이들에게도 이런 광경은 흔치 않은 장관으로 다가왔다.

그들 대부분은 퍼니싱 폭발 이후에 태어나, 역사책 속에서만 보았던 이런 거대한 생명체를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고래는 이미 멸종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오염되지 않은 깊은 바다로 떠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왔다.

그 어떤 추측도 사실로 확인된 적은 없었다. 다만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는 흔적들만이 이 거대한 포유류가 한때 지구라는 푸른 별에 살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저기, 미안한데, 잠깐 시간을 줄 수 있을까?

극지인의 선조들이 전해온 풍습대로, 이 수호신께 "참배"를 올리고 싶어.

숲을 지키는 자들은 처음엔 그 뜻밖의 제안에 놀랐으나, 곧 그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미, 미안해. 너의 신앙을 모독할 의도는 없었어...

괜찮아. 난 이걸 모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타티아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가 눈과 고래 뼈가 쌓인 작은 언덕을 바라보았다.

퍼니싱 대폭발 이후에 태어난 그녀였기에 이런 광경은 생소했다. 하지만 이것이 고래 뼈임을 깨달은 순간, 그녀는 자신과 이 유적 사이에 신비로운 인연을 느꼈다.

이런 이유 모를 친근감은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에게서 배운 가르침 때문일 수도, 혹은 그저 자신의 순수한 감정일 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유적으로부터 분명히 "특별한 기운"을 감지했다.

고귀하고도 친근한 수호신이시여, 저희를 도와주시고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타티아나는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사냥총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두 팔을 활짝 펼치자, 설원의 차가운 바람이 그녀를 감쌌고, 어린 시절 배운 기도문이 자연스레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풍성한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번영하는 대지를 저희와 함께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 고결한 가르침과 신성한 약속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변하여, 수호신께서 이곳을 떠나 계시더라도...

저희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이 땅이 베푼 모든 것을 소중히 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알고 있습니다.

……

기도가 끝난 뒤에도 일행은 한동안 숙연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타티아나가 읊는 기도문은 맑은 목소리로 울려 퍼졌고, 순수하면서도 신비로운 위엄이 느껴졌다. 그 소리는 마치 그들을 먼 옛 역사의 품으로 데려가는 듯했다.

먼 옛날, 인류는 고래의 인도를 받아 항해를 나갔고, 고래의 보호 아래 돌아왔다.

그러한 평온한 삶은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그저 꿈같은 "낙원"이었다.

"지금"은 이러한 신앙이 자취를 감추었고, 기계 외뿔고래는 파괴와 재앙의 상징으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소수의 극지 원주민은 이 고대의 전설을 순수한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 전설을 떠올릴 때면, 가족과 함께했던 평온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듯했기 때문이다.

됐어.

기도를 마친 타티아나는 가볍게 손을 모으고, 숲을 지키는 자들을 향해 미소 띤 인사를 건넸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어. 그냥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대로 따라 하는 거야.

어쩌면 이건 그저 스스로를 위로하는 거일 뿐일지도 몰라.

그녀도 알고 있었다. 현대 과학으로는 고래가 자발적으로 인간을 돕는 것이 불가능하며, 예전 극지인들이 활용한 것은 단지 고래의 해류 파악 습성이었다는 사실을.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 극지인들은 물고기들이 해류를 따라 이동하는 현상조차 "수호신의 은혜"로 여겼다. 그렇게 고래를 둘러싼 수많은 전설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렇게 기도를 마치고 나니, 먼저 떠난 가족들과 조금 더 가까워진 듯했다.

그래서 그녀는 힘이 되살아나는 기쁨을 느꼈다.

앞으로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맞설 준비가 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 이젠 돌아가자!

타티아나는 사냥총을 어깨에 메고 신소피아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늘 새 화물선이 들어온다는데, 세르게이와 항구 사람들은 지금쯤 정신없이 바쁠 거야. 서둘러 돌아가서 도와줘야겠어.

맞아, 요즘 이반이 자꾸 "사과"가 먹고 싶다고 조르더니, 이번엔 그 바람을 이뤄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숲을 지키는 자들도 짐을 꾸려 메고, 눈길에 난 발자국을 따라 웃고 떠들며 큰길로 돌아왔다.

화물선이 들어올 때마다 도시가 정말 활기가 넘치더라니까.

로제타는 화물선이 들어올 때면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떠올리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하이고, 이제 나이가 있어서 그 젊은이들과 경쟁하기는 무리네요.

에이, 보드카 마실 때만큼은 아직도 기운이 넘치면서...

일행들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대화를 듣고 있자니, 타티아나의 입가에도 따뜻한 미소가 퍼져갔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남남이었던 이들이, 이제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동료가 되어 있었다.

여정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누구도 지금과 같은 일들이 펼쳐질 거라 생각지 못했다.

차가운 얼음바다의 절망에서 구원해 준 은인을 떠올리자, 가슴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사함이 울컥 차올랐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전해 들은 지휘관의 이야기들은 오히려 그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키워놓았다.

지휘관의 존재가 없었다면 키아란타를 벗어날 길도, 이 도시의 오늘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 지휘관은 결국 또 다른 전장을 향해 떠나갔다.

가슴 속 깊은 "감사함"을 지휘관께 전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

타... 타티아나...

산맥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실려 왔다. 타티아나는 날카로운 직감으로 바람 불어오는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돌아본 곳에는 텅 빈 허공뿐이었다.

그 목소리가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기에, 단순한 착각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타티아나는 바람이 스치는 그 찰나를 정확히 포착했다. 그것은 결코 환상이 아니었다.

타티아나

이게... 누구의 목소리지?

온기가 담긴 그 목소리에는 오래전부터 알아왔던 듯한 친숙함이 깃들어 있었다.

영원히 기억 속에 간직해야 할 소중한 목소리였다.

로제타

무슨 일이지? 하산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긴장을 늦추지 마.

조금 떨어져 있던 로제타가 타티아나를 향해 외쳤다.

타티아나

방금...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

너희들도 들었어?

서로의 눈빛을 확인한 일행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이아나

설마 진짜로 산신령 소리를 들은 거야?

농담이란 것을 알아챈 일행들은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 이런 말을 꺼내면 놀림거리가 될까 봐 망설였는데...

농담은 여기까지 하자. 서둘러 가야겠어. 배가 너무 고파서 한시가 급해.

조금 전 아침에 식빵 세 조각이나 해치웠으면서, 벌써 배고프다는 거야?

지금은 해 질 무렵인 데다가, 나를 무슨 대식가 취급하는 거야?

여정의 끝은 아직 멀기만 했다. 그들 앞에는 더 많은 과제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나 다음 걸음을 내딛기 전, 잠시나마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진정한 "미래"가 펼쳐질 때, 그때는 분명 그 지휘관과의 재회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녀의 마음속에 깊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들은 늘 한 방향을 바라보며 걸어왔음을.

"이상의 도시"가 손에 닿을 듯 가까워져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다. "투영자"인 네가 내 굴레 안에서도 이 차원을 흔들 수 있으리라고는.

네 속에 잠든 진정한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오해하진 말게. 이는 결코 비난이 아니네. 관찰자로서 내가 가장 경이롭게 바라보는 것은 바로 너희들이 품은 무한한 가능성이지. 그녀에게도 이는 운명적인 전환점이 될 테니...

이런 예상 밖의 전개는 앞으로 펼쳐질 운명의 실타래가 더욱 궁금해지게 만드는군.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왔다. 깊은 눈동자에는 무한한 우주가 깃들어 있었고, 그 안에서 신비로운 빛이 춤추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압박이 가슴을 옥죄었고, 불길 같은 기운이 육체를 관통하여 영혼의 심연까지 스며들었다.

차원의 경계를 넘어선 압도적인 힘이 당신 안에 자리 잡았다.

그 심오한 힘을 온전히 품지는 못했으나, 이제 그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눈앞에 교차하는 무수한 운명의 흐름을 한층 더 명징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운명의 실은 그 끝에서 희미한 광채와 만나고 있었다.

희미하게 떨리는 생명의 빛은 당신과 하나가 되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

"투영자"여, 다시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