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이곳은 함정입니다!
좁은 통로에선 바위들이 연이어 굴러떨어졌고, 돌아갈 길은 이미 돌무더기와 눈더미로 막혀버렸다. 보루 깊숙한 곳에서는 기계체 초병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후퇴할 길도, 나아갈 길도 모두 막혀 있었다.
젠장... 역시 출발하기 전에 준비할 시간을 더 가져야 했어.
신소피아시는 빠르게 확장되는 중이었다. 도시 경계의 방어 시설을 신속하게 연결하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개의 구시대 보루를 수복해야만 했다.
이런 공격적인 방침은 단기적으로 도시 내 주거 공간을 늘려 임시 주둔지에 머무는 주민들에게 정식 거처를 제공했지만, 너무 성급하게 진행하다 보니 그에 따른 위험도 뒤따랐다.
모두 뒤로 물러나서 전력을 보존해. 난 이미 도시에 지원을 요청했어.
이 기계체 초병들과 정면으로 싸우지 마. 우리의 전력을 소진하는 것이 이 건물 설계자의 진짜 의도일 거야.
그리고 이 보루를 잘 모르니 함부로 움직이지 마. 다른 함정들이 작동할 수 있어.
이제는 아마도 너무 늦었을 겁니다.
노인이 말하며 흔들리는 천장을 가리켰다. 낡은 건물은 기계체 초병들의 공격으로 계속해서 뒤틀리며 흔들렸다.
천장 상부에 소형 폭탄이 설치되어 있었다. 카운트다운 소리만 들려올 뿐, 폭발 시점은 알 수 없었다.
붉은 경고등과 급박한 전자음이 함께 파멸을 예고하는 교향곡을 만들어냈다. 10분 후일 수도, 1초 후일 수도 있었다. 이곳은 곧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기계체 초병들과 함께 모두를 매장하는 건 구식 방법이지만, 효과적인 방어 시스템이네요.
그렇다면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한 사람이 초병들의 주의를 끌어내고, 이 함정을 이용해 그들을 한꺼번에 매장하는 겁니다.
그래야만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안 돼!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그런 방법은...
발레리의 의도를 간파한 타티아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즉시 제지했다.
석실이 무너질 때 밖으로 후퇴하면 돼. 숲을 지키는 자들이 지원해 줄 테니, 떨어지는 돌만 피할 수 있다면...
건물이 무너질 때 탈출하자는 말씀인가요? 그 계획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아실 텐데요.
백발의 노인은 몸을 돌리더니 주름진 손으로 사냥총의 방아쇠를 단호하게 당겼다.
누군가는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모두의 탈출을 장담하실 수 있나요?
……
그렇다면 차라리 저희가 먼저 폭발을 유도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낫겠습니다.
타티아나는 반박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나도 이런 선택을 원치 않지만, 타티아나, 발레리 말이 맞는 것 같아.
우리만 붕괴를 피한다고 해도 나머지 협회원들은 위험에 처할 거야.
이 함정을 역이용해서 폭발을 유도하고 미리 피하는 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아.
다이아나는 기계체 초병의 가슴에 꽂힌 창을 한 손으로 뽑아내고, 몸을 돌려 바닥의 전자두뇌를 밟아 부수면서 전투 중에도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망설일 시간이 없어. 이대로 가다간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몰라.
타티아나, 우리는 네가 내릴 결정을 믿어. 지금 당장 선택해!
... ▓▓▓▓▓▓▓ 타티아나 ▓▓▓, 선택해.
▓▓▓ 이제는 ▓▓▓▓▓▓▓ 모두를 ▓▓▓▓▓▓▓할 수 없어. ▓▓▓해야만 해.
기억의 칼날이 살을 도려내듯 아픈 기억들이 몰려왔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왜 자신은 여전히 같은 곤경에 빠져 누군가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걸까?
가장 피하고 싶었던 게 바로 이런 결말인데!
발레리... 미안해... 내가...
타티아나가 고개를 힘겹게 들어 혼란스러운 생각 속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할 때, 발레리는 이미 그녀 앞을 막아선 채 기계체 초병들을 향해 걸어 나갔다.
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곳을 마지막 자리로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도 많은 선배가 저를 위해 이렇게 나서주셨습니다. 저는 그저 그분들이 해주신 일을 되풀이했을 뿐입니다.
신소피아시는 여러분을 필요로 합니다. 그 "이상"도 여러분이 이뤄주길 기다리고 있죠. 여러분의 여정은 이곳에서 끝나선 안 됩니다.
그는 젊은 시절 수없이 침식체들을 향해 총을 쏘았던 것처럼, 흔들림 없이 다시 한번 총을 들어 올려 천장에서 끊임없이 깜빡이는 붉은 빛을 겨냥했다.
모두 뒤로 물러나세요!
비명과 찢어지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발레리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 이후의 일은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조차 정확히 기억해 내지 못했다.
폭발음이 울리며 돌덩이들이 폭우처럼 쏟아졌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혼돈의 순간, 한 숲을 지키는 자가 타티아나를 자신의 몸으로 감싸 보호해 준 덕분에 그녀는 이 재앙에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녀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 혼란 속에서도 출구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옮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지만, 그녀는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부러진 뼈가 아파졌지만, 그녀는 희미하게 비치는 빛을 향해 한 걸음씩 기어갔다.
피범벅이 된 상처와 부러진 뼈가 바닥에 끌리며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와 바닥에 짙은 붉은 자국을 그려냈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발레리가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모두의 생명을 그녀에게 맡겼기에, 그녀는 발레리의 마지막 부탁을 반드시 이루어내야만 했다.
그 빛에 점점 가까워지자, 멀리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 누구 있나요!
소리가 들리면 대답해 주세요!
폐와 목구멍이 피로 가득 차올랐다. 살려달라 외치려 했지만, 입에서는 거품이 터지듯 희미한 소리만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바닥의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어 손아귀에 힘껏 쥐고서 벽을 향해 내리쳤다.
탁, 탁탁...
탁...
탁!
……
이봐요, 여기 누가 있어요!
빨리 이쪽으로 와요!!
몇 시간이 지나고, 구조대가 도착했다. 그들은 층층이 쌓인 돌무더기 아래에서 실종된 선발대를 찾아냈다.
구조대의 집계 결과, 갇혀 있던 대원 중 한 명이 숨진 것을 제외하고는 추가 사상자는 없었다.
구조대가 매몰된 사람들을 발견했을 때, 금발의 여성은 이미 산산조각 난 돌을 여전히 움켜쥐고 있었다. 손바닥은 찢어져 피투성이가 된 채였지만, 그녀는 기절한 상태에서조차 돌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이건 여정의 끝이 아니며, 진정한 결말은 더더욱 아니야.
이 이야기는 더 나은 결말을 맞이해야만 해.
투영자여, 계속 전진하라. 네 불꽃 같은 열정을 이 세상에 보여줘.
이 절망의 심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의지만이 모든 역경을 이겨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