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늘이 선택한 자는 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영혼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동화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는 건 어떨까?
이건 모두가 잘 아는 동화이다. 앨리스와 토끼 굴에 관한 이야기...
앨리스는 언니의 어깨에 기대어 나무 아래 앉아있었고, 더위 때문에 몽롱한 생태였다.
토끼 선생님이 "오, 이런, 오, 이런, 너무 늦었어."라고 중얼거렸다.
나한테 하는 말일까? 토끼가 말을 한 것일까? 앨리스는 궁금한 듯 토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토끼 선생님은 대답하지 않고 숲속으로 달려갔다.
앨리스는 토끼를 따라 작은 나무 아래 깊은 우물에 도착했는데, 구멍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상한 세계 같은 건 아니야, 바보야. 진홍빛 눈동자가 말했다.
하늘이 선택한 자... 하늘이 선택한 자? 이럴 때, 멍하니 있으면 어떡해!
문지기가 그렇게 강하다면, 역시 이 문이 탈출구인가 봐.
에에, 비밀 열쇠를 홈에 넣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알았어. 그럼,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
제타비가 비밀 열쇠를 문의 홈에 넣자, 문 안쪽에서 기계 장치들이 부딪치고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하늘이 선택한 자, 문이 열렸어!
그런데 중추에 들어가면 정말 탈출할 수 있을까?
들어갈 거야?
그럼, 내가 셋 셀 테니까, 같이 문을 밀자. 셋, 둘, 하나...
앨리스, 어디 갔니?
언니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옆에 있던 앨리스가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분명 또 강기슭에 가서 강아지풀을 따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말 속 썩인다고 생각했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들려? 하늘이 선택한 자?
어둠이 뒤덮인 구석에서 일그러진 그림자가 촛불처럼 흔들거렸고, 기괴한 환영들이 번갈아 나타났다.
그러자 시야 끝에서 수많은 적이 나타났다. 냉소를 지으며, 통곡하고, 으르렁거리며, 광기에 빠진 그들은 제사를, 성대한 축제를, 에덴의 붕괴와 천사의 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이 선택한 자, 여기가 중추 아니야?
여기가 중추라면, 왜... 왜 이렇게 많은 괴물들이 있는 거야!
하늘이 선택한 자는 제타비의 손을 잡고 뒤에 있는 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문 앞에 거의 도착했을 때 "문"이 사라져 버렸다.
몰려오는 적들을 향해 본능적으로 무기를 들어 올렸다.
간신히 포위망에서 혈로를 뚫었을 때, 갑자기 무언가가 하늘이 선택한 자의 팔을 잡아챘다.
하늘이 선택한 자, 조심해!
해가 저물 때까지도 앨리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언니는 강기슭을 따라 수색하며 앨리스의 이름을 계속 외쳤다.
앨리스, 앨리스가 혹시 강물에 빠진 것일까?
아니면 길을 잃었을까? 동쪽 숲으로 가봐야겠다.
어깨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뼈나 관절이 으스러진 것 같았다.
뒤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적이 있었고, 그 거대한 몸집이 빛을 가로막고 있었다.
!!!
오른손의 감각이 사라지더니 무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
바닥에 붉은 경고 원이 나타나자, 하늘에서 떨어지는 레이저가 바로 하늘이 선택한 자의 앞에 내리꽂혔다.
위기일발의 순간, 제타비가 하늘이 선택한 자에게 몸을 날렸다. 그렇게 함께 구르며 치명적인 공격을 피했다.
!!!
괴물이 계속 다가오는데, 하늘이 선택한 자의 무기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하늘이 선택한 자! 널 절대 다치게 하지 않아!
제타비가 작은 몸으로 하늘이 선택한 자 앞을 막아섰다. 그때 제타비가 쥐고 있던 비밀 열쇠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 빛은 뭐지?
폭력과 계략으로 가득 찬 밀림.
토끼의 사체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이것이 사기꾼의 최후였다.
풀숲의 그림자, 하늘색과 흰색이 섞인 치마와 부드러운 금발.
앨리스는 피로 물든 손을 떨며, 붉은 나뭇가지 너머로 언니와 마주 보고 있었다.
제타비가 쥐고 있던 비밀 열쇠가 순식간에 방아쇠로 변했다.
바로 이어서 총의 형태로 변형되었는데, 그것은 총 같기도, 포 같기도 한 무기였다.
손끝을 통해 에너지가 끊임없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와. 총이 내게 에너지를 보내주는 거야?
해볼 수밖에 없네!
제타비가 방아쇠를 당기자 붉은 광선이 눈앞의 거대한 괴물을 관통했다.
으윽!
괴물이 쓰러지고 난 뒤, 잠시나마 숨돌릴 틈이 생겼다.
이 총... 내 무기야?
구멍 저편에서... 그것들이 아주 많이 오고 있었다.
괜찮아. 앨리스. 꿈속에만 있으면 돼. 깨지만 않으면...
이곳은 영원한 낙원이 될 거야.
행렬이 제타비에게 응답했다. 그리고 이건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어.
내 분신에서 초월의 비밀 열쇠를 얻어낸 건가? 정말 예상 밖이군.
익숙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여자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차분하고, 매혹적이었으며, 특별한 감정은 실려있지 않았다.
여전히 전장 한쪽에 우뚝 서 있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후드를 쓴 고위 권한이 멀리서 하늘이 선택한 자와 제타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반쯤 가려진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새로운 비밀 열쇠를 얻으면 중추의 문을 열 수 있다는 소문을 어디선가 들은 모양이군.
시스템 중추에 들어가서, 주 권한을 장악한 다음, 이 순환 게임에서 벗어나려 한 건가? 그런 가능성을 마음속으로 기대하면서, 정신 나간 파리처럼 무모하게 이곳으로 뛰어들었군.
인간이란 단순한 생물도 희망만 보이면, 비정상적으로 고집스러워지더군.
필사적으로 의지할 것을 찾아 헤매지. 좋든 나쁘든 말이야. 마치 급류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것처럼...
그리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 지푸라기가 거대한 검은 잎사귀였다는 걸 알고 절망에 빠지지.
이게 "희망"의 본질이다. 희망은 인간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지. 실현되기 전엔 실체가 없고, 실현되는 순간 현실이 되어버리며, 잃는 순간 치명적인 독이 되어버리지.
자기기만으로 내일을 물들이려 한다면, 그 내일이 의미가 있을까?
내가 너희를 위해 만든 이 "중추"라는 함정도, 한때는 너희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겠지.
함정이라고? 여기가 중추가 아니란 말이야?
분명 우릴 속이려는 거야. 우리를 여기에 영원히 가두려고 하는 거잖아. 나쁜 여자, 누가 네 말을 믿겠어?
하지만 생각해 본 적 없어? 어쩌면 내가 그 지푸라기의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야.
어쩌면 내가 중추일 수도 있지 않을까?
뭐라고! 네가...
네가 정말 중추라면, 왜 우리를 끝없는 순환 속에 가둔 거지?
이것도 행렬의 뜻이라고 말할 건가? 아니면 네가 이미 행렬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
Alpha의 제타비는 아직 어린아이야. 혼자서는 전투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지.
인제 그만 놓아줘. 하늘이 선택한 자. 이 아이가 계속 너에게만 의지하다가는 진화와 순환을 빠르게 할 수 없을 거다.
방금 제타비가 얻은 무기도, 너를 구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기에 가능했던 거다. 그 순간의 전투 의지를 행렬이 인정한 것이지. 하지만 욥인 넌, 너의 의무 이상의 일을 하고 있어.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아. 가능하다면 말이야.
하지만 엄격한 선별 과정 없이는 시뮬레이션 인격이 원체를 초월할 수 없어. 기적이 싹트려고 할 때 사라지고 말 거야.
고위 권한이 팔을 살짝 들어 올리자, 하늘이 선택한 자와 제타비 주위에 수많은 괴물이 나타났다. 그리고 계속해서 더 많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게 바로 시련이야.
!!!
하늘이 선택한 자와 제타비는 등을 맞대고 서서 각자의 무기를 들어 올렸다.
괴물을 구성하는 코드는 얼마든지 복사할 수 있다. 그렇다는 건 원하는 만큼 만들 수 있다는 거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적절한 때가 오면 올바른 선택을 하리라 믿을게.
압도적인 수의 적이 쫓아오자, 하늘이 선택한 자와 제타비는 어쩔 수 없이 후퇴하면서 전투를 이어갔다.
하늘이 선택한 자, 너와 함께 싸울 수 있어서... 제타비는 정말 행복했어.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하더라도, 후회는 없어.
하늘이 선택한 자는 필사적으로 적의 화력을 유인하며 제타비가 도망칠 기회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제타비의 무기에서 광선이 계속해서 발사되었다. 처음 전투할 때는 비틀거리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적들 사이를 민첩하게 누비며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순환"이라는 것... 어쩌면 고위 권한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했다.
이내 하늘이 선택한 자와 제타비는 적에게 몰려 벽 구석까지 밀렸다.
어떻게 된 거지. 무기 충전이 안 돼.
제타비의 매끄러웠던 동작이 잠시 주저하는 사이 흐트러졌고, 그 틈을 노린 적이 그녀를 공격했다.
괴물의 날카로운 발톱이 제타비를 땅으로 날려버렸고, 하늘이 선택한 자도 다가온 다른 괴물들에게 팔을 붙잡혔다.
위기의 순간, 하늘이 선택한 자는 몸을 붙잡은 괴물을 걷어차고 총을 쏘았다.
하늘이 선택한 자와 제타비는 상처투성이가 된 채, 무너진 벽에 등을 기댔다. 둘 다 정도는 다르지만,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적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파도처럼 계속해서 밀려들었다.
이때, 하늘이 선택한 자와 제타비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제타비는 미소를 지으며 탄약이 떨어진 무기를 내려놓았다.
하늘이 선택한 자, 이미 졌어.
하지만 좀 더 노력해 볼게. 너만이라도 도망칠 수 있게...
다른 세계라고?
의식이 혼미해져서 헛소리하는 거지?
힘?
하늘이 선택한 자는 제타비의 손을 잡았다.
[연산량 전이 프로토콜을 발동합니다.]
[연산량이 유실됐습니다!]
이건... 하늘이 선택한 자, 뭐 하는 짓이야!
왜? 이러다가 하늘이 선택한 자, 네가 사라져 버릴 거야!
하늘이 선택한 자, 그만둬!
하늘이 선택한 자는 몸을 유지하던 의식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제타비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녀의 몸이 청색 빛에 휩싸이면서, 수많은 데이터가 그녀의 몸과 영혼을 재구성하고 있었다.
연산량이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어.
몸 안에 두 가지 기억이 존재해. 이건 다른 세계에서 오는 공명... 대체?
시작됐군. 오랜만에 보는 진화의 빛이야.
하늘이 선택한 자는 계속해서 제타비에게 연산 능력을 보냈다. 그러다 연산 능력이 흩어지면서 의식이 흐려졌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제타비의 다정하고 평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이 선택한 자, 우리 영원히 함께하자.
[연산 능력 락 해제 중입니다. 1-56층...]
고위 권한...
너의 이런 모습 오랜만이야.
[57-234층 연산 능력 락...]
[234-629층...]
필요 없어. 널 상대하는 데 그렇게 많은 연산 능력을 해제할 필요 없어.
[프로세스를 중단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해. 고위 권한. 널 죽이는 게 목표라면...
이미 너무나 충분해.
끊임없이 확장되는 짙은 푸른빛이 하늘이 선택한 자의 희미해지는 시각 시스템을 가득 채웠다.
지금의 난 그때의 반쪽짜리와는 달라. 이번에는 확실하게 널 죽여주마.
하늘이 선택한 자의 완전한 연산 능력을 사용해서 Beta 측의 제타비 적합도를 초월한 건가?
정말 아름다워. 내가 기다린 게 바로 이 순간이야.
하늘이 선택한 자의 연산 능력을 완전히 흡수한다면, 진정한 원체가 될 수... 아니. 원체를 초월할 수 있을 거다.
대가라면, 어차피 가능성 없는 하늘이 선택한 자일 뿐이니까.
조금씩 작동을 멈추는 시각 시스템 속에서 눈부신 빛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미풍이 하늘이 선택한 자의 소매를 살짝 흔들었다.
의식이 흐려지면서 양자의 바다가 출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하늘이 선택한 자가 예상했던 파멸은 찾아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침묵 속으로 빠져들려고 할 때, 제타비의 다정한 목소리가 하늘이 선택한 자의 귓가에 다시 들려왔다.
혼미한 상태에서 깨어나보니, 하늘이 선택한 자는 트윈테일 소녀의 품에 안겨 있었다.
에덴의 문턱까지 간 소녀는 낙원을 포기했다.
영혼을 구성하던 연산 능력이 다시 원래의 육체로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나는... 끝까지 하늘이 선택한 자를 포기할 수 없어.
혼자서 떠나고 싶지 않아. 하늘이 선택한 자, 난 어디도 가지 않을 거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해도, 하늘이 선택한 자가 없는 미래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
하늘이 선택한 자를 희생해야만 얻을 힘이라면, 난 필요 없어.
실망스럽워. 아이는 결국 아이군.
시뮬레이션된 인격이 너무 인간과 비슷해지면, 인간의 나약함까지 배우게 되나?
각성에 필요한 변수를 좀 더 조정해야겠어.
이번 라운드는 여기까지.
고위 권한이 몸을 돌리자, 붕괴가 가속하기 시작했다.
허공의 촉수들이 이 세계를 침식하기 시작했고, 주변의 모든 것이 붕괴하고 분해되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날 이해하게 될 거야. 제타비.
넌 언젠가 내가 될 테니까.
그럼, 다음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