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해안가에 떠내려왔을 때부터 시작됐다.
과거의 일이나 왜 이곳에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해안가에서 스캐빈저 몇 명에게 발견되어 구조된 후, 자연스럽게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
마을의 나이 든 수리공이 견습공을 찾고 있었는데, 수리공은 당연하다는 듯 날 견습공으로 받아줬다.
이 기술은 쉬운 편이어서, 배운 지 얼마 안 돼 간단한 소품 정도는 스스로 수리할 수 있게 됐다.
생계에 대한 걱정이 없어진 이후로,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렀다.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게 됐다.
난 왜 이곳에 떠내려왔을까?
매일 부는 바닷바람에 심취하는 것처럼, 이곳의 생활 패턴에 물들어 가는 나에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조금씩 중요치 않게 됐다.
"이유"를 알아내기보다, "대책"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았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이 말은 매우 유용한 것 같았다.
공방의 셔터를 올리고, 간판 옆에 걸려 있는 노트를 내렸다. 마을 사람들은 수리공이 필요할 때, 노트에 구체적인 사항을 메모했다. 그러면 다음 날 나와 스승님이 일일이 수요 사항을 정리하고, 순서대로 방문 서비스를 진행했다.
오늘의 주문은 너 혼자 가거라. 난 가게를 볼 테니.
도구함을 준비해서, 공방의 문을 나섰다.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교외의 한 정원이었다.
오래전에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이곳은 최근 들어 마을의 어느 부잣집이 이 땅을 매입한 뒤, 전면적으로 재건설과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다.
십여 분 정도 걸으면, 숲 끝에 있는 별장의 뾰족한 지붕과 넓은 정원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울타리 앞에 서서, 문 열어줄 사람을 찾으려는 순간, 시야의 구석에서 누군가의 그림자를 포착했다.
정원 옆에 오래된 작은 묘지가 있었다. 별장을 매입한 자는 이 "재수 없는" 묘지를 없애기 위해, 읍장과 참 오랫동안 논쟁을 벌였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 망토를 입은 어떤 소녀가 묘지 안의 한 묘비 앞에 꿇어 앉아 눈을 감은 채,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주인이 소녀를 본다면, 분명 가차 없이 소녀를 쫓아냈을 것이다.
나 자신도 모르게 소녀 쪽을 향해 걸음을 돌린 뒤, 입을 열었다.
이곳에 묻힌 사람은 아마도 세상을 떠난 지 수백 년이 지났을 것이었다. 이 젊은 소녀가 그중의 누구를 위해 제사를 지낸다는 건 상상조차 어려웠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목소리를 들은 소녀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날 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할 일은 이미 다 했거든요.
소녀는 마치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내 말을 끊었다.
방금은 "작별"을 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참, 이곳에서의 생활은 즐거우신가요?
그런가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소녀는 왠지 모르게 반문하기 시작했고 난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혼수상태에 빠진 날 구한 일은 온 마을을 떠들썩하게 했던 걸 생각해 보면, 이 소녀도 그때 날 알게 됐을 거라 추측했다.
그래서 내가 소녀에 대해 어떤 인상도 없다는 건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다.
그럼, 저도 이제 떠날 때가 됐네요.
때가 되면 다시 뵙죠.
손을 흔들어 소녀와 작별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동작과 함께 이질감이 나에게 밀려왔다.
멀어져 가는 소녀가 시야의 끝에 사라질 때까지, 그녀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내 착각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