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과 소금으로 뒤섞인 냄새가 입안에서 퍼졌고, 귓가에는 나지막한 소리로 가득했다.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높은 파도가 절벽을 내리치는 듯했고, 그 파도 소리는 멈추지 않을 것처럼 울리고 있었다.
이러한 미지의 정보를 받아들이며, 그걸 기반으로 자신의 의식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속됐는지 모를 어둠 속에서 갑자기 희미한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마치 빛을 쫓는 나방처럼, 그 희미한 불빛에 가까워지고 싶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두 다리가 만들어졌다.
닿고 싶은 의지가 있어, 앞으로 뻗을 수 있는 두 손이 만들어졌다.
그 빛에 가까워질수록, 자아는 더 완전해졌다.
그 빛에 가까워질수록, 끝없는 파도 소리는 점점 더 거세졌다.
그렇게 손가락이 빛 덩어리에 닿는 순간,
죽음에 이를 항성이 붕괴하면서 파멸된 것처럼 강렬한 흔들림이 전해져 왔다.
찰나의 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곧 이어서...
온 세계는 다시 적막한 어둠으로 돌아갔다.
……
…………
악몽의 여운에 사로잡힌 듯 침대에서 놀라며 깨어났다.
놀라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눈을 떠 주위를 돌아봤다.
"너덜너덜"이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할 수 있는 방 안에 있었다.
낡은 나무 침대, 곰팡이가 핀 갈라진 벽면, 거미줄로 덮인 천장. 공기 중에 가득 찬 희미한 곰팡이 냄새는 이 건물이 버려진 지 오래됐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낯설다.
형편없는 환경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낯설게 느껴졌다.
왜 여기 있는지, 왜 여기에서 깨어났는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새하얀 머릿속은 생각의 불씨조차 지필 수 없었다.
아무튼, 일단 움직이자.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따라 침대에서 내려왔다.
창문 너머로, 낡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정원과 저 멀리 우거진 숲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어느 마을의 근처에 있는 교외인 것 같았다.
해안가에서 파도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아마도 이곳은 어느 해변 근처에 있는 지대인 것 같았다.
방을 나가,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나의 움직임이 별장의 오랜 적막을 깨뜨렸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공기 중의 먼지를 비추었다.
기나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오랫동안 수리하지 않은 정문을 밀었다.
지저분한 야초가 가득한 정원과 정원 밖, 숲으로 향하는 길의 철제문.
세계가 순식간에 무한대로 넓어지면서, 혼자라는 무력감도 더 깊어지게 됐다.
목구멍까지 나온 외침을 반쯤 내뱉었을 때, 시야의 구석에서 무언가를 포착했다.
정원 옆에 작은 묘지가 있는 것 같았다.
……
망토를 입은 소녀가 묘비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소녀는 이곳에 묻힌 고인을 애도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내가 접근한 후에도, 소녀는 그 자세를 몇 분 동안 유지했다.
호기심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대를 스쳐 지나가 말이 되었다. 내 질문을 들은 소녀는 천천히 일어섰다.
소녀가 날 향해 몸을 돌리면서 눈을 떴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작별" 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예정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저는 당신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 이름은 콜레도르에요. 신분은 음, 정의하기가 좀 어렵네요.
저에게는 한 가지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어쩌면 전 이 사명을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무방하죠.
"세계의 파도 소리를 멈추고, 끝없는 윤회를 종결시켜라" 이 사명은 특정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저의 직책은 그 특정된 사람들을 이 세계의 가장 깊은 곳으로 안내하는 겁니다.
이 정도로 설명해 드리면... 제가 당신을 기다린 이유를 아시겠죠?
당신만이 이 세계의 '파도 소리'를 멈추고, 끝없는 윤회를 끝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제 소개를 해드리죠. 제 이름은 콜레도르에요.
전 당신을 안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를 웨이터, 하인, 동료... 아무튼 편하게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당신은 "도액자(渡厄者)의 길"에 오르기 위해 이곳에 온 존재입니다. 때문에 당신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이곳에서 깨어난 겁니다.
오직 파도 소리를 멈추게 한 후, 사라졌던 당신의 공백이 다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콜레도르라는 소녀는 전부 기억을 잃은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안타깝게도 난 콜레도르가 한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넘쳐나는 정보의 양이 날 숨 막히게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몸에 남아 있는 습관이 어느새 작동되기 시작했다. 콜레도르의 말을 반복적으로 되새기며, 그 뜻을 정리했다.
이 세상을 씻어 없애는 재앙이자, 끝없는 비원입니다.
당신도 들리는 거 맞죠? 당신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절망적인 비명 같은 물결 소리 말입니다.
그렇다. 방금 전부터 내 귓가에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게 "재앙"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거죠?
제가 말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네요.
하지만 괜찮아요.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실제로 경험하는 게 더 직관적이겠네요.
마침, 시간이 다 됐습니다.
내면의 불안감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쉿...
소녀는 손가락 하나를 자기 입술에 댔다.
들리나요?
들리나요?
밀려오는 거센 파도.
사람을 전율케 만드는 파도 소리.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진 것 같았다.
먹구름 조각이 먼 하늘가를 어루만지며 밀려오는 듯했고, 창백한 대낮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먹구름이 아니라는걸.
그건, 하늘을 뒤덮을 만큼 거센 파도였다.
나의 두 발은 땅에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도망칠 수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숨을 몇 번 들이키는 사이에 거대한 파도는 맨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모든 걸 잠식할 수 있는 파도... 그 어떤 것도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이번에는 기회가 없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저희에겐 다음 기회가 있으니까요.
파도의 굉음이 점점 더 가까워짐에 따라 난 고막이 찢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럼 잠시 후에 뵙죠.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눈을 감고, 나와 함께 세계를 잠식하는 파도 속으로 말려들었다.
악몽의 여운에 사로잡힌 듯 침대에서 놀라며 깨어났다.
놀라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눈을 떠 주위를 돌아봤다.
낡은 나무 침대, 곰팡이가 핀 갈라진 벽면, 거미줄로 덮인 천장. 전과 다를 바 없는 환경이었다.
똑같은 방에서 깨어났다.
난 무언가를 떠올리며 폐가를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김없이 묘지 앞에서 망토 입은 소녀를 만났다.
또 뵙네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 이름은 잘 기억하고 계시죠?
맞아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바다 밑에서 거대한 파도가 밀려와, 세상의 모든 걸 잠식해 버려요.
그 후, 모든 사물이 "시작점" 상태로 돌아가죠.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잊어버리고 필연적으로 다가올 이 재난에 대해서도 모른답니다.
파도 때문에 이 세계의 시간은 정지되고, 파도가 덮친 후, 아무도 내일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린 것처럼, 당신 같은 사람이 파도 소리를 멈추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
이 세계는 한 번 멸망한 적이 있어요.
오랜 신화시대 이후, 얼마 남지 않은 인간들이 전쟁의 폐허에서 차근차근 문명을 재건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고대의 지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걸음마를 떼듯 역사의 모든 것을 어설프게 반복해야 했죠.
그런데 알 수 없는 어느 순간부터, "파도 소리"가 나타났어요.
인간의 미래를 옭아매려는 듯, 세계를 거듭 멸망시켰죠.
이게 바로 지금 이 세계의 현재 상황이에요. 참고로 제가 모든 지식을 설명할 수 있다는 착각은 버리세요.
전 당신의 과거에 대해 잘 모르고, "파도 소리"의 유래도 알 길이 없어요.
전 이런 "사명"을 부여받았을 뿐이고, 지금은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네. 이해가 빠르시네요!
세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전 "이유"를 알아내기보다, "대책"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눈앞에 닥친 재난으로 인해, 세계가 다시 한번 멸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요.
아무래도 "행동"은 필수가 되겠죠?
음... 왜 저를 못 믿는 건가요?
뭐... 저를 믿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을 안내하는 것이 제 사명인 것처럼, "파도 소리를 멈추는 것"이 당신의 사명이에요.
이건 유일하게 회피할 수 없는 부분이죠.
그러니 지금 당장 저와 작별하고 홀로 다른 곳에 가서 구경해보는 것도 좋아요.
전 당신이 꼭 이곳에 돌아올 거라고 믿거든요. 그래서 당신이 마음 바뀔 때까지, 전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파도 소리"의 진실이 무엇이며, 왜 난 느닷없이 이런 사명을 떠맡게 되었는지.
콜레도르가 말한 것처럼, 피할 수 없다면 우선 움직여야 했다.
특별한 계획이 없으시다면, 같이 움직일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이 근처에 바다를 인접한 작은 마을이 있어요. 그곳에서 주위의 환경을 파악해 보는 건 어떨까요?
먼저 결심하신 다음 움직여도 늦지 않아요.
……
미안해요.
하지만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는 이 세계에서 제가 당신에게 보장할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랍니다.
당신의 여정이 어떤 종점에 도달하든
제가 마지막까지 함께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