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숲의 눈보라가 점차 햇빛을 가리고, 주위의 빛이 어두워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로제타는 꿋꿋히 전진했다.
——보이지 않는 방향.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둠, 공포, 적막.
——지나간 수많은 세월과 같다.
그러나 나는 동료를 수호하는 기사다.
——수호는 사명이다.
——그럼 어떻게 수호해야 할까?
——누군가가 기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 닦으며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해질 수 밖에 없다.
삐——
자신의 휘파람 소리가 아니라 눈 덮인 숲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숨소리였다.
여기 있었군.
빨리 따라와. 이런 날씨에 설산에 남아 있는 것은 너무 위험해.
로제타는 빠른 걸음으로 보조기에게 다가가, 보조기를 끌고 자신이 온 방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어? 나는 어디서 온 거지……
일찌감치 모든 것을 폭설에 파묻었다. 도로 표지판같이 참고할 만한 것은 모두 사라지고, 눈 앞에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끝없는 어둠만이 남아 있었다.
아무튼 먼저 산을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러나 얼마 가지못해서 로제타는 바닥에 쓰러졌다.
이러한 극악의 날씨는 구조체조차 극도로 제한을 받았다.
로제타는 자신의 장창에 지탱해 힘겹게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또 한 번 눈보라에 쓰러지고 말았다.
로제타가 눈 속에 쓰러지려 하던 그때, 갑자기 견고한 힘이 그녀의 몸 아래에서 전해져왔다.
이건……
아무런 명령도 받지 않은 보조기가 로제타가 넘어지기 전, 한발 앞서 달려와 그녀를 등에 태웠다.
그러나 이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로제타가 들고 있던 장창이 보조기의 기체와 부딪혔다.
보조기의 몸체에 스크래치가 생겼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로제타를 싣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로제타는 지친 자신을 등에 업은 탓에 보조기가 빨리 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만해. 이러다 우리 둘 다 여기 갇히게 될 거야.
지금은 제멋대로 할 때가 아니야. 이대로 가다가는 넌……
——폐기 처분될 것이다.
하지만 로제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보조기는 로제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싣고 눈보라 속을 꿋꿋이 걸어 나갔다.
왜지……
왜 위험을 알면서도 내 옆에 서있는 거지.
어둠이 점차 로제타를 향해 밀려오는 가운데, 로제타가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 본 것은 눈보라 속에서도 자신의 곁을 지키는 보조기의 모습이었다.
곁의 희미한 불빛이 겨우 어둠 속의 길을 밝혀주었지만, 결국 모든 빛은 어두워졌고 로제타는 어둠 속을 더듬으며 나아갔다.
로제타는 자신의 운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을 줄곧 알고 있었다.
동료는 자기 때문에 피해를 받고, 함께 가는 동료는 결국 자기 옆에 있기에 다친다.
그래서 그때의 자신은 알파와 홀로 맞서 침식체의 위기를 혼자 해결하는 선택을 했었다.
어쩌면 동료가 곁에 있지 않고, 자신만큼 위험한 곳에 서 있지 않는 한, 자신의 상처로 인해 동료가 사라지는 날은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앞장서서 동료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런 보호가 지나치든 아니든 로제타의 인식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
갑자기 잠에서 깬 로제타는 자신이 보조기 등에 타고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눈보라는 예전처럼 맹렬하지는 않았다.
주변에는 방향을 알아볼 수 있는 이정표들이 조금씩 등장했고, 로제타는 자신이 보조기와 함께 주둔지를 향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눈보라가 보조기 기체를 가려도 굴하지 않고 전진하며 등에 달린 로제타를 위해 눈보라를 막아줬다.
아직 있었네.
로제타는 앞을 향해 손을 뻗었다. 기체는 차가웠지만 손가락 사이로 닿는 위치에서 약간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로제타는 몸이 가볍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이건 추위에 떠는 것보다는 이보다 더 심한 설산 전체의 진동이었다.
뒤돌아보니 세차게 쏟아지는 눈이 파괴의 눈사태로 변하여 산꼭대기에서 흘러 내려왔다.
길 주변의 나무와 바위도 순식간에 삼켜졌다.
눈사태.
로제타는 힘껏 몸을 지탱했지만 결국 보조기 등에 앉게 됐고, 보조기 역시 뒤쪽의 상황을 눈치챈 듯 달리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뒤쪽 천재지변과의 거리는 눈에 띄게 짧아졌다.
적어도……
로제타는 보조기 등에서 뛰어오르려고 생각했다. 지면에 뛰어오르려 하자 갑자기 보조기가 중심을 낮춰 로제타의 동작을 중단시켰다.
뭐 하는 거야. 이러다가는 우리 둘 다 눈사태에 묻힐 거야.
다시 한번 지면으로 뛰어오르려 하자 보조기는 다시 한번 움직임을 차단하였고 로제타는 보조기의 등에만 머물러야 했다.
……
다가오는 천재지변을 빤히 쳐다보던 로제타는 순간적인 체공을 느꼈다.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니 이곳은 보조기를 추적할 때 애를 먹었던 절벽이었다.
이제 보조기의 도움으로 이렇게 과장된 거리도 쉽게 넘을 수 있게 됐고 절벽의 맞은편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러나 보조기와 로제타가 공중으로 떠 올라 맞은편 절벽에 착지하기 전, 눈사태가 이들의 머리 위로 밀려왔다.
정말로……고집이 센 놈이군.
눈사태가 쏟아져 로제타와 보조기에 닿기 전에 잠시 멈췄다.
체공 상태에 보조기와 소녀, 파멸을 몰고 온 천재지변, 그리고 흩날리는 눈보라가 이 순간 모두 고요함에 빠졌다.
정적이 극에 달하는 순간, 전자포의 밝은 빛에 의해 깨졌다.
빛줄기는 로제타와 보조기 머리 위의 눈사태를 갈랐고, 눈사태는 두 사람 옆의 끝없는 절벽으로 떨어졌다.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고, 귓가에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로제타와 보조기의 숨소리.
보조기는 절벽 맞은편에 안전하게 착지했고, 로제타는 그 뒤에 똑바로 앉아 절벽을 돌아봤다. 무너진 눈송이는 끝없이 절벽 아래로 흘러내렸고 보조기는 앞발을 가볍게 들어 올려 산 밖으로 빠져나갔다.
네 덕분에 우리는 빠져나올 수 있었어.
보조기는 로제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 말은……너 때문만은 아니라는 거야?
우리 둘이서……같이?
보조기는 더 이상 응답하지 않고 묵묵히 전진했고, 로제타는 그의 목에 손을 얹었고 보조기는 이전처럼 격렬한 저항을 하지 않았다.
그렇구나……
——그런 거였다.
——수호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서로 돕는 것이다.
——모든 도움을 마다하고 누군가가 혼자서 수호의 깃발을 짊어질 것이 아닌.
——서로의 생각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서로의 뒤에 서서, 서로의 도움을 받고, 바람과 비를 막아주며, 서로의 현재를 지켜주는 것이다.
——수호자도 수호를 받아야 한다.
너와 나 둘 중 누구 하나만 없어도, 아까의 천재지변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우리 두 사람의 협력으로 지금 동료가 더 이상 없어지지 않는 상황이 실현됐어……
——혼자서 앞으로 나아 갈 필요가 없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여러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의 나는……생각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을 거부해 왔어.
내가 이 이치를 깨닫을 때까지 버텨줘서 고마워.
히히힝.
눈보라가 잦아들었고, 로제타는 보조기의 머리를 만지면서 주둔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