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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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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와 함께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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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

지금 기분이 어때?

랜덤 박스를 열어 보니, 그 안에 태평양 연안의 한 보육 구역 좌표가 들어 있었다.

안내에 따라 지정된 장소로 도착하자,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짜릿한 경험을 할 예정이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이내 말할 틈도 없이 눈가리개가 씌워졌고, 그것을 벗었을 때는 이미 몸에 두터운 방열복이 입혀져 있었다.

오~ 이제 정신이 좀 드나 보네. 그럼 슬슬 시작해 보자고.

시야를 가리던 두건이 갑자기 벗겨지자, 눈앞에 밤이 내리기 시작한 지평선이 펼쳐졌고, 두 발은 떠오른 열기구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이건 저비용으로 대양을 건너 물자를 운송할 수 있도록 개조된 신형 운송 수단으로, 수송기 부족으로 인한 물류 문제를 크게 개선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 이곳은...

판단이 채 서기도 전에, 뇌가 거대한 움직임을 감지했다.

붉은 머리의 여성 구조체는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인간을 붙잡은 채 그대로 뛰어내렸다.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 어린 장난기 가득한 미소만큼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서프라이즈, 맘에 들어?

방호복 안의 통신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찔한 추락에도 깨지 않는 걸 보면, 이건 꿈이 아닌 듯했다. 물론 스카이다이빙이나 번지 점프 같은 극한 스포츠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높은 곳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참으로 베라 다운 서프라이즈였다.

인간이 처음으로 3만 미터 상공에서 뛰어내린 이후, 황금시대를 거치며 성층권 스카이다이빙은 이제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임무 중에만 공중 강하를 하는 시대에,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뛰어내리는 것도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다.

서두르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

대류층의 먹구름을 지나자, 검은 장막 위로 푸른 곡선이 길게 펼쳐졌다. 그것은 머나먼 우주의 은하수가 아닌, 바로 눈앞의 해안선이 내뿜는 강렬한 푸른빛이었다.

푸른빛 파도가 바다의 숨결에 맞춰 해안선을 두드렸다. 빛은 밝아졌다 스러지기를 반복하며, 꿈속에서나 볼 법한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런 경치는, 땅에선 절대 온전히 볼 수 없어. 그렇다고 공중 정원에서 내려다보기엔 빛이 너무 희미해 우주까지 닿지 않지.

일정한 고도까지 내려와야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뜻이야.

익숙한 중력 구간으로 돌아오자, 대기권 돌파용으로 착용했던 헬멧이 벗겨졌다. 덕분에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층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잠시 넋을 놓고 형광빛 바다를 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낙하 속도가 무시 못 할 수준으로 빨라져 있었다.

낙하산? 내가 언제 너랑 스카이다이빙하러 왔다고 했어?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올 듯한 기분을 제대로 느끼고 싶으면,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뛰어내리는 게 제격이지.

말 안 한 게 있는데, 내 기체엔 대기권을 돌파할 수 있는 모듈이 별도로 추가 장착되어 있어.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어느 지휘관과는 다르게, 난 내 목숨을 꽤 아끼는 편이라서 말이야.

어디 한번 애원해 봐. 기분이 내키면, 생일 선물로 목숨은 살려줄 테니까.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생명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낸다"라는 건가? 하지만 나한테 자비를 기대하진 마.

현재 해발고도는 약 6,000미터. 베라는 인간을 끌어안는가 싶더니, 그대로 방열복을 찢어버렸다. 그러자 차가운 공기가 얇은 옷 속으로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그 덕분에 옆에 있는 구조체를 더 세게 끌어안게 되었고, 상대의 요동치는 코어에서 필사적으로 열기를 얻으려 애썼다. 아드레날린이 급격히 분비되며, 몸이 오히려 뜨겁게 달아올랐다.

제법인데. 필요할 때 옆에 있는 지푸라기를 잡을 줄도 알고.

앞으로도 종종 나한테 이렇게 매달려, 알겠지?

아드레날린이 극한까지 치솟았지만, 이상하게도 안전에 대한 걱정은 들지 않았다. 극한 스포츠에 몸을 담고 있는 운동선수들은 고난도 동작에 성공했다고 해서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감을 느끼지 않는다. 대신,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하는 그 순간의 즐거움을 만끽할 뿐이다.

역시, 우리 꼬마 지휘관이 말 안 들을 줄 알았어.

내가 "꼬마 지휘관~ 조심해"라고 다정하게 얘기해 주길 바랐어?

말을 안 들을 거면, 얌전히 벌이나 받아!

방열복을 벗은 인간을 안아주러 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대신 먹잇감을 노리는 매처럼 인간의 어깨를 붙잡고는 아래로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낙하 속도가 음속에 가까워지자, 영혼이 몸에서 튕겨 나가는 듯한 감각이 전신을 덮쳤다.

이젠 마지막 기회야. 어떻게든 날 즐겁게 해봐.

베라는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착하지~

이번에는 몸까지 튕겨 나갔지만, 이내 거친 손길에 의해 다시 끌려왔다. 붉은 머리의 구조체가 추락하는 인간을 품에 안아, 흩어진 영혼을 억지로 육체 속에 밀어 넣었다.

계속되는 추락으로 체온이 떨어지자, 머리는 본능적으로 더 많은 열을 찾아 구조체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근데, 낙하산이 없는 건 진짜야.

그 순간, 베라의 기체에서 날다람쥐 윙슈트가 펼쳐졌다. 이 부분만큼은 꽤 공을 들인 게 분명했다. 예상보다 공기 저항은 적었지만, 내장이 쏠리는 압박감은 여전했다.

10여 분간의 아찔한 "다이빙"이 끝나고, 베라는 해안가에 모닥불을 피워 체온이 떨어진 인간의 몸을 녹여주었다. 간단히 구운 해산물을 먹고 나니, 온기와 함께 몸의 감각이 서서히 돌아왔다.

이번 생일 선물, 어땠어? 심장이 좀 두근거렸나?

꽤 마음에 들었나 보네. 이참에 위로 올라가서 한 번 더 뛸까?

베라는 곁에서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인간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짭짤한 바닷바람에 모닥불이 흔들렸고, 베라는 다 먹은 꼬치를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꽂았다.

내가 진짜로 널 버리고 갈 거란 생각은 안 들었어?

나한테 담쟁이덩굴처럼 매달려 있을 땐, 이렇게 태연해 보이지 않았는데.

그래, 그래. 그렇다고 이런 번지르르한 말 때문에 널 살려주는 건 아니야.

내가 널 소유하는 데 네 동의가 필요 없는 것처럼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