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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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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스와 함께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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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잠에 빠졌던 인간은 무거운 모래 속에서 몸을 일으키며 다시 눈을 떴다. 겹겹이 쌓인 꿈의 장막을 헤쳐, 마침내 꿈과 현실의 경계에 다다랐다.

발목을 스치는 바닷물의 서늘한 감촉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곳은 낯선 섬이었다. 막 깨어나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며,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공중 정원 지휘관 휴게실 안.

여덟 개의 각기 다른 박스 중에서, 지휘관은 보랏빛의 다면체 주사위 모양의 박스를 골랐다.

빙고! 역시 지휘관님이시네요. 이런 "신기한" 경험을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공중 정원에 위험한 승격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엘리너의 매혹적인 말과 작은 박스에서 퍼져 나온 몽환적인 향기가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을 꿈속으로 끌어들였다.

정신을 차린 인간은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아무도 없는 무인도였다.

아아~ 좀 더 늦게 깨어나실 줄 알았는데. 어떠세요? 제가 준비한 "무인도 하루 여행" 선물, 마음에 드시나요?

멀지 않은 해변가에 엘리너가 서 있었다. 지휘관을 이곳에 떨어뜨린 "장본인"이 분명했다.

여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통신 신호조차 닿지 않는 외딴섬이에요.

어느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자, 지휘관은 자신이 인간 사회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락이 닿을 리 없죠. 제가 이곳의 신호를 차단했거든요. 이제 여긴 그야말로 세상과 단절된 무인도랍니다.

정말, 아무리 저라도 그런 오해는 서운해요. 무슨 꿍꿍이가 있겠어요? 전 그저 지휘관님께 조금 더 특별한 생일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아아, 놀라셨나 봐요? 장담컨대, 이 정도 규모의 선물을 준비할 사람은, 저 말고 아무도 없을걸요.

아... 지휘관님이 그렇게 생각하실 줄은 몰랐네요. 제 선물이 마음에 안 드시나 보네요!

눈앞의 승격자는 등을 돌리며 서운한 기색을 보였다. 인간이 이렇게 강한 불만을 드러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불안한 기색으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승격자의 주의가 다른 곳을 향한 틈을 타, 아직 손이 자유로운 "죄수"는 허리에 찬 권총을 조용히 쥐었다. 즉흥적인 반격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인간이 예상했던, 팔로 승격자를 제압하고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장면은 실현되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기습에 나선 인간이 승격자와 맞닿으려던 순간, 투영 신호로 이루어진 형체를 그대로 통과해 갯벌 위에 힘없이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어머나, 들켜버렸네요. 사실 전 지금 지휘관님을 위해, 더 큰 서프라이즈를 준비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거든요.

설마 화내는 건 아니시죠? 아무리 저에게 적의를 품으셔도, 제 마음만큼은 진심이랍니다.

돌아가신다고요? 여긴 최고 등급 보상이 있는 곳이에요. 저희의 임무 진행도가 아직 거기까진 진행되지 않았는걸요.

당연히 무인도 생존 임무죠. 임무 하나를 완수할 때마다 보상 한 개를 획득할 수 있어요. 정말 합리적이지 않나요?

지휘관님이 원래 하시던 임무에 이렇게까지 거부감을 보이실 줄은 몰랐네요. 그럼 차라리 여기서 "무한 휴가"를 보내시는 건 어떠세요? 그 대가로 제가 "메피스토펠레스"가 되어, 지휘관님 곁을 지켜드릴게요.

인간은 눈앞의 승격자가 규칙을 어길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규칙은 엘리너가 직접 정한 것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인간이 질문을 던졌다.

불 피우기입니다. 보상으로는 지휘관님 단말기의 통신 신호를 한 칸 복구해 드리죠.

야외에서 불을 피우는 것쯤은 파오스의 우수 졸업생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은 주변의 자원을 활용해, 이내 무인도에서 빠르게 첫 불꽃을 피워 올렸다.

이 순간을 기록해 둬야겠네요. 이 무인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손에서 피워진 불꽃이니까요.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이건 역사적인 순간이라고요.

아직 식사 전이신 것 같으니, 두 번째 임무는 물고기를 잡아 배를 채우는 걸로 하죠. 지휘관님한테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 아니겠어요?

탕! 또 하나의 역사적인 순간이 탄생했다. 인간은 물속으로 몸을 던져, 이 섬에서 처음으로 총에 맞은 물고기를 건져 올렸다.

물고기를 재빨리 손질한 뒤, 전술용 비수에 꿰어 모닥불에 구워내자 금세 근사한 생선구이가 완성됐다.

역시 지휘관님이시네요. 그럼, 바로 다음 임무로 넘어가시죠.

세 번째 임무는...

네 번째 임무는...

승격자의 말대로, 이 무인도에서 주어진 생존 임무들은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은 주어진 임무들을 하나하나 막힘없이 완수해 나갔다.

인간은 임무에 따라 섬의 가장 높은 벼랑 가에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그곳은 하늘과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 같았다.

시간이 거의 다 됐네요. 지휘관님, 이제 다음 임무로 넘어가시죠.

해가 저물어갈 무렵, 황금빛 석양이 구름을 뚫고 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틴들 효과로 만들어진 빛줄기는 인간이 자리한 벼랑 가를 비추었다.

임무를 마친 인간은 손수 만든 휴식 공간에 앉아, 좀처럼 보기 힘든 이 장대한 광경을 조용히 감상했다.

제가 지휘관님의 즐거움을 방해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영혼을 빼앗아가기라도 하겠어요?

물론, 지휘관님의 영혼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긴 하지만요.

안심하세요. 마지막 임무는, 지휘관님이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는 거랍니다.

승격자 역시 인간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본래라면 적대해야 할 두 사람은, 세계의 끝에 펼쳐진 장관 앞에서 모든 다툼과 의심을 내려놓은 채, 황금빛 석양이 하늘을 물들이는 광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어 온종일 하늘을 지키던 태양은 천천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잔잔한 수면에서 번져 나온 푸른빛을 하늘에 덧칠했다. 고요하고 깊은 푸른빛이 밤의 전주곡처럼 서서히 번져 나갔다.

짧고도 몽환적인 블루 아워는 순식간에 지나갔고, 무인도에는 빠르게 어둠이 내려앉았다.

승격자의 투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깊어가는 밤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 진짜 생일 선물을 보여드릴게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투영된 형체가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며 밤하늘로 떠올랐다. 자줏빛 빛줄기가 어둠에 잠긴 하늘을 찬란히 밝혔다.

아득한 밤하늘 위로, 끝없는 대양 한가운데서 해저 화산이 폭발하는 투영이 나타났다. 수천 미터 심해를 뚫고 솟구친 용암은 마침내 수면 위로 하나의 섬을 빚어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만 년 동안...

밤과 낮이 교차하고 세월이 흐르며, 끊임없는 지질 운동이 섬의 모습을 바꾸었고, 새로운 생명들이 그 위에 깃들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단 한 가지는, 이 고립된 섬이 언제나 문명의 경계 너머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한 인간이 자신의 생일에 처음으로 이 섬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 순간, 투영이 끝이 났다.

마음에 드셨나요? 이 투영 공연은 제가 정말 정성을 다해 준비한 거랍니다. 섬의 주인이신 지휘관님께서 만족하지 않으시면… 저, 정말 상처받을지도 몰라요.

이 섬은 조금 특별해서, 좌표 없이는 절대 찾아올 수 없는 곳이거든요. 이제 그 좌표는 지휘관님의 단말기에 저장되었으니, 지휘관님이 이 무인도의 유일한 주인이 되셨어요. 원하시면, 섬 이름을 지휘관님 이름으로 바꾸셔도 괜찮아요.

이곳은 오직 저와 지휘관님만의... 세계의 끝인 거죠.

어떠세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이렇게 거창한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요.

지휘관은 절벽 끝에 서서 달빛이 비치는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서늘한 바람이 축축한 공기를 실어 왔고, 멀리서 들려오던 하이힐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네요. 이제 곧 열두 시 종이 울릴 테고, 신데렐라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겠죠.

섬의 주인님, 이 풍경을 다시 한번 눈에 담아두세요. 다음번에도, 다음번에도 오늘 이 순간을 기억해 주시길 바랄게요.

인간은 승격자의 투영이 위험한 행동을 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투영이어야 할 그녀의 손이 갑자기 벼랑 가에 서 있던 인간을 힘껏 밀어버렸다.

생일 축하해요. 사랑하는 섬의 주인님.

어느새 투영에서 실체로 바뀐 승격자는, 조금 전 인간이 서 있던 벼랑 가에 서서, 바다로 떨어지는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잘 자요~ 지휘관님.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휴게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휴게실.

휴게실의 스크린에는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소유가 된 섬이 수만 년에 걸쳐 탄생하고 변화해 온 과정이 재생되고 있었다. 모니터 앞 소파에 파묻힌 인간은 고른 숨소리를 내며 평온한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생일 축하해요. 사랑하는 섬의 주인님.

스크린 속에서, 벼랑 아래로 밀쳐지기 직전의 인간은 마음을 흔드는 승격자의 생일 축하 인사를 들었다.

섬의 주인이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과 함께, 스크린에 재생되던 영상도 끝에 다다랐다.

겹겹이 쌓였던 꿈에서 화들짝 놀라 깨어난 인간은, 현실의 푹신한 소파 위로 내려앉았다.

방 안에는 여전히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테이블 위, 케이크 위에 듬뿍 발린 보랏빛 잼과 흔들리는 촛불은 인간이 아직도 꿈을 꾸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