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기념일 이벤트 스토리 / 운명의 실타래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당신과의 약속

>

전투는 큰 긴장감 없이 궁사의 완패로 종결 났다.

아무리 향화를 훔쳤다 해도, 애초에 인연의 여신은 전투의 신이 아니었으니까.

승부를 가른 일격이 날아든 후, 궁사는 거의 모든 전투력을 잃었다.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 법상을 만들어 세레나의 공격에 맞섰고, 본체는 다시 원래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여우를 향해 달려갔다.

인간 지휘관은 여우를 지키기 위해, 그 앞을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세레나는 지휘봉을 내밀어 법상을 제압하고, 다른 손으로 푸른 빛을 그려내 수우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지휘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달려가 궁사를 바닥에 눌러 제압했다. 모든 과정이 마치 잘 짜인 연주처럼, 물 흐르듯 매끄러웠다.

수우

역시… 안 되는 건가.

잠깐의 몸부림 끝에, 궁사는 결국 포기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우

죽이든 벌하든… 존하의 뜻대로 하십시오.

다만, 이 모든 건 저 혼자 벌인 일이니, 운알과 신사 신도들에게는 죄를 묻지 말아 주세요.

그 말에 지휘관은 세레나와 잠시 눈을 마주쳤다.

세레나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수우

이 지경이 되었는데… 계속 저를 조롱하실 생각입니까?

뛰어난 원력과 법력, 그리고 남다른 기품까지... 천도께서 인간 세상에 강림하신 게 아니라면 뭐겠습니까?

몸을 일으킨 궁사는 벽에 기댄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수우

저는 존하께서 이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을 제 행동에 대한 묵인이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감히 그런 질문을 드릴 수 있었던 겁니다.

수우

앞서 신사 앞에서 제가 드린 질문은, 신과 인간 사이에 과연 오랫동안 지속되는 인연이 존재할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존재한다면, 제가 저지른 이런 비겁한 행동들도 헛되이 되진 않을 테니까요.

운알

수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해가 안 돼…

궁사는 여우를 한 번 보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인간 지휘관에게로 시선을 옮겨 말을 이어 나갔다.

수우

존하의 말씀을 듣고, 저는 신선도 한결같은 초심을 유지하며,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인연의 여신을 대신해 신혼을 맺기 전, 이 마지막 순간들을 아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제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사랑을 향한 경고였군요. 천도와 인연의 여신 사이의 격차가 신과 인간만큼이나 크더라도, 그 사랑은 진실된 것이며, 함부로 판단하거나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겁니다.

세레나

...

여기까지 듣고 나니, 비록 세부적인 부분까지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궁사가 이 모든 일을 벌인 진짜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둘은 동시에 뒤에 있는 여우를 바라봤다.

운알

?

왜… 왜 다들 날 쳐다보는 거야? 무, 무슨 일인데?

운알의 말에, 궁사는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수우

결국… 또 괜한 걱정을 한 건가요.

그 순간, 여우도 어렴풋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운알은 현재 상황이나 세세한 것들은 일단 젖혀두고, 누구보다 먼저 궁사 곁으로 달려갔다. 서둘러 상처를 치료하면서도, 마음은 조급하고 불안해 보였다.

운알

왜 다들 그렇게 말을 돌려서 해? 도대체 무슨 일인데? 빨리 좀 설명해 봐, 속 터져 죽겠어!

세레나

...

세레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세레나

궁사가 신의 자리를 찬탈한 건 향화를 탐해서가 아니라, 운알님이 천도와 결혼한 후, 안 좋은 결말을 맞이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

이야기가 이쯤 되자, 지휘관은 무언가 떠오른 듯 세레나를 바라봤다. 세레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망설이고 있었다.

이리스

저와 지휘자님이 아무리 노력해서 당신을 막는다 해도, 전투의 여파로 생기는 피해를 완전히 막진 못해요.

하지만 무대를 바꿔보면 어떨까요? 이 세계와 격리된 무대라면... 당신이 아무리 격렬한 연극을 펼쳐도, 관객은 다치지 않겠죠.

꽃도 자기 마음속 그 이를 위해 비바람을 막아주고 싶어 하죠. 그녀가 많이 지쳐 있어요.

무대 뒤에서 끝낼 수 있는 이야기를 굳이 무대 앞으로 꺼낼 필요는 없어요.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요.

세레나

...

운알

!!!

그, 그런 거야…?

수우

참, 너는…

숨을 고른 궁사는 운알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우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인연이니 혼례니 떠들면서, 남들에겐 항상 신중하라고 얘기했었으면서…

생각을 깊게 하라, 감정에 휩쓸리지 말라, 온갖 조언은 잘만 하더니…

정작 천도와의 결혼은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알기는 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본 적 있어?

운알

당… 당연…

수우

당연히 아무 생각도 없었겠지. 그게 아니고선 내 마음을 눈치 못 챌리가 없지…

궁사는 또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운알

!!!

미... 미안해. 그땐 그냥...

궁사는 고개를 저으며 인간 지휘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수우

만약 존하께서 천도의 화신이 아니시라면, 이분과 운알을 데리고 신사를 떠나주세요.

가능하시다면 신사의 다른 요괴들도 함께요.

신혼 대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곧 천벌이 내려올 겁니다. 그땐…

운알

안 돼! 천벌은 안 돼! 나… 나 할 수 있어! 천도와 결혼할 수 있어!

그러지 마… 수우…

수우

널 보면 괜히 걱정이 들어... 이렇게 자유롭게 풀어주는 게 과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

만약 계획이 실패해, 네가 그 책임을 떠안게 된다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걱정 마. 신의 징벌은 나 혼자 감당하면 돼.

운알

…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궁사는 울먹이는 여우를 보고, 잠시 세레나와 인간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잠깐 머물렀던 시선은 곧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수우

이미 벌어진 일이야, 그 대가는 치러야 해. 이제 그만 가.

지휘관과 세레나의 눈이 마주쳤다. 둘은 궁사의 행동에서 아직 무언가가 있음을 눈치챘다.

세레나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수우

...

운알

!!! 지금 어떤 상황인데 아직도!

수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너무 무례한 부탁일까 봐 감히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두 분은 먼저 떠나주세요. 더 늦으면 정말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궁사

...

존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 모든 건 제가 벌인 일이니, 제가 책임지고 수습해야겠죠.

지휘관의 말을 들은 궁사는 고개를 저으며 주저 없이 말을 이어갔다.

수우

사실, 그리 복잡한 방법은 아닙니다. 비록 존하께서 천도의 화신은 아니시지만, 지니신 원력만큼은 보통의 신을 훨씬 뛰어넘으시니까요.

만약 존하께서 체면을 중히 여기시는 게 아니라면, 이곳에서 이분과 결혼식을 올리고, 제 수명과 복연을 제물로 삼아 의식을 거행하시면 됩니다.

세레나

저희의 실체가 궁사님이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아시잖아요.

수우

상관없습니다. 존하께서 어떤 분이시든 간에, 지니신 원력만큼은 진짜니까요.

그건 큰 공덕을 쌓고 위대한 흔적을 남긴 자만이 드러낼 수 있는 참모습입니다. 제가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지요.

만약 존하께서 힘을 보태 주신다면, 천벌을 면할 수 있고, 운알도 더 이상 천도와의 결혼에 얽매이지 않게 될 겁니다.

운알

그... 그럼...

그 말은 들은 운알은 세레나와 지휘관에게 부탁하려 했지만, 문득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운알

부부라는 관계는 함부로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야! 결혼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서로 좋아해서 결혼 축복을 받는 건 당연하지만, 세레나와 [player name]은(는)...

꽤 다정해 보이긴 해도, 부부라고 하기엔 아직 어색해.

말을 마친 여우는 선반 위로 폴짝 뛰어올라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만큼은 정말로 인연을 주관하는 신령 같았다.

운알

그러니 묻겠어. 두 사람 도대체 무슨 관계야?

그렇다. 결혼은 단지 사이가 좋아서, 잠깐 마음이 통했다고 거행할 수 있는 의식이 아니었다.